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반가사유상 外 1편/ 나 욱:시인뉴스 포엠 (poetnews.kr)
반가사유상
저 사람은 언제 어디서 목욕하고 저기에 앉아 있을까
저기 저 자리에 앉아 있는 저 사람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식사를 했을까
저렇게 앉아 있는 저 사람은 언제부터 저렇게 앉아 있는 걸까
누굴 생각할까
무얼 생각할까
저렇게 앉아 있다 저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걸까 가기는 가고 갈 방향은 있는 걸까
집도 있고 만날 사람도 있을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다행히 일어날 수 있겠다
딸기의 저녁
외로운 시를 읽다가 눈을 감으니 거대한 딸기가 허공에 달려 있습니다
구름처럼 바위처럼 떠 있는 딸기가 빨갛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들지도 먹지도 못할 거대한 딸기가 허공에 떠 있습니다
저녁에 혼자 떠 있는 저것은 외로운 구름입니다
아이들이 딸기를 야구공처럼 던지고 놀고 있네요
아이들이 던진 딸기를 맞고 아이들이 빨갛게 젖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적어도 딸기 맞고 죽은 아이는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저기 아이들이 눈싸움하듯 딸기를 던지며 놉니다 거기에
어른들도 딸기를 따 먹기 위해 동참합니다
외로워서 술만 마셨던 딸기코 아저씨도 아이들과 놉니다
딸기는 뭉개져도 사람들은 다치지 않아 좋습니다
야구공 대신 딸기를 던지면서 야구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야구 배트에 터지는 딸기 딸기 딸기공 그러나 괜찮습니다
모두 외로운 사람들의 외로움을 이기기 위한 놀이입니다 그래도
서로들 멱살잡이하지 않고 서로에게 악다구니 하지 않고
딸기나 먹어라 딸기나 따 먹으라고 그런 마음으로 딸기놀이 하는 게 어딘가요
외로운 시를 읽다가 거대한 딸기구름을 떠올리며
사람들의 손마다 사람들의 입마다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빨갛게 적시는
딸기에 대해 생각합니다 딸기가 있는 한 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라
생각하고 안심하며 외로움을 까만 딸기씨처럼 구름에 심습니다
이 세상의 외로운 사람들은 안심하고 딸기를 먹어보세요
당신의 외로움이 한결 잦아질 겁니다 딸기가 원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가슴에 딸기가 익었습니다 구름에 심었던 딸기씨가 내려와 당신의
가슴에 빨갛게 딸기로 익었습니다
※ 나 욱(본명: 나정욱) 시인
1990년 <한민족문학> 창간호에 「실습시간」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상상인』 제4호(2022년 여름호)에 「비의 아버지」, 2022년 『모던포엠』 10월호에 「미역의 시간들」, 「창작과 비둘기」를 발표함. 시집으로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가 있음.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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