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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세이] 죽음에 대한 단상
이름 유중원 이메일



죽음에 대한 단상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혹은 생을 기억하라(메멘토 비베레 memento vivere)

 

 

 

죽음이야말로 가장 궁극적인 이별이다.

죽음이란 사전적으로는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이 언제부터인가는 아직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죽음의 기원은 명백하다. 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문학적으로는 죽음이란 모든 것이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고통과 허무함을 상징한다.

1768년에 발행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초판에서는 죽음에 대해 (영혼의 존재와 그 불멸성을 전제로) ‘영혼과 육신의 분리’로 정의했지만 2007년 판에서는 ‘모든 생물이 종국에 경험하게 되는 생명이 완전히 중단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면 언제 생명이 완전히 중단되는가? 이 문제는 죽음의 본질과 관련해서 죽음이란 신체적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었을 때인가 아니면 인지적 (또는 인격적)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있을 때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양자는 일치하지만 양자의 시간이 어긋났을 때 쟁점이 되는 것이다. 정통파 유대인이나 독실한 기독교 근본주의자 등은 생명을 연장하는 보조 장치의 이용 여부와 상관없이 심장이 멈춰야만 죽음을 인정하는데 반해서, 오늘날은 뇌사 상태, 즉 재생이 불가능한 혼수상태를 사망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고 있다.

 

죽음과 자살

자발적 죽음. 자기 살해. 자신을 없애는 행위. 자신을 살인하는 행위. 자살보다 인간에게 고유한 것은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행위는 시련에 대해 굴복한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 지배 또는 자유의 가장 지고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자살은 존엄한 죽음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가끔 자살을 생각한다. 우리가 종종 마음에 품었던 자살의 충동이란 게 사실은 삶을 더욱 충만하게, 더욱 잘 살고 싶다는 필사적인 희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복수심 때문에 화가 나서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자살은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고. 그러나 그 자살은 어리석은 짓이다. 누군가는 죄책감은커녕 내심 얼마나 고소해할 것인가.)

 

자살은 타살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죽음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에 관한 그들의 성찰을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는 말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최선이다. 만약 태어났다면 하루라도 빨리 원래의 장소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좋다.’

로마의 작가 리바니오스는 자살에 대해 노골적으로 권유했다. ‘더 이상 생을 지속하고 싶지 않은 자는 원로원에 사유를 고지하고 허가를 받은 후 생을 저버릴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가 저주스러운 자여, 운명과 술, 독이 당신을 압도한다면, 죽음을 택하라. 비탄에 빠진 자여, 생을 포기하라. 불행한 자는 그의 불운을 털어놓아도 재판관은 구제책을 내놓지 못할 것이니 그의 비참한 삶은 종말을 맞이하리라.’

개인의 지고한 가치를 인정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스스로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본 스토아학파, 삶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지겨워지면 조용히 자살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한 에피쿠로스학파, 기타 키레네학파, 키니코스학파는 자기 살해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스토아학파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던 고대 로마사회는 개인의 반사회적 행동을 엄격하게 금기시하면서도 개인의 자유표현을 찬양했기 때문에 자살에 아주 호의적이었다.

반면에 피타고라스학파는 영혼은 원죄의 결과 육신에 갇혔기 때문에 끝까지 살아서 속죄를 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자살에 이의를 제기하였고, 플라톤 역시 그걸 부정하였다. 그가 말했다.사람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문을 열고 달아날 권리가 없는 죄수다. 그는 신이 부를 때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살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다.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아주 비겁한 짓이다. 자살이 죽음을 무릅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일 뿐이다.’ 의사인 히포크라테스는 말했다. ‘의사는 환자가 요청하더라도 치사 약물을 처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러한 약물을 권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리스나 로마의 의사들은 이에 개의치 않았으니 자살과 안락사가 그 시절 널리 유행하였다.

자살이나 안락사는 4세기경에서야 기독교 시대가 도래 하면서 신성 모독으로 간주되었다. 신약이건 구약이건 어디에도 자살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로마법도 자살을 단죄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은 ‘살인하지 말라’는 제5 계명은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자기 살해에도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절대적 자살 금지를 엄격한 교리로 만들어 기독교 사상의 근본 구조 속에 통합시켰다. 그 후 1,000여 년이 지난 중세 중기 스콜라 학자들도 자살은 극악무도한 살인 행위로 간주하였다. 그러므로 자살은 가톨릭이나 루터교, 영국 국교, 칼뱅교, 동방 정교회 모두에게 악마의 소행에 다름 아니었고, 그들은 심각한 종교적 갈등의 와중에도 그 점에서는 완전히 의견 일치를 보았다.

