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두



이가을




"발 좀 이리 내 봐라"
저녁을 먹고 나서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내 오른 발목을 잡고 발바닥을 뼘으로 쟀다. 내 발은 아버지의 뼘으로 꽌 찬 한 뼘이었다.
"됐다."
"뭐가요?"
"아니 그냥. 한 뼘은 안 넘는 거지?"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내 발을 재 보고는 안심하듯 말했다.
그리고 나서 한 달 쯤 뒤에 아버지는 구두를 한 켤레 사 오셨다.
"신어봐라. 영재도 이젠 구두를 신어야지. 아주 튼튼하게 잘 만든 구두다."
"여보. 웬 구두예요? 퍽 바쌀텐데. 당신 신발두 골삼년이나 신어 다 낡았으면서......"
어머니가 구두를 앞뒤로 돌려보면서 말했다.
"싸게 샀어. 정식 구둣방에서 산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잘 지은 구두다. 가죽도 좋구. 어디 신어봐. 맞을 게야."
아버지는 나에게 억지로 구두를 신겼다. 구두는 꼭 맞았다.
"일어서서 걸어봐. 그래그래. 우리 영재 아주 멋지구나."
아버지는 아주 흐믓해 하시며 담배 한 대를 꺼내 무셨다.
"영재야. 아껴아껴 신어라. 우리 형편에 과분하다는 거 너도 알지? 어떻게 사 오셨는지 모르지만 아버지께 고맙다구 말씀 드리구."
어머니는 내 구두를 몇 번이나 만져보며 대견해 하셨다.
그 검정 구두는 두 구멍짜리 끈을 매게 되어 있는 유행이 한참 지난 모양이다.
"열심히 신구 다녀. 다 떨어지면 또 새 구두를 사 줄테니."
"운동화 신구 다니는 애들두 많아요."
나는 구두 신기가 영 불편했다.
우리 집은 우리 반에서 몇 손 꼽히게 가난하다. 부모가 맞벌이 하는 애들도 많았지만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벌어도 언제 셋방을 면할지 알 수 없다.
"시장 골목 중간 쯤에 말여. 구두 수선 가게가 있지? 그 신기료 양반이 손재주가 있거든. 그런데 가죽이 어디서 났는지 이 신발 하나를 만들어 놨지 뭐냐. 꼭 영재 사 주고 싶었지. 담배를 두 달만 안 피면 될 것 같아서 딴 데 팔지 말라고 했지. 허허 참."
영재는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갔다. 오전에는 괜찮았는데 오후부터 발이 아파서 도저히 신고 있을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 내내 신발을 벗고 신발 등 위에 발을 얹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벗었다가 신자니 다시 신을 수가 없었다. 발등까지만 신고 발 뒤꿈치는 들고 다녔다.
다음날은 헌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다. 발이 그렇게 편하고 날아 갈 것 같았다.
"영재야. 왜 구두를 안 신냐? 아껴 신느라고 그려? 열심히 신어. 굽이 다 닳으면 새 굽 갈아대면 되구, 삼년두 더 신을겨.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나 봐라."
"오늘 체육 시간이 들어서요.."
영재는 될 수 있으면 구두를 안 신으려고 했다. 작아서 못 신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소풍 가는 날 어머니는 구두를 꺼내놓고
"신구 가거라. 아버지가 서운해하신다."
하고 더 말을 못하게 했다.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 걸어야 하는 소풍 길에서 영재는 죽을 지경이었다. 차라리 맨발로 걷고 싶었다.
"너 왜 그래? 어디가 아프니?"
옆에 가던 준오가 말했다.
"신발이 작아서 그래. 발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
"그러구 보니 너 구두 샀구나? 첨엔 그래. 너 발 얼만데? 나는 오래 신으라구 너무 큰 걸 사 줘서 골친데."
준오는 뒤꿈치가 손가락 두 마디는 넘게 남는 큰 운동화를 신은 게 아니라 질질 끌고 있었다.
"어디 봐. 너 나보다 발 작지?"
준오네도 우리와 비슷하게 가난했다. 나는 준오와 신발을 바꿔 신었다. 준오도 나도 발이 편했다.
"야, 우리 아주 신발 바꾸자."
나는 두 달, 아니 석 달쯤 담배를 참으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고쳐 말했다.
"아주는 말고 학교에서만 바꿔 신자. 그러면 참 좋겠다."
준오도 고개를 끄떡였다.
우리는 학교에 가면 신발부터 바꿔 신었다. 그 맞지 않는 신발로 인해서 준오와 나는 친해졌다. 그런데 두 달쯤 지났을 때 그동안 내 발이 그만 쑥 컸는지 구두에 발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삼 년은 신을 수 있다며 아침마다 검정 구두약을 칠해서 반짝반짝하게 닦아놓는 구두를 작아져서 못 신겠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오는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양호실에 가더니 그대로 조퇴를 해 버렸다. 나는 준오네 집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준오의 운동화를 신고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신발을 숨겨놨다.
나는 아버지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밥도 먹지 않고 학교로 내뺐다.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 준오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많이 아픈 게 틀림없었다.
