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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배려로 어느 창작촌에 장기 입주를 했다가 퇴촌할 때가 되어 방을 구하려다 보니 새삼 내가 하층민이라는 게 실감되었다. 더는 얹혀 살 곳도 없고 여름 한 철만이라도 어머니 밥을 얻어먹으며 지내보자 싶어 고향에 내려갔다. 경험으로 알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이 보약이다. 때는 장마 즈음이었고 고향의 들판은 복분자를 수확하느라 일손들이 머리를 맞대다시피 모닥모닥 들러붙은 걸 쉽게 볼 수 있었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손톱만한 복분자가 속절없이 떨어지고 말 것이므로 밭 임자들은 속깨나 보깨는 날들인 것이다. 밭 임자만 그럴까. 일손들 역시 재촉하는 주인 속을 모른 체할 수도 없고 그보다는 까맣게 영그는 복분자가 썩어 뭉개지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는 타고난 농사꾼다운 바지런함 때문에라도 절로 손길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하루 품삯은 변함없건만 고된 하루들이 계속되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보약 같은 밥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나는 괜히 심통이 나서 새벽에 나갔다가 해 저물어 돌아오는 어머니에게 돈 많이 벌어다 드릴 테니 고만 좀 허고 쉬세요,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대체 품삯이 얼만데 기를 쓰고 다니세요, 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작년까지만 해도 사만원이었는데 올해는 오만원씩을 준다며 환히 웃으시는 거였다. 그 순간 소설 나부랭이 쓴다고 폼 잡으며 허송세월한 덕분에 허옇고 투실투실한 내 손가락이 열없어지는 거였다. 원고지 장당 일만원이 아니라 오천원짜리라도 감지덕지 받아들이는 나이긴 하지만 뙤약볕 아래 고된 노동을 평생 달고 사는 어머니에 비할까.
함민복 시인은 ‘긍정적인 밥’에서 이렇게 말했던가.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긍정적으로 살기 되게 어렵다.
<2010.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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