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한미FTA에 반대하는 문화예술인 1000인 선언


한미FTA 협상의 추악한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모호한 언변으로 인정한 바와 같이, 한국정부는 한미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4대 선결조건’을 미국에 헌납했다. 사안 하나 하나 그 자체로 협상의 커다란 무기가 될 수 있는 ‘의약품 가격 인하조치 중단,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완화, 광우병 쇠고기 수입재개,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선물을 미국에 고스란히 안겨주었다. 이것은 세계의 통상협상 사례에서 결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부는 한미FTA가 한국의 필요에 의해 충분한 준비 아래 추진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정부 자료를 통해 철저한 기만임이 확인되고 있다. 심상정 의원에 의해 밝혀진 정부의 제2차 대외경제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FTA추진 우선순위 국가는 중국, 멕시코, 홍콩, EU, 미국의 순서다. 즉 중국이 1순위고 미국은 5순위다. 그런데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자료에서 확인되듯, 중국이 한중FTA와 관련해 “쌀을 비롯한 한국의 민감품목에 대해선 예외인정 등 유연한 처리가 가능하다”며 대폭적인 양보의 뜻을 전하자,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과 소수친미관료들은 5순위의 미국 압력에 굴복해서 전혀 준비도 없이 급박하게 FTA협상을 추진했다. 한국의 국익을 위해 한미FTA를 추진했다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의 말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임이 자신들의 문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거짓은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8월 4일 미국 상원의원 31명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재개하지 않으면 한미FTA 협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보낸, 무례하기 짝이 없는 압력성 경고서한에는 매우 심각하고 충격적인 내용이 확인되고 있다. 한국의 모든 언론이 경고서한에 초점을 맞추면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그 서한에는 “올해 말로 예정된 FTA 협상 타결”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좌우할 한미FTA 협상을 추진하면서 겨우 6개월만에 모든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약속하고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부가 매우 급하게 서두르는 모습에서 사실임이 확인된다.

도대체 이런 엉터리 협상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좌우할 협상을 이렇게 추진해도 좋단 말인가. 노무현 정부의 무능함은 그 도를 넘어서고 있음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조순 전부총리, 정운찬 서울대 전총장 같은 사람들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한미FTA를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는 더 이상 한미FTA가 우리 사회에 미칠 심각한 폐해를 눈가림하며 국민을 기만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예술은 사회적 공공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문화예술은 한 사회의 역사적, 시대적 정체성을 담고 있다. 우리는 한미FTA가 문화예술의 사회적 공공성과 다양성을 전면 거부하고, 문화예술을 자유시장 경쟁을 위한 하나의 상품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문화예술은 ‘상품과 교역‘이 아닌 ’소통과 교류‘의 문제이다. 문화예술을 수익 창출을 위한 상품으로만 취급하여 문화 정체성과 다양성을 심각하게 파괴할 한미FTA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바이다. 이것은 전세계가 유네스코를 통해 채택한 세계 문화다양성협약의 정신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미FTA 체결을 막는 것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 정체성과 다양성을 지키며, 우리 공동체의 삶과 혼을 표현하는 문화예술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문화예술을 천박한 흥정의 대상으로 내어놓고 대다수 국민의 삶을 파탄으로 내몰 한미 FTA를 밀어붙이는 위정자들과 이에 찬동하는 소수 기득권층에 맞서 끝까지 반대할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2006년 8월 29일
한미FTA에 반대하는 문화예술인 일동


