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새라의 첫 장편소설 [새터 사람들]
(삶이보이는창, 2006년 11월 10일)


1993년 중편소설 「절망의 끝」으로 여성신문사 여성문학상을, 1996년 단편소설 「코를 잃어버린 최씨」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은 홍새라의 첫 장편소설 『새터 사람들』이 나왔다. 작가는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 자본의 야만과 맞서 싸우는 ‘새터’ 사람들을 통해 도시적 일상에 함몰된 우리 삶을 성찰하게 한다. 특히 서사적 지향에서 일탈해 일상으로 소급하는 저간의 소설 동향에서 벗어나, 진중한 문제의식과 구수한 입말을 살려낸 문체가 이 소설을 오히려 새롭게 한다.

‘새터’에 생수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한 새터 사람들은 주민들의 경제적 삶이 이전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생수공장이 이미 들어선 지역에서 불거지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서, 생수공장이 마을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문제의식으로 바뀐다. 생수공장이 “편리함에 길들여진 도시 사람들과 이에 기댄 자본의 끝없는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동안, 농촌의 생명력이 서서히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도시인의 이른바 웰빙의 삶을 위해 생수통에 담겨지는 순간, 물은 제조업 제품으로 탈바꿈한다. 더 이상 생명을 키우고 살리는 물이 아닌 것이다. 생수공장에서 자연의 본래성이 휘발된 채 도시의 근대적 일상을 이루는 제조품으로서의 생수, 즉 잘 포장된 상품에 불과하다.

요컨대, 우리는 홍새라의 『새터 사람들』을 통해 망실해가고 있는 농촌 공동체의 문제적 현실을 또렷이 보게 된다. 홍새라는 농촌이 직면하고 있는 근대의 파행과 야만에 대한 예각적 인식에 머물지 않고, 그것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 투쟁의 과정 속에서 민중의 삶이 지닌 건강성을 복원시키는 아름다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의 아름다운 투쟁은 삶의 건강한 가치를 지속시키기 위한 데 궁극의 목적이 있다. 그리하여 홍새라는 농촌으로 하방(下放)하여 농촌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홍새라 1965년 강원도 횡성 출생. 1993년 여성신문사 여성문학상에 중편소설 「절망의 끝」 당선. 1996년 단편소설 「코를 잃어버린 최씨」로 실천문학 신인상 수상. 작품집으로 『민들레꽃 사랑』이 있음.

::책 속에서

한자, 살아 있을 생과 물 수를 떠올리던 방현재도 그렇구나. 아, 그렇구나 하면서 이내 머리를 친다. 생수가 농촌에서 나오는 것이란 사실을 왜 생각 몰랐을까. 물조차 사 먹는 시대라는 사실이 경악스럽고 역겨워서 웬만하면 생수를 먹지 않는 것으로만 스스로를 위안하고 달랬었다. 개인이 그래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했었다. 편리함에 길들여진 도시 사람들과 이에 기댄 자본의 끝없는 욕망.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어느 누구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빠져들게 하는 무서운 힘을. 어느 누구든 스스로 뛰어들지 않으면 살 수조차 없게 하는 그 거대한 힘을. 그들이 만들어내는 연쇄그물 아래서 농촌은 이런 신음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물이 마른다니. 농촌에 물이 마른다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며칠 전에 보았던 둔내와 우천의 모습까지 눈앞을 스쳐지난다. 물공장의 문제는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근복적인 문제가 아닌가.



::작가의 말

오랜만에 들판으로 향한다. 참새들이 포르르르 짹짹짹 소란을 떨며 날아오른다. 스르르 미소를 물며 참새 떼가 날아가는 허공을 바라본다. 허공 저 끝. 참새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며 다가오는 것은 벼다. 초여름에는 우담바라 닮은 꽃을 온 들판에 가득 피워놓더니 어느새 알알이 맺은 열매를 누렇게 출렁인다. 십 리는 될 듯하다.