자살은 동성애와 근친상간과 함께 인류의 가장 오래 지속된 금기 사항이었다. 그랬으니 자살 탄압법 또는 자살 처벌법은 그토록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고 프랑스 대혁명 이후 20세기에 이르러서야 폐지되었다. 비로소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재량권이라는 기본권을, 자신의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라는 기본권을 회복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문명국가에서도 여전히 자살 교사 또는 방조는 형법으로 처벌 받는다. (우리 형법 제252조 제2항)

자살을 죄악시하는 이 오랜 전통은 중세를 거쳐 현대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 사회는 여전히 자살을 혐오스럽고 무서운 행동으로 여기고 있다. 자살은 비도덕적인 행동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살은 도덕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단테는 자살을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스스로의 몸을 해치는, 자신의 육신에게 포악을 저지르는 폭력으로 보았다. 그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자살한 영혼들은 지옥 중에서도 푸른 잎이 아니라 불길 같은 색깔의 잎이 매달려 있고 가지들은 구부러져 온통 매듭투성이이며 열매는 맺지 않고 독성이 있는 가시들만 박혀 있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숲 속에서 이상한 몰골을 하고 나무 가지들에 매달린 채 괴상한 통곡 소리만 지르고 있다. 이 영혼들은 최후의 심판이 오더라도 그 나무들은 자살자의 육신으로 싹이 돋았기 때문에 육신을 다시 취하지 못하므로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어야 하는 저주스러운 망령들이었다.

역시 우토푸스의 유토피아에서는 안락사는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겨졌지만 자살한 사람은 화장도 매장도 할 수 없었고, 그들의 시신은 아무런 예식 절차 없이 강물에 그대로 던져 고기밥이 되게 하였다.

안락사의 경우에도 그렇다. 과연 안락사는 자비로운 행위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안락사시킨다면 그 행위는 그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당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것인가? 안락사는 불치병을 앓는 이에게 자살을 방조한 행위가 아닌가. 또는 촉탁이나 승낙에 의한 살인행위가 아닐까. 우리 형법 제252조는 이러한 행위를 처벌한다. (의사는 당초 약속했던 대로 그에게 고통을 종결시켜 줄 고농도 모르핀을 가져다주었다. 그토록 강력한 의지를 가진, 그러나 운명은 결코 극복될 수 없다고 믿은 염세주의자,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를 쓰고 삶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인간, 종교란 결국 강박관념에 의한 신경증의 결과물이라고 단정하고 무신론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때에도 자신은 태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자신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암이 악화되었을 때 안락사를 선택했다.)

그래서 반대론자들은 그 누구도, 그 무슨 이유에서도 무고한 사람, 배아 또는 태아, 노인, 치유 불가능한 환자, 이미 죽어가는 환자의 주검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는 신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생명 존중에 반하고, 인류에 대한 테러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암흑의 세기인 중세 1,000여 년 동안 교회법과 세속법은 자살에 대해, 인간의 생명은 신에게 속하므로 인간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없다는 신법과 생존본능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자연법을 거역한 중대한 범죄로 간주하고, 자살자의 그리스도식 장례를 금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의 순교자들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는다고 선언하고 또한 실제 끔찍한 시체모독형과 재산몰수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누구인들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 그것을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너무나 오랫동안, 무려 400년 동안이나 인류가 우려먹었기 때문에 너무 진부하지만,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혹은 있음이냐 없음이냐, 존재하느냐 마느냐, 삶이냐 죽음이냐,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 과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물음을 던지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들의 자살 혹은 미묘한 죽음을 역사적으로 성찰해 보아야 하리라.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였던 제논, 유물론자 에피쿠로스, 디오게네스의 철학적 자살. 자살을 극력 반대했던 피타고라스학파의 피타고라스가 삶에 염증을 느끼고 단행한 단식 자살. 엠페도클레스는 불을 찬양했고 스스로 신으로 자처하였으니 에트나 화산의 불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져서 영원히 신으로 남으려 했다. 마지막 영혼의 정화.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나 (자살인지 아닌지) 재판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도발하고 제자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도주를 거부하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죽음.

독배를 마시고나자 그의 다리에서 죽음의 장미가 파랗게 피어났다.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 전사들의 죽음.

공화국에 대한 절망, 자유의 상실에 상심한 위대한 시민 카토의 자살. 카시우스 브루투스의 자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자살. 종교는 미신과 미망의 원천이라고 한 고독한 시인,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의 자살. 카토의 자살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의지적 죽음이라고 찬양했던 스토아학파 철학자, 세네카의 강요된 자살. 스스로 위대한 시인으로 자처했던, 그래서 ‘아아, 위대한 예술가가 이렇게 사라지는구나!’라고 외치고 자살했던 네로 황제.

단테가 지옥에서 만났을 때 그가 이 세상 끝에 있는 바다에서 죽었다고 고백한 오디세우스의 죽음.

삼손의 자기 살해. 사울 왕의 자결. 아비멜렉의 자살.