[서명 문학인 명단(212명)]
[시] 강상기, 강상윤, 강세환, 강영환, 고규태, 고선주, 공광규, 권혁소, 김오, 김경윤, 김경훈, 김근, 김남극, 김명남, 김명수, 김명환, 김선우, 김선태, 김성규, 김수우, 김수열, 김완하, 김용택, 김은숙, 김종인, 김주태, 김지하, 김진경, 김창규, 김창균, 김형효, 김해자, 김해화, 김희식, 나희덕, 동길산, 류외향, 류정환, 맹문재, 문동만, 문병학, 문창길, 박경원, 박경희, 박구경, 박대순, 박두규, 박상률, 박일환, 박종헌, 박찬일, 박후기, 박흥식, 배창환, 백신종, 서영식, 서정홍, 서홍관, 손세실리아, 송경동, 신경림, 신수현, 신현림, 심호택, 안찬수, 양문규, 양애경, 오도엽, 오민석, 오봉옥, 오인태, 유승도, 유용주, 이민호, 이봉환, 이수행, 이승철, 이승희, 이시영, 이언빈, 이윤하, 이을, 이재무, 이종수, 이종암, 이창희, 임동준, 임종철, 임희구, 장시우, 전희식, 정공량, 정세훈, 정안면, 정우영, 정일관, 조성국, 조영관, 조영옥, 조영욱, 조용미, 조재도, 조진태, 조향미, 조현설, 차옥혜, 차창룡, 채상근, 채은, 채정은, 채향옥, 최두석, 최영철, 최인호, 최자웅, 표광소, 한양명, 한영숙, 함순례, 허영선, 홍은택, 황규관 [소설] 강기희, 고광률, 공선옥, 김남일, 김서정, 김연, 김이구, 김이정, 김재영, 김정주, 김종성, 김지우, 김한수, 김해림, 노가원, 노상윤, 맥리, 박래여, 박문구, 박범신, 박종관, 부희령, 서해성, 송경아, 안이희옥, 안재성, 유민, 유채림, 유형종, 윤동수, 윤정모, 윤흥길, 이규정, 이남희, 이명한, 이상락, 이상섭, 이시백, 이인휘, 이종득, 이재웅, 이혜경, 이화경, 이후경, 임상모, 임서상, 장정희, 정혜주, 조명숙, 최성각, 하아무, 한창훈, 홍양순, 홍인기 [평론] 고명철, 고봉준, 고인환, 김동윤, 김명인, 김영호, 서영채, 서은혜, 서정오, 오창은, 이선영, 이성혁, 이현식, 이희환, 임명진, 임헌영, 정홍수, 조정환, 진정석, 최강민, 한기욱, 홍기돈, 황선열 [아동문학] 곽옥미, 김종만, 김종필, 원종찬, 이가을 [희곡] 박인배, 박인혜, 오종우, 정지창 [수필 등] 박수정, 박성한, 박석무, 이유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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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비정규건설노동자 고 하중근 씨
공권력 타살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며


인간을 물질화 하는 시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1969년 전태일의 일기 중에서)

새삼스레 37년 전, 제 몸을 불살랐던 이의 일기장을 들추는 것은, 그 시절 그이의 심정처럼 아리고 답답한 현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인간조차도 물질화 하고, 생산과 잉여의 소모품쯤으로 여기는 본성을 갖고 있더라도, 어언 40여년 세월은 그 상처를 치유하고 새살을 돋게 할 충분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일당장이 건설 노동자였던 포항건설노조의 하중근 조합원이 경찰의 불법 강제 진압과정에서 다친 뒤, 뇌사상태로 17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끝내 운명을 달리한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사인을 두고 경찰 측과 노조 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그가 경찰의 급작스런 몰이식 진압으로 사고를 당한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작년 11월 농민 전용철, 홍덕표 님이 비슷한 상황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경찰청장의 사퇴라는 홍역을 치르고도, 이런 위험천만한 대응방식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은 정권의 위계와 하달이 무시되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국가만이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라는 누군가의 정의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 하더라도, 공권력이 국민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힐 권한은 없습니다. 이는 시위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하는 기준일 것입니다.

우리는 전태일이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연민하고 그 아픔을 보듬었듯이, 여전히 아픈 노동형제들을 늦게나마 떠올립니다. 파업에 참여한 3000여 명의 노동자 중에는 47년생 전태일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들은 일당을 날리며,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파업대오에 나섰다고 합니다. 다단계 하청구조의 건설현장에서 그들은 연수입 2000만 원도 채우기 힘든 날품팔이 인생을 조금이나마 개선해 보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얼마간의 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과, 찬바람 땡볕의 노상에서 옷 갈아입지 않아도 되게끔, 쇳가루 날리는 도시락 좀 먹지 않게끔 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할인마트의 할인 물품처럼 일당조차 덤핑치는 다단계 도급제를 폐지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들은 용광로를 건설하는 사람이며, 제철소의 갖은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유지 보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콸콸 터져 나오는 쇳물도 저들의 땀방울이 섞이지 않고는 아무것도 아닌 철광석이었을 겁니다. 어떤 신기술의 제련기술도 저들이 손발을 부르트게 하지 않고서야 고품질의 제품으로 완성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포스코의 매출이익이 수 조원을 오르내리며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유명세를 탈 때, 그들은 고작 일류기업에 날품 팔러 다니는, 이른바 노가다 신세를 벗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회가 사람이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고 선언했을 때, 다가오는 것은 여전히 군홧발이요, 날 선 방패일 때, 평생을 벌어도 감당 못할 손해배상 청구일 때, 우리는 시대의 참혹한 불화와 퇴행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싸우는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고 감옥에 넣을지를 궁리하는 자본과 지방권력과, 공권력, 언론의 유착을 보노라면 군부독재 시절에 익히 보았던 ‘저들만의 회합’ 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도 적잖이 우려합니다. 봉건시대의 노동이 노예적 노동, 타율적 노동이었다면, 현대 사회의 노동은 자율적이고, 상호 소통적이며, 가치인정의 노동이어야 합니다.

