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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 시인의 죽음
이름 유중원 이메일



시인詩人의 죽음

 

 

위대한 시인은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이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다.

— 빅토르 위고

 

 

 

탈북자의 수기

(내 이름은 김영호이다. 이 글은 2012년 6월경 북한이탈주민연구학회 주최의 한 모임에서 발표한 내용을 변호사님의 도움을 받아 수기의 형식으로 재정리하여 그 단체 발행의 비정기 간행물에 게재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필자는 그 발표 자체를 꺼려했지만 신세를 많이 진 주위의 강력한 권고를 뿌리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식에게 신성한 임무를 부과했던 지하에 계시는 나의 아버님께 우여곡절 끝에 그 임무를 완수했음을 말씀드리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나는 남조선에 와서야 그 시인의 죽음과 관련해서 많은 오해가 있었고, 이 때문에 그의 가족들이 오랜 세월동안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을 알았다. 이제 뒤늦게나마 그 의혹이 해소될 계기가 되었으므로 필자는 안도감을 느낀다.)

나는 남조선 사회에서 소위 탈북자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북조선을 스스로 탈출한 사람이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 이전에는 귀순용사로 제법 대접을 받았으나, 그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와서는 탈북자가 귀순할 때마다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일이 점점 줄어들다가 지금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간단이라도 보도조차 되지 않습니다. 탈북자 이야기는 너무나 흔해빠져버린 것입니다. 이제 남조선 사회에서 소수자나 약자들 들먹일 때는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불법체류자, 동남아 출신의 결혼 이주 여성, 다문화가족의 아이들,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함께 탈북자들이 빠지지 않고 거론됩니다. 가끔은 성적 소수자, 동성애자도 소수자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부가 솔선수범해서 ‘새터민’으로 개칭하였습니다. ‘새로운 터전에서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탈북자 단체는 ‘자유 북한인’ 아니면 ‘자유 이주민’으로 불러달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명칭이 바뀐다고 무어가 달라지겠습니까. 남조선 사람들은 탈북자에 대해 동포애로서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가난하고 천덕꾸러기 이웃으로 차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공산주의 조국에 침을 뱉고 돌아서서 다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방인 신세가 되어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고 한들 누굴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황금만이 최고인 비인간적인 사회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자포자기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주체할 수 없는 자유가 무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전히 심한 외로움과 고독감, 소외감에 사로잡혀 있어서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아니면, 스스로 목숨이라도 끊어야만 할까요.

나의 탈북 루트 역시 대부분의 탈북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국경을 넘는 과정은 인민군을 매수해서 뇌물을 주고 그가 눈감아주면 강의 여울목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갑니다. 한겨울이면 꽁꽁 언 강을 건너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건 첫 단계에 불과하지요.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들은 또다시 남조선으로 가기위해 목숨을 걸고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몽골의 초원 등을 경유해야 하는 지옥과 같은 여정을 밟아야 합니다. 그리고 탈북 과정에는 반드시 탈북브로커나 선교사, 인신매매조직의 활약이 빠지지 않습니다. 탈북브로커의 횡포는 북조선 땅에서부터 남조선 땅까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어찌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나 역시 그랬습니다.

북한에서는 남자라면 대부분 4년제 인민학교를 거쳐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하전사로 군대에 입대해서 10년을 복무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시험점수가 좋았기 때문에 3년간의 군사학교를 거쳐 군관학교로 바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중대장을 끝으로 군대를 일찍 제대하였으나, 군사학교와 군관학교의 동기동창생인 나의 친한 고향 친구는 소좌까지 진급해서 계속 복무 중에 1995년경 고난의 행군 시절에 제대하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인민군도 밥그릇 수를 줄이기 위해 제대를 반 강요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는 제대 직후 홍남17호공장의 직장장으로 발령을 받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공장은 이미 전력이 끊기고 재료가 없어서 대부분 복무원들이 식량을 구하러 농촌으로 떠나버려서 공장은 사실상 문을 닫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실상 철직한 상태에서 몹시 궁핍하였습니다. 지금 그 친구의 이름을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탈출을 결심했을 당시 당연히 그와 긴밀히 상의하였고, 그는 탈북 루트를 잘 알고 있다면서 두만강 초소의 인민군을 매수하기 위해 필요한 거금의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당시 형편에서는 엄청난 거금이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넌 순수하지만서두 너무 고디식해서 탈이지. 지금 북조선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두루 썩어버렸디 않겠어. 멕이디 않음 되는 게 없는 세상이야. 내가 인민군 후방 사단에 복무할 당시부터 국경경비대 사람들을 잘 알고 있슴매. 잘 멕일테니까 걱정 말라우.」

그래서 나는 마련한 자금 중에서 거의 반을 그에게 주었고 그 날을 가슴이 터질듯한 심정으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 날, 이슥한 밤이어서 그 곳 초소 부근의 지리를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늦봄의 밤은 어둠 속에서 아름다웠다는 것만은 기억합니다.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백두산에 가까운 상류이기 때문에 두만강은 강폭도 좁고 강물은 냇물처럼 적게 흐르며 물이 하도 맑고 깨끗하여 강 속의 조약돌이나 모래알이 밝은 낮이면 보일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지를 걷고 걸어서 건너는데 하등 지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강을 건너면 바로 중국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구였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마지막으로 말했었지요.

「시름 탁 놓으라. 모든 게 한 오라기 차질 없이 잘 될 테니까. 그쪽 국경연선지대는 경계가 아주 허술한 곳이디.」

친구와 나는 함흥에서 기차를 타고 혜산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혜산은 승인번호구역 (여행제한지역)이어서 담배 2타스를 주고 해산 장마당에 가는 것처럼 하여 여행증명서를 만들어서 갔습니다. 혜산에서 보천, 삼포, 삼지연 등으로 목탄차를 타고 또는 걸어서 사흘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 지역은 험한 산악지역이어서 교통이 안 좋고 여전히 나무가 풍부하여 목탄차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완전히 어둑해질 무렵 그 초소의 전방 1킬로미터 갈림길에서 친구와는 헤어졌습니다. 나는 그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쏜살같이 달아났지요. 그때 친구는 헤어지면서 제대로 이별의 말도 못하고 웬일인지 허겁지겁 도망치듯 돌아갔습니다. 나는 밤이 더욱 깊어가도록 길섶 늙은 소나무 기둥 밑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초소로 가서 혼자 경비를 서고 있는 하전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포츠형 머리에 키는 북조선에서는 평균이라고 할 수 있는 165cm 정도였고 이십대 초반으로 앳돼 보였습니다. 반쯤 눈을 감고 졸고 있었는데 입에는 독하기로 소문난 값싼 중국제 담배가 물려 있었습니다. 어둠 속으로 담배 연기가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드디어 시간에 맞춰서 오셨구만. 돈은?」

「돈은 진즉 충분히 지불했는데, 무시기 소리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지금 받기루 했다구.」

나는 어렴풋이 사태를 짐작했습니다. 친한 고향 친구의 배신. 나는 분해서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까만 하전사에게 애원조로 말했습니다.

「동무, 난 가야하오. 보내주소.」

「이 새끼. 쌍 간나 새끼. 사람을 뭘루 보구. 널 국경탈출죄로 체포하겠어. 그리구 수용소로 넘길 거라구. 수용소에 가서, 수용소 알고 있디?」

「동무, 도와주시오. 이렇게 사정할게.」

「누구 맘대루. 날 헐하게 보고. 이 개간나,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어.」

그가 그 즉시 군용 단도를 빼들었습니다. 그때 그의 낡은 AK소총은 탄창이 빠져 있었지요. 아마 탄창이 꽂혀 있어도 녹슨 총은 총알이 발사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칼을 들어 찌를 듯이 무섭게 위협하였습니다. 그가 칼을 허공에서 휙휙 휘두르자 날카로운 칼날이 눈앞에서 번쩍거렸지요. 그러나 나는 재빨리 그의 오른 손목을 비틀었고 칼이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광석화처럼 집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의 목을 찔렀습니다. 그는 신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붉은 피를 쏟으면서 거꾸러졌지요. 그 모습은 마치 비장한 각오로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는 그 재빠른 솜씨에 나 자신도 놀라고 말았습니다. 군관학교 시절과 인민군 시절에 배운 극한의 격투기 훈련이 몸에 밴 탓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불가피하게 살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건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간에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지요. 경비들의 교대시간 전에 어서 빨리 강을 건너야만 했습니다.

아름다운 밤은 슬프지요. 벌써 새벽이어서 두만강으로부터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습니다. 강은 싱겁도록 짧은 거리였습니다. 문득 연변의 농촌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의 쇠약해진 얼골이, 흥남시의 낡고 칙칙한 아파트가, 오랫동안 복무했던 공장의 반쯤 허물어진 회색빛 지붕이, 검푸른 동해바다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나는 다행히도 연변에 도착해서 먼 친척뻘이 되는 조교 (중국에서 살고 있는 북조선 사람)를 만나게 되었고, 1년 동안 그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연길시는 남조선식 다방과 음식점, 노래방과 안마시술소, 록상청(비디오 상영실) 그리고 양고기 뀀집 등이 늘어서 있는 거리에 조교, 공민증이 없어 신분이 극도로 불안한 탈북자들, 인신매매단, 탈북브로커들, 선교사, 사기꾼, 중국 공안, 북조선 국가안전보위부의 끄나풀, 남조선 관광객들이 들끓는 퇴폐적인 도시였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거의 1년 동안을 숨어 지내면서 갖고 있던 돈을 전부 탕진했습니다. 날마다 불안감 때문에 안절부절못하여 밤이면 뒤숭숭한 꿈 때문에 잠을 설치곤 하였습니다.

그 당시 여기저기에 수소문해서 알게 된 사실인즉, 중국을 탈출하는 방법이란, 첫째, 중국에서 외국 공관으로 쳐들어가 난민 신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요즈음은 공관에 대한 경비가 삼엄해서 거의 불가능한 방법으로 판명 났습니다. 둘째, 중국 내에서 공민증과 여권 등을 위조해서 밀항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 역시 너무 많은 경비가 들어가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셋째, 동남아 쪽 주변국, 예컨대 라오스나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태국 등으로 대개 곤명을 거처 국경으로 접근해서 강을 건너고 밀림을 헤치며 걸어서 이동하거나 선양이나 하얼빈을 거쳐 몽골 사막으로 이동해서 그 나라 정부 또는 주재하는 남조선 공관의 협조를 얻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탈북브로커나 선교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탈북브로커는 필요악이지요.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암암리에 만나 호상 간에 교섭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무렵 선교사인 탈북브로커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는 나이는 오십대 중반쯤으로 보이고, 말끔하게 검정색 양복을 빼입었고, 얼굴과 손이 희멀건하고, 서울 말씨를 쓰고, 매우 거들먹거렸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교 선교사이지. 전에는 목사였고. 아멘, 아멘. 나는 지금 참으로 좋은 사업을 하고 있지. 기획 탈북을 하고 있는 거야. 알겠어. 하느님, 하느님. 절 도와주소서. 그런데 탈북자는 70~80퍼센트가 여자들이지. 여자들, 그 중에서 어리고 젊은 여자들은 성폭력, 인신매매와 강제결혼, 감금과 폭행, 강제노동이 누워서 떡먹기이니까 브로커들이 아주 좋아하지. 젊은 여자들을 처리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거든. 그중에서도 새가이가 최고이고 안까이는 별로이지.

그러나 남자는 안 되는 거야. 그러니 브로커에게 전혀 인기가 없어. 연변이나 중국 쪽에 조선족 공장은 별로 없어. 있다 해도 중국 공안이나 북한 보위부의 감시가 심하니 금방 들통이 날 수밖에 없어. 그리고 한족 말을 모르는 조선족이 중국 기업소에 들어가면 쉽게 눈에 띄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고 그래서 금세 중국 공안이 알게 되고, 그러면 십중팔구 북한으로 넘겨져 수용소 행이 되는 거야. 중국은 탈북자를 비법 월경자로 취급해서 북한 송환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지. 중국 측에 난민 신청은 어림없는 개수작이니까 생각지도 마라.

마지막으로 연변의 농촌 구석으로 들어가 조족의 농사일을 거들면서 평생을 촌구석에서 썩는 일을 생각해 볼 수 있지. 그러나 말이지. 거기도 이농 현상이 극심하지. 만주 쪽 동북 3성에 사는 조선족들은 대부분 농촌을 떠나고 있지. 여자들이 도시로, 한국으로 떠나 식당이나 술집에서, 노래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니까 남자들도 따라서 도시로 떠나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농촌에는 빈 집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그런데 농촌에 있는 조선족은 믿을 수 없어. 중국 공안이나 북한 끄나풀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북한은 탈북자 체포에 현상금까지 걸었거든. 그것뿐만이 아니지. 지금은 탈북자를 보호하다가 적발되면 고액의 벌금을 물어야 하니까 더더욱 꺼리고 있어. 그래서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는 거지.」

「선교사님, 목사님, 선생님, 저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대신 돈이 필요하지.」

「제게 무슨 돈이.」

「그렇겠지. 이건 선교사업의 일환이지. 또 어디까지나 자선사업인데, 그러나 너희 쪽에서 최소한 비용만은 부담해야 할 거 아냐. 우리가 쓰는 돈은 한 푼도 없지. 보통은 선금으로 일만에서 이만 위안을 받도록 돼 있어. 잔금은 정착금 받으면 주고. 그런데 넌 선금마저 줄 돈이 없단 말이지. 그래서인데, 너는 남한에 들어가면 우선 통일부가 주관하는 하나원에서 몇 달 동안 교육을 받고 그 후 정착금을 받아 남한 사회에 진출하는데, 선금을 안 받는 대신 그 정착금을 전액 우리에게 넘기는 거야. 그리고 여기 현금차용증에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으면 되지.」

그가 종이를 내밀면서 어서 빨리 지장을 찍을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난생 처음 보는 것이어서 두려운 나머지 몇 번이고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역성을 내면서 말했습니다.

「안 찍어도 상관없지. 넌 우리 손아귀에 이미 들어와 있지. 공민증이나 호구가 없으니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거야. 북한 안전보위부에 넘길 수밖에 없어. 국경 수비는 걔들 관할이거든. 북한 공작원은 너의 손바닥 아니면 입술에 철사를 끼워 똥개처럼 질질 끌고 갈 거고, 북한에 가면 수용소에 갇혀서 조국을 배반한 놈이라고 쇠몽둥이로 매일 죽도록 맞다가 결국 얼마 못가서 죽게 될 거야.」

저는 그때 잔뜩 겁에 질려 있어서 대꾸조차 할 수 없었지요.

「그러니까, 빨리 결정을 내려야지.」

나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영문도 모른 채 그 종이쪽지에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었지요.

그 선교사는 비로소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잘했어. 잘하구 말구. 은혜를 잊으면 안 되겠지. 나도 돈이 있어야 사업을 계속 할 거 아냐. 너는 특별히 몽골 사막 쪽이 아니라 새로 개척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쪽으로 보내주겠어. 그쪽이 훨씬 수월하지. 몽골까지는 주로 열차와 도보를 이용해서 탈출하고 있지만 중국이 국경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있고 열차 내 검열을 강화하고 있지. 또 몽골 사막을 가다가 늑대에 물려 죽을 수도 있거든. 여기서 거리도 멀구 말이야. 그러나 연해주 쪽은 아주 가까워. 그걸 우린 최근에서야 알게 된 거야. 북한과 러시아의 접경지역은 두만강 하류지역이어서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어서 직접 도강하기가 어렵지. 그러나 중국 쪽에서 가는 것은 경비도 심하지 않고. 그래서 훨씬 쉽게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을 통해 합법적으로 한국으로 갈 수가 있지. 그런데 요즘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제법 많이 오고 있어. 인천 공항까지 직항도 있고. 너는 관광객들 속에 섞이면 되는 거야. 강을 건너면 우리 쪽 사람이 임시 여권을 만들어 줄 거야. 잘 알겠지.