예수는 종말론적 예언자이었기에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서 이미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으니, “나는 내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리라. 그러므로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예수께서 거룩하게 자살하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를 죽인 악마라고 보는 신실한 기독교도들이 지어낸 것으로 보이는, 출처가 미심쩍은) 빌라도의 자살. 마테오가 스스로 무화과나무에 목을 맸다고 기록한 저주 받을 자의 원형 가롯 유다의 자살. 악의 표상이었던 폭군 헤롯왕의 자살. 그리고 이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순교자들.

서기 67년 로마 장군 베스파시아누스의 갈릴리 점령과 유대인의 집단 자살, 그때 요세푸스의 자살 거부. 서기 73년의 유대인의 마사다 항전과 집단 자살, 그 당시 유대인들의 우두머리였던 엘레아잘의 죽음. 십자군 원정시기인 1065년과 1069년에 일어난 유대인의 집단 자살. 12세기 영국에서, 그 후 1320년과 1321년의 집단 자살.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에서 집단 죽음.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연인들의 자살. (매우 우유부단하며, 그 당시 자살금지 법칙에 얽매어 결코 자살할 수 없었던 중세적 인물인)햄릿이 느꼈던 자살의 유혹. 비극적 인물들인 맥베스와 오셀로의 자살. 질풍노도 시대, 낭만주의 시대 젊은 베르테르의 자살.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쿠오 바디스의 페트로니우스와 그의 연인 에우니케의 자살. 합리주의자이고 이성주의자이고 자신의 철학을 완성시키는 최종 단계로 자살을 선택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테이브 남작.

그가 19세 때 앞으로 10년만 더 살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나서 29세 때 자신의 약속을 충실하게 지키기 위해 정해진 날 권총으로 자살을 한 프랑스의 무명 허무주의자 시인이었던 자크 미코.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려보자. 그는 삶을 사랑했으므로 정말로 죽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햇빛이 찬란했다.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인간들은, 그들은 대체 뭘 원하는 걸까?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의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는 1925년 5월 그 찬란한 계절에 창문을 뛰어내렸다.

 

현대 세계에서 빈센트 반 고흐, 프리디히 니체, 기 드 모파상, 제라르 드 네르발, 슈테판 츠파이크의 자살. 자신이 남들에게 무익하고, 자신에게도 위험하기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던 보들레르. (‘나는 정말로 다시 미쳐가는 것이지요……. 다시는 그 끔찍한 시련을 이겨내지 못할 거예요……. 환청이 들리기 시작해서 집중할 수 없지요. 그래서 나는 지금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선택하려고 해요. 당신은 제게 다시 얻을 수 없는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지요……. 나는 당신의 삶을 더 이상 망칠 수 없어요.’라는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암울한 시기였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외투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고 우즈 강에 들어가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 나치에 쫓겨 스페인으로 향하던 중 피레네 산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발터 벤야민. 1950년 그의 문학의 절정기에 자살한 세자르 파베세. 1951년 7월 채 서른이 안 된 나이에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극복하지 못하고, 또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환멸 때문에 갑작스레 가스 자살한 타레우쉬 보로프스키.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그는 1953년 자신의 남자 친구를 사랑하는 동성애자임을 고백하고 ‘중대 외설행위’라는 죄목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는 징역형 대신 화학적 거세를 선택했으나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 년 뒤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를 한 조각 베어 먹고 자살하였다. 그 시대의 한계와 폭력성이란. 2009년 그 당시 영국 총리는 튜링의 재판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2013년 여왕은 특별 사면을 선포하였으나, 멀쩡한 인간을 살해해놓고 뒤늦게 이게 무슨 짓이람. 러시아의 세르게이 예세닌, 미국 여류 시인 실비아 플레스의 자살. 아나바시스의 시인 파울 첼란의 자살. 마릴린 먼로, 헤밍웨이, 진 세버그,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의 자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지만,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그 사실만으로 평생 수치심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다가 40년이 지나서 결국 토리노의 아파트 건물 4층에서 투신하여 자살한 이탈리아의 유대계 작가 프리모 레비. 그는 자살이란 우리 모두가 지닌 일종의 권리라고 하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자살이 널리 용인되고 죽음의 미학으로까지 승화되었던 일본에서, 자신의 생존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던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와 함께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명제에 집착하여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군의 일본 작가들, 기타무라 도코쿠, 가와카미 비잔, 아리시마 다케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마키노 신이치, 다자이 오사무, 다나카 히데미쓰, 하라 다미키, 구사카 요코,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스나리, 에토 준. ‘인간 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다섯 번 자살을 시도하여 마침내 정부와 함께 동반 자살에 성공하였으니.

12월 18일 독일 군함 그라프 슈페호가 몬테비데오를 떠나 죽음의 바다로 출항한 사건과 그 선장 한스 랑스도르프의 죽음. 10월 14일 나치 영웅 롬멜의 자살. (1945년 4월 30일의 총소리와 함께)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자살. 5월 1일 여섯 아이와 함께 요제프 괴벨스 부부의 자살 (그러나 여섯 아이에 대한 마그디 괴벨스의 행위는 살인이었으니 12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죽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고, 무슨 의지의 힘이 작용했으며, 무슨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었겠는가). 1945년 2월에서 5월 사이 지속된 베를린의 자살 전염병.

