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회의 모순을 생생하게 재현해온
소설가 정도상의 신작 소설집 [모란시장 여자]
(창작과비평사, 2005년 3월 30일)
<누망>으로 2003년 단재상을 수상한 작가 정도상의 신작 소설집이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 초에 씌어진 여섯 개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하류층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는 각각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서사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타락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인 동시에, 이념의 갈등에서 비롯된 분단의 비극적 희생양들이다. 그들은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 2세, 남파 간첩의 아들, 장기수의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우리가 처한 분단 상황을 보여준다.
'부용산'은 작가가 오랜 동안 몰두해온 서사적 탐구를 결집해 쓴 소설. 이념 때문에 개인의 한평생을 포기한 장기수와 그의 어머니를 그려내면서 한국 사회가 대면해온 이념의 진정한 의미를 캐묻는다. 수록작 중 유일한 중편 소설인 '구름의 서쪽'은 건달들의 폭력으로 맹인이 된 한 젊은이가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사랑과 봉사의 생활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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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1987년 단편소설 <십오방 이야기>로 등단. 소설집으로 [친구는 멀리 갔어도], [아메리칸 드림]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로 [시간의 상처],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그대여 다시 만날 때까지], [열애], [지상의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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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이미 편안하게 가셨네." 고인수 선생은 노모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면서 침착하게 후배를 말렸다. 과연 그랬다. 노모의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번져 있었다. 나는 그때 혈관 속의 피가 바싹 마르는 듯한 강렬한 그 무언가를 느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떨리게 하는지. 나는 뚫어져라 시신을 응시했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그 무언가는 한 인간이 소멸하는 순간에 지어낸 불멸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나는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막혔던 것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러곤 비로소 나만의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예감에 다시 한번 진저리를 쳤다. -- '부용산' 중에서
::추천글
소멸과 파탄의 끝에서 새로 열어가는 초생(初生)의 빛, 어둠속에서 한 발짝씩 희망의 발걸음을 내딘는 그의 걸음걸이가 믿음직스럽다. 더욱 명징해지는 시대정신,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고 따듯해진 마음의 온기와 사랑과 관용과 화해와 해원의 서사를 읽을 수 있어서 좋다. - 도종환 (시인)
소설 '부용산'은 소멸해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절창이다. 매일매일 불멸을 꿈꾸는 우리에게 정도상은 말한다. 불멸은 재앙임을, 거름이 썩어가며 새로운 생명을 길러내듯이 우리의 삶도 부패하고 소멸하면서 비로소 새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 방현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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