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poetnews.kr/13100
그 방의 슬픔
아내의 외출을 막지 못하고 나는 혼자 앉아서 아내의 방을 보고 있다
아내의 방은 아내처럼 외롭게 비어 있다
도대체 아내는 내게 뭐 사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도대체 나는 아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지를 못하겠다
아내는 내게 화장품이나 옷 같은 것을 사 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건 여자로서 정말 드문 경우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신 아내는 잘 웃는다
대신 아내는 말을 잘 한다
아내가 외출하고 난 방에 슬픔이 찼다
나는 아내가 웃음하고만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내가 외출하고 난 뒤에 나는 반성한다
나는 아내와 어떻게 살고 있었던 것이지
나는 아내의 뭐지
믿을 만한 슬픔의 깊이
둘 다 눈물이 있을까요
눈물의 깊이가 다를까요
분명 태생은 다른데 왜 같은 집에서 사는지
영문은 알까요 왜 영문은 영문을 모른다고
그렇게 쓰는지 모르잖아요
모르겠어요
가장 깊은 눈물의 샘을 달고 다니는 글자가 무언지
모르겠어요
산이라고 말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산의 높이를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강도 마찬가지고요
당신의 믿음과 슬픔의 높이는 당신이 말하는 산의 높이만큼은 되나요
산의 꼭대기에서 말하는 믿음과 슬픔은
산에서
발원한 강의 줄기만큼이나 길고 깊은가요
믿음과 슬픔의 깊이를 알면 그것들과 함께 다니는 것들의 눈물의 깊이도
알 것 같습니다
※ 나 욱(본명: 나정욱) 시인 약력 (nhapooh@hanmail.net)
1990년 <한민족문학> 창간호에 「실습시간」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2019년에 시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를 출간하고, 2021년에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를 출간함. 『상상인』 제4호(2022.여름호)에 「비의 아버지」를 발표함.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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