서구 선진국들의 동등한 노사관계와 상생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사회의 노동과 자본간, 국가간의 관계는 구시대적 인식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단계 도급구조, 노동에 대한 보수적 시각, 부실한 사회적 논의틀은 노동쟁의가 극단적인 행태를 띠게 만듭니다. 밥은 법 이전의 것입니다. 밥이 평화입니다. 나아가 인간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노동력을 쥐어짜서 창출하는 이윤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수를 쥐어짜서 소수만 수혜를 누리는 국가 경쟁력은 착취의 경쟁력일 뿐입니다.

저들은 그야말로 이 정부가 임기 내에 반드시 해결해 주겠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기가 막히게도 지금 구속된 노동자들의 90%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우리는 양방의 폭력적 대립이라는 겉보기보다는 아우성에 숨은 그들의 애원을 보려 합니다. 저항적 폭력이 정당하냐 안 하냐의 가늠에 앞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그들처럼 살아가는 850만 비정규 노동자들, 그들의 비관과 꿈을 더 깊이 헤아려 보려 합니다.

또한 항의집회에서 시낭송을 했다는 이유로 소환명령을 내린 경찰의 행태를 보며, 공권력의 소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송경동 시인에 대한 소환명령은 당장 철회되어야 합니다. 그에게 이를 이유로 신변의 위해를 가한다면 우리 작가들은 그가 섰던 현장에서 다시 쓴 격문과 시를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이 사회가 소외와 차별에 참지 않기를 바랍니다. 개인과 가족의 욕망에만 안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웃의 가난하고 불안정한 밥상에도 연대하여 함께 앉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37년 전, 전태일이 살아 탄식하던 세상을 넘어, 제도와 의식이 함께 진화된 세상으로 한 발 더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요구>
1. 고 하중근 씨의 사인은 경찰의 자의적 발표가 아니라, 공정한 전문가 집단과, 시민사회단체의 입회 하에 숨김없이 밝혀져야 합니다.

2. 포스코 사태의 본질은 다단계 도급구조와 근로기준법의 적용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비정규 노동자의 확산과 차별 때문이므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입법안이 빨리 제정되기를 바랍니다.

3. 노동탄압의 방식으로 원성을 사고 있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구속자 남발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침해하는 요인이므로 이의 최소화를 요구합니다.

4. 포스코는 원청 책임자인 만큼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문제해결을 위해 노조와 직접 대화하기를 바랍니다.

5. 시낭송을 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송경동 시인에게 발부한 소환명령은 즉각 철회되어야 합니다.


2005년 8월 19일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서명 문학인 일동


[서명 문학인 명단]

[시인] 강덕환 강태규 고선주 고영서 고증식 고태관 국은정 권석창 권혁소 권화빈 김경 김경운 김명남 김명환 김바울라 김성철 김소내 김소인 김순선 김승해 김시민 김영곤 김영욱 김일하 김자흔 김종근 김주태 김용락 김종원 김창규 김태수 김해자 김해화 김형수 김희식 나종영 도종환 류근삼 류외향 류정환 박경록 박경조 박구경 박승민 박영희 박일환 박찬 박철영 박흥식 배성근 배성도 배재운 배재정 백종성 복효근 민영 문동만 서경숙 서수찬 서승현 서영호 서정홍 석연경 성선경 손세실리아 손인식 송경동 송문헌 송은숙 송인덕 송진 심수향 안명옥 안성길 엄하경 오삼록 오장근 오정환 오철수 유진택 윤석주 윤석진 윤은경 원종태 이강산 이경재 이광석 이명조 이복희 이봉환 이상호 이선 이승철 이응인 이정록 이정섭 이제향 이주형 이진수 이철산 이한걸 이한별 이해리 임술강 임세진 임희구 장창영 장시우 장인숙 장재홍 전희식 정규화 정대호 정선호 정설교 정숙 정우영 정용남 정진화 조성래 조재도 조진태 조숙 차옥혜 채향옥 최명진 최민영 최상해 최순옥 최영자 최영욱 최정규 함순례 [소설가] 김동민 김영도 김춘복 김한수 박래여 박치대 박혜강 우종구 송대헌 신영철 안재성 윤동수 이인휘 이재웅 이원화 임수아 전성태 정혜주 채희윤 한상준 홍새라 홍인기 [문학평론가] 고명철 구중서 김동윤 염무웅 이희환 임명진 홍기돈 [동화 등] 김미희 김종필 김창우 노상윤 박수정 박예분 서지선 안학수 이전오 오세금 이윤주 전지창 정신숙 최기우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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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서]

