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서너 살 무렵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친구와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사내 녀석 둘이 떠나는 여행이 무슨 재미가 있으랴만 그 시절에는 어디론가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하지만 중요한 건 부모님의 허락이었다. 당신들로서는 선뜻 허락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당신들 눈에는 여전히 아이 같았을 내가 친구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난다는 게 위험천만한 일로 비쳤을 테니 말이다. 여행은 막상 떠났을 때보다 계획하고 준비할 때의 설렘이 더 큰 듯하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낯선 사람들과 풍경들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는 건 인생 전체를 그려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삶이란 그처럼 낯선 사람과 풍경 속으로 자신의 길을 내는 것이 아니던가. 훗날 나는 이러한 마음 속의 흥분과 동요의 의미를 표현한 것이라 여겨지는 문장을 루카치의 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는 모든 것이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세계와 자아가 서로를 결코 낯설어하지 않던 시대에 대한 향수가 서린 문장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란 우리가 영영 되찾을 수 없는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서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열서너 살 무렵 이후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누군가는 나보다 일렀을 테고 누군가는 좀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항해하는 중이다. 아늑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의 가슴 속에는 모두 저마다의 별이 있으니.
<2010. 01. 05>
|
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