오,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주여,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시여. 지금 길을 잃고 헤매는 이 불쌍한 양을 굽어 살피소서. 어린 양이 무사히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성령이 함께 하도록 하시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아버지는 조국해방전쟁에도 참전한 참전용사이고 하사관 계급 중에는 제일 높은 특무상사까지 진급해서 복무하다가 60세에 퇴직하였습니다. 그 후 연로보장제에 따라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79세까지 사셨으니까 그런대로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정치보위부에 복무할 동안 국가훈장 3급과 공로메달을 받았기 때문에 은퇴 후에도 생활비와 식량 배급에서 우대를 받았습니다. 나의 경우에도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이래 인민군 복무조례와 부대의 일과표에 따라 충실하게 복무하다 중대장을 끝으로 제대하였지요. 제대 후에는 흥남시당 간부과로부터 직장을 배치 받아 연합기업소에서 부지배인으로 일하였습니다. 조선로동당의 정식 당원증을 가지고 있었고, 작업반의 세포위원회 위원이었고, 조선직업총동맹의 고급조직원이었고, 생활총화 시간에도 열심히 참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북조선에서 신분 보장이 확실하였고 경제적으로도 그렇게까지 궁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열렬한 연애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출신 성분과 집안 배경도 좋았고 얼굴도 예뻤습니다. 우리는 그 시절에 일부러 휴가를 내서 동평양의 문수유희장에서 하루 종일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북조선에서도 맞혼인 (연애결혼)은 이제 대세가 되었습니다. 부모도 더 이상 만류할 수가 없도록 시대가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자의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포기하였고, 결국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질 듯 아픈 일이었지만 그 당시 나의 신념은 확고하였습니다.

경제난으로 중앙배급체계가 붕괴되었고 식량이 극도로 부족하였으며 국영기업들이 전력난과 자재난으로 활동을 멈추면서 발생한 실직 등이 원인이나 배경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체사상과 유일지도체계가 확립되면서 수령은 신격화되고, 인민과 당은 수령의 일방적 명령과 지시,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수령의 절대지배체제가 확립된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 자아의 주체성과 창조적 본능은 말살되었습니다. 당을 위해서, 그것도 오직 한사람을 위해서 북한 인민은 존재하였습니다. 우리 인민은 왕조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좌가 목숨을 바쳐 애써 꿈꿨던 공산주의 지상낙원은 지옥으로 변해버린 것이죠. 조선인민주주의공화국은 악취가 풍기는 썩은 웅덩이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모든 희망과 꿈이 사라져버린 썩은 웅덩이에 던져 넣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군관학교와 인민군 대위 출신인 내가 언제부터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매일매일 공화국의 뼈저린 현실을 직접 목격하면서 쌓여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북조선에서 어디 나뿐이겠습니까. 그리고 2000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3년여가 지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탈출을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는 벌써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나는 아무런 장애물이나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부터 탈출 계획을 미리 치밀하게 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중국에서 우수리 강을 건너 연해주로 넘어오면서 목숨처럼,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던 당원증을 갈기갈기 찢어 강바람에 날려 보냈습니다. 그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작별하였지요.

그러나 남조선 사회의 편견과 차별행위,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만능주의를 보면서 이곳에서 내가 끝까지 살 수 있을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또다시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내가 인천 공항에 내렸을 때 늦봄의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내 가벼운 여행 짐짝에는 어떤 시인이 놀랄만한 기억력으로 깨알 같은 글씨로 꼼꼼하게 일자별로 쓴 비망록과 아버지가 그 시인을 조사할 당시 먹지를 대고 구식 타자기로 작성한 심문조서 뭉치가 들어있는 색이 누렇게 바란 낡은 봉투가 고이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종이 뭉치들을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입국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불과 6개월여 전이었습니다. 1999년 늦가을경에는 아버지의 기력이 너무 쇠하여서 조만간 운명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때였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특별히 어떤 병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영양실조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 있어서 기침마저 끊이질 아니하였습니다.

아버지가 희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지요.

「나는 그 시인의 비망록과 내가 보위부에서 직접 작성했던 심문조서를 여태껏 아무도 모르게 보관하고 있었구나. 특히 그 조서는 김 중좌가 불태워버리라고 엄중하게 지시하였지만 태우지 않고 보관하였지.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나 그 임무를 지금까지 완수하지 못했지. 이제 그 임무를 늦둥이로 태어난 외아들에게 떠넘기게 되었구나. 그 일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은 하고 있다. 넌들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나는 아버지처럼, 시나 시인에 대해서는 무식했지만 남조선에 와서 비로소 그 시인이 꽤 유명한 시인이고 그 수수께끼 같은 죽음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진 월북했다는 꼬리표 때문에 월북작가 명단에 들어 있었고 그래서 그의 시집은 금서라는 딱지가 붙어 오랫동안 출판과 공개가 금지되었습니다.

그는 감각적 서정시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대시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평소 ‘옥에 티 하나 미인의 이마에 사마귀 하나야 버리기 아까운 점도 있겠으나 서정시에 말 하나 밉게 놓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답니다.

그러나 그 시인의 최후에 관해서는 자진 월북설과 납치설, 북으로 올라가는 험난한 여정에서 미군 폭격에 사망하였다는 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 중 포로 교환 때 월북을 선택했다는 설, 북에 부역한 죄로 오끼나와 미군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되었다는 설, 평양 감옥에 수감 중 미군 폭격에 폭사 또는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설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미군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는 설은 황당무계하였습니다. 어떤 아동문학가가 그 군사재판을 우연히 참관하였는데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하고 나서 ‘할 말이 없는가?’하고 묻자 그 시인은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시 하나를 읽게 해 달라.’라고 간청하면서 자신의 대표시를 나직이 암송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조선에 막 도착한 나로서는 그 즉시 그 가족을 수소문해서 전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당시 너무나 큰 혼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인천 공항에 내릴 때만 해도 약간의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건강한 몸으로 무엇이든지 해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조선에 도착하자마자 국가정보원의 합동신문센터에서 국정원과 군, 경찰로 구성된 조사관으로부터 2개월 동안 북한 내 행적과 탈북 목적에 대해 호된 조사를 받았고, 그 후에는 북한이탈주민대책협의회에서 또 다시 심사를 받았으며, 안성의 하나원에서 다시 3개월여에 걸쳐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남조선 정착 교육을 받은 후 하나원 제58기로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착금과 임대아파트 우선 입주권을 받았는데 하나원을 졸업하고 나온 바로 그날, 초겨울 날씨는 참으로 온화하였지만 그러나 정문에는 깍두기 머리에 덩치가 크고 손등에까지 뱀 문신을 한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정착금과 입주권을 강제로 빼앗아갔습니다. 자기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선교사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서 할 말 있으면 그 선교사를 직접 만나서 해결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임시직인 아파트 건설현장의 야간 경비원이나 막노동, 대형 숯불갈비집의 종업원을 하면서 2년여를 보냈고, 그 후에는 남양주의 박스공장에서 마음씨 좋은 사장님을 만나서 공장의 숙직실에서 기거하며 잡역부로 일하다가 경비원으로 승진하고 다시 정식 직원이 되어 이제는 물류 담당 과장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서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을 그 비망록을 몇 번이나 꼼꼼하게 읽어보았습니다. 그 비망록에는 몇 번이고 쓰다가 북북 지워버린 몇 줄의 미완성 시도 있었지요. 그러나 그 비망록은 1951년 2월 22일에 끝나 있었습니다. 그 비망록이 2월 22일에 끝난 것은 시인이 자신은 당일 사형선고와 동시에 총살당할 것으로 예상하였고, 따라서 자신은 22일에 이미 죽어서 하늘나라로 날아 올라갔고, 그날 이후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육신은 인간으로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환영에 불과한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그렇게 짐작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날은 시인이 오전에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었고, 그 당시 전시 상황에서는 그 집행은 바로 당일 오후에 있기 마련인데, 어쩐 일인지 이번만은 1주일여나 집행이 연기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아버지는 그 당시 당의 고위층이 시인의 사형집행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서 그 집행문에 결제를 하지 않고 1주일간이나 미루었을 거라고 추측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정확히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시인이 평양형무소로 이송된 것은 1951년 1월 24일이었는데 그 날은 겨울 날씨가 많이 풀려서 따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인의 재판이 있고 그 3일 후인 2월 25일에 다시 평양형무소로 갔다고 합니다. 시인이 자신은 북조선에 연고자가 아무도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사망 후 유품 수령자로 아버지를 지정했기 때문에 그걸 찾으러 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시인은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접견은 즉시 허용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경우 시인의 피심자심문조서를 작성한 보위부 소속 수사관이었기 때문에 접견은 상당한 시간 동안 아무런 제약 없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때 시인이 말했다고 합니다.

「웬일인지, 집행이 늦어지고 있구려.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 아니지요. 환영에 불과하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허깨비에 불과할 따름이지요. 지난번에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꼭 들어주십시오. 이 비망록을 잘 간직해서 제 자식들한테 전해주십시오. 들키지 않도록 유품 속에 넣어두었지요. 그 유품이란게 이 소좌가 헤어질 때 남겨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과 잡동사니들에 불과하지만……. 보위부에서 조사 받을 때에도 신세를 많이 졌는데 면목이 없구려. 하지만 자식들은 애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니요. 그래야만 이 험한 세상에서 누명이라도 쓰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요.」

그때 아버지는 시인과 굳게 약속하였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비망록을 몇 번이고 읽어본 후 감탄하고 고마워했습니다. 그 비망록이 천재적 기억력으로 너무나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한 아버지와의 중요한 대화 내용은 거의 빼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만약 이 비망록이 어떤 경우 발각된다면 혹여나 아버지에게 어떤 피해가 미칠까봐 고의적으로 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영구히 분단되고, 전쟁이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개 하사관 출신인 아버지가 시인의 가족들에게 그 비망록을 전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상태로 잘 보관하고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시인은 머뭇머뭇거리면서 이 소좌의 근황이랄까, 안부랄까, 특히 생사 여부에 대해 또다시 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한 달여 동안 진행된 심문 과정에서 김 중좌가 상관에서 보고하러 가거나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우면 아버지가 피우던 담배라든가, 간단한 먹을거리, 물 등을 주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도 시인은 이 소좌의 안부에 대해 걱정하면서 아버지에게 그 소식을 꼭 알아봐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면회를 하던 그날, 이 소좌의 소식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게야. 그러나 차마 그대로 전할 수는 없었디. 기래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한 거디. 그때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으니까 시인이 눈치챌 수두 있겠다구 생각하였디. 하여간에 ‘이 소좌님은 중국 의용군사령부에 연락장교로 배속되어 잘 계신답니다.’라고 말해 버렸디. 기랬더니 시인은 더없이 환하게 웃더구만.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이 말이디. 오히려 내가 눈물을 떨굴 뻔했디.」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정치보위부에서는 전선에서 일어난 모든 상황에 관하여 웬만한 정보는 모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1951년 1월 중국 의용군의 3차 대공세로 남조선군과 미제국주의 군대는 경기도 오산과 금량장(용인)이 위치한 북위 37도 선까지 밀렸고, 그 당시 이 소좌는 최근 재편성된 북조선군 2개 군단과 중국 의용군의 연락장교로 배속되어 전선에 투입되었고, 미제국주의 군대가 서부전선에서 전개한 선더볼트 작전 당시, 그 절망적인 밤에 눈 덮인 황폐한 작은 산등성이에서 앞장서서 돌격하던 중 맹렬히 쏟아지는 기관총 총탄에 사망하였던 것입니다. 사망 일자는 1951년 1월 29일이었습니다.

그녀는 공산주의 여전사답게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그녀의 사후 북조선 최고 훈장인 공화국 영웅훈장이 추서되었지만 북조선에는 그녀의 유품을 수령하거나 그 훈장을 대신 받거나 그 훈장의 혜택을 받을 가족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생각했지요. 그녀는 공산주의 대의를 위해 조국해방전쟁에서 장렬하게 산화하였으니 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그리고 그녀는 참으로 행복하였노라. 그때는 그래도 그 대의가 살아 있었지 않은가. 그녀는 오늘의 북조선 현실을, 그 비극과 참상을 까마득히 모르고 갔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마지막으로, 김 중좌의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김 중좌는 그 후 2년쯤 지나서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대좌로 진급했습니다. 아버지가 알기로는 김 중좌는 박헌영의 직계였고 그의 주선으로 유학을 갔다 온 소련 유학파였습니다. 그런데 정전협정 조인 직후인 1953년 7월 말경에는 조국해방전쟁 승리 경축대회가 북조선 곳곳에서 열리면서 동시에 종파주의자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무렵 박헌영 계열의 남로당계가 몽땅 체포되었습니다. 김 중좌 역시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질 운명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1953년 8월 초에 박헌영 일당에 대한 숙청 재판이 있었습니다. 이 재판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8월 10일자 인민일보에 상세히 보도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의 ‘미제국주의의 고용간첩 박헌영, 리승엽 도당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전복음모와 간첩사건 공판문헌’에 공식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김 중좌는 공화국의 모든 정보를 다루는 보위부에서 계속 복무했기 때문에 몇 달 전에 미리 숙청의 낌새를 알아채고 소련 측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의 우수리스크로 재빨리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후, 1990년대 중반 이후 일인데 중앙아시아의 어떤 나라인 카자흐스탄의 초원지대에서 제법 규모가 큰 농장 일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편히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계속 독한 보드카를 마시면서 회한에 차서 중얼거리듯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때 속은 거야. 모두가 속은 거지.’

나는 얼마 전에 의정부 법원으로부터 한 통의 소장을 접수했습니다. 또 그 한 달여 전에는 나의 월급에 대해 가압류 통지서가 회사로 배달되었습니다. 그 소장은 대여금 반환소송이라고 합니다. 나는 난생 처음 그 소장이라는 것을 받아보고 아연실색하였습니다. 변호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 선교사가 나에게 오천만원을 빌려주었다는 것이고 거기에다 고리의 이자까지 얹어 청구한 것입니다. 그 일자를 살펴보니 내가 연변에서 무슨 종이쪽지에 이름을 쓴 날짜와 일치하였습니다. 그 선교사는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제3자에게 그 채권을 양도하였고 그 채권을 양도 받은 양수인이 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는 것입니다.

변호사님은 탈북자들을 돕는 단체에서 만난 분으로 나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친절하게도 자신이 무료로 소송을 맡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송의 승패 여부에 대해서는 미리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하였고, 현재는 8개월째 소송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사기, 폭력 등 전과 12범인 가짜 선교사의 정체도 밝혀졌습니다. 변호사님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자는 대치동의 한 교회 조직과 연결되어 탈북자 돕기 사업을 한 것은 사실이나 곧 본색을 드러내고 교회에서 지불한 막대한 자금을 횡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온갖 수단으로 탈북자들을 등쳐먹다가 발각이 돼서, 교회 쪽에서 형사고소를 하고 지명수배가 내리자 바로 그 무렵 중국 쪽으로 달아났고, 그의 동업자나 하수인들 역시 달아나서 완전히 잠적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서야 그 변호사님에게 시인의 비망록과 심문조서 등을 넘겨주면서 가족을 찾아 전달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이 비망록과 심문조서를 꿰맞추어 보면 시인의 진실은 정확히 밝혀질 터였습니다. 나는 그동안 아버지의 간곡한 유언을 지키지 못하였고, 시인의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변호사님은 가족들에게 시인의 비망록 등을 전해주고 나서 시인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알고 그 누명을 벗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설득을 하여 소설의 형식으로 시인의 죽음을 재구성하였는데, 나는 변호사님이 작가적 역량이 있어서 직접 재구성한 것인지, 아니면 잘 아는 다른 작가에게 부탁하였고, 그 작가가 재구성한 것인 여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서울, 삼팔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지도 얼추 두 달이 되었다. 7월의 무더운 여름날. 녹번리 초당으로 평소 안면이 있던 젊은 시인 몇 명이 찾아왔다.

