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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한 문화센터에서 문장론 강의를 한다. 학생, 직장인, 예비 소설가 등등 수강생의 이력이 꽤나 다채롭다. 나는 첫 강의의 어색함도 털고 좀 친해져보고자 왜 이 강의를 신청했는지 물어본다. 그 가운데 나이 지긋한 아저씨, 고등학생 따님을 두었음에도 한사코 삼십대 중반 형님이라고 우기니, 그래 형님이라고 해두자. 이 형님께서 왈, 자녀들이 글짓기 숙제를 가져와 물어볼 때마다 난감했단다. 해서 이참에 문장론 강의를 듣고 자녀교육에 직접 나서겠단다.
가상한 말씀이다. 부모 마음이 누구라고 다르랴만 마음과 행동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 거니까. 몇 주 지켜보니 열심이었다. 강의에 늦지도 않고 졸지도 않고 더러 질문도 하면서, 정말 학생으로 되돌아간 듯 형님의 얼굴은 반짝반짝 윤이 나기까지 했다.
강의를 마친 뒤 처음으로 수강생들과 술자리를 가졌던 날, 나는 형님에게 이 강의가 도움이 되는지를 여쭈었다.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무장한 모범적인 가장의 입에서 도움이 됩니다, 라는 말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얼굴까지 붉히며 입을 꾹 다무는 게 아닌가. 나는 좀 토라졌다. 빈말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해주면 안 되는가. 뭐 이런 심사였으리라. 그러자 형님이 고백투로 말했다. 자녀교육은 거짓말이란다. 글재주가 있어 학교에서도 교지 편집을 맡았다는 딸 앞에서 기죽기 싫었던 형님은 입버릇처럼 학생시절에 나도 한 글발했다! 라고 말했던 거였다. 명랑하신 따님은 잊지 않고, 한 글발하셨으니 우리 교지에 싣게 글 하나 주세요! 했던 거고. 그날부터 형님은 고통스러운 불면의 밤을 보내시다 기어이 문장론 강의를 수면제 삼키듯 신청하고야 말았다.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성실하고 착실한 한 가장이 따님한테 기죽지 않게 최선을 다해 강의를 하는 수밖에. 오, 즐거워라.
<2008. 11. 11 손홍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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