나는 청소 당번이 청소를 다 하고 교실 문을 잠글 때까지 교실에 있다가 운동장으로 나왔다. 아침도 안 먹고 도시락도 못 싸와서 배가 무척 고팠다. 몇몇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 애들이 돌아갈 때 나도 교문을 나섰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도 신발을 안 들킬 수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까. 혼나더라도 사실대로 말씀드릴까. 이제는 더 신고 다닐 수도 없는 신발이다. 나는 먼 길로 돌아서 천천히 집으로 갔다. 안 들키면 다행이고 들키면 혼나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왜 이렇게 늦었니? 들어가자."
아버지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내가 현관에다 신발을 벗자 아버지는 뒤따라 들어오지 않고 그 자리에 서 계셨다.
"아니, 너 구두 어쨌냐?"
"아버지....."
"구두는 어쩌구 웬 운동화를 신구 왔어!"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노여움이 담겨 있었다.
"신발을 잃어버렸어요."
나는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뭐라고? 잃어버렸다고?"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셨다.
"여보. 무슨 일이예요?"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셨다.
"다시 말해봐라. 구두를 잃어버렸다구 했니?"
"........."
"아니 영재야. 구두를 잃어버리다니, 그게 어떤 구두인데?"
어머니가 나보다 더 어쩔줄 몰라했다.
나는 그 날부터 죄인이 됐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도 한 마디도 않으셨다. 자식에게 처음으로 사준 구두였으니 그러실만 했다. 나는 몸둘바를 몰랐다. 그런데 너무 오래 아버지가 내게 말을 안 하시자 나는 슬그머니 화가 났다. 작은 구두를 억지로 신고 다닌 내 고충을 아버지는 짐작이나 하셨을까.
준오는 일주일만에 학교에 왔다. 많이 아팠는지 얼굴이 핼쓱했다.
"영재야 미안해. 너 구두 땜에 안 혼났니?"
"혼나긴. 신발이 작아서 아예 친구랑 바꿨다구 얘기했지 뭐."
나는 호기롭게 말했다.
"안 혼났어? 비싼 구두랑 싼 운동화랑 바꿨는데 안 혼났어?"
"혼나긴 뭐.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째째한 분인줄 아니? 그러니까 이제 그 구두는 네 거구 이 운동화는 내 거야. 잘 되지 않았니?"
"사실대루 말씀드리지. 이제 신발 바꾸지 말자. 나두 구두 땜에 아버지에게 혼났어. 오늘 당장 운동화루 바꿔 신고 가야 돼. 자 네 구두 신어."
준오는 구두를 벗었다.
"야. 안돼. 사실은 신발을 잃어버렸다구 했단말야. 그리구 이젠 발이 들어가지두 않는데 어떻게 신니?"
정말 구두는 내 발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두 억지루 신어봐. 나 이 구두 도로 신고 가면 혼나."
준오도 막무가내였다. 나도 얻버텼다.
우리는 신발을 가지고 하루 내내 실랑이를 했다. 수업이 파하자 나는 준오가 잡을 새 없이 집으로 도망쳤다.
다음날 준오는 낡아서 발이 잘 걸리지도 않는 헌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왔다. 그리고 준오는 나한테 한 마디 말도 안 했다.
점심 때 준오 어머니께서 내 구두를 들고 학교에 오셨다.
"어떤 학생인지는 몰라두 비싼 구두랑 싼 운동화를 바꿨다지 뭐예유. 준오를 혼냈는데두 그 학생이 안 바꿔 준다구 해서 지가 가지구 왔어유."
"이 구두 임자랑 준오는 방과후에 선생님 보고 가거라."
준오는 엄마가 다녀가자 더 화가 나서 나를 사납게 쏘아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 둘이는 교무실로 갔다. 우리 얘기를 들은 선생님은 내게 구두를 신어보게 했다. 내 발은 들어가지 않고 준오 발에는 여유 있게 맞고 보기도 좋았다.
"그랬었구나. 영재는 아직도 아버지 뵙기가 어렵구? 둘 다 이 신발 두고 가거라."
우리는 교무실을 나왔다. 준오가 먼저 저희집 가는 쪽으로 뒷축이 터진 헌 운동화를 끌고 갔다. 나는 그런 준오를 한참 보다 우리집으로 왔다.
다음날 선생님께서 방과후에 우리를 부르셨다. 선생님 책상에는 똑 같은 가죽 구두 두 켤레가 놓여 있었다.
"영재야, 이 구두 신어봐라. 발에 맞는지."
나는 얼떨떨해서 선생님을 보았다.
"똑 같은 모양을 찾느라고 애는 썼지만 다행히 네 발에 맞는 치수가 있었어. 어서 신어봐."
나는 구두를 신어 보았다. 낙낙하게 발이 편했다.
"아버지께 신발을 찾았다고 말씀드려라. 그리고 준오는 음.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선생님께서 신발을 사 주셨다구......"
나와 준오는 똑 같이 말하다가 서로를 봤다. 우리는 콧날이 매워 왔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분명히 구두를 한 켤레 사셨는데 우리는 둘 다 선물을 받은 것이다. 검정 가죽 구두를……




이가을1941년 대전 출생. 1982년 `크리스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창작집으로 [집보는 아이], [솔숲 마을 사람들], [떠돌이 시인의 나라], [빛을 가진 아이들], [가끔씩 비오는 날], [큰 스승 소득이], [솔매산 노래마을] 등이 있음. 민족문학작가회의 본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