[출처 : 세상에 주인 없는 것은 없다 外 1편/ 나정욱:시인뉴스 포엠 (poetnews.kr) ]
세상에 주인 없는 것은 없다
세상에 그 무엇이든 주인 없는 것은 없다
주인 없을 거라고 쉽게 단정하고 주워 든 돌멩이도 제 무게로 답하는 것이다
너무 쉽게 주워 들어 너무 쉽게 던지지 말라고
제 무게로 답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쉽게 만들어 쓰고 버린 쓰레기들은 할 말이 더욱 많지만
버린 사람이 버린 그 마음을 다시 찾기 어렵다는 걸 알고
침묵하는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라고 주인이 없는 게 아니다
어쩌면 쓰레기 같은 지구의 땅
쓰레기처럼 초라해진 자유와 사랑을 두고 더욱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지금의
역사 전쟁이 아니겠느냐
모두 제 나름대로 보기 나름이지만 역사라는 것이
쓰고 난 뒤의 기록의 의미로 본다면
쓰레기의 기록이라고 말한다고 하여 다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역사 전쟁의 핵심이 또한 인정 투쟁이며 인정 투쟁의 핵심은 누가 주인이냐를 결정하는 것이니
결국 쓰레기 전쟁인 역사 전쟁도
주인과 관련된 것이다
세상에 주인 없는 것은 없다
이름이 붙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주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제 나름의 이름을 갖는다
그것이 비록 남들이 보기에 쓰레기라 보일지라도
그것들의 이름을 보고도 함부로 하는 이들은
생명을 논할 자격이 없다
쌀을 씻으며
씻으면 씻을수록 더욱 하얘지며 사라지는 쌀결을 본다
이걸 두고 싸운 것이 그동안의 역사이며
전쟁인 것을 생각하며 쌀을 씻는다
쌀은 쌀인데
보리를 씻으며 쌀을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보리에 대한 예는 아니다
보리도 씻으면 보릿결로 하얘지지만
쌀에 비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배곯은 사람에게 보리나 쌀을 구분할 바가 아니며
그럴 이유도 없다
역사 전쟁은 그럴 이유가 없는데
쌀과 보리를 억지로 싸우게 만든 명분 없는 전쟁이었다
쌀을 씻으며 보리를 원하는
보리를 씻으며 쌀을 원하는 무모한 사람들이 만든
명분 없는 싸움이었다
그들은 배고픈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배고픈 사람들을
쌀이나 보리로
희생시킨 사람들이었다
쌀값이 사람들의 목숨값처럼 추락한 시대에
쌀을 씻으며 생각해 보는 것이다
쌀을 씻으면 쌀결이 보이고
보리를 씻으면 보릿결이 보이고
사람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와
그 사람들의 사람결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것이 인격이 아니겠는가
※ 나정욱 시인
『한민족문학』(1990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2019년),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2019년),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2021년)의 시집이 있음.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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