독일의 적군파 혁명가 울리케 마인호프의 감옥에서 자살.

가미가제 특공대. 체첸에서, 중동에서 자폭 테러.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일제 암울한 시절에 천재 시인 이상은 27세 때 유명을 달리했고 윤동주 시인은 28세 때 세상을 떠났지만) 진달래꽃의 시인 김소월은 32세 때 아편을 마시고 음독자살했다. 그리고 우리는 1990년대의 봄을 생생히 기억해야 한다. 5월 정국의 수많은 분신과 투신을, (최근 조작된 것으로 판명된) 강기훈의 유서 대필 사건을. 또한 그 이전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그 이후 노무현의 자살을.

그런데 수천억 원을 갈취해서 염치도 없이 떵떵거리고 사는 파렴치한 전직 대통령들보다는 훨씬 양심적이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던 그의 죽음을 우리는 가슴 깊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말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항상 더 사랑을 받는다. 왜냐하면 서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길게 지루하게 싸우는 모습을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들, 갖가지 사유로 일찌감치 삶을 포기한 사람들은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인간적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더 선호한다.

그리고 공권력의 폭력에 희생당한 것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는 억울한 죽음의 의문사 희생자들, 생활고에 못이긴 수많은 필부, 필부들의 자살을. 그 암울한 시대의 한계와 폭력성이란.

그러나, 데카르트는 ‘어떤 여행자도 돌아오지 못하는 수수께끼의 고장에 가는 게 마땅한 일인가.’ 또한 ‘……나는 우리가 진정으로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만 죽음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고 하였고, 몽테뉴는 약간 애매한 입장에서 망설였지만 파스칼은 그러한 태도에 경악하며 이교도적인 생각은 용납될 수 없다고 하였으며, 디드로는 ‘백과전서’에서 자살에 대해 적대적으로 설명했고, 몽테스키외는 자살을 옹호하지는 않았지만 자살에 대한 법적 탄압만은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볼테르는 ‘자살은 상냥한 사람들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했고, 칼 야스퍼스는 ‘자살은 생을 위반하는 적대적 행위’라고 했으며, 장 폴 사르트르는 자살은 자유의 포기로 보았으며, 알베르 카뮈는 ‘난 죽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랬으니 그들과 거의 모든 염세주의 철학자들과 자살을 미화하고 찬미한 작가들, 시인들, 신비주의자들, 냉소주의자들, 극단주의자들, 세속주의자들, 햄릿과 파우스트, 스탈린과 모택동을 열렬히 숭배했던 파리 센 강 좌안의 지식인들은 결코 자살하지 않았다.

 

‘배반의 장미’에서 박△△은 산악반 반장으로 명예를 중시했기 때문에 고대 로마인들의 명예로운 자살처럼 손쉽게 강물에 투신하거나 목을 매지 않고 칼로 그어 자살했고 (이 사실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김규현이 잘 알고 있다.), ‘사랑’에서 비체는 역시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육체와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는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자력으로 죽지 못하고 (성명불상의) 그가 자살 교사나 방조죄, 또는 촉탁이나 승낙 살인죄의 처벌을 각오하고 그 죽음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성명불상자는 그때 스스로에게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그 순간에 비체와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였고, 그를 죽게 함으로서 그 자신을 처벌하길 원했던 것인가.)

그러나 비체는 알고 있었다. 삶의 전부를 잃었을 때, 희망이 더는 없을 때, 삶은 무의미하고 죽음은 의무가 된다는 것을.

‘인간의 초상에서’ 김재수 병장은 동성애자였고, 그는 스스로 그걸 중대한 정신병으로 간주하였으며, 그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인육을 먹어야 했으니 끝내 자살을 선택했고, 진정한 휴머니스트로 결코 인간을 향해 총을 쏠 수 없었으나 자신을 향해 총을 쏠 수는 있었던, 그러나 사랑을 위해 탈영했던 김정현 병장은 영원히 행방불명되었다.

그리고 ‘사하라’에서 김규현의 죽음을 어떻게 보아야만 할까? 진실은 무엇인가? 건축 설계사로서 그의 강박관념은? 그의 꿈은 실현 가능성이 있었던가? 그는 좌절하여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것인가? 다만 그는 마지막 죽는 순간 마침내 자신의 신을 찾았던 것이 아닐까?

그들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자살은 불가사의하다. 죽음은 신성한 것일까? 이보게 신성한 건 삶이야. 내가 지금 더 이상 무엇을 덧붙이겠는가. 배반의 장미에서 이미 ‘배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영혼의 불멸성

물질주의자 (또는 물리주의자)는 육체만 인정한다. 그러나 이원론자는 육체의 존재는 물론이고 영혼의 존재도 인정한다. 그들은 영혼이란 단지 몸의 배출물이거나 몸의 분비물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물질주의자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할 만한 타당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현대의 심리학과 정신의학, 생물물리학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가리켜 생각, 마음, 의식, 정신이라고 한다. 그들은 영혼이란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해서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라고 주장하며 영혼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적극 기피한다.

