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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제26회
고모님 시집가던 날
조 원 진
마당 가득하던 볏가리가 치워지고
콩 타작 마저 끝낸 며칠 후
고모의 잔치는 전 날부터 분주했다
툇마루 옆 작은 마당가에
까맣게 길든 전철(煎鐵)이 걸리고
지짐질 냄새는 종일 고샅을 메웠다
숙모는 무거운 콩나물시루를 이고 오시고
어떤 이는 짚 꾸러미로 엮은
달걀을 몇 줄 들고 왔다
수북하게 장작 짐을 지고 와서
부엌 나뭇간에 부리는 이도 있었다
큰 마당에 높게 친 차일 아래선
댓잎에 마주 걸린 청실 홍실이 수줍고
바쁘게 오가는 소반 위에
하얀 틀국수가 피워 낸 실고추 고명이
고모의 반짇고리에 담긴 수실처럼 고왔다
이튿날 내 상고머리 쓰다듬으며
고모는 젖은 눈으로 대절택시에 올라
신작로 먼지 속으로 아득히 멀어져갔다
나는 헛간 기둥 뒤에 오래 숨어서
두 눈 꼭 감고 혼자 술래가 되었다가
마당가 식은 재를 헤집어 보기도 하고,
고모가 저녁마다 보리쌀 닦던
두레박 우물가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사나흘을
입맛을 잃고는 앓아 눕기도 했다
그런 후에도 나는 자주 동구 밖을 서성이며
말수가 적은 아이로 나이를 먹어갔다
조 원 진(시인) --------------
민족문학작가회의 충북지회 회원. 1956년 보은 출생. 2000년 [동양일보] 신인문
학상 당선. 보은문학회 회장.
처음 올린 날: 2001년 12월 17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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