그들이 말했다

“선생님, 지금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인민공화국으로. 선생님이 이렇게 두문불출하시면, 은거해 계시면 나중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선생님은 보도연맹에 가입한 전력까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출두하셔서 얼굴을 비치시고, 협조를 하시고 안 하시는 것은 선생님의 자유십니다.”

시인은 그들의 위협 때문에 서울시 인민위원회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다. 그들은 간단한 조사 끝에 저명한 시인이면서 영문학자이기 때문에 적임자라고 추켜세우며 인민군 총사령부 선전 방송에 나가 미군의 항복을 권유하는 영어 방송을 맡을 것을 종용하였고, 그 다음에는 문화일꾼으로 최전선에 나가 인민군의 용기를 고취하는 역할을 맡을 것을 종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자진 월북의 형식으로 월북할 것을 강권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동무의 과거 죄과를 씻을 좋은 기회임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두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분위기가 급변하면서 급기야 역시 반동분자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내무서원에 인계되어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것이다.

그때는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서울 본부가 군사위원회의 작전 명령에 따라 남한의 저명인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소위 ‘모시기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 작전은 1950년 7월 김일성이 주재한 군사위원회 합동연석회의에서 ‘모시기 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입안되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겉으로는 정중한 모시기 초대에도 끝내 응하지 않았다. 그 혼란한 시기에 그는 집에 숨어 있었다기보다는 여전히 그저 칩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시절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슬픔을 객관화하고 고통을 냉랭한 태도로 감내하며 죽음마저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다면. 미래의 불확실성과 절망의 늪에 빠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이 무엇인가?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신에게 구원을 갈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신은 여전히 그의 집요한 물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며 오직 듣기만 하였다. 침묵하는 신. 응답하지 않는 신. 암흑 같은 검은 베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신. 무소부재를 그 속성으로 하는 전지전능한 신은 그를 떠나버린 것일까? 그는 그 즈음 더 이상 시를 쓸 수도 없었다.

9월 22일. 그해 여름이 어느덧 다 지나갔다.

이른 새벽부터 인민군들이 램프 불을 켜들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기 시작하였다.

“동무들, 모두 형무소 마당으로 집합하라우. 빨리, 빨리 서두라우. 만약 꾸물대면 즉결처분 하겠어.”

그들은 수감자들을 4열종대로 앉혀 수를 세고 서로의 팔에 밧줄을 연결해 묶어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 후 북쪽을 향해 서둘러 걷게 하였다.

그날 서울 북쪽에서는 아직 미군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서울로 진입하려는 미군과 인민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인민군은 퇴각을 하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그날은 온종일 박격포 소리와 중기관총들이 전차를 향해 불을 뿜는 소리, 미군 쌕쌕이 편대들이 저공비행을 하면서 갈기는 기관총 소리, 수류탄 터지는 소리, 따발총과 카빈의 총알이 교차하면서 날아가는 소리, 군인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비명, 온통 시내는 아수라장이었다. 그리고 폐허로 변한 도시의 모습이 가을의 햇빛 속에 드러났다.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타오르고, 큰 길에는 교차로마다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으며, 불타오르는 건물의 잔해에서 벌써 악취가 풍기기 시작한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연이어 터지는 대포 소리에 그나마 남아있는 낡은 건물들이 흔들리면서 깨진 유리창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고성능 폭약의 역겨운 냄새가 도시의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중앙청 건물이 폭격에 손상된 채 마치 해골처럼 서 있었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은 집안에 숨어서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따발총을 거머쥔 인민군이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죄수들을 북으로 호송하고 있었다. 인민군과 내무성 감시원들이 빨리 가자고 다그치자 죄수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발목에 채워진 무거운 쇠사슬이 땅바닥에 끌리면서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인민군은 부대들이 와해된 가운데 도처에서 무질서하게 북쪽으로 퇴각하고 있었다. 이튿날부터는 폭격을 피해 밤에만 행군을 하였다. 가까이서 폭격소리, 대포소리가 들리고 미군 전투기 편대들이 저공비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기총소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인민군 병사들은 땀에 젖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여전히 작은 무리를 지어 지친 표정으로 북을 향해 후퇴하고 있었다. 일행들 중에는 신발이 너덜너덜한 사람이 많았고 맨발로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걸어서 우이동에서 의정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민군 군관이 지휘를 하였다.

그런데 우이동 숲속에서 두 사람이 도망치다 붙잡혔다.

인민군 군관이 소리쳤다.

“인민군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어떤 처벌을 받는 지를 똑똑히 보여주겠어. 도망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총살이란 말이야.”

그들은 태연하게 공개 총살을 하였다. 군관이 도망자의 머리통에 대고 주저하지 않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때 누군가 눈물을 흘렸다. 뺨에 살짝 칼자국 흔적이 있는 그 군관이 다시 소리쳤다.

“당장 그쳐. 그렇지 않으면 너도 총살하겠어.” 그는 총격으로 놀란 사람들을 훑어보면서 매몰차게 말했다. “너희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똑똑히 보았을 거야.”

시인은 일행이 지금 삼팔선을 넘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일행 중에서 누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여기가 개성 여연이요. 삼팔선이 마을을 관통하지요. 그래서 북쪽은 여연 북면이고 남쪽은 여연 남면인데 우리는 이미 북면의 쏘련군 초소 자리를 지났소. 틀림없을 것이요.”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대기가 흐려지더니 가을비가 내렸다. 여전히 아득히 먼 곳에서 둔중한 포성 소리가 들렸다. 그는 형언하기 어려운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내가 맞서 싸울 적의 정체는 무엇인가? 내게 싸울 힘이 남아 있기는 하는가?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지. 그래, 이 참혹한 시대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밤이 깊어지자 어느새 비가 그치고 구름이 말끔히 걷혔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왔고, 밤하늘에 아름다운 별이 총총하였다. 논길이 밭두둑으로 바뀌고 벌써 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곧 새벽이 올 것이다.

 

진정한 공산주의자, 이정희 소좌

그날 아침 동이 트면서 그녀가 나타났다.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다부진 체격에 중간 키였으며 얼굴은 검게 탄 채 눈만은 밝은 광채와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옷은 매우 낡은데다 헤지고 보따리를 등에 메고 있었다. 영락없는 피난민 행색이었다. 비망록에 의하면 시인이 처음 이 소좌를 만난 그날은 1950년 10월 8일이었다.

그녀가 정중하게 말했다.

“선생님의 월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저는 문화부 소속 이정희 소좌입니다. 남조선의 위대한 시인을 공화국과 우리 인민들은 환영합니다. 저는 오직 선생님만을 모시기 위해서 특별히 파견되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선생님을 모시고 평양까지 갈 것이고, 정치보위부에 인계할 것입니다. 그게 당면한 임무입니다. 보위부로부터 갑작스레 지시를 받았지요.”

시인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무슨 놈의 축하란 말이요. 저 같은 하찮은 사람을 위해 특별히 당국에서 이 소좌님을 보낼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장식용 황금도끼가 되기에는 턱없이 미흡하지요. 저는 스스로 죽지는 못할 것입니다만 이 산천을 이리저리 헤매다보면 곧 굶어죽거나 어디서 날아오는 총알에 맞아 죽게 되겠지요.”

이 소좌가 탐탁지 않은 듯한 어투로 말했다. 그녀는 시인의 생김새나 한심한 꼬락서니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다만 정치보위부의 지시를 따를 뿐입니다. 쓸데없는 오해는 삼가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어떤 경우에도 개인적인 행동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여자라고 얕보면 큰코다치겠지요. 저에게 총이 있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는 당분간 부녀간으로 피난민 행세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아시다시피 준엄한 전시 상황입니다. 미 제국주의자들이 북조선을 집어삼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요. 그들이 북으로 진격하고 있고 폭격이 심합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저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게 좋을 것입니다.”

“이보십시오. 내 한심한 꼴을 보면 모르겠소. 내가 이 성치 않는 몸으로 어딜 도망갈 수 있겠소. 설령 말이요, 몸이 성해도 도망갈 만한 위인이 못 되오. 도저히 치유가 불가능한 겁쟁이이기 때문이오. 이 소좌에게 내 운명을 맡기겠소.”

작은 키가 비쩍 말라있었고, 몸은 상처투성이이고 쇠약한 상태였다. 입은 옷은 땟국이 흐르고 너덜너덜 하였다. 마치 거지 행색이었다. 이제부터 시인은 그의 생사를 그녀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나와 헤어진 일행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요. 아마 평양형무소나 아니면 남포의 수용소로 가겠지요. 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모두 간단히 즉결처분될 거예요. 저도 즉결처분할 수 있지요. 그러나 시인은 제가 보호할 겁니다. 도망치지만 않는다면요. 적어도 굶어죽을 염려는 안 해도 되겠지요. 북조선 지폐도 많이 남아 있구요. 여차하면 북조선 어딜 가도 저의 신분을 이용할 수 있지요. 지방 인민위원이나 당세포, 또는 농민동맹원을 통해 식량조달이 가능하니까요. 농가에서 잠을 잘 수도 있구요.”

두 사람은 역시 밤에만 이동하였다. 그러나 밤이면 상당히 추웠다. 때로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낮에는 공습 때문에 농가 건물에 들어가 숨고 밤이 되면 논둑길이나 좁은 길을 따라 움직였다. 어두운 때만 걸었기 때문에 제대로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는 몸이 몹시 쇠약해지고 발이 퉁퉁 붓고 발바닥에 물집이 흥건했기 때문에 빨리 걸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그들이 지금 어느 쪽 방향으로 가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개성에서 금천과 신막, 사리원을 거쳐서 평양 쪽으로 가는 것만은 확실하였다.

이 소좌는 가끔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작전지도를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선을 멀리 우회하여 걸었다. 넓은 도로에는 미군들이 패튼 전차를 앞세우고 평양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가끔 멀리서 예광탄이 또는 조명탄이 두 발 세 발 연속으로 터지는 것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보이는 텅 빈 마을을 지나쳤다. 무수한 말굽자리와 마차의 수레바퀴, 사람의 발자국 자리가 찍혀 있는 넓은 길을 건너서 인적이 드문 낮은 지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외부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어느 쪽에서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는 무력감을 느꼈고 때때로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엄습하였다. 먼 하늘에서 금속성의 굉음이 들려오면서 미군 폭격기들이 율동적인 춤을 추는 것처럼 우아하게 하강하였다. 그때는 날카로운 폭음 소리가 연속해서 들리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제 그들 둘은 이미 열흘 가까이 피난민 행세를 하면서 길을 걷고,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행동하면서 일종의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이제 남쪽 시인과 북쪽 군관은 서로 기꺼이 길동무 겸 말동무가 되었다. 다정한 스승과 제자처럼, 오누이처럼, 부녀지간처럼,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서로에 대한 약간의 경계심마저 완전히 거두어 버린 것은 아니었다. 납치자와 인질 간의 긴장관계, 전쟁의 무서운 공포와 전율이 여전히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 소좌께서는, 이 전쟁이, 인간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 놓은 이 망할 놈의 동족상잔의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 보세요. 그리고 여자의 몸으로 전선에서 무슨 전투를 했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매우 궁금하군요. 나는 지금껏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평생을 오로지 원고지에 얽매어 살아왔다오. 그러나 전쟁이 터질 무렵에는 구제 받지 못할 시인으로 몰락해서 칩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내가 아는 게 무어가 있겠어요.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지요. 나 자신에게 화가 나요.”

밤이 점점 깊어갔다. 부드러운 달빛이 은색의 엷은 천으로 헐벗은 산하를 뒤덮고 있었고, 밤이 이슥하여 달이 이지러지자 달빛 그림자가 점차 더 멀리 뒷산 너머로 물러갔다. 이제 밤의 색깔은 암청색으로 변하였다. 별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은하수는 하늘의 이쪽에서 저 건너편으로 강물이 되어 흘렀다. 전쟁이 끝난 것처럼 사위가 죽을 듯이 고요하였다.

그녀가 말했다.

“이 전쟁은, 선생님, 그 진실이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미 제국주의자와 이승만 도당이 합작해서 의도적으로 북조선을 침공했다, 이 말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이 소좌는 지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어요. 그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 빗속을 뚫고 북의 전차들이 남으로 내려오지 않았던가요?”

“잘 들어주십시오. 그날 평양 방송은 11시 방송을 통해 매국 역적 놈인 이승만의 지령을 받은 남조선 괴뢰군이 침공한 결과 공화국 정부가 남조선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고 보도했지요. 김일성 장군님은 6월 25일 오후에는 각료와 당 중앙의 정치위원들이 모인 7자리에서 ‘38선 전 지역에서 남조선군이 공세에 나섰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최고사령관으로서 반격을 명령하였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민군은 김일성 장군님의 영도 하에 그 침략자들을 일거에 깨부수고, 이 기회에 조국통일을 하기 위해 내려왔단 말입니다. 북침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전쟁은 조국해방전쟁이지요.

그런데 우린 마지막 고비인 낙동강 전투를 승리하지 못했단 말입니다. 그때 우리 13사단은 인천상륙작전 직전 낙동강 교두보에서 왜관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요. 그런데 미 제국주의자들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기 때문에 불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그때 전선을 돌파해서 부산까지 진격하여 남조선이 빨리 해방되었으면 그만큼 더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줄었겠지요. 그 철천지원수들 때문에 조국통일을 눈앞에 두고 후퇴를 하였지요.”

“전쟁이 북침으로 시작되었다는 말이군요. 북쪽에서 북침이라고 우긴다면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말이요, 이 소좌는 전쟁이 두렵지 않았나요?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낙동강 전선까지?”

“물론, 전 두려웠죠. 연약한 인간이거든요. 전쟁은 남자의 몫인데 여자 몸으로 최전선까지 뛰어들었으니까요. 단지 이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혁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가 알고 싶었습니다. 그걸 전쟁을 통해서 알고 싶었던 거죠. 전 부잣집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규수였죠. 저도 꿈 많은 소녀시절이 있었습니다. 문학소녀였단 말입니다. 그 무렵에 시와 소설을 무척 많이 읽었지요. 닥치는 대로 말이지요. 그때 선생님의 시집에 나오는 시들을 외울 만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지요. 그때 이런 아름다운 시를 쓰는 분은 백마를 타고 다니는 훤칠한 미남 청년일 거라고 상상했지요. 그런데 많이 실망했네요. 선생님을 실제 만나보니 키도 작고 얼굴은 시커멓고 꾀죄죄하고.”

“허허, 너무 그러지 마오. 키야 원래 그렇지만, 이 난리 통에 난들 어쩌겠소. 그래도 이화여대 교수할 때 여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오.”

“그리고 좋은 사람, 돈 많은 미남 청년을 만나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백년해로하길 바랐죠. 그게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공산주의를 알고 나서 깨달았지요. 우리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전 결혼을 포기했지요. 저는 순수 열정의 대상을 미남 청년에서 공화국으로 바꾼 것이죠. 그런 후 공산주의와 인민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기로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이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 일종의 허무주의에 빠져버린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공산주의 사상이 약해지지는 않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죠.”

“전선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듣고 싶소. 도대체 낙동강 전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왜 북조선군이 갑자기 후퇴하게 된 거였소? 그렇게 기세등등 하더니만…….”