마을 이장을 주민들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존경하는 재판장께

그간 우리 문학인들은 반전 평화와 인권을 위해 작품을 써 왔으며, 때로는 거리로 나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시대에도, 어떤 이데올로기 하에서도 생명과 인권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존엄한 것입니다. 특히 이라크와 레바논 침략, 여중생 사망, 김선일 씨의 죽음 등 미국에 의해 일어나는 전쟁과 살인은 전 세계 나라가 다 모여도 전범으로 기소하거나 처벌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 하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더더욱 문학인들은 비분강개하며 안으로는 슬픔을 안고 작품을 쓰고, 밖으로는 평화를 부르짖으며 한목소리를 내어 왔습니다.

미군기지는 곧 우리나라의 최근 반세기 역사이며, 평택 대추리·도두리는 그 지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갖은 수난과 핍박을 당한 곳입니다. 일본군에게도 쫓겨나고 미군에게도 쫓겨났으나, 삶에 대한 의지는 위대한 것이어서 그들은 그 너른 갯벌을 맨몸으로 일구어 오늘날의 비옥한 땅을 개간했습니다. 아이들이 철조망을 따라 학교를 다녔고, 헬기가 창문과 책상을 흔들고 지나가도, 낙하산이 운동장에 떨어져도 주민들은 미군도 정부도 원망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땅을 일구며 살았습니다.

그런 주민들에게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285만 평에 달하는 땅을 다 내어놓으라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았음은 누구나 짐작하고도 남을 일일 터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평택으로의 확장 이전이 어쩔 수 없는 정부의 선택이고 국가 정책임을 십분 받아들인다 해도, 주민들과 성의 있는 대화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엄청난 공권력을 동원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며 강제 집행을 실시한 정부와 국방부의 태도를 지켜본 문학인들은 분노를 넘어 깊은 절망감에 휩싸여야 했습니다.

지금 대추리·도두리는 주택 철거를 앞두고 초긴장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문학인들이 바라는 것은 폭력적인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연로하신 분들이 태반이지만 강제 철거를 집행한다면 주민들은 위험을 불사하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나설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주민들에게 불상사가 닥치는 일을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김지태 이장뿐입니다. 김지태 이장의 구속 후 주민대책위는 국방부와의 대화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진지한 대화의 물꼬를 트고자 자진 출두한 대표가 구속되었는데, 그 어떤 단체나 구성원들이 대표를 제외한 채 대화에 응할 수 있겠습니까.

듣고 본 바에 의하면 그는 과묵하면서도 온화하고 민주적인 사람입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마을 이장으로 일하고 있다가 미군기지 확장 소식을 들었고, 그의 부모 세대의 한과 고통을 잘 알기에 그분들의 뜻을 따라 대책위 위원장을 맡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주민 공동 행동은 비밀투표를 거쳐 이루어졌으며, 그 자신이 폭력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인 만큼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폭력적인 방법을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720회를 넘게 이어온 촛불집회가 김지태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의 유일한 의지 표명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김지태 이장은 또한 합리적이고 따뜻한 사람입니다. 주민들은 풍전등화 같은 나날을 한숨과 눈물로 보내며 하루 빨리 그가 마을로 돌아오기만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마을 어른들을 존경과 예로 따르고 돌봐드리던 그가 그분들을 사지로 내모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김지태 이장을 큰 버팀목으로 여깁니다. 그런 만큼 마을을 위해 일하다가 마을 전체를 대표해서 구속되어 있는 그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합니다. 그를 계속 가둬두는 것은 그분들의 한을 더욱 깊게 만들고, 그분들의 분노를 몇 십 배로 키우는 일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 문학인들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옹호를 위한 노력을 믿고 싶습니다. 김지태 이장의 석방은 그러한 노력의 큰 결실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문학인들은 법치국가의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며, 재판정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의 성품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도주의 우려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재판장님의 따뜻한 시선과 현명한 판단으로 미군기지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이 시점에서 부디 평화적으로 역사의 한 고비를 넘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6. 8. 19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서명 문학인 일동

