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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21회
시간의 주인
박 영 숙(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죽음의 집의 기록’은 ‘시간의 주인’이 되고자 하
는 인간의 기본욕구를 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죄수들에게 맡겨진 일은 보통 낡은 배를 부수어 장작을 만드는 것이었다. 장작
따위는 그 지방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어서 죄수들의 노동은 그저 무익한 움직
임에 불과했다. 노역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죄수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작업
장으로 나간다. 그들을 못 견디게 권태롭게 만들었던 것은 그들 자신이 시간을
전혀 계획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죄수들에게 시간이란 이미 자신의 것이 아
니었기 때문이다. 한나절 아무런 기대도 없이 노동하는 한 그들은 끝없이 나태
하고 게을렀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도 일의 숙련이란 결코 있을 수 없었
다.
그런 그들에게 한 겨울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이 맡겨지면 사정은 달라졌
다. 하루치의 작업량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느릿느릿하게 낡은 배를 부수는
것보다는 훨씬 고된 일이었는데도 어느새 기분까지 명랑해져서 전력을 다한다.
휴식 시간을 자신이 만든다는 것, 전력을 다하면 시간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들에게는 그것이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죽음의 집과 같은 감옥보다는 햇볕
아래의 작업장이 어쩌면 더 낫다고 여겨졌을 터인데도 그들은 자신이 애써 만
든 시간을 누리기 위해 감옥의 거처로 돌아가고 싶어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하루 종일 벨소리에 따라 움직이며 시간을 메우는 요즘 아
이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운용하고 관리할 기회란 거의 없다. 오래된 습
관처럼 주어진 시간들을 채운다. 그러니 수고 뒤에 오는 기쁨이나 보람 또한
잘 모른다. 그토록 긴 수업 시간을 견디고도 전력을 다한 뒤에 얻는 휴식의 진
정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입시를 도외시할 수 없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학생들의 학습관리가 중요한
사안이긴 하다. 그러나 실력향상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학습시간을 무한정 늘
리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일곱 번 혹은 열 번의 벨소리가 울리
고 나면 그럭저럭 채워질 하루. 그 사이 사이 장면 전환을 위한 잠깐의 암전
(暗電) 같은 시간의 부스러기들. 아이들 스스로 힘으로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
한 연습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오늘의 작은 계획을
세우는 훈련이 필요할 때이다. (국제신문 수록)
처음 올린 날: 2002년 4월 20일(토)
박영숙(소설가) --------------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산지회 회원.
E-mail : ysp60@hanmail.net 200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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