“무슨 전쟁이건 전쟁은 인간의 비극이란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지요.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사람을 죽여야 하니까요. 더욱이 같은 동족끼리 서로를 죽여야 하는 이 전쟁은 비극 중의 비극이지요. 전쟁은 악몽 그 이상이지요. 포탄이 분노한 듯 쉴 새 없이 참호 속까지 날라들어 굉음을 내며 폭발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죽였지요. 주위에는 신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온전한 시체가 별로 없었습니다. 제 옆에 가까이 붙어 있던 병사의 머리가 총탄에 맞아 사라지고 머리가 붙어있었던 목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콸콸 넘쳐흐르던 광경을 잊을 수가 없지요. 전투의 절정에 다다르자 아군과 적군 사이가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지요. 이제는 총알보다는 수류탄으로 서로 공격해야 했습니다. 백병전도 벌어졌구요. 전선 이곳저곳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갔습니다. 아군이나 적군이나 그 시신을 방패삼아 싸우고 또 싸웠지요. 그러나 부패한 시체에서 악취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독한 악취가 진동하였습니다. 그 무렵 줄기차게 쏟아지는 여름 막바지 비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물웅덩이에서 시체가 썩기 시작한 것입니다. 코를 틀어 막아야했지요. 전선에서는 같은 말, 같은 핏줄, 똑같이 생긴 민족끼리 서로를 살육하는 비참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병사들의 비명, 고함, 욕설, 분노와 공포의 절규, 아우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구요…….”

“전쟁은 무자비한 폭력이고, 인간 학살인 거요. 야만적인 공포이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참히 파괴 하지요. 우리 시대가 전쟁의 운명이라면 그러나 하루 빨리 종식시켜야 하겠지요.” 시인이 말했다.

“그렇지요. 전쟁은 끝나겠지요. 끝없이 계속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지요.”

그녀는 숨을 고르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한쪽 벽과 지붕이 날아가 버린 허물어져가는 헛간에는 아직 잉걸불이 이글거리고 있다. 얼굴 화장은 색조가 균일하지 않아 어딘가 어색해 보였지만 비단결 같은 검은 머리는 불빛에 반사되어 빛났다. 그러나 호롱불 불빛 아래서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너무 여위였다. 턱과 뺨에 무성한 잿빛 수염과 깊이 골이 팬 주름살은 그를 더욱 늙어 보이게 한다. 그녀는 그 순간 스스럼없이 시인에게 담배를 권하고 자신도 피워 물었다.

그녀가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담배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마음의 고통을 조금은 진정시켜 주니까요. 그런데, 술, 독한 술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실 그게 지금 필요하지요.”

그들은 부엌에 묻어둔 독에서 기어이 술을 찾아냈다. 쌉쌀하고 독한 탁주였다. 술기운은 그녀를 풀어지게 하였고, 곁들여 피운 담배 한 모금 때문에 편안해졌고, 수다스러워졌다. 그리고 그녀는 입 안 가득 담배연기를 머금었다가 허공에 내뱉어 동그란 원을 만들면서, 마치 꿈을 꾸듯이 계속 말했다.

“낙동강 전선에서 최후 전투인 다부동 전투를 잊을 순 없겠지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꿈속처럼 몽롱하고,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지요. 정말 꿈이었다면 좋겠네요.”

시인은 슬픔과 함께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은 아주 더디게 흘러가고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마저 멈췄다. 사그라져 가는 모닥불에서 마지막 회색연기가 가냘프게 피어올랐다. 잠시 침묵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 밤의 무거운 침묵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으므로 계속 이야길 들어야 했다. 어차피 오늘 밤도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아침을 맞게 될 터이다. 그때는 불면증 때문에 밤이 되어도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요. 이 소좌가 열렬한 코뮤니스트가 된 게 이해할 수 없소? 왜, 그렇게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싶었던 거요? 아니면 팔뚝에 붉은 완장을 차고 싶었던 거요? 좋은 집안에서,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교육도 많이 받았는데. 굶주림이 뭔지 뼈저리게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인생의 삶이 매우 고달팠던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해명을 들어야, 진실한 해명을 들어야겠어요.”

“정직하게 말씀 드려야겠지요. 그러나 진실이란 커다란 고통이지요. 그래서 두려운 것이지요. 그랬어요. 저는 열렬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저의 충만한 의지와 양심이 그걸 원하였지요. 칼 맑스는 새로운 메시아였으니까요. 그래서 위대한 공화국 건설에 앞장서고 싶었습니다. 역시 출신 성분이 문제였습니다. 그게 저의 앞날을 턱 가로막고 있었죠. 당시 북조선로동당에는 노동자 출신이나 무산계급 출신만 입당이 우선적으로 인정됐거든요. 두 번이나 입당원서를 냈지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척결의 대상이었지요.

아버지는 지주였고, 그것도 소작농들에게 가혹한 악질 지주였고, 고리대금업자였고, 어머닌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거든요. 어머닌 오로지 가족들의 건강과 그 많은 재산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였지요. 무산자들에게는 저주의 대상이었고, 공화국 건설에는 쓸모없는 존재였습니다.

지금 아버지가, 딸을 끔찍이 사랑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아버지에 대해 말씀드려야 하겠지요. 아버지 얘기를 하고 나면 당장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아요.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끔찍이 사랑하였지요. 그러나 그건 비인간적인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작인들에게 수전노처럼 한없이 인색하고 가혹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에게 가장 귀중한 것들을 빼앗아간 공산주의를 끔찍이 증오했지요. 그 증오심 때문에 심각한 속병까지 났었지요. 그러나 그 딸은 정반대였습니다. 공산주의는 사랑하지만 아버지를 증오에 가까울 만큼 싫어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악명 높은 친일파 대지주였기 때문이었지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해방이 되면서부터 북조선의 사회분위기 탓인지 그 사실이 더욱 치명적인 독처럼 느껴졌지요. 그 사람이 뼈저리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만경대혁명유자녀학원을 나온 열렬한 혁명 전사였지만…… 미제 원수의 폭격에 온몸이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갔지요. 딸은 스스로 아버지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딸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인민에게 봉사하고 속죄해야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관계, 그 검푸른 강물처럼 깊은 간극이, 그게 이율배반인지, 그냥 모순인지, 비극인지 여태까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다녔던, 어머니는 그때 남쪽으로 내려간 후였는데, 교회의 목사는 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계속 기도회를 열고, 신자들과 함께 예배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인민위원회에다 고발을 하였습니다. 그 후 전 그 일이 상부에 보고되어 당에 대한 충성심이 인정되고 신분의 족쇄가 풀려서 북조선로동당에 입당이 허용되었습니다. 그 며칠 후에는 그 목사와 가족들이 수용소로 끌려갔고, 비밀 교회는 내무서원에 의해 수색을 당한 후 석유가 뿌려지고 불태워졌지요.”

시인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이 소좌는 몹쓸 짓을 한 거요. 잔인하고 비열하지요. 나는 단지 수치심과 끝없는 모멸감을 느낄 뿐이요. 그래 부끄럽지도 않소?”

“어쩔 수 없었지요. 위대한 공화국의 전사가 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단 말입니다. 공산주의 대의 앞에서 그런 건 사소한 일에,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하지요. 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후회하면 안 되겠지요. 그때 우리 집 전 재산도, 모든 논밭과 정미소, 대궐 같았던 집까지 몰수되었습니다. 그런 후, 그러니깐 토지개혁 법령이 시행되면서 부친과 모친, 다른 가족들은 감쪽같이 남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절 남기고 갔지요.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해방 이후부터 가족과의 관계가 계속 심각하게 삐걱거렸거든요.”

그 순간 시인은 그녀를 반박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선생님은 시인이지요. 그것도 서정 시인이지요. 지금 우리 현실이 그렇게 한가한 것인가요. 조국의 현실을 직시해야지요. 선생님은 지금 낡아빠진 자본주의 사상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인이 아니죠. 공산주의 여전사일 뿐이지요. 그래서, 직설적이고 도전적입니다. 그리고, 열변을 토해내야만 직성이 풀리지요. 그러니까, 반어법과 은유, 섬세함, 의도적인 모호한 대화 같은 것은 저와는 어울리지 않지요.”

그녀는 시인으로부터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자기 신념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안달을 하였다. 그녀는 그 순간 스스로 공산주의의 마술적인 힘을 의식했던 것이다. 그녀는 공산주의 이념의 승리를 쟁취하려는 광신적이고 초조한 욕망에 불타고 있었다. 그녀의 빨간 혀가 쉴 새 없이 나불거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본론을 끝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결론을.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참으로 비참하였지요. 자본가들이 그들을 속여먹고 턱없이 낮은 임금을 지불하고 가혹하게 착취하기 때문이었죠. 그러니까 공산주의 혁명과 계급투쟁이 필요하고 자본가들이 완전히 말살될 때까지 임시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한 것이지요.”

“정말로 일찍이 없었던 태평성대 요순시대가, 지상낙원이 도래한단 말이군요. 그러나 역사의 법칙은 무자비한 것이요. 너무 유토피아적이라고 생각지는 않소? 공산주의자는 전부 낙관주의자이고 신비주의자인가요?”

“말하자면 그렇지요. 자본이 주인이 되는 사회, 돈이 좌지우지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사회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계급이 사라지고 결국엔 전쟁이 사라지고, 우리는 모든 사람이 오순도순 즐겁게 잘 사는 아름다운 집을 지을 거예요.”

“그러면 뿌리 깊은 자본주의 폐해가 이 지구상에서 일소될 수 있단 말인가요? 그게 정말 가능한 것인가요?”

그녀는 계속해서 연설을 하는 연사처럼 열정적으로 말을 하였다. 사실 지금까지 이 소좌가 말한 내용은 그녀가 학교에서 총화 시간이나 공산주의 윤리 시간이면 열렬히 주장했던 내용이다.

시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와 종교는 왜 상극인 거요? 공산주의도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인데, 그게 종교를 배척할 이유가 무어란 말이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예수님도 공산주의자 아니겠소?”

“그건 선생님이 유물사관을 오해한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하느님은 없다는 무신론입니다. 신은 인간이 만든 관념적 존재로서 지배계급의 악랄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인 것입니다. 지금 북조선의 유일한 종교는 무신론입니다. 무신론의 성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이고, 이 종교의 위대한 예언자는 레닌이고, 스탈린이고, 모택동이고, 김일성 장군님입니다.”

“이 소좌는 공산주의 귀신에 완전히 홀린 것 같소이다. 영원히 깨어날 것 같지 않소. 진정한 공산주의자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소.”

“공산주의 사회에 엄청나게 큰 꿈을 갖고 있지요. 장군님이 반드시 그 기초를 닦을 거예요.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듯이 열렬하게 그걸 믿고 있지요.”

“이 소좌는 김일성 장군이 구세주나 되는 것처럼 떠받드는군요.”

“그렇지요. 장군님은 또 하나의 새로운 구세주이지요.”

“진정한 구세주가 될지는, 아니면 새로운 사이비 종교의 창시자가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요. 환상일지도 모르잖소? 그가 우릴 배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요. 하여간에 말씀을 계속하십시오.”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지요. 미래는 알 수가 없지요. 그러나 믿어야 하지요. 믿음이 중요한 것이지요. 철두철미하게 믿어야 하지요. 장군님의 신념과 의지를 믿어야 하지요. 의심하고 회의하고 불신하는 것은 종파 분자들이 하는 짓입니다. 선생님, 이제부터 결론을 내리게 해주세요. 공산주의 사회는 지구 최후의 지상낙원이 될 것입니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것이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술기운은 진즉 멀리 달아나 버린 후였다. 조금 날카로운 얼굴선과 얇고 단단한 입술을 지닌 진지한 공산주의자의 얼굴에는 단단한 각오와 긴장된 의지가 배어있다. 그녀는 당당했다. 이 소좌는 들뜬 기운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그녀는 시인에게 쉴 새 없이 얘기를 계속하였고 그는 그녀의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다. 그러나 시인은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서 할 말을 잊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은 무언가 통렬하게 반박하려 하였지만 그녀의 광신적인 신념과 집념이 무서워 그만두었다. 어차피 소용없는 일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거침없이 몰아붙이리라. 무력감을 느꼈다. 어떤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을 뿐이다.

그들은 평양 인근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쾌청했고 하늘은 푸르렀다. 평양까지 허허벌판이 이어지고 있었다. 낮은 구릉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을 뿐 시야를 가로막는 큰 산은 없었다. 마침 추수가 끝나서 마른 볏짚단이 여기저기 서있는 가을 들녘은 엷은 회색이어서 너무 황량하였다. 그러나 대동교 밑으로 대동강 강물은 맑고 푸른 물이 느릿느릿 유장하게 흐르고 있었다. 강 주변의 길과 언덕에서는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뭇잎들이 벌써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평양은 아비규환이었다. 미군과 국군은 물밀듯이 진격하고 인민군은 무질서하게 북쪽으로 퇴각하고 있었으며 연일 쏟아지는 미군의 포격과 폭격으로 시내에는 성한 건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아니 하였다. 폭격을 당한 건물들은 천장과 벽들이 허물어져 위태롭게 서있었으며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매일 미군 정찰기가 인민군의 투항을 권유하는 삐라를 평양 시가지에 뿌려댔다.

폐허가 된 거대한 도시.

도시 전체가 잡동사니 쓰레기 더미에 묻혀 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진동하였으며, 거리 이곳저곳에는 치우지 못해 썩어가는 시체들이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몇 명의 인민군 병사 시신이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 누워 있었고 길 아래쪽에는 폭격으로 반 토막이 난 전신주 밑에도 다른 병사의 시신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이곳저곳 전봇대에는 여전히 ‘김일성 만세, 인민군 만세’ 따위의 글을 휘갈겨 쓴 벽보가 나부끼고 있다.

이제 평양은 연합군의 점령이 시간 문제였다. 평양 방어선은 붕괴되었다. 국군과 연합군이 이미 대동강 남쪽을 점령하고 나서 평양 시내 진입을 서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쉴 새 없이 포격과 폭격이 이어졌다. 섬뜩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불꽃과 함께 떨어진 포탄들로 인해 거리는 회색 연기가 휘감고 있었다. 밤에는 탐조등 불빛이 예리하게 도시의 하늘을 가르고 있었고, 예광탄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 하얀 빛을 그리며 떠돌았고, 폭격으로 인한 섬광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고 떠나고 있었다. 북한 최고 당국과 권력층은 진즉 평양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 땅인 통화로 옮겼다는 확실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상황에서 평양으로 들어갈 수도,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정치보위부도 찾을 길이 없었다. 최후까지 평양을 사수하였던 최고사령부 직속 근위여단 역시 북으로 후퇴한 후였다. 근위여단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평양형무소의 양쪽에 감방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는 긴 복도에서 포로와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즉결처분한 후 시체도 치우지 않고 마지막으로 철수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평양 진입을 포기하고 동평양 외곽을 우회하여 순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막 넓은 도로를 건너서 논둑길로 접어들 참이었다.

이 소좌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엎드려요.”

그는 여전히 엉거주춤한 채로 서있다.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폭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게 한순간이었다. 강렬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화염이 일어나고 땅에 구덩이가 파이고 흙먼지가 풀썩이면서 얼굴을 때렸다. 흙먼지가 솟구치는 곳에서 금속성 파편이 튀어 흩어졌다. 잠시 동안 숨을 쉬려고 해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폭탄 하나가 소리도 없이 날아와 바로 근처에서 터진 것이다. 두 번째 폭탄은 땅 속으로 처박히면서 먼지더미가 피어올랐지만 불발탄이었다.