마음마저 푸근하여 논둑길로 들어선다. 출렁이는 벼이삭 사이로 떠오르는 노래 하나.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젊은 시절 모를 심으며 불렀다는 미나리타령이 내 입가에서도 흥얼흥얼 흘러나온다. 천하지대본은 농사라오. 농사 한철 지어보세. 뒷들에 논은 천석지기 앞들에 논은 만석지기. 심어주게 심어주게. 오종종 줄모로 심어주게. 지어가네 지어가네 점심참이 지어가네. 점심참은 지더라도 손을 세워서 심어주게. 천하지대본 농군님네 우리 기쁨 귀할제라. 이 논자리에다 모를 심어 금실금실 영화로다. 시화연풍 좋아하는 우리 마을이 영화로다. 봄이면 진달래요 가을이면 오곡일세. 오뉴월에 흘린 땀이 구시월에 열매되니 오실토실 익은 곡식 동산 밑에서 춤을 추네. 천하지대본 농군님네 우리 마을이 영화로다. 농사 한철 짓고 보니 한복고복 하시리라. 해는 지고 저문 날에 옥창 앵두가 붉었으니 시호시호는 부자 되라. 원정부지가 이 아닌가. 저 곳에서 환히 웃으며 나를 바라볼 것 같은 어머니.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아 볼 수 없는 나의 어머니가 떠오르고, 늙고 귀 어두운 나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함께 늙어 백발이 되고 허리 굽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수많은 이웃들이 떠오르고, 아픈 허리 받쳐주고 지친 다리 끌어주며 데모라는 걸 나가던 이웃의 이웃들이 떠오른다. 눈물이 울컥 난다.

이미 벼를 베어낸 논바닥에 앉아 다리를 쉰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이 빠알갛다. 올해도 까치밥 몇 개는 남겨놓겠지 싶어져서 미소가 다시 스르르 난다. 사는 것이 아무리 팍팍하고 퍽퍽해도 나에게 있는 물기 남과 나눌 줄 아는 이들이기에, 데모라는 걸 다 해보았던 저들은 올해도 분명 새에게 그것을 나눠줄 테다. 내가 조금 덜 먹으면 되는 것이니. 하여 나는 해마다 우담바라 닮은 꽃을 피워내는 벼들에 둘러싸여 조용조용 말을 건넨다. 용서 하소서. 나의 어머니들이여, 나의 아버지들이여. 들판의 우담바라, 벼를 심는 내 어머니, 내 아버지의 이웃들이여. 이 재주 미천한 자식은 이렇듯 작고 초라한 상밖에 차리지 못하나니 진정 용서하소서. 용서하고 또 용서하소서.

2006년 10월
홍새라


::추천글

‘새터’ 사람들은 댐이 건설되기로 한 터에 생수공장까지 들어서게 되면 농수는 말할 것도 없고 먹을 물조차 부족하게 될 운명에 처해 있다. 이들은 힘을 모아 데모도 하고 마당극도 공연하고 산신제까지 올리면서 산과 물과 마을을 지켜내는 데 온힘을 기울인다. 이들이 몸 던져 지켜내려 하는 것은 개발주의자들이나 도시문화에 찌든 감성에는 포착되기 어려운 소중한 삶의 가치들이다. 이 소설은 귀향한 한 청년과 이장의 시각을 교차시키면서 ‘새터’라는 농촌공동체의 삶과 운명을 ‘총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작가는 생수공장 설립 반대운동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자연의 숨결과 삶의 디테일까지 여실히 드러냄으로써 폭넓은 공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역사, 전통과 공동체의식의 조화로움을 이처럼 빼어나게 그려낸 데에는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문체도 한몫 거들고 있다.
―황광수(문학평론가)

강원도 산골마을까지 밀어닥친 개발 열풍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개발이냐 환경이냐 하는 단순 대립 구도에 매몰되지 않는 작가의 진중하고 깊은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보수적이랄 수 있는 마을 이장 최복길과 그에 대비되는 이근술, 방현재, 김시인 세 젊은이의 갈등과 화합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한편, 박혁거세에게 쫓겨 덕고산으로 숨어들었던 진한의 태기왕 이야기까지 얹어 놓음으로써 이야기의 재미와 함께 중층적인 의미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는 마을 공동체의 회복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작가의 의중은 우리에게 세계화 시대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지혜의 한 자락을 느끼게 한다.
―이경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