현대의 뇌신경학이 인간의 뇌 속에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 (뉴런)가 들어있고 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회선 수만 150조 개를 넘을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1,000억 개의 뉴런 개수는 우리 은하계의 별의 숫자와 일치한다. 결국 인간의 뇌는 소우주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주에 미만해 있는 암흑물질 중에서 대략 4% 정도만 현대 과학으로 규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 소우주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영혼의 부존재를 증명하기는 한 것인가. 그들은 오로지 과학 만능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란 측정과 증명이 가능한 것만 다룬다. 하지만 이 광활한 우주, 이 복잡한 인간 세계를 과학으로만 이해와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과학이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철학과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다. 철학과 종교는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생각과 영혼, 가치를 다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히 누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살과 뼈를 가진 인간의 육체 속에는 이 육체가 소멸된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심령적이고 활동적인 어떤 미묘한 요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실체인 진아眞我이고 영혼인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영혼이 육체를 벗는 것이고 탄생은 육체를 입는 것이다.

영혼은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사라지지도 않으며 냄새도 없고 맛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영혼은 위대한 광명의 본체와 떨어질 수 없으며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불변하고 무한한 빛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

……‘영혼은 밝은 빛’이라고 우리는 말하지만 그것은 모든 언어와 상징 너머에 있네. 영혼은 원래 비어있지만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함하네. (마하무드라의 노래)

 

나는 바로 나다. 내가 태초의 시작이고 끝이다. 영혼은 자아의 본질이다. 영혼은 나를 대체 불가능한 실재로 만든다. 신을 믿건 아니건 영혼이란 인간에 내재하는 불멸의 존재이다. 나는 항상 내 영혼이 나와 함께 존재하고 나와 함께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음을 믿는다. (그런데 내 영혼은 언제부터 내 육체 속에 깃들었을까? 창세기에 의하면 야훼 신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입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은 먼저 육체를 만들고 이후 거기에 영혼을 불어 넣었던 것이니, 즉 먼저 육체가 있어야 영혼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경우에도 기독교적 영혼창조론이나 영혼유전설을 도외시하기로 하고 나의 영혼은 내가 성체가 된 후에, 그것도 인간으로서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었을 때부터 내 몸에 깃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유일신 종교들이 말하는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 그러므로 내가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 중 한 곳에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죽으면 육체는 무덤 속에서 썩어갈 것이지만, 그 전에,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바라뒤크의 주장처럼 또는 할리우드의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처럼, 죽는 순간 영혼은 몸 밖으로 빠져나와 육체에서 분리될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육체에 깃들었다가 육체가 죽을 때 함께 죽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혼은 유령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단지 시적 표현으로 영혼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멸의 본질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영혼은 영원히 변함없으며 다만 옮겨 다니는 가운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상을 취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내 영혼이 그때 유체이탈하면서 공중 부양하는 중에 죽어있는 내 초라한 육체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는, 지금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 영혼은 내 육신을 떠난 후 나비처럼 날개를 펄럭이며 여기저기 훨훨 날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하늘 높이 올라갈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파이돈’에서, 그 후 데카르트가 ‘성찰’에서 영혼의 존재와 그 불멸성에 대해 논리적 증명을 시도했으나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그래서 영혼의 존재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혼은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외적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지만 내적 감각, 즉 마음의 눈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일원론적 견해는 일종의 인과관계와 결정론에 근거하고 있지만, 이 세상만사가 결정론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독자적인 이론에 불과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육체와 정신 곧 육체와 영혼은 이론적인 차원에서 서로 다른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영혼은 육체와는 다른 것으로 육체를 초월한 존재로 보았다. 유토피아에서도 모두가 받아들이는 두 가지 엄숙한 신조가 있었으니, 인간의 영혼은 육신처럼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 우주는 목적 없이 표류하는 피조물이 아니라 이를 다스리는 섭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영혼의 불멸성은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당연히 영혼의 불멸성 여부가 문제가 되겠지만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영혼의 존재는 인정했지만 자연의 다른 모든 존재들처럼 소멸하는 존재, 즉 일시적으로만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영혼이 필멸한다면 영혼의 존재가 왜 필요하겠는가. 영혼은 반드시 불멸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적 죽음 후에도 살아남아 영혼이 불멸의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이여, 그 입증을 요구하지는 말라. 그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게 궁금하거든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길. 영혼은 그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 (배화교, 힌두교, 불교, 자니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마호메트교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게 종교인지 의심받고 있는 유교, 아프리카 원시 부족의 애니미즘 신앙까지 모두)는 영혼의 존재와 그 불멸성을 신앙의 기초로 삼고 있다. 그러면 세계의 종교 인구를 고려해보라. 영혼불멸설은 틀림없이 세계적으로 다수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오르페우스파와 피타고라스학파는 영혼의 불멸을 믿었고 영혼윤회설을 주장했다. 이 영혼불멸설은 그 후 소크라테스를 거쳐 플라톤으로 계승되었고 플라톤의 관념론과 신비주의는 기독교의 탄생과 더불어 하늘로의 도피를 주장하는 그 교리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파스칼은 말했다. “기독교를 준비하기 위한 플라톤.”