다행히 시인은 코피가 터지고 얼굴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것 이외에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인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리가 눈에 띌 만큼 후들거리며 걸음걸이가 휘청거렸다. 폭탄 연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기침을 하였고 계속 가래를 땅에 뱉어냈다. 폭격기 편대가 하늘을 갈라놓을 듯한 날카로운 굉음을 내며 높은 고도로 치솟더니 남쪽으로 사라졌다. 폭격기는 멀어져 갔지만 윙윙거리는 금속성 굉음은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시인은 아직도 가슴이 찢어질 듯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얼굴과 온몸에는 땀이 흘러 흥건히 젖어 있었다. 시인은 한동안 멍했지만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순간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지만 다시 모든 것이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녀의 손에 어느새 쏘련제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유유히 사라져가는 전투기를 향해 권총을 휘두르며 악에 바쳐서 거침없이 소리를 질렀다.

“쌍 간나 새끼들. 개새끼들, 미제 개새끼들. 죽일 놈들.”

그리고, 다시 핏발이 선 눈빛으로 시인을 쏘아 보았다.

“폭탄에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죽지 그랬어요. 차라리 그 편이 나아요. 그렇게 보고만 하면 그만이죠.”

한참동안 숨을 고른 후, 이 소좌가 또다시 몹시 재촉하였다.

“그것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라요. 어서 떠나야 하지요. 몸을 추슬러야 해요.”

그들은 논둑을 지나 앙상한 나무들이 서있는 언덕 밑 좁은 길로 들어서서 계속 걸었다. 소나무들이 우거진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면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다음날은 새벽부터 바람이 거세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다. 이런 날은 폭격기도 쉬었다. 잠시 비가 그치자 강에서부터 피어오른 잿빛 안개가 들판과 산허리를 감쌌다. 안개는 다시 비가 되어 내렸다. 바람은 꽤 가라앉아 있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밤이 빨리 찾아왔다. 밖에는 계속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그저 깜깜한 어둠과 가는 빗줄기만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비어있는 외딴집에서 며칠을 마냥 보냈다. 그들은 녹초가 된 상태에서 온몸이 쑤시고 아팠고 처량하기 짝이 없는 자신들의 딱한 처지 때문에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10월 하순이 되자 북쪽에서는 날씨가 벌써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더기 옷을 걸친 채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터벅터벅 걸어서 다시 강계 쪽으로 가야 했다. 이 소좌는 처음에는 후퇴하는 인민군은 영변이나 박천으로 집결하라는 최고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그 쪽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그곳도 미군의 공습이 심해 후방사령부가 있는 강계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북쪽으로 계속 후퇴하는 인민군 낙오병들이 그러한 사정을 이 소좌에게 알려주었다.

이 소좌가 말했다.

“여기는 평안남도 순천입니다. 안주가 바로 위에 있지요. 우린 지금부터 군우리를 지나서 후방사령부가 있는 자강도 강계 쪽으로 가야만 합니다. 거리가 여기서 300킬로미터 쯤 되겠지요.”

“강계에 가면 어떻게 되는 거요?”

그녀가 화가 나서 신경질적으로 대답하였다.

“저도 알 수가 없어요! 아시겠어요? 모든 게 불확실해요! 저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임무를 완수하는 게 중요하지요. 마음이 약해져서 어딘가에서 그냥 주저앉고 싶은 거지요. 도망치고 싶은 거겠지요. 그건 안 되지요. 안전한 곳은 없어요. 지금부터 무엇을 할지는 내가 결정합니다. 내가. 우린 가야만 하지요. 끝까지 걸어야 하지요. 강계로. 그것만은 분명하지요.”

“지금도 북조선의 승리를 믿고 있소?”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시라요! 전쟁이란 승리 아니면 패배이지요! 하지만 이 전쟁에서 진다면 혁명의 대의도, 공화국도, 저도 사라질 것입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겠지요.”

“유엔군이 지금 올라오고 있어요. 이 소좌는 잡히면 어떻게 할 생각이요.”

“난 잡히지 않아요. 절대로. 그러나 잡히는 찰나에는 총을 쏴 죽여야겠지요. 아시겠어요? 권총과 탄알 20개가 들어 있는 탄창이 있단 말입니다. 다 써야지요.”

“왜? 그때는 목사를 직접 집행하지 아니하였소?”

“매우 비꼬시는군요. 그때는 제게 총이 없었지요. 만약 총이 있었다면 단번에 가슴에다 대고 쏘았겠지요. 그러면 목사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나동그라졌겠지요. 그리고 전 머리통에 대고 최후의 한발을 쏘았겠지요. 확인사살이 필요하니까요. 열렬한 혁명전사이니까요. 아시겠어요!”

 

순천을 지나서 강계로 가는 도로는 참으로 참혹하였다. 미군의 공습을 당한 인민군 트럭들이 수백 미터 간격으로 불에 타고 있었고, 인간의 뼈와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길바닥에는 팔다리가 끊어지고 창자가 쏟아져 나온 병사들이 버려진 채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살려 달라”고 허공에 대고 울부짖었다.

이 소좌는 시인을 이끌고 도로를 건너고 폐광촌을 지나서 깊은 산속 길로 접어들었다. 그들은 나무가 우거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가, 올라갈수록 공기는 점점 더 차가워졌지만, 다시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디면서 갈색 솔잎으로 뒤덮인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소나무의 제일 위쪽 가지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찍찍거렸다. 다람쥐는 납작하게 엎드려서 작은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재빠르게 휘젓고 있었다. 그들은 숲속에서 힘겹게 오르락내리락하며 꾸준히, 천천히 길을 걸었지만, 이젠 길을 걷는 게 너무너무 지긋지긋하였다.

다음날 밤은 하늘은 아주 맑았고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주위는 어두웠지만 높은 산들은 어둠 속에서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위쪽에는 바람이 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흘러갔다. 계곡에서는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구슬픈 올빼미 울음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거리는 게 보였다. 좁은 길은 계속해서 올라가거나 내려가며 그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밤길을 더듬어 찾아가보니 다 쓰러져가는 작은 오두막이었다. 늙은 할머니와 반벙어리인 할아버지가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여긴 일 년 내내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디요. 그저…… 산삼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이 가끔……. 그런디 행색이 심마니 같디는 않구먼. 이 밤중에 무슨 일루다?”

“할머니…… 전쟁이 일어났어요.” 시인이 말했다.

“뭐라구 했수?”

“전쟁이…….”

“우리네는 그런 것 도재 모르디.”

할머니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디…… 배가 고프디는?”

“할머니…… 먹을 게 좀 있나요?”

“드려야디요. 귀한 손님인디…… 근디 쌀밥은 없디요. 우리도 쌀밥은 일 년에 한 번씩…… 설날에만 구경하디요. 보리죽이나 강냉이죽만 먹디요.”

할머니는 전쟁이 일어난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왜 그런 행색으로 도망을 다니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전혀 묻지 않았다. 그들은 동치미 국물에 꿀맛 같은 강냉이 죽을 배불리 먹었고, 아침이 되자 족히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 강냉이 가루를 얻어서 다시 길을 나섰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높은 산 위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한가하게 떠 있었고 숲속의 대기는 상쾌하고 따뜻하였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들은 모처럼 기분이 좋았고 기운이 넘쳤다. 이제 전쟁은 그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소풍이나 나온 것처럼 주변 경치를 음미하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머나먼 강계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이 소좌가 말했다. “우린, 별세계를 왔다가 가는군요.”

“그런 것 같소이다.”

시인은 삼팔선을 넘을 무렵부터 벌써 다리의 부종 때문에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오랫동안 걸으면서 다리가 심하게 부었고 그 부분에서 피부가 팽팽하게 당겨져 무릎을 제대로 구부리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신발 속으로 부어오른 발이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맨살이 드러난 발은 늘 젖어 있다. 그러나 이 소좌가 응급 구호조치를 취하고 비상용 항생제를 투여해서 그럭저럭 견디고 있었다.

겨울이 닥쳐왔다. 그들은 때 이른 거친 눈보라와 씨름해야 했다. 처음에는 눈발이 조금씩 흩날렸다. 눈은 땅에 닿기를 주저하기라도 하듯 줄곧 머뭇거리다 춤을 추듯 내려왔다. 그러나 늦은 오후가 되면서 눈보라는 강풍을 동반하였다. 대기는 휘날리는 하얀 눈으로 가득 찼다. 대지도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소좌가 징발한 두툼한 솜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서 견딜 만했다. 다만 발이 꽁꽁 얼어붙어 감각이 없었다.

중공군의 참전과 기습공격, 인해전술로 인해 전세는 역전되고 있었다. 도로마다 남으로 철수하는 군용 트럭과 온갖 종류의 차량들,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트럭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트럭에 타고 있는 병사들의 표정이 피로에 지치고 우울해 보였다. 그들은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가 중공군에 밀려서 남으로 후퇴하고 있는 중이었다. 초라한 행색의 피난민들이 그들의 모든 재산을 실은 수레를 끌고 내려갔다. 혼란은 시작도 끝도 없었다. 이제는 중공군이 전선을 장악하고 있었다. 운산과 군우리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중공군은 평양을 회복하고자 남으로 대공세를 취하고 있었다. 밤이면 밤의 정적을 뒤흔드는 중공군의 꽹과리와 피리소리, 호루라기 소리와 나팔소리가 숲속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들은 깊은 밤 무당집에서 들려오는 굿판의 섬뜩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것들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그것은 중공군의 공격 개시 신호였다. 그리고 나서 중공군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자주 고류노프 중기관총을 끌고 남으로 밀고 내려가는 인민군과 중공군의 혼성부대와 격자무늬로 두툼하게 누빈 방한복을 입고 수류탄과 따발총으로 무장한 인민군 수색대와 조우하였다. 그들이 험악한 얼굴로 총을 겨누고 위협하였다. 금방 방아쇠를 당길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이 소좌의 신분을 확인하고 통과시켜 주었다. 이 소좌는 민족보위성 최고사령부가 발급한 군관 신분증과 비밀경찰인 정치보위부의 신분증, 당원증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밤은 둘 다 몹시 피곤해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중강진에서 다시 평양 외각 북쪽의 원장리로 이동한 후였다. 그들이 처음 목표로 삼았던 강계 역시 미군의 심한 공습에 견디지 못하고 후방사령부가 통화로 옮겨간 것을 알고 강계 근처에서 다시 양강도의 중강진 방면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은 심한 산악지역으로 여전히 인민군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장리 마을은 농가 대부분이 심한 폭격으로 지붕들이 무너져 있었고, 골목의 나무들마저 폭탄 파편에 나무껍질이 깎여 있었다. 그들은 주인이 피난가고 없는 빈 농가의 천장이 허물어진 헛간에 누워버렸다.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잠은 좀처럼 오지 않는 그런 밤이었다. 잠을 자려고 애쓸수록 더욱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느새 밤의 정적이 주위를 감쌌다. 그날 밤에는 폭격기의 굉음이나 폭격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부드러운 달빛이 은색의 엷은 천으로 찢겨진 산천을 뒤덮고 있었고, 달이 이지러지면서 달그림자가 점차 더 멀리 산 너머로 물러났다. 밤은 자신의 수많은 별들을 잃어버렸다. 암청색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 오면서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 대동강에서부터 피어오른, 바람에 갈기갈기 찢겨지고 흩어지면서 마치 유령처럼 보이는 밤안개가 어느새 산허리를 휘감고 있었다.

“그 시들은 왜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그렇지요. 감상은 혁명에 금물인데 시인을 만나니 어쩔 수 없이 감상주의에 빠져 버렸네요.”

그녀의 검게 탄 긴 목이 감각적이었다. 그녀가 구리 반지를 낀 가는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녀의 눈에 맺혀있는 이슬 같은 눈물이 여린 달빛 속에서 보였다.

“곧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삼팔선에서부터 시작하여 두 달 반 동안을 함께 이 산천을 헤맸군요. 평양에서 순천, 강계를 거쳐서, 청천강을 건너서 중강진까지, 중강진에서 다시 평양까지는 근 두 달 동안 천릿길을 걸었지요. 드디어 평양에 도착하였네요. 선생님은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때로는 화도 내고 신경질도 부렸지요. 위협하기도 하고 강요하기도 하고. 저는 잔인한 납치자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였으니까요. 저도 무척 힘들었답니다. 그러나 어려운 고비가 많았지만 천우신조로 우린 살아남았지요. 가끔 밤이면 농가의 헛간에서 불을 활활 지펴 놓고 앉아 많은 얘기, 심각한 얘기, 열띤 얘기를 주고받았지요. 때론 밤을 하얗게 새기도 하였지요. 그땐 선생님이 그랬죠. ‘벌써 날이 밝았군.’ 영영 이별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건강하시게 오래오래 사시라요. 그리고 말입니다. 정치보위부는 험한 곳이에요. 조사를 잘 받으시고 풀려나시라고요.”

그녀가 계속 말했다.

“시인을 호송하는 임무는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지요. 그것도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을 맨몸으로. 저는 재편성되는 부대와 함께 하루라도 빨리 전선으로 가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지요. 부대 재편성도 불가능했고, 모두들 북쪽으로 도망가기에 바빴지요. 어쩔 수 없었던 거지요.

이런 밤에는, 이별의 밤에는 이별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워야 하는데, 목이 마르군요. 한 잔의 술이 간절하지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날이 밝으면 떠날 것입니다. 정치보위부가 인수할 거예요. 저는 새로 편성되는 부대로 가서 다시 전선에 배치되겠지요. 전선에는 총알이 핑핑 소리 내며 막 날아오지요. 총알이 가슴에 박히면 죽겠죠. 폭탄에 맞아 온몸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요. 그러나 혁명의 대의를 위해 죽는다면 영광이죠. 그래도 울고 싶군요.”

그녀가 창백한 얼굴로 달빛 속에서 그를 쳐다보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언제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여인의 육체는 왜 그렇게도 아름다운 것인가! 그녀는 틈나는 대로 가끔 머리를 매만지고 얼굴에 살짝 분을 바르지 않았던가. 지금 풀어헤친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면 여체의 시큼한 체취와 함께 여인의 짙은 향기를 맡으리라. 나는 도취되어 온몸으로 환희를 느끼리라. 따스한 체온을 느끼리라. 그러면 그 열기 같은 따스함이 내 가슴 속으로 전해지고 내 영혼 전체에 나른하게 퍼지리라.

시인은 그 순간 고달팠던 지난 나날들이 하나씩 하나씩 되살아났다. 그것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오랫동안 명멸하다가 언젠가는 먼 과거 속으로 깊이 가라앉을 것이다. 시인은 그만 목이 꽉 메었다. 그는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희미한 어둠 속에 눈을 살포시 감고 누워 있는 그녀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뒤돌아보았다. 그녀가 돌봐주지 않았다면 그 험난한 여정에서 자신은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터였다. 그녀는 어머니였고, 사철 발 벗은 아내였고, 누나였고,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였고, 그녀의 아련한 눈빛이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연인이었다.

시인은 목이 쉰 것처럼 목구멍 깊은 곳에서 그르렁대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그래 너무 고마워.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부디 살아남아라! 살다보면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나난 선하면 아니 올세라…….”

더욱 짙어진 안개 위로 검은 실루엣 같은 산봉우리와 하늘이 먼 풍경처럼 아득히 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안개가 흩어지고 있었다. 곧 새벽이 열리리라. 하늘은 높고 태양은 대지 위에 뜨거운 빛을 쏟으리라. 이 얼어붙은 침묵의 대지는 봄이 오면 다시 만물의 생명을 회생시킬 것이다. 고사목에도 새싹이 돋고 꽃이 만발하고 초록의 세계가 싱그럽게 펼쳐질 것이다. 아무리 잔인한 전쟁도 대지의 생명력을 짓밟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명의 부활과 순환. 그러면 인간들의 찢겨진 영혼은 진정되고 육체는 위안을 받을 것이다.

