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회원새책
|
|
|
|
<책 소개>
15년의 긴 기다림
손진은 시인이 15년의 침묵을 깨고 세 번째 시집 『고요 이야기』를 출간했다. 첫 시집을 통해 그는 ‘존재를 여는 시인’(김혜순)이란 평을 받으며,90년대 우리 시의 한 정점을 보여준 바 있다. 그는 사물이 함께 참여하는 시를 빚어내어 우리 시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던 시인이다. 두 번째 시집에서 그는 “생명의 촉감들과 구체적 실감의 세계를 단정하고 정치한 수사로 표현해내며, 메마른 세계에 온기를 전하고 사위어가는 존재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역동적인 상상력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번 세 번째 시집에 이르기까지 그의 침묵은 무려 15년에 이른다. 이 점이 예사롭지 않다. 대체로 요즘 3,4년 주기로 시집을 묶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그가 15년 동안 시집을 묶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외피가 화려해지고 응집이나 축약의 언어 대신 수다를 떠는 듯한 시들이 득세하는 현 시단의 세태에 대한 말없는 응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그의 이번 시집은 그 가치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형식의 파괴, 중얼거림의 언어들이 ‘낯선 새로움’으로 평가받고 있고 있으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허함이 가득한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게 우리 시의 현실이다. 하여 이번 시집의 주제가 ‘고요’가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격렬한 고요의 언어
그가 보여주는 고요는 그러나 ‘격렬한 고요’이다. “배추벌레 한 마리가 ‘고요하게’ 사람의 눈을 피해 어디론가 기어갔을 따름인데, 화자의 몸속엔 ‘천둥소리가 울릴 만큼’,사물을 대하는 그의 시선은 정적으로 보이나 미세하게 움직임을 예리하게 포획하고 있다. 그의 서정적 상상력은 매우 역동적이나 동원된 언어들이 고요의 외피를 덮고 있어서 얼핏 보면 역동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그만의 전매특허인데, 추천사를 쓴 오세영 시인이 “온통 자신들의 말만을 앞세우는데 소란스러운 요즘의 우리 시단에서 손진은 씨는 외롭게 사물들의 말을 듣고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해독해”내는 시인이라 평한 것은, 매우 적확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는 표제시인 「고요 이야기」에서 “살을 데우는 팔월의 대낮이 만드는 고요의 허파 속에선/개들도 벼들의 노래를 들을 줄 안다”라고,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도 벌어지고 있는 식물과 동물 사이의 교감까지도 섬세하게 관찰할 줄 아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는 “흔들리며 출렁이는 말들이/생의 낟알과 배열을 다 바꾸어놓는다”(「수국」)고 할 정도로 언어에 민감한 시인이다. 독자들은 즐거이 그가 듣고 있는 사물의 말 - 벼, 포도, 수국, 해바라기, 사과, 목련, 복사꽃 …… -, 심지어 글자의 말(「숙영식딩」)에 이르기까지 그가 도달한 언어의 성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毒을 품고 있는 시
그는 사람과 사물 사이, 그리고 사물과 사물 사이에 한 편의 詩가 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사물의 안에도 오롯이 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편들은 “먹물 뒤덮인 내 창자에/한 번도 쓰지 않은 서늘한 독(毒)”(「뱀」)을 품고 있다. 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칫하면 독에 감염돼 온 신경이 마비될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증거! 그러나 독을 품고 있는 그의 시는, 결코 화려하지 않으나 그 속에 들끓는 고요를 품고 있는 탓에 처연히 아름답다. 마치 강물이 고요하게 흘러가는 듯이 보이나 그 속엔 가파르고 시퍼런 질주가 있듯이… 그러므로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이렇게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앞으로도 눈치 보지 않고 사물과 언어를 또록또록 눈뜨게 하는 일에/나를 녹여 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것은 화려한 외피에 둘러싸여 정작 시의 본성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 시의 현 세태에 대한 온몸을 바친 투신이다. 1인 시위가 다수의 시위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가 무려 15년의 침묵을 깨고 들고 나온 무기는 아주 연약해 보이는 ‘고요’이다. 하지만 보라.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 고요의 눈이 사물과 소통할 때 얼마나 부드럽고 따뜻해지는지를…. 이 시집은 그가 왜 우리 시의 중심일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결정체이다.
<차례>
1부
별의 잠
만두―시를 위하여
유쾌한 검객―소나무
수국
나의 잘 나오지 않는 볼펜
숙영식딩
중년
봄동배추를 씹을 때
나무의 후손
길
고요 이야기
고요, 격렬한―내 발 앞의 배추벌레
포도들
2부
소리를 담다
진주 목걸이
항아리에 바친 산
어떤 부활
벌게진 귀
섭섭한 집―빠지는 발톱의 목소리로
누에들
가을 사과나무의 말
학교 주차장의 꽃들
덩굴들
뱀
두 채의 음악-석가탑과 다보탑
사과나무 음악회
푸른 눈들
3부
영덕 복사꽃
복사꽃 그녀
해바라기
목련 1
목련 2
목련 3
산수국
항해
거미집
어떤 예배
콩나물
말을 내다걸다
밤, 배롱나무
불 먹이는 밤-대금
사랑
4부
발자국은 때로 얼마나 징그러운가
무덤은 시간을 넘는다
지금도 어느 물기 머금은 눈이 나를 보고 계신다
계단의 깊이
악어새에 관한 명상
그 절간 앞의 와송臥松
휘둥그레진 눈
대흥사 입구
성
언제나 네 살배기인 봄
어떤 유모
폭설
질투
닭과 모란
해설 이승하-고요함 속에서 생명을 키우는 것들
<추천사>
인간은 이 세계 혹은 우주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자는 그 세계 내 사물들이 들려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시인이라 일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통 자신들의 말만을 앞세우는데 소란스러운 요즘의 우리 시단에서 손진은 씨는 외롭게 사물들의 말을 듣고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해독해 낼 수 있는, 몇 아니 되는 시인들 중의 하나이다. 그의 신선하고도 아름다운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독자들께서는 이제 이 시집을 통해 인간의 말이 아닌 사물들의 통화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예술원 회원)
<저자 소개> | 손진은 010-6658-6079 sonje@kyongju.ac.kr
 경북 안강에서 태어나 경북대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1995년 매일신문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시론서 『현대시의 미적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한국 현대시의 정신과 무늬』『현대시의 지평과 맥락』『시창작의 이론과 실제』(공저) 등이 있다. 1996년 대구시인협회상을 수상했고, 현재 경주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