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형식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전쟁의 형식으로 바뀐다
전쟁의 형식으로 꽃이 피며
전쟁의 형식으로 새가 날며
전쟁의 형식으로 나무들이 서 있다
심지어 전쟁의 형식으로 구름이 떠 있으며
구름의 형식으로 비행기가 날아간다
일단 전쟁이 터지면 모든 것은 전쟁의 형식을 얻으며
전쟁의 형식은 굳이 내용과 구분할 필요가 없이
모든 것은 전쟁의 시간으로 바뀐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쏘는 손가락총에서
실제의 총탄이 발사되어 사람들이 죽는다
전쟁의 형식은 전쟁 이전의 하늘과
전쟁 이후의 하늘을 구별할 수가 없다
전쟁은 사람의 목숨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나 고양이나 피어있는 꽃보다도 더 가볍게 사람들이 죽는다
전쟁의 형식은 내리는 비도 피로 바꾸는
잔인성을 갖는다
투망
산 그림자가 드리워진 강심이 깊어 그곳에 강괴기들이 모여 있다 뜨거운 태양에 땅이 뜨거워지면 새들도 그늘 짙은 나무나 산을 찾아 깃들 듯 강물도 뜨거워져 강괴기들을 강 그림자 깊은 곳으로 몰았다 실제로 그곳은 강심에 난 동굴처럼 깊었다 장마철마다 여울로 깎이고 깎인 절벽 밑으로 강이 깊었고 유독 그곳에 산 그림자가 강처럼 오래 앉았다가 자리를 떴다 그러니 그곳에 강괴기들이 몰려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봉우리를 건질 듯이 투명한 그물이 쫘악 펼쳐지고 강에 내려앉은 햇살을 훑으며 그물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강에 드리워진 산을 건진다고 말은 하지만 그가 건져가는 것은 윤슬처럼 부서지는 시간 속에서 물에 가라앉은 시커먼 산봉우리의 끝점에 모인 강괴기들이었다 그의 투망은 하루에 한 번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나 단 한 번도 헛된 적이 없어 그는 산을 오르지 않고도 매일 그물로 산을 포획해 가는 것이었다
※ 나정욱
1990년 <한민족문학> 창간호에 「실습 시간」 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를 출간함.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