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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 몇 편 쓴 걸로 위안을 삼지만 내 청년 시절 꿈은 농민이었다. 아마도 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하지만 농촌생활을 혹은 농민을 낭만적으로 동경한 건 아니었다. 내가 자라며 겪고 느낀 농촌은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곳은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될 각다분하고 소슬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절대적 빈곤보다 더 뼈아픈 건 상대적 박탈감이었다. 식량주권을 포기한 대가로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수출역점산업이 성장의 혜택을 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주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들의 터전을 짓뭉개고 일거리를 빼앗은 뒤 몇 푼의 보상금을 던져주며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했을 때 그들이 느껴야 했던 박탈감을 기억해주는 이는 또한 얼마나 될까, 그들의 내면을 부숴놓고도.
박탈감 이후에 찾아온 건 풍경의 파괴다. 내 고향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다. 산자락은 잘려나가고 논과 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로가 나고 산업단지가 들어섰다. 몇 년 뒤에는 마을 전체가 집단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길차게 자란 오동나무가 사람이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그늘을 드리웠던 빈집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 과실수를 심는다. 토지가 수용되었을 때 좀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다. 더러는 못 가겠노라 시위도 해보았지만 소용없다고 느꼈던지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궁리하느라 안달이 난 얼굴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남에게 뒤처질세라 서로의 눈치를 보았으며 그러면서 다툼들도 생겨났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가운데 이런 대사가 있다. “세상은 강도나 재난 때문이 아니라 증오, 적의, 사소한 다툼들 때문에 파괴된다는 걸 어쩌면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우리 농촌이 파괴되는 게 사실이라면 풍경의 파괴는 다만 결과일 뿐이다. 그들을 파괴했으니 이제 우리가 부서질 차례다.
<2009.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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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