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응모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시 부문 당선자 - 이설야
■ 소설 부문 당선자 - 차미숙


■ 시 부문 당선소감

두렵습니다.
이제야 긴 터널에서 나와 잠깐 빛을 봅니다. 시를 쓰는 동안은 늘 어둠 속에서 흰 빛을 찾아 더듬거리겠지만, 그것이 시인의 운명이라는 것을 진작 알고도 그 길을 걷고자 구부러진 더듬이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투고한 다음 날, 흰 새 한 마리가 제 앞을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선소식을 듣기 며칠 전에는 크고 털이 많은 흰 새떼들이 제게 날아왔습니다. 흰 새의 영혼으로, 시의 정신을 잃지 말라는 전언으로 새기고자 합니다.
늘 혼자의 힘으로 일어섰기에, 여기까지도 혼자 걸어온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늦은 걸음에도 믿고 지지했던 많은 스승들, 내 오랜 벗들과 문학의 서늘한 정신을 오래 나누고 싶습니다.
저를 시인으로 호명해 준 <내일을 여는 작가>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앞으로 수없이더듬거려야 할 시의 문 앞에서 늘 신인의 자세로 서 있겠습니다.
아픈 동생과 늘 변함없이 따뜻하게 옆자리를 지켜준 그에게 시 선물을 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시 부문 심사평

흔히 좋은 시를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인 ‘삶의 진정성’은 단지 각자가 체험한 것들을 곡진하게 그린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대다수의 시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주관적인 체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핍진함이나 밀도와 상관없이 모두 ‘진정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삶의 진정성’은 그런 면에서 딱히 시와 체험의 진실성 또는 순수성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현실세계의 그 이해나 평가의 눈으로 가늠해보거나 양도할 수 없는, 근본적으로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나’와의 마주함이 참된 의미의 ‘진정성’이라고할 수 있다.
응모 기간이 짧은 탓에 응모작이 적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60여 명의 예비시인들이 참여한 일정한 수준의 시들을 보면서 느낀 생각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체험이 진실하며, 그 진실이 심사위원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진실하다고 홍보하기보다 결코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는 꾸밈없는 마음이 시적 소통의근본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최종 4명의 작품들을 심사대상으로 삼고 숙고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각기의 작품을 돌려 읽으면서 그 장·단점을 기탄없이 토의하는 자리를 가진 바 있다.
먼저 「가상훈련」외 4편을 응모한 이다희씨의 시들은 과장 없는 담담한 묘사와 안정적인 구성이 돋보였다. 하지만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날개를 꿈는 법’과 같은 다소 개연성 없는 돌출한 표현 등이 눈에 거슬렸으며, 저만이 개성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 소품들이라는 인상이었다.
당선자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권지연씨의 「나비의 거리」외 5편은 거의 흠잡을 데 없이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한 이미저리나 무리하지 않는 상상력, 자연스런 리듬감 등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다만 화려하고 능란한 수사가 구체적인 시공간을 확인할 수 없게 하고 있으며, 역동적이기보다 정물적인 시세계에 안주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당선작으로 뽑은 이설야씨의 「백마라사」외 4편은 사실 특별한 개성이나 기교가 드러나는 작품들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삶을 경험을 가는 실로 한 땀씩 엮고 꿰맨 듯한 시들의 보여주는 눌변訥辯의 미학에서 시적 진정성과 함께 어느 시적 유행에도 휩쓸리지 않는 저만의 시세계를 개척해갈 것 같은 정신의 강인함이 느껴져 당선작으로 선정하는데 그 뜻을 같이했다.
당선자에 축하의 말을 전하고, 아깝게 당선자에서 제외된 예비시인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전한다.

