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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알림] 제9회 전국고교생백일장대회 산문부문 수상작품(누락분)
이름 관리자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hp.chol.com/~wanho/bbs/data/poem/esuyoil.js></script>                          아래의 작품은 제9회 전국고교생백일장대회 산문부문 수상작입니다.

<산문부 입선>
송현여고한하림 3-6
서울진명여고김연희 2-6
관악고등학교 황연수 3-4

<산문부 입선>
송현여자고등학교 3학년 6반 한하림
제목 : 얼룩

요즘처럼 억수 같은 장마비가 쏟아지던 작년 유월의 어느 날 밤이었을 것이다. 나는 작은 짐승처럼 침대에 몸을 웅크린 채 발끝부터 머리까지 이불을 덮어 쓰고 단단한 아스팔트 도로에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정처 없이 밑으로 밑으로만 돌진해 나가다 결국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빗방울처럼 사실 모든 인생들도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헤매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다소 비극적인 이런 상념 속에 휘둘린 채 아늑한 침대 밑으로 조용히 침전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별안간 요란스런 전화벨이 울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전화를 받을까 받지 않을까 고민하다 끈질긴 전화벨 소리에 지쳐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흑…….”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이상한 전화였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긴 한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좀 더 귀 기울여보니 아마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느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 같았다. 익숙한 그 목소리에는 회색 빛 먼지가 뿌옇게 끼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밤 열두시가 다 되어가는 이런 늦은 시간에 잡음 섞인 낡은 라디오를 끌어안고 잠이 들 사람은 바로 오랜 나의 친구, 선미밖에 없었던 것이다.
“너… 선미지? 선미 맞지? 다 알아. 어서 얘기 좀 해봐.”
“흑…. 흑…. 으흑…….”
그제야 선미는 오랫동안 안으로 삼켰을 울음을 터뜨렸다.
선미는 중학교 3학년 때 청량음료 같이 톡하고 시원하게 터지는 해맑은 웃음으로 내게 다가왔던 친구였다. 동그란 얼굴에 유난히 눈이 큰 선미는 베일에 싸여져 묘한 매력을 풍기는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네게 참 잘 어울리는 책이라며 ‘데미안’이라는 책을 선미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난 후 선미는 그 큰 눈으로 평생 잊지 못할 한 마디를 내게 말했다.
“나는 앞으로 너를 데미안이라고 부를 거야. 넌, 내게 있어 데미안 같은 존재니깐…….”
그거 혹시 욕 아니냐며 당시에는 웃음으로 얼버무렸지만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나를 데미안이라고 부르는 친구를. 아니,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그 친구를 결코 잊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날, 그토록 내가 아끼는 한 친구가 늦은 밤에 불현듯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리고 선미는 아주, 아주 많이 울고 있었다.
“선미야, 무슨 일인데? 말 좀 해봐. 제발. 응?”
“흑흑……. 하림아, 아, 아빠를 말야, 경찰에 신고해도 될까?”
“그게 무슨 말이야. 자세히 좀 얘기해봐. 응? 선미야.”
“아니야. 됐어. 그냥, 그냥 해본 말이야. 하림아, 나 너무 아파. 너무 아프다. 당분간 내가 없더라도 잘 살아. 이런 말해서 미안해.”
“도대체 왜 그러는데? 선미야 제발 말 좀 해봐.”
이미 전화기 저편의 선미는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선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선미는 어디로 헤매고 있을까. 나는 그날 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선미의 절친한 같은 학교 친구로부터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선미가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않을 아주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것과 원래 엄마와 함께 살았는데 최근 새 아빠가 생기고 난 후부터 아빠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아빠는 걸핏하면 작은 꼬투리를 잡아 선미를 구타한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선미가 학교에 파스를 붙이고 오거나 멍이 들어 나타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아동학대가 나의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선미는 그 환한 웃음으로 감당하지 못할 상처를 차마 덮어두고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그 날 이후 선미의 학교와 집, 그리고 심지어는 선미가 잘 가는 선미네 외삼촌 집까지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런 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선미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는 선미가 갑작스레 전화를 끊을까봐 겁이 났기 때문에 선미에게 만나자고 하였다. 만나기 싫다는 선미를 억지로 다그쳐 늦은 밤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서 선미와 만나게 되었다.
