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사발



김성범




1
"에쿠! 이젠 이 짓도 못 하려나……"
머리가 솜사탕처럼 하얀 할아버지가 흙을 밟으면서 혼잣말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찰 진 진흙은 밟을수록 심술을 부려 할아버지 발목을 꼬옥 붙들었다. 할아버지 이마에선 땀이 돌돌 굴러 흙 속으로 뚝뚝 떨어졌다.
"퇫퇫 아이 짜. 왕소금 물도 이 보단 덜 짜겠다."
"야! 지금 짠 게 문제냐. 지구가 생긴 이래 이처럼 숨막히고 수모를 당한 건 처음이다."
밟히고 있던 흙들은 여기저기에서 소란을 피웠다. 어떤 녀석은 밟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만 다녔다. 소란스러운 틈 속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났다.
"조용히들 못 해!"
침묵이 잠깐 지났다. 큰 소리 쳤던 녀석이 거드름을 피우며 한마디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하고 있으란 말야."
그리고 다시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들 무슨 뜻인지 궁금해져 힘겹게 밟히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꾀를 부리는 녀석들은 이리저리 피해만 다녔다.
"곧 너희들 운명이 결정될 것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들 하란 말야. 내 말 알아들었어?"
세상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다 아는 양, 느릿하게 말하고는 먼 산을 쳐다봤다. 그 때 할아버지가 그 녀석의 허리춤을 때어내 한 주먹 들어 올렸다.
"으흠, 이 정도면 됐군."
할아버지는 손안의 흙을 몇 번 주물럭거리더니 절푸덕, 다른 흙에 던져 버렸다. 따가운 가을 땡볕은 골고루 내리 쬐고 있었다.

2
"히야, 신난다. 으꺄꺄꺄."
환호성을 지르는 녀석도 있고, 괴성을 지르는 녀석도 있다.
할아버지는 빙그르 돌아가는 물레 앞에 앉았다. 그리고 물레 위에는 힘들여 밟아놓은 흙이 한 덩이씩 올려졌다. 할아버지가 물레를 돌리면서 두 손으로 흙을 꼬옥 쥐어짜면 꽃병이 되고, 꼬옥 쥐어짜면 찻잔이 되고…… 쭈글쭈글 주름살 깊은 할아버지 손에서 저렇게 맨드리한 모양이 나오다니! 신기했다. 할아버지가 힘을 꼬옥 줄 때면 모두들 흡, 숨을 멈췄다. 흙덩이들은 숨을 죽이며 차례를 기다렸다. 어떻게 변하더라도 모양을 갖게 된다는 게 꿈만 같았다.
"세상에! 난 말이야. 삼천 년 전 화산 폭발한 이후 내내 수렁 속에서 살았는데 이렇게 좋은 날이 있을 줄이야."
"그러게 말야. 넌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싶니?"
"응, 어떤 모습이든 무슨 상관이야. 지금 가슴이 너무 벅차서 날아다니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넌?"
"음- 난 말이야. 저기 귀여운 찻잔이 되고 싶어."
"난 호리병."
"난 꽃병."
여기 저기서 자기가 되고 싶어하는 모양을 꿈꾸고 있었다. 어떤 녀석은 넋이 나간 모습으로 멍하니 쳐다보는 녀석도 있었고, 열심히 자기의 소원을 비는 녀석도 있었다. 혹여 자기 차례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조바심을 내는 녀석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힘에 부치는지 허리를 가끔 펴고는 고개를 잠시 뒤로 젖혔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뭔가 못마땅하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어흐흠, 잘 밟았었는데……"
할아버지는 흙 밟기가 잘못됐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만들어진 도자기들은 바람이 잘 통하는 창고로 옮겨졌다. 꽃병, 주전자, 찻잔, 호리병, 막사발…… 여러 모양 별로 그늘에 쭉 줄을 세워 놓았다. 처음에는 모두들 함께 어우러진 축제 분위기였으나 하루 이틀 지나자 편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각가지 모양들은 서로 더 잘났다고 우겼다. 하지만 항상 아무 말도 못하는 모양이 있었다. 어느 땐 모든 모양들이 같이 놀릴 때도 있었다. 바로 막사발이었다.

