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아들에게서 받은 군사우편

나이 마흔에 혼인해 딸 다음에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 녀석이 대학 2년인 올해 군대를 갔다. 지난달 30일 내 차로 논산훈련소에 데려다주고 ‘입소식’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엊그제 훈련병 아들 녀석의 편지를 받았다. 겉봉에 빨간 색으로 찍힌 ‘군사우편’이라는 표시가 색다른 질감을 갖게 한다.

▲ 논산훈련소 훈련병들 / 논산훈련소 23연대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1교육대 4중대 4소대 훈련병들의 모습. 맨 앞 줄 왼쪽 끝이 내 아들 녀석이다.  
ⓒ 논산훈련소 /  제23교육연대

내 아들은 고1 때 ‘이소성 콩팥 요관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았다. 콩팥 하나가 정상 위치에 있지 않다. 하복부 중앙에 있어서 발길에 채일 수 있는 축구 등 격한 운동은 하지 못한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군 입대를 면제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예 시도를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질병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들(톡 까놓고 얘기하자면 병역기피자들)이 정치권에 널리고 국가 요직을 점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부류 속에 합류해서는 안 된다는 아비의 생각에 아들 녀석도 적극 동의했다.

논산훈련소 23연대 1교육대에 속한 아들 녀석은 학과 출장을 나가며 28연대 앞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 생각을 한다고 했다(다 큰 녀석이 ‘아빠’라고 부르면서도 편지에는 ‘아버지’라고 쓴 것을 보니 제법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아버지가 이등병과 일등병 시절 논산훈련소 28연대에서 조교 생활을 한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험악한 일도 많았던 논산훈련소 조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무려 세 번이나 지원을 하여 베트남 전장으로 갔는데, 아들 녀석은 아버지의 흥미진진한 군대 시절 이야기들을 즐겨 듣곤 했다.

“빽 있는 놈들은 군대도 가지 않고, 군대에서도 빽 있는 놈들은 끗발 좋은 부대나 행정병으로 빠지고, 월남에서도 빽 있는 놈들은 말단 소총중대로는 가지 않는다”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던 시절, 군대를 가고 베트남에도 가고 말단 전투병으로 정글을 기고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고엽제 후유증으로 신세 골골한 처지가 되었지만….

아비의 험악했던 군대 시절에 비하면 오늘 아들 녀석의 군대 생활은 가히 신선놀음일 수 있다는 생각도 슬며시 하며 웃음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병역미필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출세하고 득세하는 현실을 보면 배알이 뒤틀리기도 한다. 군대도 가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왜 아무 문제없이 건강하게 살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천안함 사고 때의 청와대 지하벙커 풍경을 떠올리곤 한다. 국가안보회의에 참석하는 12명 멤버 중에 병역을 필한 사람은 김태영 국방장관 한 사람뿐이었다(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일병 귀휴’도 군대를 갔다 온 것으로 칠 수 있겠지만…). 그 외로는 대통령부터 전원이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천안함 사고를 계기로 총 한번 쏘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국가안보회의를 하고 앉아 있는 기이한 풍경도 소상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군부대 시찰 중에 군복차림으로 얼굴 광대뼈에다 총 개머리판 끝을 대고 조준하는 포즈를 잡은 사진을 보고 한숨을 쉰 적이 있다. ‘미리 연습이라도 하고 가든지 아예 총을 잡지 말 것이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질병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았으되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군에 갔다 온 사람들과 현역 장병들 앞에서 ‘예의’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고….

덧붙이는 글 ｜

<대전일보> 21일 치 오피니언 칼럼 ‘한밭춘추’난에 게재된 글을 보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