 

정치보위부, 김규진 중좌

평양 시내는 여전히 공습경보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폭격기 편대가 은빛 날개를 반짝이며 날아와서 폭탄을 이곳저곳에 쏟아붓고 사라졌다. 거의 전파되다시피 한 시가지에서 연기와 불길이 타오르고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 하였다. 평양 곳곳에 세워졌던 미군 보급소에서는 퇴각하면서 미처 가져가지 못한 막대한 양의 군수품과 기름들이 불에 활활 타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검은 연기와 화염에 휩싸인 시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무렵 평양 방송국과 조선 로동당보에서는 용맹한 중국 의용군 전사들과 북조선 인민군들이 합세해서 남한의 전 지역으로 다시 물밀듯이 내려가고 있으므로 이제 조국통일은 시간문제라고 끊임없이 선전을 하고 있었다. 그때 평양은 북조선 당국과 인민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국군과 미군은 중공군의 참전에 의해 남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러나 평양은 물론이고 북한 전 지역이 폭격과 식량난으로 시달리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장티푸스가 발생하여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었지만 평양의 분위기는 더욱 살벌해서 가두검문과 가택수색이 심하였다.

하늘에는 음산하게 보이는 시커먼 구름이 떠다녔다. 그 둔탁한 납빛 구름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자꾸만 모습을 바꾸었다. 구름들이 달아나고, 다시 만나서 뭉치고, 또다시 갈라졌다. 춥고 스산한 겨울바람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도시를 휩쓸었다. 하늘이 점점 내려앉았다. 어느새 하늘은 완전히 먹구름이 끼었고,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1950년 겨울은 잔인한 겨울이었다. 비망록에 의하면 시인이 보위부에 정식 인계된 날짜는 12월 20일이다.

정치보위부 건물은 옛날 일본 헌병대가 평양 분실로 쓰던 낡은 벽돌 건물이었는데 그나마 본관 건물은 끝없는 공습으로 철저히 파괴되어 그 잔해만 남아있어서 옛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본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별관과 그 주위 지하실 등은 철저하게 위장을 한 덕분에 미군 폭격을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 둘레에는 덤불 속에 숨겨진 채로 이중삼중으로 철조망을 쳐 놓았다. 건물은 낡고 칙칙하였다. 그 건물의 지하실 좁은 독방에 그는 임시로 감금되었다. 두 팔을 쫙 벌리면 양쪽 손가락이 벽에 닿을 만큼의 폭이었고, 바닥에 드러누워 팔을 위로 올리면 손끝이 닿을 정도의 길이였다.

그 독방은 어둡고 우울했다.

벽은 습기에 차있고 사람의 손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의해 매끈하게 닳아 있었다. 12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벌써 한겨울이어서 난방이 되지 않은 지하실 방은 지독히 추웠다. 걸레처럼 너덜거리는 낡은 매트리스 밑에는 물기가 배어 있었고 지독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였으며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가슴이 고통스러울 만큼 쿵쾅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한 갈증과 폐쇄공포증이 그를 덮친 것이다. 그는 축축한 냉기 속에서 밤을 지내다가 낮이 되면 그 건물 2층의 심문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 방은 북쪽으로 작은 창이 나있었고 늘 그늘이 져있어서 벌써 창에는 두껍게 성에가 끼어 희뿌옇게 보였다. 초겨울 내내 햇빛은 오전 잠깐 동안만 비스듬히 비추다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는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처음에는 하급 군관이 매일 비슷비슷한 질문을 하고 그 역시 건성으로 대답을 하였다. 전투기의 폭음 소리는 여전히 간헐적으로 들렸다. 그러자 새로운 군관이 와서 심문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였다. 그는 고위 간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턱이 각진 얼굴은 검은 편이고 살이 쪄서 통통하고, 행동은 유들유들하고 거들먹거리고, 그리고 말쑥하게 인민군 정복을 입었으며 중좌 계급장이 어깨에서 번쩍거렸다. 그가 계속 시인의 얼굴을 날카롭게 뜯어본다. 심문자의 목소리는 정중한 것처럼 들리지만 벌써부터 날이 서있었다.

“지금부터 본관이 직접 조사할 것이오. 진실만을 말하시오. 그리고 반드시 존칭어를 쓰기 바라오. 공화국 고급 군관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기 바라오. 나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순서겠지요. 나는 정치보위부 문화부 소속 김규진 중좌요. 동무를 조사키 위해 특별히 선발되었소. 본인은 로동당 선전선동부에서 남조선의 문화예술인들을 북으로 초대하는 업무를 담당하다가 전쟁 통에 이곳으로 차출되었소. 하여간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협조적으로 우리 잘해 봅시다. 내가 오기 전에 하사관들이나 하급 군관들이 동무에게 지나친 행동을 했다면 용서하시오. 그건 공화국의 뜻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나는 동무에 관한 기록을 샅샅이 훑어보았고 지금 북에는 남조선에서 올라온 문인들이 부지기수요. 그들이 이미 많은 증언을 하였소. 단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조사하는 것일 뿐이요.”

“저는 거대한 음모자가 아닙니다. 제가 숨길 게 무어가 있겠습니까. 오직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겠지. 동문서답을 하면 안 되겠지. 그러면 내가 마구 화를 낼 것이요. 동무 담배 한 개비 피우시라요. 그리고 커피도. 이 커피가 이 난리 통에 얼마나 귀한지를 동무도 잘 아시겠지요. 커피는 역시 미제가 최고이지요. 동무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 잘 협조해서 조사를 끝마치기로 합시다. 동무, 안 그렇습니까?”

그들은 함께 커피를 마셨다. 얼마만인가. 뜨거운 커피는 진한 회색빛이었고 달콤하고 쓰디 쓴 향내가 코끝을 맴돌았다. 그 씁쓸한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겁을 먹고 있는 건가? 이 미증유의 시련을 견디어낼 수 있을 것인지?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가 있을 것인가? 피조사자가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드는 스탈린식 조사가 시작되고 있는 거야.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에 대해서. 지금부터 상상의 죄를, 자신의 죄를 스스로 찾아내려는 절망적인 노력을 해야만 하는 거야. 오, 하나님,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모든 걸 보고 계시고 모든 걸 듣고 계시고 모든 걸 알고 계신다고 합니다. 당신을 애타게 부르고 싶습니다. 부르고 또 부르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왜 지금 듣지 못하시는 겁니까? 들어도 못들은 척 혹은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되었다.

“먼저, 동무의 친일행적부터 시작하지요. 우리는 충분히 사전 조사를 했으니까 허튼 소리는 하지 않기요. 그런데 조선민족으로서 어찌하여 그런 자에게 빌붙었단 말이요. 동무는 양심도 없었소. 동무는 당초 시인으로 출발할 때부터 기타하라 하쿠슈로부터 시를 배웠단 말입니다. 일본 유학시절, 그러니까 동지사대학 시절을 말하는 거요. 동무는 특히 하쿠슈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고 사숙까지 했었지요. 그가 동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단 말이지요.”

시인이 대꾸하였다. “정치보위부가 무슨 할 일이 없어서 나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조사를 한단 말입니까.”

“동무, 쓸데없는 말을 삼가시오. 그 무렵에 동무는 무어라고 말했소. 일본의 피리나 빌려서 연습하겠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피리꾼이 될 것 같습니다. 그건 하쿠슈더러 들으라 한 것 아니었소. 그리고 하쿠슈가 애용했던 어휘나 시어, 이미지를 은근슬쩍 빌려서 시를 쓰니 동무의 초기 시에서는 하쿠슈의 냄새가 물씬 풍겼단 말입니다. 그런데 하쿠슈가 누구인가요. 그 자는 일본 제국주의자의 앞잡이로 성전을 찬미하며 일본의 민족의식을 고취해서 국민시인이 된 자가 아닙니까. 수많은 전쟁협력시를 발표했어요. 그런데도 동무는 배알도 없이 조선민족의 자존심을 저버리고 그런 자에게 빌붙었단 말입니다. 이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입니까.”

시인은 내내 눈을 내리깔고 부드럽고 공손한 태도로 진지하게 말했다. 옆 책상에서는 하사관이 사복을 입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구식 타이프라이터로 심문조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김 중좌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그가 처음으로 말했다.

“난두 무식해서인지 시를 도통 모르디요. 그러나 동무가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만은 알 수 있디요. 동무가 그 따위 시 좀 썼다고 한들 그게 무슨 죄가 되갔시요. 동무는 지금 잘 하고 있디요. 기래요, 흥분하지 마시라요. 말을 잘 들어야 해요. 성질이 몹시 급하시거든요. 괜히 고생할 거야 없디 않가서요. 그분이 힘이 센 사람입네다. 공화국의 높은 분들과는 두루 잘 통하디요. 내가 전선에서 이곳으로 오게 된 것두 그분이 끌어주신 거라요. 기래니까 반드시 시키는 대루 하시라요. 기래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디요. 그분이 동무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디요.”

김 중좌는 들어오자마자 다시 진술을 재촉했다.

“그렇지. 계속하시오. 계속해서…… 하사관 동무, 잘 받아 적으시오. 진술의 요점을 놓치면 안 되겠지…….”

“하쿠슈의 시는 터무니없이 멜랑콜리하고 센티멘털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휴지통에 처박아야할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이지. 동무 역시 그 사람의 아류라고 할 수 있소. 겉으로는 예술지상주의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사회성이 결여된 감각적이고 신흥 예술파의 경박한 시만 썼던 것이오.”

“그럴지도 모르오. 내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마디 변명을 하자면 순수한 조선어 어휘를 발굴해서 풍부한 표현력으로 시를 쓰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 동안 우리 시가 음악성만을 중시해 왔지만 새로 시의 공간성이랄까 회화성을 도입하고 싶었던 거지요. 시의 이미지 말입니다. 더욱이 말입니다. 김 중좌님, 저는 원래 사회성이니 사상성이니 같은 것은 잘 알지도 못하고. 하여간에 그것들은 저와는 관계없는 공허한 존재들입니다.”

김 중좌의 거무죽죽한 얼굴이 금세 굳어지고, 화가 나서 버릇대로 눈이 뱀눈처럼 되면서 소릴 질렀다.

“입을 닥치시오. 동무는 너무 잘난 체하는 게 탈이요. 프로문학의 동지들을 폄하하지 마시오. 문학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것이요. 형식은 껍데기일 뿐이요. 공작새처럼 화려한 장식이나 경박한 가식은 절대적으로 필요 없는 거요.”

젊은 하사관 동무가 그의 진술을 받아 타이프라이터를 치면서 끙끙대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긴 진술을 꼬박꼬박 받아 치면서 몹시 힘겨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 중좌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심문을 계속하였다.

건물 밖에서는 여전히 멀리서 폭격기의 굉음과 폭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시인은 전쟁의 진행 상황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며칠째 김 중좌의 날카로운 심문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질문은 정확하게 핵심을 찔렀고 때로는 시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두둔하면서 날선 목소리로 송곳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기 때문에 시인은 부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길고 끈질긴 심문 탓에 점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가끔 꿈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소식이 끊긴 가족과 이 소좌의 생사가 궁금하였다.

“문제는 말이요. 동무가 하늘처럼 믿고 있는 그 천주교가 동무의 시적 재능을 앗아갔다는 것이요. 동무는 종교시 편에서 가톨릭의 교리가 절대적이고 영원불변의 진리라고 맹신하여 전지전능한 신에 의지해 구원 받으려는 나약한 태도를 보였단 말이요. 동무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주체성을 망각하고 모든 걸 신에게 맡겨 버렸으니. 너절한 신앙고백에 다름 아닌 종교시는 현실을 완전히 외면하고 오직 신만을 우러러 보았지요. 그때 동무의 종교시는 완전히 경직되어 있었소. 현실 도피적이고 관념적이었다는 말이요.

다시 말하면, 그때 동무가 쓴 너절한 종교시는 산만하고 긴장감이 없는 문체로 쓴 거였소. 시인의 개성이나 신선한 이미지는 눈 씻고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단 말이요. 부인할 수 있겠소? 그때부터 동무의 시적 재능이 점점 사라진 것이요. 그것들은 동무의 초기 아름다운 시에 감탄했던 독자들을 배신한 거였소. 그런데 시인에게서 시인의 혼을, 시인의 상상력을 앗아간 신을 그래도 믿고 있는 거요? 그 신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요?”

“…….”

“다시 말하겠소. 그 신은 동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소. 당신의 시심을, 시적 재능을 말살했을 뿐이오. 동무는 그때 종교시를 쓰면서 전지전능한 신의 힘으로 구제 받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모든 게 허사였소. 동무는 어려운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신을 찾은 거요. 그래서 공허하고 관념적인 종교시에 빠진 것이었소. 내 말이 틀렸소? 그 쓸모없는 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시오. 그리고 천주교에 대해 침을 뱉으시오. 동무가 천주교를 고수하는 한 그건 치명적인 독이 될 것이요. 미 제국주의자의 앞잡이로 인정되는 빌미가 된단 말이요. 그 신을 당장 버리시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이란 말입니다. 그것은 유산계급이 무산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교묘하게 조작해낸 인민의 아편일 뿐이요. 당장 신을 버리시오! 이건 공화국의 엄숙한 명령이요. 알겠소?”

그가 멈칫거렸다. 그는 잠시 진술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요. 신은 저의 울부짖음에도 단 한 번도 대답을 해준 적이 없습니다. 인간 삶의 불가해성을 속 시원히 풀어서 가르쳐주기를 간청했었지요. 그 신이 지금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구료. 신은 거룩하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신은 잔혹하고 무자비하고 야만적일 수 있습니다. 신은 전지전능하지도 않습니다. 무소부재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신을 떨칠 수는 없을 것 같소이다. 그 무력한 신을 원망해서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신은 이 순간에도 살아계신다고 믿고 싶습니다.”

“동무는 참으로 멍청하오.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시인이란 족속들은 참으로 어리석지.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이상하고 기분 나쁜 웃음으로 음산하게 심문실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김 중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독히 심술궂은 태도로 이죽거리고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리다 침을 튀기며 다시 심문하였다.

“이 부분이 동무의 범죄혐의와 관련하여 핵심적인데 지금부터 조사하겠소. 다시 경고하는데 허튼 소리는 용납할 수 없소. 그따위 소린 집어치우시지. 당장 집어치우라고. 동무는 지금 자기변명이 지나치다는 것 알고나 있소. 그때 북조선에서는 동무의 변신에 대해 놀라워하면서도 반신반의했소. 그러다가 동무의 논설이 점점 과격해지자 이제는 동무를 공화국의 위대한 전사로 간주하기 시작했소. 천군만마를, 문학적 동지를 얻었다고 생각한 거요. 물론 그 후 동무의 변절을 보고 아연실색했지만 말이요. 동무는 나중에 악질 반동단체인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았소. 우리는 동무의 변절에 대해 공화국을 반역한 죄, 미국 제국주의 첩자라는 죄목으로 다스릴 작정이오.”

갑자기 무시무시한 불안이 시인을 덮쳤다. 그의 목을 죄어들고 있었다. 목울대가 경련하고 있다. 그는 온몸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침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인이 답변하였다.

“김 중좌님이 변절했다고 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변절이라는 우리말 낱말이 정말 생소하게 들리는 군요. 저에게도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때 누가 변절을 하였는지 말씀드리지요. 그 시절에 매일신보나 경성일보 등에 문필가랍시고 자리 잡고 앉아 공출과 징용, 징병을 독려하는 글을 익명으로 매일처럼 써 갈겼던 자들이 해방 후 어떤 행보를 하였는지 알고 계신지요. 그들이 이번에는 파렴치하게도 좌익 지식인 행세를 하면서 우익 타도에 너도나도 앞장섰지요. 또, 어떤 친일파 모리배들은 고고한 민족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재빨리 친미파로 변신하였지요.”

“동무, 세상에는 쓰레기들이, 기회주의자가 언제나 득실거리는 법이요.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동무도 남의 말 할 계제가 아닌 것 같소. 하여튼 말이요, 남의 말은 할 것 없소. 동무의 이야기를 진술하시오.”