그러나 기독교는 윤회설을 부정한다. 제2차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는 선언하였다. “영혼이 전생에도 존재한다는 미신적인 교리나 영혼이 환생한다는 이상야릇한 의견을 지지하는 자는 누구든지 파문당할 것이다.” 하지만 유대교 금욕주의 에세네파와 바울이 이끌었던 정통 기독교가 이단으로 몰아붙였던 초기 기독교의 그노시스파는 틀림없이 윤회론자들이었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도 윤회 철학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영혼이 윤회한다면 사람들이 이전의 삶을 기억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플라톤이 말했다. 인간이 죽으면 지하세계의 왕국인 하데스로 가서 심판을 받고 윤회하는데, 그전에 망각의 강인 레테 강을 건너면서 망각의 물을 마시기 때문에 기억을 잃는다.

그러나 나는 깨달음이 부족해서인지 영혼불멸설을 확고하게 믿고 있기는 하지만 환생의 개념이나 원리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건 영혼 또는 영혼의 불멸성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기는 하다. 다만 북방 불교의 심원한 원리는, 만일 우리가 삶과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이 무한한 우주의 모든 구석을 지배하는 ‘완전한 법칙’이 존재함을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완전한 법칙을 켈트 족의 드루이드 사제들은 ‘존재의 순환’이라고 불렀고, 또 다른 윤회론자들은 ‘필연적인 순환’이나 ‘생과 사의 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면 그때 윤회를 운명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영면을 선택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카르마란 결국 인과응보의 법칙 아니겠는가. 나는 이승에서 좋은 업을 쌓아서 지렁이, 벌레 같은 하등 동물로 환생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어느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서 장차 건축가가 될 남자 아이로 태어나길 바랄 뿐이다. 정녕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건축설계사가 되지 못하는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분별력이 없는 사람, 마음이 불안정하고 가슴이 순결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다시 또다시 생과 사의 수레바퀴인 이 끝없는 고통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분별력을 가진 사람, 마음이 안정되고 가슴이 순결한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며 다시 태어남이 없는 세계에 도달할 것이다.

― 카타 우파니샤드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찾아와 마음과 몸이 분리될 때 순수해진 영혼은 육체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국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갈 것이라고 확신했을까.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독약과 불의가 마지막 숨결을 앗아갈 때 의연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진해서 죽었던 것일까. 자신의 고결한 영혼이 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겠는가.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놀라운 평정심으로 독약을 마시고 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위대한 죽음의 장면 중 하나다.

몽테스키외는 말했다. 나는 불멸을 구한다. 그 불멸은 내 안에 있다. 내 영혼아, 드넓어지라. 광대한 영역으로 뛰어들어라. 위대한 존재로 돌아가라.

김규현의 영혼은 지금도 광대한 사하라에서 떠돌고 있다.

 

죽음과 운명

기원전 44년 3월 15일. 음모자들은 재빨리 행동하기로 모의하였다. 그날 카스카가 단검을 꺼내 제일 먼저 카이사르를 찔렀다. 하지만 긴장한 때문인지 카이사르의 목 또는 어깨를 스치는데 그쳤다. 그러자 다른 암살자들이 달려들어 카이사르를 무참히 찔렀다. 그들은 광란 상태에서 마구 칼을 휘두르고 찔러댔기 때문에 암살자가 혼란한 와중에서 다른 암살자의 팔을 찌르기도 했다. 독재관의 몸에는 칼에 찔려 스물세 군데의 상처가 났다.

카이사르는 그가 사랑했던 정부 세르빌리아의 아들이자 그의 양아들이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를 보자 절망한 나머지 마지막 저항을 포기하고 말했다. 브루투스, 너마저 (et tu Brute) 그리고 독재관은 토가로 머리를 감싸고 쓰러졌다.

그러므로 카이사르의 아내 칼푸르니아가 꾼 악몽, 3월 15일을 조심하라는 점쟁이 푸리나의 예언, 그날 새벽에 로마를 덮친 폭풍우, 수많은 새떼의 비상과 같은 전조도 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의 죽음은 운명에 의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브루투스가 면피용으로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한층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라고 변명했으리라고 추측했다.

