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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딱 벗는 이 할애비 좀 보아요
김 근
저 할애비 좀 보아요 뒤란 우물가 홀딱 벗고 물 끼얹는 저 할애비 새끼뱀떼처럼 물은 쏟아져 할애비의 불거진 뼈와 늘어진 살가죽 사이 꿈틀꿈틀 요동치네요 어린 나 할애비를 훔쳐 보아요 수십 년 베어도 베어도 잎을 피우는 나무 끌텅 뒤에 숨어
끌텅의 나이테가 한쪽으로 넓어지고 끝내 가문 몸 파고들지 못하는 물의 새끼들 꼬리 흔들며 흩어지고 할애비 앙상한 오금 접고 쭈그려 앉아요 저것 좀 보아요 저 할애비 거무튀튀한 살가죽 늘어진 사타구니 짜부라진 물고기 한 마리 쭈그려 앉아 물고기 떼어내고는 할애비 으허허허 흐어어어,
떼어내자마자 이상하게 그 물고기 퍼덕거리는데 햇살이 파리 떼처럼 달려와 비늘마다 들러붙는데요 자꾸 미끄러져 손아귈 빠져나가는 물고기를 할애비 숫돌에 갈아요 날이 선 물고기는 점점 길어지고요 목마른 우물에 던져주려는 줄 알았지요 헌데 제 맘대로 하느적거리는 팔다리 겨우 모아 할애비 우물가 축축한 흙에 물고기를 묻네요 묻고 토닥토닥 봉분을 만들고는 다시 한번 가문 몸에 물 끼얹고 할애비 그만 할애비를 벗어요 할애비도 벗고 애비도 벗고 애도 벗고 어, 어, 어?
물고기 한 마리 없이 뒤란 우물은 바싹바싹 마르고요 이제 훔쳐 볼 할애비도 없는데요 수십 년 베어도 베어도 잎을 피우는 나무 끌텅 무섭게 나이테를 키우고요 날카로운 물고기들 끌텅을 비집고 나와 무성하게 자라나고요 어린 나 점점 늙어지고요 뒤란 우물가 홀딱 벗는 이 할애비 좀 보아요 흐흐,
*끌텅: 그루터기를 가리키는 전라도 말. 전라도에서는 시조(始祖)를 일러 끌텅할아버지라고도 한다.
김 근1998년 문학동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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