<심사위원 : 임동확, 권성우, 김은경>



■ 소설 부문 당선소감

어렸을 적, 겨울에 눈을 뜨면 누운 그대로 문을 보았다. 창호지 문에 희뿌옇게 눈이 얼비치면 발딱 일어나 누가 시킬 것도 없이 마당으로 나가 눈을 쓸었다. 차가운 대기를 호흡하며, 아무도 없는 세상,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쓸어가는 즐거움. 우리 마당으로 모자라 이웃집으로 가는 길, 때론 동네 어귀까지 길을 만들고 다녔다. 열 살 안팎의 작은 여자 아이가 땀을 흘리며 힘든 줄도 모르고 눈만 오면 그러고 다녔다. 몸은 함초롬이 젖고, 얼굴이 새빨개지고, 손과 발도 꽁꽁 언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직 이불 속에서 뒹구는 친구들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이렇게 눈이 온 날 어떻게 늦잠을 잘 수 있지?
소설을 쓰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눈 내린 겨울 아침 추운 줄도 모르고 혼자 길을 만들고 다녔던 그때 이미 내 길은 예정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게 아닐까.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소설로 인해 고민과 좌절을 반복할 때 잘 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용기 주신 김영주 작가님, 정말 고맙고, 문우 마리, 재화, 강원, 하령, 그대를 덕분에 지금 내가 있음을···.
소재가 일상적이다, 아줌마로 산 세월이 너무 길었다, 는 한 말씀으로 아줌마의 세계에 함몰되지 않도록 해주신 홍석영 선생님과 원광대학교 정영길, 이상복, 강연호 선생님께도 고마운 마음 전한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언제 찾아가도 반갑게 맞아주던 서문양이도 생각나고, 어머니와 미경, 현경, 다른 동생들, 그리고 박상우 선생님을 비롯한 소행성 식구들과도 기쁨 나누고 싶다.
나를 어머니로 탄생시키고 키워준 두 아들 광이, 광혁, 너희들이 내 아들이어서 행복하고 늦은 나이에 남 않는 짓 하는 아내를 말없이 지켜보며 후원해준 남편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한다.
끝으로 부족한 글 세상에 보이도록 허락하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드리며 열심히 써서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겠다.


■ 소설 부문 심사평

진실을 담아내는 정교한 허구의 집
신인을 발굴하는 일은 심사위원들을 설레게 한다. 참신하고 놀라운 개성이 출현해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응모된 육십여 편의 소설을 검토한 예심 위원들이 본심에 올린 작품은 모두 다섯 편이었다. 그 중에서 최종적으로 논의 선상에 올린 작품은 세 편이었다.
삶에 지친 끝에 자살을 결심하고 먼 바다로 나가는 안강망을 타게 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미로의 바다」(박종수)는 진지하면서도 남성적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바다와 항구, 그리고 뱃사람들의 거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문체가 돋보였으며, 이씨 등 등장인물의 사연을 곧바로 제시하지 않고 독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면서 서사의 속도를 조절하는 능력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경험이 살아있는 소설이었다. 체험한 바를 꼼꼼하게 재현하려 애쓰고 부지런하게 취해한 흔적도 엿보여서 작가적 성실성에 믿음이 갔다. 그러나 소설은 경험에 대한 재현 뿐 아니라 고유한 해석과 미적 형식을 요구한다. 작가 고유의 사유 흔적이 미약하고 서사전개 방식이 다소 진부해 신인다운 참신함이 부족했다. 게다가 함께 투고된 작품의 기량이 고르지 못했다.「네델란드 홀릭」(김대현)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 청년 실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구직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에게 다른 사람과 차별화시키라고 권유하는 기사를 접한 주인공과 여자친구. 그들이 튀는 취미로 선정한 것이 /'/네델란드 홀릭/'/이지만 취미에조차 미치지 못하고 그들은 현실에 떠밀려 임시직장에 매달리다가 결국 출구 없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이별하게 된다.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불합리한 취업 구조 속에서 고통 겪는 젊은이들의 무거운 현실을 감각적 대사와 가벼운 문체로 잘 다루었다. 그러나 접속어의 지나친 남용 등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이 문제가 되었고, 과도한 문단 나눔 역시 자연스럽게 서사를 이어나가는 능력의 부족으로 보였다. 전체적으로 소품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으며, 청년 실업자 문제를 다루고 있는 기존의 소설들을 뛰어 넘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상당한 내공이 느껴지는 이 두 작가가 몇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고, 머지않아 고유의 장점을 살린 작품을 들고 나타날 거라 생각한다.
차선우의 단편소설「더미」는 미래의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도시민의 일상을 문명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늘을 나는 최첨단 자동차의 성능 테스트를 맡아 인간더미로 살아가는 주인공 /'/나/'/. 그리고 구매지수 팔십오가 넘는 완벽한 도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몸에 생체칩을 넣고 하루 종일 감시 속에서 살아가는 그의 아들 /'/필/'/. 그 두 인물을 내세워 미래 사회의 기계 중심 문명과 획일화되고 억압적인 일상을 매우 설득력 있게 비판하고 있으며 서사 전개 방식도 안정되고 치밀하다. 소설이란 어차피 진실을 말하기 위한 허구의 세계다. 가상의 시·공간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그리는 소설에서 핍진성은 작품 내적 규칙의 일관된 적용과 치밀한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허구/'/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보다 더 사실적이었다. 미래 도시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과 감각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문체, 의미 있는 인물의 내면성과 문제적 상황의 구체성을 확보하면서 진실을 전달하는 능력이 다른 작품에 비해 월등했다. 다만 서사전개 과정에서 보이는 세부적 결함과 성급함이 약간 우려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우려는 작가의 성실한 노력으로 어렵지 않게 극복될 거라 믿었고, 그래서「더미」를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거듭 나는 큰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남일, 김재영, 권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