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도는 유랑민들의 풍경을 차분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공선옥의 신작 소설집 [유랑가족]
(실천문학사, 2005년 3월 31일)

세상을 품는 어미의 손길로 우리네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는 작가 공선옥의 연작소설집. 밑바닥 인생들의 생명력을 날카롭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2002년 봄부터 2003년 봄까지, 계간 「실천문학」에 5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단편들을, 2년여의 개고 기간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이 소설의 '유랑'이 의미하는 바는, 가진 것 없이 태어나 현실세계의 권력 궤도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자, 가난의 형상이다. '가족'은 산업화의 제물로 집과 처자식을 빼앗기고 파편화된 한국 사회의 현재적 가족을 의미한다.

잡지사의 청탁으로 시골 풍경을 취재하러 간 사진작가 '한'의 눈에 신리 사람들의 풍경이 포착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의 눈을 통해 서울과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각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적인 관련성이 드러난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도시에서 시골로, 다시 시골에서 도시를 떠도는 유랑민들이다. 식구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각지에 흩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은 소설의 각 부분을 이루며, '유랑가족'이라는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공선옥 1963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1년 계간「창작과 비평」겨울호에 단편 '씨앗불'을 발표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 제 13회 신동엽창작기금을, 2004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작품으로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시절들>,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밤의 길거리는 휘황하다. 영갑이 느닷없이 웃어제낀다. 영갑이 웃는 것을 보니 달곤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어른들이 웃는 걸 보고 아이도 웃는다. 자지러지게 웃는 두 사람 곁을 사람들이 흘낏거리며 지나간다. 한참을 웃다가 문득 영갑이 묻는다.
"왜 웃어싸시요?"
"자네는 왜 웃었는가?"
"몰라라우."
달곤이 영갑의 아이한테 묻는다.
"아가, 너는 왜 웃느냐?"
"안 웃으면 슬프니까."
아이의 그 말에 두 남자는 정말 슬픈 표정으로 상점 유리창에 비친 자신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추천글

공선옥이라는 작가는 땅불쑥한 놀라움이다. 정처 없는 중생들 팍팍한 애옥살이를 한결같이 미좇아가는 것이 그렇고, 작가 자신 삶이 그러하다. 우리 소설 동네에 작가는 많지만 밑바닥 중생들 삶에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로는 공선옥이 유일하다. 또한 우리 작단에 아직도 밑바닥 중생들 삶에 애정을 보여주는 작가는 더러 있지만 공선옥만큼 그들 삶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작가도 없다. 공선옥 마음이 진활(眞活)한 까닭이다. 오늘도 '산업화'라는 제물한테 집과 식구들을 빼앗긴 '유랑가족'들은 정거장으로 간다. 어디로 갈까. 우두망찰하는 사이 기차는 달려오고 달려가는데, 아이들은 숨넘어 가는 소리로 울어쌓는다. 세 아이를 등에 매어단 우리 작가 공선옥은 어디로 갈 것인가? - 김성동 (소설가)

가난은 단순한 물리적 결핍이 아니라 모멸이며 소외다. 가난은 뿌리뽑혀 거덜나는 삶의 해체이며 이 세상의 변방을 겉돌고 헤매는 유랑이다. 공선옥의 새 소설은 산간 농촌이나 지방 소읍 또는 대도시의 변두리를 유랑하는 사람들의 거덜난 삶의 모습을 사실적 시선으로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거덜난 사람들은 그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관계를 해체시키지만, 그 소외와 해체를 강요하는 힘에 맞서기 위해 다시 새로운 인간관계를 꿈꾸고 실천한다. 뿌리뽑혀 떠도는 삶 속에서 다시 맺어지는 이 관계들은 삶의 재건이고 삶의 긍정이다. 사람들은 이 맺어짐 위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거나, 또는 나아가지 못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괴로운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세상의 본질은 어질지 않다. 타인이 나의 '남'이라면 나는 타인의 '남'일 것이다. 관계맺기란 이 괴로운 차단 앞에서 그 차단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가엾고 끈질긴 열망이다. 해체와 유랑과 재편성의 모든 과정을 받아들여서 새롭게 짜여지는 삶의 망(網)을 보여주는 것이 공선옥 소설의 힘이다. - 김훈 (소설가, 자전거 레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