“저의 경우에는 남조선에 단독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게 달라진 겁니다. 문맹의 전력을 가지고 있던 저는 단독정부의 수립과 때를 같이 하여 이화여대의 교수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지요.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녹번리 초당에서 조용히 서예를 하며 소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한에서 시인으로서 존립 기반이 상실된 거였습니다.

도대체 그때 제가 무얼 할 수 있었겠소. 북에서는 변절자라고 욕하고 남에서는 빨갱이라고 욕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설 땅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제게 이념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념이 무슨 소용이 되었습니까? 저는 이념을 모르오. 제가 누구요? 저는 오로지 시밖에 모르고 오직 시에만 심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만 시인일 뿐이요. 시인…… 시인…… 시인이란 말입니다. 시인에게 뭘 그렇게 요구하는 게 많단 말입니까. 절, 그냥 내버려 두시오.”

“동무는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고 계속 도피하고 싶겠지요. 동무는 증오할 능력이 없는 거요. 동무는 치열하게 싸우지도 못해요. 비겁한 놈이니까. 그래서 동무의 시에는 원래부터 사회의식, 사회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없었소. 동무가 자칭 시인이라고 할 수 있소?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거요. 동무는 평생을 모더니즘의 기교주의에 빠져서 바닥이 얕은 감각시나 썼으면서 너무 시인, 시인하지 마시오. 그러니까, 동무는 현란한 언어감각만으로 시를 썼던, 두뇌도 없고 심장도 없었던 수공예술의 시인이었을 뿐이오. 그들이 지적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소.”

“그래서인지, 저더러 최초의 모더니스트니,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시인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 지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말끝에 꼭 사상성이니 사회비판성이 없다고 비판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현실 자체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배후 또는 이면에 숨어 있는 존재의 본질을 캐내려고 했는데, 아무도 그걸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야 말로 피상적이었습니다. 시란 말입니다, 긴 서사시가 아닌 바에야 짧은 시행 속에서 사회성이나 사회제도의 모순까지 요령 있게 묘사할 수는 없는 겁니다. 거의 불가능하지요. 예를 들자면 카프의 그런 시는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지요. 시에는 고도의 외재율과 내재율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런 시를 쓰느니 차라리 노골적으로 논설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훨씬 쉬운 일이거든요.”

김 중좌가 화나가서 낡은 철제 책상을 꽝꽝 내리 쳤다. 그리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인민해방군의 서울 점령기간 중 동무의 행위는? 그래도 되는 거였소? 동무는 변절한 거요. 배신자! 위대한 공화국과 인민을, 김일성 동지를 배신한…….”

김 중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만한 자세로 시인을 째려보면서 분명하게 조롱하고, 경멸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동무는 지금 자기변명에 너무 급급하고 있소. 그것은 못돼먹은 제국주의 지식인 근성 탓이오. 여태껏 고질적인 회색분자 경향에서 못 벗어났기 때문이란 말이요. 그만 두시오! 변절자가 부끄럽지도 않소! 잘한 게 무어 있다고 큰소리요. 엉터리 시인! 기회주의자! 비겁한 놈! 민족의 반역자! 반동분자! 인민의 적이란 말이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이요!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부디 자중하시오!”

“…….”

“동무는 피조사자라는 신분을 망각하지 마시오. 조사자는 나란 말입니다. 김규진 중좌란 말입니다. 당신의 운명을 내가 쥐고 있어요. 함부로 까불지 말기요.”

그가 거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피웠다. 그리고 담배꽁초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뱉어 발로 문지르면서 또 한 개비를 피울 것인지 망설인다. 그가 준엄한 눈초리를 던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동무에게 다시없는 기회를 주겠어. 자수할 기회를 주겠다는 말이요. 잘 들으라우. 반성문 겸 전향서를 쓰시오. 그래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란 말이요. 그러고 나서 공화국과 북조선 인민, 위대한 김일성 장군님을 향해 용서를 비는 거요. 마지막으로 김일성 장군님의 항일유격전을, 경애하는 김일성 동지를 찬양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칭송하는 시를 당장 몇 편 쓰시오. 우리는 지금 혁명을 하고 있는 거요. 혁명이란 바로 서정시인 거요. 혁명이나 시나 그것들은 인간의 열정이 필요하거든. 당신은 이제부터 혁명가가 되는 거요. 위대한 혁명 전사 말이요. 러시아 혁명이 낳은 최대의 시인은 바로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이요. 그 시인은 거칠고 강렬한 언어로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증오심을, 압제자와 적극적 투쟁에 나선 인간의 모습을 묘사했소. 사회주의 사실주의적 시를 쓰면서 그 시인을 참고하도록 하시오.

그러면 내가 책임지고 상부에 보고하여 동무가 북조선에서 영화를 누리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오. 동시에 남쪽에서 월북한 동무들에게는 필수적인 사상검토사업이나 동무의 과거 과오에 대한 엄중한 자아비판을 면제시켜 주겠소. 자아비판이란 자기굴종인 거야. 자신의 자아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인 거지. 알겠소? 스스로 자기 자신을 포기한단 말이요. 이런 잔인한 행위를 시인에게 강요하지는 않겠어. 엄청난 시혜인 거지. 며칠간 말미를 주겠소. 잘 생각해 보시오.”

그가 멸시에 가득찬 웃음을 지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동무에게 가혹한 고문을 할 수도 있지. 원하는 것을 획득하려면 고문을 해야만 하는 거지. 고문은 결국 승리한다는 게 나의 확고한 신념이지. 인간은 하찮은 존재, 짐승, 벌레 같은 것이니까 채찍질로 다스려야만 하는 거야. 나는 많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지. 희생자는 결국 굴복하고 스스로 자신의 인간성과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고 가해자의 공범이 되고야 말지. 그건 자진해서 타락하는 거라고 봐야겠지. 그러나 시인에게 시를 쓰라고 고문을 할 수는 없을 거야. 나는 마지못해서 하는 복종에는 만족할 수가 없지. 그건 비열한 굴종에 불과하거든. 시인이 우리에게 항복하게 될 때 그것은 자유의지로 하는 것이어야만 하지. 시란 그런 식으로 쓸 수는 없는 거니까. 시는 자유의지에 따라 가슴으로 써야만 하지. 그래서 이번만은 예외로 하는 거야.”

김 중좌가 철제 책상의 맞은편 회전의자에 뚱뚱한 상체를 비스듬히 뉘이고 긴장한 채로 앉아 있었다. 그 방이 새삼스럽게 생소하게 느껴진다. 지난밤에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밤새 호흡곤란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자꾸 기침이 나왔었다. 그는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무릇 인간들이, 잘못이 없는, 실수가 없는 인간들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소? 인간은 신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저는 북조선 인민들이나 김일성 장군에게 크게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소. 그러니 무슨 반성문 같은 것을 쓸 수 있겠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소. 제가 이 비열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면서 심사숙고 했지요.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서 말입니다. 결국 그것 역시 야만적인 파시즘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저는 근 30여 년 동안 고작 126편의 시를 썼을 뿐이요. 시인을 자처하면서도 그 정도이지요. 시는 충분히 숙성되어야 하는 법이요. 시인은 인내심이 필요하지요. 한 줄의 시를 위해서는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하지요. 추억과 기억을 망각 속에 집어넣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만 하지요. 시인은 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지요. 시는 저 먼 뒤쪽 어딘가에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오랫동안 거기에 숨어 있지요. 시인은 오로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이 지경에 무슨 수로 시를 쓸 수 있단 말이요. 그건 도대체 불가능한 일이요. 아무리 해도 갑작스럽게 너절한 시를 쓸 수 없는 일이지요.”

시인은 다음 순간 그 냉혹한 심문자의 뒤틀린 입술을 쳐다보았다. 그가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으려고 벼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인은 그 순간에 전선에 감전된 것처럼 몸속의 모든 신경세포가 전율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중좌는 몇 분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꼼짝없이 앉아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시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폭발하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화풀이하듯 물컵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컵이 박살나면서 날카롭게 깨진 유리 조각들이 이곳저곳에 튀어 올랐다. 그는 극도로 격앙해 있었다.

“뭐가 어째! 이 간나새끼! 배은망덕도 유분수이지! 지금까지 잘 대해주니까, 정말 형편없구먼!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이거지! 넌 사형감이야! 사형이라구! 미 제국주의자 앞잡이! 반동분자 새끼! 날 원망할 필요는 없겠지! 자업자득인 거야! 어이, 하사관! 이 자를 정식 재판에 넘길 테니까, 준비하라우. 그리고 평양형무소로 이송해. 빨리 서둘러. 동무를 미 제국주의자의 첩자로, 민족 반역자로 기소할 것이오. 공화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시오.”

시인이 대항하였다.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한다.

“그건 요식행위일 뿐이오. 그런 요식행위가 왜 필요한지를 알 수가 없구려. 비밀 법정에서 감쪽같이 진행될 재판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나를 조롱하고 괴롭히기 위한 잔인한 짓일 뿐이오. 우리 간단히, 김 중좌의 권총으로 즉시 집행하시오. 뭘 꾸물거리는 거요!”

귤껍질처럼 울퉁불퉁하여 매끄럽지 못하고 가무잡잡한 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가 시인을 쏘아 보면서 다시 격렬하게 외쳤다.

“그렇게 할 순 없어! 동무를 단순하게 처리할 순 없지! 이 간나새끼! 내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대했는데 말이지. 동무는 나의 호의와 충고를 완전히 묵살 하였어. 스스로 절호의 기회를 차버린 거지. 그리고 나의 입지까지 곤란하게 만들어 버렸어. 모시기 작전이 실패했으니까, 상부에서 호된 질책이 있겠지. 나는 동무를 굴복시키지 못했어. 내가 패배한 거지. 그러나 동무는 충분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내가 복수를 하는 거지! 반드시 엄정한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아야만 해! 그래서 죽음의 끈덕진 악몽 속에서, 죽음의 공포 속에서 고통을, 지옥의 고통을, 겪어야만 할 거야! 그래야만 하지!”

“…….”

“공화국 법을 우습게 보지 마시오. 우리는 법에 따라 재판을 할 것이오. 동무는 반드시 재판을 받아야만 하오. 그러나 너무 걱정 마오. 공화국 최고재판소의 재판관들이 현명하게 재판을 할 것이오.”

둥근 갓을 씌운 전등불이 생생하게 드리운 원 안에 갇혀 있는 그의 얼굴은 의심할 여지없이 늙은 남자의 초췌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파괴할 수 없는 엄숙성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겠지요. 은혜를 베풀겠지요. 그래서 현명하게도 죽음을 내리겠지요.”

 

“음…… 김 동무, 내 말 잘 듣고 조서에 적으란 말이야. 이 자는 누가 뭐래도 진정한 대시인이지. 조선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한 조선어가 말살되지 않는 한 그의 시는 민족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겠지. 그의 시는 이미 불멸성을 획득한 거야. 그런데 동무 동두천이 38선 이남인거 맞지? 그리고 말이야 지도에서 동두천 근처에 무슨 야산이 있는지 찾아봐.”

“군관님, 동두천 북쪽으로 고도가 560미터인 소요산이 있디요. 그 산에서 퇴각하던 인민군이 많이 죽었답니다. 미군 폭격이 심했다고 하디요. 김기림 시인도 월북하다가 미군기에 폭사했다고 하디요.”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공식 문서에 남길 수는 없어. 그러니 말이야, 언제쯤이 좋을까? 그렇지, 1950년 9월 25일 자진 월북하던 중 동두천 근처 소요산에서 미군 전투기의 기총소사에 맞아 즉사한 것으로 기록하란 말이야. 알겠어? 동두천은 38선 이남이니까 그는 남조선에서 미국 놈의 손에 죽은 셈이 되는 거지. 그리고 조사기록과 재판기록은 집행이 끝난 즉시 태워버리라고. 잘 알겠지.”

1953년 11월 18일 북한이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제시한 민간인 납치자 명단에 의하면, 학자로는 현상윤, 정인보, 문인으로 이광수, 김진섭, 김동환, 이재순, 박승호 등이 들어있었지만 그는 빠져있었다. 최근 북한이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는 그가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평양형무소, 지상에서 마지막 밤

낮이면 햇빛은 오후 느지막하게 잠깐 동안 건너편 건물의 벽을 비추다가 이내 짙은 먹구름처럼 검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격자무늬의 쇠창살이 달린 작은 창문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가끔 그 창문을 통해 하늘을 가로질러 나지막하게 떠가는 조각구름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멀리서 터지는 폭격소리를, 밤이면 낮은 하늘을 찢을 듯한 올빼미 울음소리를, 겨울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도시가 불타는 매캐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감방 벽 위쪽에 붙은 두껍게 성에가 낀 그 창문에 달빛이 어린다. ……차디찬 밤이다. 환한 눈이 곱게 빛난다. 강물도 달빛 아래 언다. 어쩌면 밤이 이처럼 차고 흴까.

어스름한 어둠 속이다.

어둠과 정적이 추상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가끔 그들의 군화가 복도를 저벅저벅 밟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이 밤은 영원히 계속되어 결코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암흑의 중압감이 나를 억누르고 질식시킬 것 같다. 감방의 공기는 견디기 힘들 만큼 축축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나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고결한 영혼의 안식과 고요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어둠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면서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다만 밤이면 꿈결에서 그녀의 환영이 가끔 나타났던 일이 새삼 기억이 난다. 안도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축축한 밤. 나는 매트리스에 누운 채로 하염없이 고향 마을을 생각했다. 그 순간 갑자기 향수병에 걸린 것일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는 오직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무진 애를 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을. 하계리 봄 풍경은 먹물로 그려진 동양화처럼 한가하다. 봄이 오면, 동네 어귀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아카시아 꽃이 피고, 집집마다 얕은 담벼락에는 철 이른 붉은 줄장미가 아름답게 피었다. 붉은 꽃잎은 골목길에 붉은 피를 쏟아붓는다. 꽃잎은 매일 아침마다 농염하게 자신을 화장하였다. 꽃잎의 육감적인 냄새가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하였다. 그리고 겨우내 살얼음이 얼어있던 실개천은 옛 이야기를 지즐대며 청석교 다리 밑을 졸졸 흐른다. 밤새 별똥별이 솔숲으로 떨어지고, 은고리 같은 새벽달이 서쪽으로 지고, 그리고 동이 틀 무렵이면, 동네는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암탉이, 늙은 수탉이 서로 가슴을 펴고 날개를 퍼덕이며 연호하듯 울기 시작했다. 신이 닭에게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있는 머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동네 사람들이 부스스 일어나 하품을 하고, 기침을 하고, 졸음에 겨워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켰다. 그때쯤이면 하늘이 환하게 홍조를 띠었다. 동네의 삽살개들이 서로에게 짖어대기 시작하였다. 개들은 한동안 쉬지 않고 짖어댔다. 이윽고 개들은 차츰 조용해졌으며 울부짖던 소리가 어느새 끊겼다. 그것들이 골목길을 누비며 배회하였다. 삽살개들은 골목에서 담벼락에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었다. 날이 환하게 밝아오면, 그제서야 헛간에 매어둔 얼룩백이 황소는 길게 하품을 하다 말고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고, 이따금씩 향기롭고 노란 꽃을 꽂은 아카시아의 나뭇가지에 앉은 제비들이 사이좋게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처럼 숱 많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어머니는 그 꽃향기를, 그 꽃이 피는 봄날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때 우리들이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렸던 초라한 초가집은 얼마나 아늑하고 평온했던가. 그리고 마당가 늙은 감나무의 잔가지에 모여 앉은 참새들이 날카롭게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가. 촉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여기저기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나불거리지 않았던가. 서늘한 봄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로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지 않았던가. 그때 경부선 슬픈 기차는 바다에 대한 향수를 안고 시커먼 연기와 불을 배트며 길게 기적 소릴 울리고 마성산 기슭을 돌아 남쪽으로 달려갔다. 형용할 수 없는 긴 여운을 끌면서…… 칙칙폭폭…… 칙칙폭폭……. 그러나 나는 비극의 흰 얼골은, 가난과 헐벗은 삶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으리라.

