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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저쪽의 일이다. 군 입대 뒤 첫 휴가를 나왔던 나는 서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내 눈길은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도종환 시인의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시집에 머물렀다. 휴가기간 내내 나는 그 시집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까지 나는 부드러움과 직선이라는 말이 서로 어울릴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비로소 나는 처음으로 그 말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어떤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직선들이 모여 곡선을 이룬다. 그러므로 거대한 저항은 무엇보다 부드럽게 마련이다. 때로는 너무나 부드러워 그것이 저항이라는 걸 누군가는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진정한 저항은 그처럼 소리없이, 그러나 막대하게 벌어지는 하나의 사태이다. 한 편의 시는 우리의 영혼에 직접 육박하는 해일과 같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가 그렇고, 함민복 시인의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성선설) 역시 그렇다. 시만 그럴까. 문학이란 이처럼 사소한 파문으로 시작하여 거대한 해일로 우리의 영혼에 끼얹어지는 그 무엇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아니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자주, 곧게 뻗은 직선보다 부드러운 직선이 더 올곧은 길이라는 걸, 한없이 부드럽고 나약한 것들이 모여 단단하고 강한 진실을 이룬다는 걸, 우리도 모르게 인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수락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실과 진심은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든 진실과 진심은 눈에 보인다. 안 보인다고 우기는 자들도 사실은 보는 중이다. 무척이나 부드러워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2010.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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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