*8월 19일 거창에서 열린 전국민족문학인대회에서 친필 사인을 받은 서명 문학인 명단(200여 명)은 민가협을 통해 재판정에 전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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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서]

조선남 시인과 그의 동료들의 조속한 석방을 탄원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지난 6월 1일 대구경북지역 건설노동자들 파업 관련으로 구속수감 중인 조선남 시인의 조속한 석방을 탄원드립니다.

구속수감 중인 대구건설일용노조 조선남 지부장은 노동운동가이기도 하지만 오래전부터 시를 써온 시인입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그는 1989년 「아가야 어린이날에」라는 작품으로 <제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고, 2000년에는 노나메기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동인시집으로 『땅 끝에서 부르는 해방노래』와 『다시 중심으로』를 펴냈고, 개인시집으로 『희망수첩』(문예미학사 간행, 2000년)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몇 없는 귀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중졸의 학력으로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삶의 환경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했고, 소년노동자로 삶을 살아내야 했습니다. 아마 1970년 청계천의 소년 ‘전태일’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는 소년 전태일처럼 힘든 삶의 조건 속에서도 사람과 사회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꿈과 희망의 내용은 지금 그의 주장대로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과도하게 자신의 노동의 결실을 착취당하는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입니다. 그 길의 결과, 일명 양심수로 불리는 감옥 생활을 몇 차례에 걸쳐 겪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그의 죄가 있다면, 자신처럼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 온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입이 되고, 말이 되려 한 죄뿐입니다.

특히, 그는 일명 ‘노가다’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가장 멸시받고 천대받아 온 일용노동자로 그 자신이 살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사회적 처우개선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시에 쓴 그의 삶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판기에 동전 넣고 커피를 뽑는다
노동청에서 구직표를 쓰면서
경력: 용접공 14년
최종근무처: 비정규직
해직사유: 구조조정, 정리해고
쓰다말고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던진다

수북히 쌓여 있는 1회용 종이컵처럼
구직표를 쓰고 있는 버려진 사람들
- 「1회용 소모품처럼」 중에서

동무들이 책보 싸들고 학교갈 때
들에 새참을 해 날라야 했던
가난한 내 어머니의 어린 세월에서
손자재롱까지도 멀리하시며
뼈 마디마디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지금까지
안경공장 컨베이어에 매달려
안경테를 붙이는
(중략)
진통제로도 듣지 않는 허리통증을
침 몇 대 맞고 다시 공장에 가시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공장 그만 다니시라고 못하는 징한 세월
- 「죽어 마지막 소원이」 중에서

아시는 바대로 건설현장에서 조선남 시인과 그들의 동료들은 1회용 소모품보다도 못한 처우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와야 했습니다. 건설현장은 지금 조선남 시인과 그의 동료들이 구속되어 있는 불법의 사유보다 수천배는 많은 사측의 불법이 저질러지고 있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입니다. 전태일 열사 사후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들은 지금도 가장 기본적인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단계 하청구조의 맨 밑바닥에서 고질적인 임금착취와 체불, 4대 보험에서의 제외 등 각종 차별들을 수십년동안 감내하며 살아 와야 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화두인양 얘기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사회양극화의 맨 밑바닥에 수십년전부터 ‘잊혀진’ 그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건설일용노동자들은 우스개소리로 얘기하기도 합니다. IMF사태가 고맙다고요. 일명 ‘노가다’들은 IMF 이후 비정규직의 과도한 양산과 양극화의 심화 이후에야 비로소 ‘덩달아’ 사회적으로 관심받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조선남 시인,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 삶의 밑바닥 속에서 일용공 비정규직들의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함께 해 왔습니다. 그의 실정법 위반이 결코 작지 않다 하더라도 생각하면, 그의 활동은 ‘탄압’과 ‘구속’의 대상이 아닌 ‘사회적 격려’와 ‘사회적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사회가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 가해 온 수십년동안의 각종 불법행위와 차별행동들을 생각한다면, 금번 대구건설일용노조가 요구한 최소한의 요구들은 정당함을 넘어 우리 모두가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들어섰다고 하지만 사회 민주화는 그들의 현실에서 보자면 아직도 너무도 먼 미래일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대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삶과 꿈을 알리고 소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방식이 ‘파업’이라는 형식이었을 뿐입니다. 사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방식은 ‘파업’만이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법적으로도 노동자들의 파업은 적법한 것으로 보장되고 있습니다. 여하튼 조선남 시인은 꿈을 잃지 않고자 했습니다. 동료들에게 꿈을 잃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들이 꿈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겨운 의미인지를 그는 시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더 이상 빼앗길 그 무엇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다
해약한 보험이 남아 있거나
몇 달치의 퇴직금이 남아 있는 것도
버림받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자존심도 없다
그래도 우린 희망이다

