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오 시인의 새 시집 [국경 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삶이보이는창, 2007년 5월 14일)
하종오 시인이 두 권의 시집 『국경 없는 공장』과 『아시아계 한국인들』을 펴냈다. 다양한 시적 사유를 통해 우리 시대의 바닥을 응시해 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외국인노동자의 삶에 집요하게 초점을 맞춘다.
외국인노동자의 핍진한 삶을 통해 한국사회의 타자에 대한 제국주의적 면모를 보여주는 『국경 없는 공장』은 한국문학사에 새롭게 태어난 ‘다문화사회의 노동시’라 할 만하다. 또 『아시아계 한국인들』은 한국으로 시집 와서 살아가는 다른 아시아 여성들의 모습들을 담았다. 그들의 신산고초한 일상의 서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내화된 차별을 목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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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1954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하여 1975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1983년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 수혜하고, 2006년 제1회 불교문예작품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사월에서 오월로』『넋이야 넋이로다』『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쥐똥나무 울타리』『사물의 운명』『님 시편』『님』『님 시집』『무언가 찾아올 적엔』『반대쪽 천국』『지옥처럼 낯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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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에 시집와서 새로운 모계 사회의 시조始祖가 되는 여인도 있을 것이다. 시어른이나 남편으로부터 밀려나 방외인으로 살아가는 여인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송출국에서 잘 사는 유입국으로 이주해서 자본주의적 생활에 시달리며 평생 사는 여인도 있을 것이다. 그이들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힘겹고 어렵게 살아갈 자식들도 있을 것이다. 한편에선 오순도순 알뜰살뜰 다인종 다문화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부부들도 있을 것이다.
그이들이 시집오기 훨씬 오래 전, 한국전과 월남전 그 전후에 주둔군 외국 병사와 한국 여인, 한국 병사와 베트남 여인 사이에 출생하여 장년이 되어도 평생 이방인으로 따돌리며 사는 후손들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한국인들의 운명을 생각한다.
2007년 4월 河詩 하종오
::책속에서
원어原語
동남아인 두 여인이 소곤거렸다
고향 가는 열차에서
나는 말소리에 귀기울였다
각각 무릎에 앉아 잠든 아기 둘은
두 여인 닮았다
맞은편에 앉은 나는
짐짓 차창 밖 보는 척하며
한마디쯤 알아들어 보려고 했다
휙 지나가는 먼 산굽이
나무 우거진 비탈에
산그늘 깊었다
두 여인이 잠잠하기에
내가 슬쩍 곁눈질하니
머리 기대고 졸다가 언뜻 잠꼬대하는데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말이었다
두 여인이 동남아 어느 나라 시골에서
우리나라 시골로 시집왔든 간에
내가 왜 공연히 호기심 가지는가
한잠 자고 난 아기 둘이 칭얼거리자
두 여인이 깨어나 등 토닥거리며 달래었다
한국말로,
울지 말거레이
집에 다 와 간데이
부조
나먹은 아들이 나어린 조선족 처자에게 장가든다며
노인은 눈웃음 지으며 나에게 청첩장을 내밀었다
노인에게 논 한 마지기 맡겨놓고
해마다 햅쌀 한 가마니씩 받아가곤 했던 내가
오늘 그 일로 찾아와 보니
집 마당엔 경운기가 서 있고
처마 아랜 녹슨 낫이 놓여 있고
모퉁이엔 상수리나무 그늘이 엷다
경운기 몰고 논 갈아 모내기하고 온 그의 아들과
낫 잡고 논둑 더듬으며 풀 베고 온 그가
상수리나무 아래 겸상 차려놓고
말없이 점심 먹던 모습을 본 적 있다
결혼식 올린 뒷날 날씨 써늘해도
상수리나무 잎사귀가 더 지기 전에
조선족 처자가 차려낸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셋이 담소하며 햅쌀밥 한 끼라도 먹겠구나
내가 결혼식장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햅쌀 한 가마니로 축의금 대신하겠다고 하자
노인은 사양하지 않고 만면에 가득 환한 웃음으로 나를 대접했다
노인이 내년부터 연년생으로 손을 본다면
해마다 햅쌀 한 가마니씩 안 받아가도
나는 도통 아깝지 않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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