그네에, 흰색 모자를 쓴 채 선미는 외롭게 앉아 있었다. 모자 쓰는 것을 유달리 싫어하는 아이였는데 한밤중에 모자를 쓰고 나온 것이 이상했다. 어쨌든 나는 선미를 향해 조심스럽게 한발을 내딛었다. 그네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선미의 뒷모습이 얼마나 작아 보이던지 나는 선미의 이름을 부를 때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 날 밤 우리는 나란히 그네에 앉아 끝없는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슬픈 어린 날의 기억과 엄마와 아빠의 집에서 번갈아 지내야 했던 말 못할 서러움,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새아빠에 대한 혼란스러움…….
이야기 도중에 선미는 잠깐 잠깐 말을 끊곤 했다. 선미는 거의 울면서 한마디 내뱉었던 것이다. 십 팔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선미의 슬픈 상처만이 그 어색한 침묵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선미의 흐느낌이 서서히 잦아지고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어주기만 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네에 앉아있는 선미의 머리를 가볍게 안았다. 나는 선미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친구를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선미를 안는 순간, 나는 모자의 벗겨진 틈 사이로 둥근 선미의 이마에 박힌 푸르스름한 얼룩을 보게 되었다. 아직도 아빠에게 맞은 멍이 아물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선미가 왜 모자를 쓰고 나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미가 얼마나 그 얼룩을 감추고 싶어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미가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하는 그 얼룩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지는 단순한 얼룩이 아니라, 십 팔년 동안 선미의 아픔으로 물들게 했던 슬픈 기억의 얼룩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그제야 친구 앞에서 감춰두었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어느 새 장마미는 그치고 한여름이 시작되는지 깊은 밤중에도 매미는 요란스럽게 울어댔다.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생각들이 나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지만 그 중에서도 선미의 이마에 너무도 선명하게 박혀있던 푸른 얼룩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러한 비밀 같은 상처의 얼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은 저마다 말하지 못하는 숙명 같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같은 사람도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자연스럽게 아물게 마련이지만 그 상처의 얼룩은 죽는 날까지 남아 상처를 다 잊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때때로 우리의 삶에 끼어들어 인생을 뒤흔드는 것이다.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선명해지는 얼룩이지만 나는 잠시 이런 생각도 해본다. 가슴에 한으로 남아있는 그러한 얼룩이 그래도 있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긴 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옆에 서있는 타인의 낯선 얼룩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동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일년이 지난 지금, 선미와 나는 고3이 되었다. 선미는 열심히 공부해 그동안 모의고사 점수가 꽤 많이 올랐다고 했다. 여전히 그 청량음료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선미는 그 모든 얼룩을 삶에 대한 열정으로 바꾼 채 오늘 밤에 내게 불현듯 전화를 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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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입선>
서울진명여고 2학년 6반 김연희
제목 : 얼룩

그날은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눈부시게 내비치어 공원 앞 성당이 빛으로 감싸진 날이었다. 한손에 미사책을 든 사람들이 십자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들의 안식처로 발길을 향했다. 신부님의 복음은 언제나 우리를 따뜻하게 만드신다. 젊으셨을 때 환경운동가를 하셨다던 신부님께선 나무를 가꾸듯이 우리 마음도 가꾸어 주신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은 새만금사업을 막기 위해 305킬로미터의 거리를 삼보일배 하시는 여러 성직자분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 말씀을 듣자 나는 텔레비전에서 새만금에 대하여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매일같이 계속되는 누가 정치적 뇌물을 받았다는 둥, 절도를 했다는 둥 하는 소식의 뉴스에 진절머리를 치며 채널을 돌리려고 하는 순간, 나는 ‘삼보일배’에 대한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잠시 들었던 리모콘을 내려놓았다. 새만금 사업으로 수많은 생물들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네 성직자분들이 삼보일배를 행하신다는 보도였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듯한 뜨거운 뜨거운 햇볕 속에서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의 네 성직자분들이 흘러내리는 땀방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삼 보를 걷고 한 번 절하시는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부정함을 바로잡기 위해 저토록 힘든 수행을 하시는 모습에서 한줌의 빛이 희망으로 다가왔다.