 

서기 30년 4월 5일 (수요일) 밤. 가롯 유다는 바리세파 제사장들을 만나자 곧바로 말했다. “내가 그를 넘겨주면 얼마를?” 대제사장이 대답했다. “은화 30개” 유다와 대제사장 가야바는 거래를 성사시켰고 유다는 즉시 예수를 넘길 장소를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예수와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베다니로 돌아갔다. 4월 7일 (목요일)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그날 밤 최후의 만찬을 마련했다.

한창 만찬이 진행되던 중에 예수가 말했다.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예수는 만찬이 끝나고 밤이 깊어지자 다시 제자들을 이끌고 키드론 계곡 건너편 올리브 산 아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다. 밤이 더욱 깊어졌다. 굳어버린 고체처럼 짙은 어둠이 온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때 배신자 유다가 성전 경비대를 이끌고 그 동산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횃불과 등불을 흔들어서 어둠을 해치고 올라왔고 곤봉과 칼로 무장하고 있었다.

유다가 냉담하게 말했다. “나사렛 예수는 안녕하신가?” 그리고 예수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일종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신호였다. 내가 입을 맞추는 자가 예수이니 그를 체포하라고 경비대원들과 사전 약속이 되어있던 것이다.

4월 7일 (금요일) 예수는 해골 (라틴어로 칼바리아 또는 갈보리, 아람어로 굴갈타, 그리스어로 골고다, 세 단어 모두 해골 또는 두개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언덕에서, 2천년 동안이나 인류에게 회자되었으니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바라바(또는 바라빠)라는 이름의 살인범과 그 공범과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졌던 것이다.

 

이건 아르헨티나 맹인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19세기의 시간이 지난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의 남부에서, 한 늙은 가우초 (목동)가 다른 가우초 일당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되고 그는 쓰러지면서 그 암살자들 중에서 자신의 양아들을 발견한다. 그는 은근한 경외심과 아련한 놀라움 속에서 그에게 말한다. “그렇지만 이 녀석아!”

 

샤를 드 푸코는 시토회 중에서도 엄격한 계율과 청빈, 영원한 침묵을 유난히 강조하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수도회의 수사들은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가장 버림받은 사막 부족민들에게 기독교를 열심히 전파하여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열망하였다. 그 자신은 척박한 사막에서 예수의 삶을 사는 유일한 증거자가 되고자 하였다.

1916년 12월 1일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는, 그날 아침 드 봉디 부인에게 ‘우리들의 무화, 자기 부정은 우리를 예수님과 결합시키고 영혼에 선을 행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라고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리고 오후 7시경 그는 침입한 투아레그족 일당에게 은둔소 바깥 자갈밭으로 강제로 끌려 나갔다. 거기에서 무릎 꿇리고 등 뒤로 묶인 손은 끈으로 발목뼈에 비끄러매어졌다. 그는 그러한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계속 기도만 하고 있었다. 암살자들은 그를 심문했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일순간 그를 지키고 있던 애송이가 발작적으로 그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몸은 조용히 기울어져 옆으로 쓰러졌다.

그 순간 그는 애송이의 애처로운 얼굴을 쳐다보면서 기도하였다. “저의 목숨을 바칩니다. 당신께서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저를 살리시거나 죽이시거나 뜻대로 하시옵소서. 당신 안에서, 당신을 위해서, 당신을 통해서, 성모 마리아, 성 요셉, 성 마리아 막달레나, 저를 구해주소서. 저의 하느님, 저의 적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들에게 구원을 주소서. 아멘.”

그는 죽었다. 세누시스트의 투아레그인들은 그의 소지품을 빼앗고, 은둔소 둘레에 있던 개천 속에 그를 던져버렸다.

암살자들은 배신자였다. 배신자. 샤를이 신앙이 없는 사막의 무뢰한이었던 그들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서 그 자신을 잊어버리고 역사했는데도 말이다.

 

오오! 신이여! 간디가 암살자로부터 세 발의 총알을 맞고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그게 신에게 살려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적을 용서해달라고 신께 비는 말이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수수께끼이지만 말이다.

 

(……알리기에리 단테는 배신자를 가장 중죄인으로 취급하였다. 인류 최초의 배신자는 카인이었다. 그러나 단테는 배신자의 전형으로 카이사르를 배반한 브루투스와 예수를 배반한 유다를 들었다. 그래서 배신자들의 영혼은 어둠과 증오와 영원한 저주의 지하 세계인 지옥에서도 가장 낮고 깊숙한 곳인 ‘주테카’에서 지옥의 마왕인 루시페르에게 가장 엄중한 벌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루시페르 역시 하나님을 배반했다가 천국에서 쫓겨난 천사들의 우두머리로 지옥의 상징이다.)

 

보르헤스는 말한다. 죽음은 운명이고, 운명은 반복되고, 변형되고, 병립되기도 하면서 계속 확장된다고. 늙은 가우초도, 샤를 신부도 2,000년 전의 하나의 장면이 되풀이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죽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죽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도 1979년 10월 19일 밤 그 장면은 또다시 재현되었다. 그날 밤 궁정동 안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장군은 쓰러지면서 “재규야, 너마저(et tu Jekuya)”라고 중얼거렸을까?

