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한겨레신문 2002. 11. 4
베트남전 참전 아름다운 사과와 용서
지난달 24일은 한 시민단체가 `애플데이’로 정한 날이었다. `사과(apple)의 날’, 그러니까 `사과(謝過)의 날’이다.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하는 정체불명의 `데이’ 대신, 과일도 먹고 잘못도 뉘우치자는 취지가 가상해 보였다.

소설가 황석영씨에게 애플데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전지식 여부와 관계 없이, 그는 그 날을 가장 뜻깊은 `사과의 날’로 마무리한 이일 듯싶다. 이 날 서울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는 베트남 작가동맹 대표단을 맞이하는 민족문학작가회의(작가회의)의 환영회가 있었다. 베트남 작가동맹의 휴틴 총서기와 안득 부총서기, 시인 킴호아와 소설가 투이마이 등 네 사람은 작가회의가 주관한 제8회 세계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참여차 그 날 아침에 방한한 터였다. 마침 올해는 한국과 베트남이 국교를 맺은 지 10년이 되는 해여서 베트남 작가단의 한국 방문은 더욱 뜻깊게 다가왔다. 환영회장인 식당에는 현기영 이사장을 비롯한 작가회의 소속 문인과 동친특 주한 베트남 대사 등 50여 명이 모였다. 황석영씨의 발언은 현기영 이사장의 환영사와 휴틴 총서기의 답사, 이문구 전임 작가회의 이사장의 환영사에 이어 나왔다.

“작년에 <전쟁의 슬픔>을 쓴 베트남 작가 바오닌이 한국을 찾았을 때도 나는 그에게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일에 대해 사과를 했다. 전쟁 참가가 비록 나의 자의는 아니었지만,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사과를 하고 싶다. 나처럼 전쟁에 참전한 사람이든 아니든 한국인은 베트남 사람들과 만날 때면 반드시 사과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나로서는 베트남전쟁을 통해서 비로소 아시아적 정체성을 확인했다. 타의가 아닌 자의의, 주체적 근대를 확립한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동친특 대사는 황씨의 사과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과거사를 딛고 서서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해 같이 노력하자”고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과 베트남 작가들이 아름다운 사과와 용서의 장면을 연출하기까지에는 작가회의 소속 30, 40대 문인들이 주축이 된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대표 방현석)의 역할이 컸다. 지난 90년대 중반에 꾸려진 모임은 그 동안 여러 차례 베트남을 방문하고, 한국에 와 있는 베트남 노동자들을 접촉하는 등 두 나라의 우호 증진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번 베트남 문인들의 방한에 맞추어 방현석씨는 <하노이에 별이 뜨다>라는 베트남 기행문집을 펴냈고, 모임의 전 대표인 소설가 김남일씨는 그 동안 갈고 닦은 베트남어 실력으로 민영 시인의 시를 번역해서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 문인들의 베트남 방문이 잦아지면서 베트남을 소재로 한 시와 소설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이 아픈 과거사를 씻고 미래를 향해 손 잡고 나아가는 데에 `베트남 작가 모임’ 등 문인들은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