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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김사인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 낱으로 목을 축일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실은 도적굴로 붙들려 간 옛적의 누이라고도 하고
골방에서 평생을 난 앞 못 보던 외조부라고도 하지만
슬프고 옹색하게 생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다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 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
길이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그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달팽이는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
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더듬더듬
그토록 먼 길을
김사인 1956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였으며, 고려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82년부터 시와 문학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87년 제6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고, 2005년 제50회 현대문학상을, 2006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며, BBS FM-라디오 불교방송의 심야 프로그램 '살며 생각하며'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와 산문집 <따뜻한 밥 한 그릇>, 연구서 <박상륭 깊이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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