(장편소설 ‘사하라’의 주인공인) (주)공간의 김규현 상무는 누구보다 더 많이 사막을 사랑했고, 투아레그인 이브라함은 뼛속까지 사막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2000년 여름 운명이 그들을 사막의 시커먼 구멍 속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가혹한 운명에 맞서 싸웠던가 아니면 굴복해버렸던가. 김규현은 자기 살해를 하였던 것일까.

 

죽음의 필연성, 예측불가능성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인간의 죽음은 필연적이어서 누구도 그 사실을 피할 수 없다.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조상이 지혜의 나무에 열린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면서부터 죄악이 이 세상을 덮쳤고, 완벽했던 세계에 질병과 죽음이 생겨났다. 우리가 죽는 이유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죽음의 필연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 죽을지,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결국 그 모든 것은 운명이 결정한다. 그래서 이것은 수학적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사색의 대상이 되고 종교의 문제가 된다.

그들은 죽음의 본질적 특성인 죽음의 불가피성, 예측불가능성, 편재성을 전제로 말했다. 그리스 정치가였던 크리티아스는 말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살고 있는 이상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사람에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 것을 냉철하게 간파했다. 그래서 무지한 인간들을 설득하고 위로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삶은 죽음의 시작이다. 삶은 죽음을 위해 존재한다. 죽음은 끝이면서 시작이고, 분리이면서 한층 견고한 자기 자신과의 결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의해 환원이 이루어진다.” 그는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도 말했다.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비평가인 H.엘리스는 “고통과 죽음은 삶의 일부이다. 고통과 죽음을 거부하는 것은 삶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고,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간디는 “삶은 죽음으로부터 태어난다. 보리가 싹을 틔우기 위해 그 씨앗이 죽어야 하듯이 말이다.”라고 말했으며, 독일의 시인 안겔루스는 시집 󰡔방랑의 천사󰡕에서 “삶을 부르는 죽음만큼 멋진 일은 없다. 따라서 죽음을 통해 탄생하는 삶처럼 고귀한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또, 카뮈는 󰡔안과 겉󰡕에서 “인간은 삶과 죽음의 모순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은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삶은 귀중한 것이다. 또한 삶에 대한 절망이 없으면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고 썼다.

그들은 죽음의 숙명성을 깊이깊이 이해하고 있었기에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고,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문제에 집중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현실의 삶이란 얼마나 고달프고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가. 그렇지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은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기 때문이다 (푸슈킨).

김규현 상무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반 고흐는 별에 가기 위해 죽음을 꿈꿨다고 말했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그는 별에 살아서는 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토록 꿈꾸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그리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마치 죽음을 초월한 것처럼, 소크라테스인 것처럼 말했다. “죽음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덧없이 사라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입니다(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죽음은 삶을 변화시킵니다(It is life’s change agent.)” 그는 오랫동안 희귀한 혈액암으로 생사의 기로를 헤매면서 삶과 죽음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한 것이다. 그는 2011년 10월 5일 죽었다. 그가 죽는 순간 영혼의 존재와 그 불멸성을 확신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죽는다. 그의 쌍둥이 동생은 남쪽 바다에서 죽었고, 김규현과 그의 또 다른 동생 이브라함은 남쪽 사막에서 죽었다. 바다와 사막은 인간에게 꿈이고, 몽상이고, 신화이고, 에덴동산이었는데 말이다.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이유인즉, 미래에 닥칠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열매가 무르익으면 저절로 땅으로 떨어지듯 죽는다. 설익은 열매가 일찍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삶의 소중한 열매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러나 죽음이야말로 가장 궁극적인 이별이다. 그런데 죽음은 인간의 삶을 바윗덩어리처럼 짓누르는 무거움일까, 아니면 조금도 무게가 나가지 않는 가벼움일까. 너무 가벼워서 무거운 것일까. 사람마다 실존의 조건이 다르니까,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인간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나 역시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는 죽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죽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과학이며 모든 과학을 초월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다. 영원히 살 사람도 없고, 또한 영원히 살기를 기대하거나 확신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죽는 법을 배울 만큼 지혜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도 적다.

—오롤로기움 사피엔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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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 소설   모창 가수 유중원 2017.03.24. 107
558 소설   시인 혹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남자 유중원 2017.03.24. 94
557 소설   강물은 흐른다 유중원 2017.03.24. 95
556 소설   배반의 장미 유중원 2017.03.24. 110
555 소설   소록도 이야기 유중원 2017.03.10. 115
554 소설   사랑 유중원 2017.03.03. 105
553 소설   사랑이 뭐 길래 - 사랑에 대한 짧은 고찰 유중원 2017.03.03. 106
552 에세이   표절(剽竊)에 대한 단상 (혹은 ‘난 한물 간 가수’) 유중원 2017.01.17. 127
551 소설   낙타 유중원 2017.01.10.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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