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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를 매혹시킨 풍경들에는 예외 없이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까 그 풍경들 속에는 반드시 누군가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었고 부모처럼 무척 가까운 누군가일 수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이처럼 과거를 추억하기에 이르러서야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
동틀 무렵 이슬이 잔뜩 내린 길은 내가 아는 어떤 그림보다 청량했으나 그 길을 걷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희부연 기운을 가르며 자박자박 들려와야 비로소 아침이 시작되었다. 해질 무렵이면 노을이 물든 하늘 아래 길게 호를 그리며 지나는 기찻길이 세 번째 눈을 뜨기라도 하듯 전혀 색다르게 번득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으나 철둑 위로 귀가하는 농민들의 실루엣이 하나 둘 흩뿌려지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치솟았다. 적어도 그 시절에는 사람은 풍경의 일부였고 풍경은 사람을 밀어내지 않았다.
사춘기 무렵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 극에 달했을 때에도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이해해 갔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누군가를 우연히 목격했을 때에도 그러했으며, 악다구니 같은 말을 쏟은 뒤 헛간이나 뒤란에 숨어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이 돌아갈 곳이라고는 바로 내가 발 딛고 선 이 대지밖에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때에도 그러했다. 우리의 눈물이 대지로 돌아가는 건 중력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그곳이 바로 고향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풍경을 훼손하는 건 스스로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을 소거시킨 풍경이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듯 사람이 전면을 차지한 풍경 역시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거기에서는 아무런 감정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인이 감정을 가질 때 공동체는 비틀거린다.’ 풍경을 파괴하는 공동체는 비틀거려야 한다.
<2010.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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