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국작가대회 인천선언
-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되살리자!
이곳 인천 강화도에 모인 2013년 한국작가대회 참가자 일동은 지난날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한 최근의 현실에 대해 비통한 마음을 담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한국작가회의는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맞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결성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1974)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왔다. 문학을 사회 운동의 도구로 삼았다는 숱한 비판과 오해의 눈길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작가회의는 문학인의 역할과 책무가 골방에 은거하여 언어를 매만지는 행위에서 끝나지 않음을 역설해왔고, 창작과 실천 모두에서 문학과 민주주의의 접점을 찾기 위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겨왔다. 하지만 2013년 8월 하늘 아래에 서 있는 우리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침울하다.
지금 한국사회는 암울했던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라. 이명박․박근혜 정부 6년을 거치면서 지난 시대에 거리, 공장, 학교 등에 피를 뿌려가며 획득한 최소한의 제도적 민주주의마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국민 대다수의 반대를 물리치고 당리당략을 위해 강행한 4대강 사업은 전 국토를 죽음의 강으로 바꿔놓았다. 소수 재벌들의 이익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기록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바닥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는 최고점에 도달했고, 국가와 국민을 볼모로 한 탐욕적인 기업가, 정치인, 고위공무원들의 부정은 한계점에 이르렀다. 재벌과 권력에 의해 언론의 자유는 사실상 봉쇄되었고,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에서 보듯 민의를 물어 대표를 선출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 기초부터 위태로운 상황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일부 공무원과 기업이 결탁하여 저지른 원전비리는 자기 성찰의 능력을 상실한 권력, 관료, 기업의 공모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례이다. 우리는 말한다. 비단 썩어가는 것이 녹조로 뒤덮인 4대강만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 한국 사회는 불길한 어둠에 둘러싸여 있다.
불길한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촛불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제도 정치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못한 목소리 아닌 목소리들이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합의마저 권력에 의해 묵살된 부정의한 상황에 대한 민중의 비폭력적 저항이다. 이 저항의 촛불 앞에서 문학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뼈아프게 다시 우리에게로 되돌아오고 있는 2013년 여름이다. 우리는 안다. 문학은 그 어떤 정치적․예술적 표현도 권력에 의해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는 자유의 정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또한 그것은 봉쇄하는 힘을 뚫고 나오는 최초의 소리이고, 삶을 옥죄어 오는 어둠을 뚫고 터져 나오는 희미한 빛이라는 것을. 문학은 안다. 한 사회의 능력이 상위 몇 퍼센트의 소유물이 아니라 가장 약한 존재들의 삶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그리고 한 사회의 자유가 몇몇 특권층의 권리가 아니라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의 권리에 의해 측정된다는 사실을.
이에 2013년 8월 25일 한국작가대회에 참가한 우리는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회생을 위해 아래 내용들을 향후 문학적 활동의 좌표로 삼고자 한다.
1. 우리는 국민들의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현재의 정치상황에 대해 분노한다. 특히 경찰과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여 민의의 향방을 고의로 뒤바꿔버린 반국가적․반민주적 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실체를 밝혀 엄단할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 작가들은 시민, 학생, 교수, 양심적 종교인 등이 만들어가는 촛불의 바다에 기꺼이 합류하려 한다.
2. 우리는 자본과 권력이 언론의 자유를 봉쇄하고 언론의 공공성을 자신들의 정책 홍보에 이용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꽃이고 국민들의 눈과 입이다. 언로(言路)를 막는 행위는 주권자인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불통에의 의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와 예술창작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3. 우리는 심각한 빈곤상태에 처한 국민들의 삶은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남북한 권력자들의 행동에 반대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는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자유롭게 생활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또한 그것은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의 평화가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
4.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광폭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반대한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기록적인 빈부격차와 이윤에 대한 자본의 무제한적인 탐욕만을 낳았을 뿐, 대다수 국민들의 삶에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예외적 수단에 불과했던 비정규직은 어느새 기업의 이윤을 늘리기 위한 일반적인 고용방식이 되었고, 자의적으로 행해지는 구조조정은 계속해서 노동자들의 삶을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밥줄에 매어두려는 자본의 간계에 맞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활동의 좌표를 마음에 새기면서도 끝까지 펜을 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글쓰는 존재인 우리에게 주어진 소임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글과 문장을 핑계로 현실의 약소자들과 만나는 일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글로써 함께 해야 할 삶의 동반자는 활자로 만들어진 인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밤은 깊으나 우리의 시대를 뒤덮고 있는 어둠이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둠 속에서도 촛불의 희미한 빛에 의지하여 다시 어려운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2013년 8월 24일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