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문학 2023년 통권 107호(봄호) 신작시 2편]
뜨거운 국밥
국밥은 뜨거워야 한다
뜨거워야 지방이 녹고 지방이 김치와 어우러져 국밥 맛을 낸다
이렇게 못 생기고 더러워 보여도
이렇게 먹어야 지옥에서 견딜 힘을 얻는다
그래서 국밥이다
어릴 적에는 국밥 냄새만 맡았지 먹어보질 못했던 국밥, 지금은 원하면 얼마든지 먹는다
지옥에서 견딜 맷집이 생겼다
얼마나 많은 국밥집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입이
국밥집에 걸쳐 있는가
국밥을 먹으며 생의 의지를 다잡는다
그래서 생긴 밥이 국밥이다
사랑이 얼마나 처절한 인정투쟁의 과정인지 사랑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국밥을 먹었다
그것도 돼지국밥이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사람은 먹는 것대로 되어간다는 말이다
그러니 돼지를 자꾸 먹으면 돼지는 죽으면서 돼지를 먹는 사람을 돼지로 만든다
그러니 나는 돼지가 되는 것이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한껏 돼지가 된다
정말 나는 돼지처럼 국밥을 먹었다
뜨거운 국밥을 돼지밥처럼 뜨겁게 삼키며
이 지옥에서 살아남는 의지를 키웠다
이 세상을 지옥으로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비애의 맛을
국밥은 지녔다
어쩌면 차가운 국밥을 떠넘기는 사람은 정말 지옥에 산다 다행히
차가운 국밥을 뜨거운 국밥으로 덥히는 그 불을 지닌 손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그 따뜻한 손이 이 세상을 아직도 지옥에서 사람들을 견디게 한다
누가 만든 국밥인지, 뜨거운 국밥을 만든 그 사람이
나는 관음이며
지장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요코의 나라
요코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겁먹지 말자
제발 겁먹지 말자
겁을 먹으니 자꾸 과거가 생각나고 그놈의 과거가 발목을 잡고 요코의 나라에 진입 직전에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요코의 나라에서 튕겨지고 마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제발 겁먹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자
요코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이 말을 반복하며 들어왔던가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요코의 나라에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튕겨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요코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벌써 나는 이 안내 방송을 세 번째 듣고 있으면서 요코나라 플랫폼에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겁먹은 것이다
겁을 먹으니 내 눈앞에 어제의 현실이 닥치고 나는 어제 속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나는 어제의 시간을 불러다가 내 오늘의 현실의 벽에 도배하고 오늘을 어제처럼 사는 것이다
겁먹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다시 다짐한다 겁먹지 말자 그러나 이미 나는
겁먹은 아이가 되어 요코의 나라에 발을 딛지 못하고 다시 튕겨져 나간다
나는 또 이렇게 결정적 순간에 요코의 나라에 진입하지 못하고 튕겨져 어제의 현실을 오늘로 알고 살아간다
어제와 똑같은 자세로 나는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 나 욱(본명: 나정욱) 시인
『한민족문학』(1990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2019년),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2019년),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2021년)의 시집이 있음.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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