우리들 지켜줄 수 있는
무슨 법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우린 희망이다

국민의 정부에 버림받은 국민으로
우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랴
아무런 제도적인 보호도 없이
아무 때나 쫓아버릴 수 있는 임시직노동자
우리에게도 희망이 남아 있다
바로 당신이 희망이다

재계약에서 탈락하고
일용할 하루의 양식을 위해
두 마디 잘려나간 손가락에도
10년 세월 손에 익은 용접기술 하나로
이 하루를 버리지 않고 하루 품 팔러나가는
당신망이 우리들의 희망이다
- 「그래도 우린 희망이다」 중에서

이처럼 그는 현실운동가이기 전에 시인이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사회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기에 시는 적격이었습니다. 시인의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치열하게 사회연대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무슨 사회적 불순분자가 아닙니다. 불온세력이 아닙니다. 이념에 경도된 무슨 주의자도 아닙니다. 그를 운동의 길로 이끈 것은 우리의 사회 현실이었습니다. 그 현실 속에서 너무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200만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삶이었습니다. 그 삶이 조금은 더 존중받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람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시에 나타난 사람들의 삶은 참혹합니다. 몇 편의 부분만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객지 공사 떠돌면서
오랜 일 벗이 되어 온
김형의 손놀림
숨소리까지 맞출 수 있었던
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공공근로마저 탈락하고
아내는 영영 소식도 없다고 한다
- 「빈 손」 중에서

불을 밝혔다
마누라까지 공사장 데리고 나와
해장소주부터 큰잔으로 들이붓고
칼자루를 잡았다

미친 듯이 돈내기에 매달려
공사장에서 전기장판 한 장으로
작업복을 입은채 쓰러져 잠들고

질긴 목숨, 몇 번이나 끈을 놓고 싶어
아찔한 외벽타기 미다시 작업에
밥줄 메어보기도 했다

아! 이제는 정말
뜨겁게 목줄 타고 흐르는 소주 한 잔 없으면
손이 떨리고 벽이 흔들린다
이러다 얼마나 더 버틸는지
질긴 목숨 얼마나 더 붙어 있을는지
- 「미장공 서씨」 중에서

이 비 긋고 날 풀리면
다시 역전에라도 나가봐야겠다며
작업복을 챙겨넣는 선반공 김형
생명보험이라도 들어놓고
까마득한 비계파이프 위에서
손을 놓고 싶었다는 비계공 이씨
- 「봄비」 중에서

이처럼 구체적이고 아픈 현실이 그를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로 살게 했고, 시를 쓰게 했으며, 파업을 주동하도록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그리고 함께 구속된 그들의 동료들은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전태일열사는 30여년전 건설일용노동자로 1년여를 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전태일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늘 우리 사회의 전태일입니다. 단지 그들은 죽지 않고 나이를 많이 먹도록 살아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우리의 귀를 열어야 겠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미안함을 받아야 하는 소중한 시민사회의 일꾼들입니다.

부디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해 봅니다.
차갑고 형해화된 법전의 문구가 아닌, 사회의 공공성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삶의 존엄이 먼저 고려되는 진정한 법의 정신이 구현되기를 바래 봅니다.


2006년 8월 19일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서명 문학인 일동

*8월 19일 거창에서 열린 전국민족문학인대회에서 친필 사인을 받은 서명 문학인 명단(200여 명)은 다음날 대구에서 열린 재판정에 전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