"야 막사발, 너 말이야. 생긴 게 왜 그렇게 생겼어?"
"내 모양이 어때서!"
"참 우습다. 삐뚤 하게 생긴 게, 우리가 너와 같이 있다는 것이 창피하다. 안 그러냐?"
앙증맞게 생긴 찻잔이 옆에 모여있는 꽃병들을 부추겼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꽃병도 있었지만 같이 놀리면서 뻐기는 꽃병들이 더 많았다.
사실 막사발은 할아버지 손등처럼 울퉁불퉁 못생겼다. 막사발도 막사발로 태어난 첫 날은 기뻤으나 자신의 모습이 점점 맘에 들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왜 날 이렇게 못생긴 막사발로 만들었지? 차라리 꽃병으로 만들던지 아니면 찻잔으로 만들었다면 공평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사발이 놀림을 받으며 몇 날이 지나자 모두들 온 몸이 고실고실 말라갔다. 할아버지는 창고에 쌓아둔 모양들을 차갑고 어두운 가마 속으로 옮겨,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초벌구이를 하는 것이었다. 가마에 불을 지폈다.
"앗, 뜨거! 이러다간 우리 모두 통구이 되는 거 아냐?"
"야, 그렇게 엄살부리지마. 사십 오 억 년 전 지구가 태양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도 괜찮았잖아."
"너무 오래 전이어서 기억이 나질 않아. 하여튼 이렇게 뜨거운 건 처음인 것 같아."
가마 안은 시장처럼 왁자지껄했다. 할아버지는 떠들어대는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불을 지폈다.
막사발도 다른 도자기들과 똑같이 얼굴에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새색시 마냥 달아오른 얼굴은 점점 더 벌겋게 꽃피었다. 저녁 노을 빛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 가마 안에서 피어올랐다. 얼마나 뜨거웠던가! 몇 밤이 지났을까? 가마 안의 노을 빛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이 되었다.

3
"쯧쯧, 내 이럴 줄 알았지."
할아버지는 가마 안에서 도자기를 하나씩 꺼내들면서 연방 혀를 찼다.
"내 분명히 잘 밟았다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는 물레를 돌릴 때 미심쩍었던 생각을 다시 해 보았다. 잘 밟혀지지 않은 흙으로 만들어진 도자기는 금이 가고 깨졌다. 할아버지는 안타깝게 쳐다보다간 여지없이 망치로 퍽퍽 내리쳤다.
"으악! 할아버지 살려주세요."
금이 간 도자기들은 아우성을 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갖게된 모양을 너무나 쉽게 잃어버린 것이 분하고 후회스러웠다.
"아휴, 할아버지한테 밟힐 때 꾀를 내더니만……"
"쯧쯧,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어."
금이 가지 않은 도자기들은 할아버지가 망치로 내려칠 때마다 눈을 질금 감으면서 한마디씩 해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못생긴 막사발이었다. 막사발은 뽐을 내지 않은 튼실한 모양 덕분에 깨지지 않고 잘 구어 졌던 것이다.
막사발도 막사발로 태어난 후, 이렇게 뿌듯한 건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막사발은폼을 내지 않은 모양처럼 잘난 척도 하지 않았다.
깨어지는 도자기들은 할아버지에게 울며불며 매달려 보았지만 할아버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퍽-
"으악!"
퍽-
"살려주세요!"
할아버지는 금이 간 도자기를 모조리 깨어버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 구어진 도자기 위에 그림을 정성스레 그렸다. 그리고 유약 통에 풍덩 담갔다가 빼낸 후, 잘 말려 또 다시 가마 속에 쟁였다. 재벌구이를 하기 위해서 였다. 가마 안에서 호리병이 막사발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그림이냐?"
"글쎄, 무슨 그림인지 잘 모르겠어."
막사발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가마 안에 차곡이 쌓여있는 도자기들은 예쁜 그림을 가슴에 하나씩 껴안고 있었다. 국화 위에 나비 두 마리, 난초, 강가의 왜가리, 힘찬 대나무, 모란꽃 등, 모두들 멋들어진 그림을 하나씩 가슴에 품었지만 막사발에게는 꼬마 장난치듯 몇 번 그어놓고 말았다.
"그래 맞아! 니가 멋진 그림을 갖는다면 더 웃길 거야. 안 그러냐?"
호리병은 자기가 한 말에 더욱 신이 나 계속 떠들었다. 막사발도 호리병이 놀리는 말이란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호리병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됐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가마 속은 며칠 전처럼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몸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온 몸에 발라 놓았던 유약이 녹아 몸에 철썩 달라붙었다. 초벌구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뜨거웠다. 예전처럼 흙이고 싶었다. 점차 뜨거움이 사라지자 가마 문이 쿵쿵거리며 헐리기 시작했다.
"호오! 이 녀석들 좀 봐. 하늘색은 하늘색인데……"
할아버지는 아직 뜨거울 것 같은 도자기를 가마 안에서 꺼내 하늘에 비추어 보았다. 이틀 동안 꼬박 불을 지폈던 할아버지 몸에는 불 냄새가 배어 있었다. 흰머리는 검불이 묻어 거뭇거렸다. 주름살이 깊게 패인 얼굴은 더욱 피곤해 보였지만 할아버지는 꽤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색깔이 꽤 맑군."
아직 이슬을 머금은 아침녘이었다. 할아버지가 가마를 열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할아버지는 도자기를 팔지 않았다. 다만 원하는 색깔을 만드는 데에만 열중이었다. 할아버지는 도자기를 다 꺼내서 둥그렇게 모여든 사람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양지 녘에 꼬마가 혼자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여기 삐뚤 하고 못 생긴 것 가져도 돼요?"
"막사발 말이냐? 이 할애비 눈에는 너처럼 예쁘게 생겼는데."
꼬마는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그래, 맘에 든다는데......가져가렴!"
꼬마는 금시 해죽이 웃으며 울퉁불퉁한 막사발을 집어들었다.
"고참, 녀석도. 이 할애비 맘하고 어찌 그렇게 똑같누."
하늘색 막사발은 꼬마의 가슴에 안겼다. 포근했다.