겨울이라 날이 빨리 어두워진다.

어느새 이승에서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르는 밤이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어찌 이 밤에 잠을 이룰 수 있겠는가. 어디선가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고 있다. 그리고, 밖으로부터 희미하게 후드득거리며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가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는 것이다. 시계의 초침처럼 규칙적으로 들리는 경비병들의 음산한 구두 발자국 소리는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무채색 복도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오는 저승사자의 소리를 연상케 한다. 곧 날이 밝으면 그가 날 데리러 오리라. 그 요식행위가 내일, 간단히…… 아주 간단히 치러질 거야. 최후의 심판이. 총살형을 당하는 것은 무섭지 않겠지만 참수형이나 교수형, 화형은 견딜 수 없으리라. 그러나 틀림없이 총살형이겠지. 지금은 전시이고 그들도 간단히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니까. 아니면 성질 급한 열혈 공산당원인 판사가 법정에서 직접 집행할 수도 있겠지. 그가 외칠 거야. 이 남조선 시인 버러지야, 이 정의의 총알을 가슴으로 받아라. 그러나 그건 말이 안 되지. 소심한 판사가 직접 집행하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통해 그 예가 없으니까. 어쨌거나 나는 정식으로 집행 당하기를 원하지. 그러니까, 분대가 정렬하고, 하사관이 ‘사수 준비’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외칠 것이고, 총알을 장전하는 차가운 금속성 소리가 메아리치면 하사관은 마지막 발사명령을 내리겠지. 아니지, 그 하사관이 친절하다면 마지막으로 나에게 담배 한 개비를 물려주고 그걸 다 피울 때까지 기다려줄 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의 간절한 요청을, 눈가리개를 벗겨달라는 요청을 들어줄지도 모르지. 나는 그 순간 푸른 하늘을 보고 싶으니까. 그러나 발사명령이 떨어지면 그 순간, 단 몇 초만에 총알 여러 발이 나의 가슴팍에 무자비하게 박힐 것이고, 피가,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초라한 몸뚱이가 거꾸러지겠지. 그때 세계는 정지될 것이다. 그리고 영혼은 나비처럼 훨훨 날아올라갈 것이다.

나의 운명은 현재 진행 중에 있고, 그건 과거에, 아주 오래 전에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은 과거와 현재 일어난 일들과 무한정 서로 연결되어 있지. 많은 시인들이 역사 속에서 이미 죽었지. 태어나고, 죽었던 거야. 그래서 순환의 연속인 거야. 그러니까 세상에는 반복과 순환의 과정이 있는 거지. 지금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고, 고통스러운 것도 아닌 거지. 내가 죽어야만 비로소 구원이, 참다운 구원이 이루어지는 거지. 그러므로 이 죽음이야말로 나를 구원해주는 신성한 행위이지. 지금 죽음은 은총인 거야. 김 중좌의 바람대로 죽음의 공포 속에서 고통을 받을 필요는 없는 거지. 그가 오해한 거였어. 그를 용서해야만 할까. 그러나 육체는 죽음과 함께 파괴되고 죽음에 의해 흩어지겠지만, 영혼은 생명의 근원이기에 소멸되거나 파괴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의 시, 고결한 영혼이 천국의 환희 혹은 지옥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 고뇌하며 쓴 그 시들은 나와 함께 무덤 속에 묻히고 말까, 아니면 살아남아 생생히 기억될 수 있을까? 지금 섬망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기억나는 시가 있을까? 짧은 시 한 편이라도……. 그런데, 생의 마지막 순간, 이 엄숙한 순간에 자신에게만은 솔직해야겠지. 나는 나름대로 시의 길을 개척하려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겠지. 시들에게서 강렬한 혈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지. 그러나 반드시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야. 시의 세계는 너무 신비하거든. 감각적 신비의 세계가. 그러니까 지금껏 백지 위에다 일종의 가식의 언어를 늘어놓은 게 아닐까? 완벽한 표현을 위해서 고치고 또 고쳤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내 시에는 독자들이, 예리한 평론가들까지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분리시키기가 불가능한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았던 작품에도 언제나 뭔가 부족했었지. 그 아름다운 시도 그 무엇을 부분적으로만 포착했기 때문에 더 총체적인 완벽성이 필요했던 거야. 완벽성에 관한 한 나는 비타협적이었지. 도저히 관대할 수가 없었던 거야. 내가 시인으로 떠받들어지는 게 부담스러웠고, 일종의 무력감 때문에 너무 짜증스러웠지. 작가의 숙명처럼 항상 실패할 것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초조하고 공허했지. 언제나 회의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었지. 진정한 한 줄. 진실. 그 진실을 썼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지.

그날 밤, 지상에서 마지막 밤, 가장 잔혹한 밤. ……하늘의 거리를 밤이 걷는다. 시를 뿌리면서…….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이 생각 저 생각에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는 결코 다시 쓰지 못할 시들을 생각했다. 비록 나에게 죄가 없다 해도 나는 나를 꾸짖어야하고, 비록 내가 흠이 없다고 해도 나는 나를 죄인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인가. 내가 여위어서 뼈와 가죽만 남아있으니 이것이 나의 죄를 증거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참혹하도록 명증한 의식 속에서 이 혼란한 세상을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우왕좌왕하며 우유부단하게 살았음을, 그래서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마침내 깨달았다.

 

평양 군사법정, 사형선고

이 비망록은 오늘로서 끝이다. 내일부터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리라. 몇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더라면…….

오늘 무슨 일인지 집행이 되지 않고 이 감방으로 되돌아 왔다. 다만 오늘 재판과정만은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니까 역사적 흔적을 자세히 남기고 싶다.

엎치락뒤치락하다 아침이 밝아왔다. 오전 9시 30분.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내 감방 문 앞에서 멈춰서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물쇠 속에서 열쇠가 찰칵거리는 소리가 났고 귀에 익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철제 문이 열렸다.

그때 나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암흑 속인 것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땀이 흘러내렸다. 아, 얼마나 두려운가. 그러나 왜 눈물이 나오지 않는가. 그렇다면 얼마나 역겨운 광경인가. 왜 그때 구리 반지가 생각났을까. 두 명의 정복을 입은 군인이 어깨에 따발총을 메고 감방 안으로 들어왔고, 두 손에 수갑을 채우자 차갑고 거친 쇠의 감촉이 느껴졌고, 양옆에서 나를 붙잡고 끌고 나갔다. 나는 침착해지려고 애를 썼지만 발이 질질 끌리자 그들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감방 문 밖으로 나와 계단들과 긴 복도를 지나왔다. 나는 법정에 출두하였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법정에서 있었던 재판 이야기에 앞서 이 이야기를 먼저 쓰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언도 받은 후 그날 오후에 집행되지 않고 다시 감방으로 돌아온 일 말이다. 어쩐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재판이 끝난 후 다시 돌아온 것이다.

법정을 나서서 감방 건물로 들어서기 전 눈에 덮인 뜰을 지났다. 약간 추운 날이지만 하늘은 맑다. 아침이면 대동강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안개는 말끔히 걷혀있다. 조각구름이 북풍에 떠밀려 하늘을 질주하고 있었고 구름을 막 뚫고 나온 태양이 밝게 빛났다. 한 무리 참새 떼가 날아오른다. 나는 굳은 땅속에서부터 피어나는 꽃들의 향기를 맡고 그 밀어를 들을 수 있다. 아 아름다운 세상이여. 아름다운…….

그때 호송하는 앳된 얼굴의 하급 전사가 가만히 귀띔을 해주었다.

“오늘 오후에 있을 사형집행은 연기되었디요.”

그 순간 내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리죽여 울다가 염치불구하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온몸을 들썩이며 흐느꼈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인가요? 혹시 사면령이라도?”

“나도 모르디요.”

“그럼 언제?”

“모르디오, 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디요. 총알이 가슴을 뚫어버리겠디요.”

그런 후 나는 정들었던 내 방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그렇지. 그렇다니까. 그들은 도대체 뭘 재판하고자 했던가? 누구를? 재판이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나에게는 단지 또 하나의 무자비한 시련과 고뇌와 굴욕의 시간이었을 뿐이다. 죽음의 지연, 일시적 삶의 연장. 아, 언젠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인간이여, 너는 흙이다.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라. 치욕과 눈물과 회환으로 얼룩진 이승을 떠나면 하나님은 어떤 명령을 내리게 될까. 낙원으로 가거라? 연옥으로? 지옥으로?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으니까.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누구인가? 왜 내 인생에 난데없이 불쑥 나타났던가. 잊을 수 없다. 잊고 싶지 않다. 그녀가 눈에 어른거린다. 강렬한 눈길. 그녀가 웃을 때면 그 눈빛이 얼마나 빛났던지. 그때 밤이 깊어갔다. 그녀의 눈이 희미한 등잔불 불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던가. 내가 그녀의 몸을 알고 있었던가. 내 몸이 그녀의 몸을 느끼고, 피의 온기를 느끼고,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가. 내 심장이 요동치고, 손바닥과 겨드랑이에서 땀이 배어나왔던가. 내 위장과 내장이 뒤틀리고 있었던가. 내가 말없이 그녀의 활짝 핀 얼굴을, 뺨과 입술을 어루만질 수 있었던가. 서로 몸을 부벼댈 수 있었던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 아닌 거야. 나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이 순간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죽음은 나중 일이야. 아주 먼 훗날. 파스칼이 말했었거든, 인간들이란 자신의 형 집행일을 모른 채 쇠사슬에 묶여있는 사형수들이라고. 욥은 알고 있었지, 사람은 모태로 내려가게 되어있고, 그에게는 주어진 날이 정해져 있고, 그는 결국 죽어서 소멸되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들뜨고 편안한 기분이었다. 그랬으니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나는 슬펐지만 행복했다. 곧 봄이 찾아올 것이다. ……종달새처럼 분방하게 아침 하늘에 날아오르는 자는 행복하여라…… 이 세상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피어나는 꽃과 소리 없는 것들의 밀어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하여라.

 

평양 군사법정.

엄숙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면에는 붉은 바탕에 실물보다 더 큰 스탈린과 김일성 장군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좌우 벽면에는 흰 바탕에 붉은 글씨로 ‘인민의 법원은 인민을 위해 정의를 집행한다.’, ‘인민 만세, 위대한 공화국이여 영원하라.’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고급장교의 정복을 차려입은 판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온 법정이 울릴 만큼 쩌렁쩌렁하였다.

“지금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의 재판을 개시한다. 최고검찰소의 검사가 기소한 내용에 의하면, 피고인이 중대한 범죄를 범하였으므로 즉결처분이나 인민재판에 회부할 수도 있지만 특별히 정식재판으로 재판을 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피고인은 썩어빠진 낡은 법체계가 아니라 새롭고 혁명적인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낡은 법 원리인 적법절차니, 죄형법정주의는 결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쓰레기 법 이론은 쓰레기통에 쑤셔 박아야 마땅하지. 따라서 판사는 법조문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인민과 공화국을 위해 양심이 지시하는 대로 재판을 할 것이다. 다만 이 재판은 대다수 인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공개재판으로 열려야 마땅할 것이나 지금이 준엄한 전시상황임을 감안하여 비공개로 개정할 것을 선언한다.

기소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피고인은 매국적인 괴뢰정권인 이승만 도당의 역적들과 모의하여 공화국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고, 둘째, 인민군의 서울 점령기간 중에는 문화일꾼으로서 전선에 나가 인민군을 격려하라는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에 불복종하고, 또한 미군의 투항을 권유하는 영어 방송의 신성한 임무도 수행치 아니하는 등 조선민족에 반역한 반동분자였고, 셋째, 피고인은 열렬한 천주교도이면서 영어에 능통한 자로서 미제국주의자의 식민지화정책에 동조하여 미제의 간첩이 되었는바, 미제의 첩보기관에 제공하기 위해 공화국의 군사, 정치, 문화 사업에 관한 중요한 기밀을 탐지하려고 평양에 잠입하여 간첩으로 활동하였고, 넷째, 피고인에게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통렬히 반성하여 공화국을 위해서 봉사할 기회를 부여하였음에도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이는 우리 인민과 위대한 공화국을 감히 모욕하는 패륜적 반역행위인 것으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공화국의 충성스러운 조사관은 수고스럽게도 피고인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주요 행적과 언행을 빠짐없이 조사하였고, 특별히 피고인이 쓴 모든 시, 수필, 기행문, 논설 등을 치밀하게 분석하였으며, 관련 문서, 증언 등을 취합해서 증거자료를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기소 사실은 검사가 제시한 명명백백한 증거에 의해 완벽하게,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피고인은 악랄하기 짝이 없는 반민족적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는가? 증거조사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는가? 큰 소리로 대답하라!”

“…….”

“침묵은 금이고, 침묵은 명백한 긍정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이 판사가 형을 언도할 차례이다.”

그 소름 끼치는 판사의 말은 꿈처럼 모호하게 나의 귀에 웅성거림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그 판사의 뒤틀린 입술을 쳐다보았다. 그 입술이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의 입은 저주와 거짓, 사악한 속임수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심장이 그 순간 방망이질치고 그 고동 소리가 들린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정지하였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에게 묻겠다. 그대의 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반평생을 바쳐 숭앙했던 신 말이다. 그 신이 그렇게 갈망했던 구원을 해주었던가? 그 신은 우상이었을 뿐이다. 그대 말처럼 슬픈 우상이었다. 한갓 우상, 우상이었단 말이다. 위대한 공화국은 그대에게 은혜를, 커다란 은혜를 베풀기로 이미 결정하였다. 그대의 우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보내주겠다. 동무에게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형법 제63조 조국반역죄, 제64조 간첩죄를 각 적용해서 사형을 언도한다. 사형은 즉시 총살형으로 집행될 것이다.”

공화국의 준엄한 판사는 금테 안경 너머로 나를 빤히 내려다보면서 말한다. 그는 거만하고 자부심에 차있다.

“동무, 할 말 있으면 하시오. 다 들어줄 것이오. 최후진술을 하시오.”

나는 그때 굽실거리지 않고 당당하였던가.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다. 공화국의 만수무강을 빌지도 않았다. 김일성 만세를 부르지도 않았다. 평안하고 태연해 보이도록 바른 태도를 취했다. 이미 예상했던 만큼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나는 눈부신 미광이 어려 있는 얼굴로 겸허하게 말했다고 믿는다.

“여러분! 부디 여러분이 단죄하고자 하는 매국역적놈의 비참한 말로를 똑똑히 지켜보아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기소되었습니다. 네 죄를 네가 알 게 아니냐고, 지금 추궁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비를 구걸하지는 않겠소. 무슨 소용이 있겠소. 허수아비는 바람에 나부낄 뿐 아니겠소. 그러나 이 세상을 잘못 산 죄를 스스로 책임져야하겠지요. 나는 오직 시인입니다. 다른 아무것도 아니고 시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미리 예정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단 한 줄, 궁극의 진실을 쓰지는 못했지요. 그건 가장 깊은 비밀, 우주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신만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가 태초에 흙을 빚어 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최초로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나는 여러분이 지금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니 긴 시를 읊지는 않을 것입니다. 짧은 시를, 나비를. 나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하늘나라로 올라갈 것이요. 그곳에서 나의 위대한 신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요. 신만이 오직 위대한 분이요.

내가 인제 나비 같이 죽겠기로…… 나비 같이 날라 왔다…… 검정 비단 네 옷 가에 앉았다가…… 창 훤하니 날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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