인간의 손이 닿는 곳마다 얼룩이 생긴다.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하던 새만금도 인간의 힘이 닿은 이후로는 생명의 서식지로서의 지위를 잃은 채, 검은 얼룩만이 번져가고 있다. 시작할 때부터 정치적 목적까지 가미되어 있던 새만금은 이제 쌀 재고량이 늘어나 농지 조성도 무의미하게 되었고, 공장 분양률도 저조하여 산업단지도 필요없게 되었다.
새만금에는 수많은 생물들과 어민들의 생명이 담겨져 있다. 어업에 종사하시는 할아버지가 있는 나로서는 그래서 새만금 어민들의 울부짖음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았다. 할아버지가 계신 삼천포에 갈 때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배에 태워, 푸른 바다로 자주 데리고 나가시곤 하셨다. 그리고는 잡은 물고기를 나에게 보여주시며 이름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셨어싸. 이 고기들을 팔아 아빠를 키우시고 생계를 꾸려 나가셨을 것을 생각하니, 생업을 잃어버린 새만금 어민들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듯하여 안쓰러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손과 얼굴이 진흙으로 범벅된 채, 새끼 게를 들고 찍은 내 사진을 보면, 어렸을 때 새만금 갯벌에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바다 위로 철새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니고, 수많은 생명들이 갯벌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아름다운 곳이었다. 잡은 새우, 조개, 게 등을 넣은 상자를 들고 갯벌을 거닐다가 게 한 마리가 손을 무는 바람에 상자를 떨어뜨려 게들이 모두 도망을 갔던 기억이 지금은 아련하게 떠오른다. 새만금의 붉게 타오르는 하늘 위로 4월 중순이면 도요새와 철새들이 날아다니는 풍경들이 이제는 얼룩져 더 이상 찾기 힘든 모습이 되었다. 추억을 잃어버린 나의 마음 한구석에 아쉬운 기분이 감싸고 돈다. 사상이 제 각기 다른 종교들도 이러한 풍경들을 사랑하는 공통된 마음으로 이제는 하나가 되었다. 네 성직자분들이 ‘삼보일배’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는 모든 인간들이 자연과 하나되어야 할 차례라는 생각에 감회가 생롭게 느껴졌다.
일전에 TV에서 비무장지대에 대한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 4킬로미터의 공간은 그 어느 국립공원보다 아름다웠고, 그 어떤 동물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멸종위기의 동물들의 힘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사람의 손길로 죽어간 생물들의 얼룩진 새만금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얼룩 지지 않는 DMZ를 보면서 언젠가 새만금도 다시금 제 모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몇몇의 사람들은 새만금 사업에 이미 1조 원이나 투자를 했으니 늦지 않았냐는 말들을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근래에 와서 사라져가던 조개들이 생존을 위해 번식을 하여 수많은 새끼 조개들이 갯벌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새만금의 가치는 감히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생명의 어머니이다. 인간이 만든 갯벌의 얼룩을 우리는 어루만져줄 줄 알아야 한다.