4
"이건 내꺼니까, 아무도 만지지마!"
집으로 가져온 막사발을 품에 안은 꼬마가 가족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모두들 빙긋이 웃기만 했다. 꼬마네 가족들은 막사발과 같이 온 호리병에게 더욱 눈길을 주는 듯 했다. 호리병은 의리의리한 장식장을 차지했다. 장식장에 들어간 호리병은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이 어울렸다.
막사발은 호리병이 자랑스러워 보였다. 부러웠다. 하지만 호리병은 가슴을 턱 펴고 당당하게 선 채, 막사발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막사발은 허드렛일을 죄다 했다. 꼬마가 주인이었지만 가족이 모두같이 사용했다.
물을 담아 놓으면 물사발, 국을 담으면 국사발, 약을 담으면 약사발이 됐다.
막사발은 일을 하면서도 불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장식장 안에 놀고 있는 호리병을 보면 가끔 짜증도 났지만 못 생긴 자신이 모든 걸 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첫눈이 소복이 내리는 날, 막사발은 뜨거운 물을 담은 물사발이 되어 있었다.
"와- 눈이 내린다아!"
꼬마는 첫눈을 기뻐하며 창문 쪽으로 달려가다 막사발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잠시 놀란 듯 토끼 눈을 뜨고 있던 꼬마가 울기 시작했다.
"내 그릇 어떡해. 으앙- 내 그릇 어떡해. 으앙-."
가족들은 아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달랬지만, 꼬마는 막무가내로 울어 젖혔다. 막사발은 울어주는 꼬마가 고마웠다. 집안의 그릇이 모두 깨져 버린 양 섭섭해하는 가족들에게도 고마웠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길이 편안할 것 같았다. 막사발은 깨어진 조각들이 빗자루에 쓸리면서 호리병에게 말했다.
"그 동안 친구가 돼줘서 고마웠어. 다시 태어난다면 너같이 예쁜 호리병이 되어보고 싶어. 잘 있어."
막사발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쓰레기통에 들어가 버렸다.
호리병은 천장만 쳐다보고 있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 으-앙,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너였어. 내가 너하고 눈도 마주치기 싫어한 건 네가 너무 부러워서였어. 이곳은 얼마나 외로운지 알기나 해? 엉엉엉. 사람들이 나를 쳐다 봐주기나 한 줄 알아? 어어엉엉. 넌 가족들과 같이 있었잖아. 그것도 말이야 --- 항상 두 손에 감싸들려 있었어.
얼마나 따뜻해 보였는지--- 으앙 엉엉엉.
그리고 …… 그리고 너에겐 입맞춤도 해줬잖아. 으헝 헝헝헝."
늦은 밤까지 첫눈이 포근히 내리고 있었다, 창밖엔.




김성범계간 [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동시부문),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동화부문)으로 작품활동 시작. 제3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수상(장편동화부문). 장편동화 [숨쉬는 책 무익조] [도깨비살] [ 비밀로 가득 찬 세상] 등이 있음. 현재 섬진강변에 문학 조각공원 조성 중.
홈페이지_http://bumsta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