새만금 사업을 막기 위해 열린 미사에 참여하면서 삼보일배를 행하시던 성직자분들을 떠올렸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가장 낮은 자세로 나아가는 그들이 절하는 곳곳마다 꽃물이 번져 다시금 찾아갔을 때는 새만금의 얼룩이 지워져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새만금이 제2의 시화호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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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입선>
관악고등학교 3학년 4반 황연수
제목 : 운수 좋은 날

유년시절 내 기억들이 잠긴 서울. 나는 이곳의 풍경을 종이 위에 그려나간다. 그림이란 형태로, 때론 글이라는 형태로, 그런 무엇으로. 그리고 표현된 그 무엇 위에 남긴 내밀한 궤적은 ‘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푸른 바다와 짠 소금기 냄새. 시각과 청각을 휘어잡은 평화로운 꿈. 문득 그런 회중 속에서 호통을 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일장 안 가? 지금 너 몇 시인 줄은 알아?” 대체 무슨? 순간 주변을 겉돌고 있던 작은 평화가 파도처럼 산산조각나 부서져내린다. 희뿌연 시야 속에 들어오는 빽빽한 책장과 얼룩진 블루톤의 벽지, 그리고 9시를 훌쩍 넘어버린 시계바늘. 자리에서 튀어나와 화장실로 달려가니 어머니는 정신머리 없는 년, 하고 혀를 내두르신다. 아아, 오늘은 정말이지 운수가 억수로 좋은 날이다. 19년을 살아왔으면서도 여전히 낯선 타지 같은 서울 지리에 눈앞이 깜깜했다. 지하철 노선표를 펼쳐놓고 양치질을 하는데 순간 켁, 소리가 나더니 치약 특유의 매캐한 맛이 목끝을 짓누른다. 시간 배분을 아무리 잘해도 명동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 그러니까 지금까진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단 말야!”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친구들의 문자며 전화에 퉁명스레 대답하며 끊고는 습작노트를 정리했다. 아침부터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다. 축 늘어진 손가락으로 습관처럼 하단에 저장되어 있는 문자메시지를 누르고, 메모지에 그 글귀를 옮겨 적었다. 「언제나 파랑새를 기억하라!」 아주 오래 전, 백일장 참가를 하던 날 은사님이 보내주신 문자 한 통. 처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유일하게 격려와 아낌없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 은사님은 언제나 백일장 참가가 있는 날 아침이면 문자를 보내주셨다. 지병처럼 계속되는 복통도 잠시 잊혀질 만큼의 용기와 함께.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작되는 그날 하루는 언제나 운수가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아침부터 겨우 몸을 가누다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멀쩡한 다리로 넘어지거나 가방 속 물건들을 바닥에 흩뿌리거나 하는 일들이 가득한, 그런 날. 게다가 오늘은 처음으로 늦잠에까지 홀려버렸다. 메모지를 살짝 집어 책상에 올려놓고 명동으로 가는 길에 오른다. 그러고보니 문득 은사님께서 처음 글을 써봐라, 하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이 보기에 내게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내면의 글귀가 있는 듯 하다고, 글을 써보라 권유하시며 내밀던 백지 몇 장의 기억이.
내 안에 담긴 글의 궤적이 보인다구? 대체 무엇 때문에?
이따금씩 끄적이는 걸 좋아했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작문시간이 되면 어려서부터 어디론가 숨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그런 내가 글이라구? 나는 의구심을 갖으면서도 앞에 내밀어진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없이 싫어했던 글이지만, 나는 그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의 잡념을 게워내고 백지 위에 나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모두가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졸고 있던 시간에 나는 교무실 한켠에서 그렇게 글과 처음으로 대면했다.
“명동, 명동역입니다.” 안내방송에 따라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앞을 보며 뛰었다. 언제나 그 달림 속에서 생각했다.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고, 내지믄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 고.
그런 당위성 짙은 다짐과 함께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때론 짚을 수 없는 오류에 빠지기도 하고 지침 속에 주저앉기도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 길을 향해서 말이다.
음악당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지쳐 있던 가슴 한 구석을 시원하게 휩쓸고 지나간다. 수십 개의 계단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꼭 내게 있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과도 같다. 늘 창조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하는 나와 창조된 무엇인, 글. 그 필연적인 관계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것은 아주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대답대신 아주 간단한 단서를 던지고자 한다. 그것은 이 계단을 오르는 일이다.
나는 앞에 놓인 백지 원고지를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파랑새를 생각하라는 은사님의 말이 오랫동안 내 시야를 붙잡았다. 파랑새.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볼 수 없는 것, 그러나 반드시 느낄 수 있는 것, 글이라는 존재.
위벽을 쓸어내리는 공복감에 머리가 맑지는 않지만 온갖 시신경들을 원고지에 집중해 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한 줄의 글을 써내려간다. 조금씩 토해내는 내면의 파편이 어우러지는 글을 보고 있는 기쁨이란! 입가에 슬쩍 미소가 머무른다. 분명 글을 쓸 수 있는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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