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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알림] 제9회 전국고교생백일장대회 산문부문 수상작
이름 관리자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php.chol.com/~wanho/bbs/data/poem/esuyoil.js></script>                          제9회 전국고교생백일장대회 산문부문 수상작
주최 : 민족문학작가회의
일시 : 2003년 7월 26일(토)

<산문부 장원>
서울 진명여자고등학교 1학년 13반 류서현
제목 : 슬픈 얼룩

얼마 전까지도 할머닌 늘상 널평상 한 곁에 쪼그리고 앉아 졸거나 백태가 잔뜩 낀 눈동자로 마치 해바라기를 하는 식물처럼 꼼짝 않고 계셨다.
집에선 그런 할머니의 존재를 드러내놓고 성가셔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살가운 대접을 받는 처지 또한 아니었다. 그저 때가 되면 안으로 모시고 와 밥 몇 숟갈 떠먹이고는 다들 제 할일로 돌아갔다. 마치 먹고 싸기 위해 목숨을 부지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듯 온종일 몸에서 배설물 냄새가 배어 나왔고 씻기느라 옷을 벗기면 몸을 버둥거리며 떼를 써댔다. 하지만 식사 때만은 어찌 그리 용케도 아시는지 순순히 말을 들었는데 정신이 혼미해지면서부터 후각이 예민해지기 시작해 음식에 대한 식탐은 야수에 가까웠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뭐든지 입으로 가져갔고 그런 할머니를 치다꺼리하는 엄마의 절망은 날로 깊어갔다.
“어머니, 왜 이러셔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호소하다가 차츰 엄마의 목소리는 발악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졌고 아버지의 한숨소리는 온 집안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공부에 시달리다 집에 오면 퀴퀴한 냄새로 속이 뒤틀렸고 어디서 주워왔는지 정체 모를 물건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엄마는 기겁을 하며 내다버렸지만 할머니는 다시 주워오고 집안은 쓰레기와 오물냄새로 엉망진창이었다.
망각의 저주는 이리도 빨리 머리 속을 뚫고 들어와 박히는 건지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피붙이도 알아보지 못하는 미망의 상태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혼란스러운 집보다 독서실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밥을 제때 먹지 못해 위장병이 난 나를 보며 엄마는 안타까워하셨지만 할머니 때문에 잠시도 틈이 나지 않았다.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를 탓하며 마음을 붙이지 못하던 나는 곤도박질 친 성적표를 받아와 부모님 마음을 더 상하게 해드렸고 결국 엄마는 오열을 터뜨리셨다.
그렇다고 딱히 뭔가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집안 분위기만 더 가라앉았을 뿐 할머니는 종일 꼼짝 않고 앉아서 자폐증상도 그대로였고, 갑작스런 증발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시키는 일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처음엔 같이 걱정해주던 작은 아빠 내외나 고모도 차츰 발걸음이 뜸해지셨고 숙모들에게서 오는 위로 전화도 끊어져갔다.
엄마의 신경은 날로 예민해져갔고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아버지는 자주 술을 마시고 들어오셨고 그때마다 다투시는 소리가 잦아졌다.
모처럼 한가해진 기분으로 늦잠을 자고 일어난 휴일날.
엄마의 일손도 도울 겸, 내 방도 정리할 생각에 청소기를 돌렸다. 마루를 다 치우고 돌아서려는데 할머니 방도 치우라는 엄마의 명령이 떨어졌다.
벽지에까지 밴 습습하고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찡그리게 했지만 꾹 참고 했다. 할머닌 방 한 켠에 쪼그린 채 모재비로 누워 자고 계셨는데 한 움큼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육신이 왜 그리도 초라하게 보였던지…….
편찮으시면서부터 살가운 접촉은커녕 살닿는 것조차 피해왔다. 엄마 혼자서 할머니를 감당하는 것이 무리인 줄 알면서도 못 본척하기가 일쑤였다.
문갑 뒤, 작은 틈새로 청소기를 들이밀자 묵지근한 것이 빨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 비단 주머니가 들어있었는데 거기엔 돈 오만원과 금반지가 들어있었다. 게다가 수전증 노인의 필체로 보이는 쪽지가 있었는데 저승 갈 때 꼭 넣어달라는 당부의 말이 적혀있었다.
갑자기 이 좁은 방에서 아까부터 났던 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습관성 약물처럼 아무도 모르게 다가온 망각의 병 치매, 어쩌다 간혹 정신이 들었을 때, 비루한 당신의 처지에 얼마나 진저리를 쳐댔을까. 오만원의 돈을 모으면서 부디 목숨이 저승 가는 벨트처럼 단단히 조여지기를 얼마나 바라셨을까. 가족들은 각자의 고통만을 생각했지 할머니의 고통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예 생각조차 없는 식물인간으로 치부해놓고 어떤 갈무리도 하려들지 않았다. 어쩌면 빨리 돌아가시길 은근히 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고통을 피하려들면서 생존의 법칙의 추악한 논리로 노화되고 재생 불가능한 물건으로 대하진 않았던가.
집단 최면은 자기 암시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라고 가족들은 효라는 최면의 주술로 요행수를 바랐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체면치레에 급급해 타성에 젖은 행동으로 자신들의 불효를 적당히 합리화하려든 것은 아니었는지 양심에게 묻고 싶었다.
이미 이성을 상실한 채 추악한 모습으로 실추되어버린 할머니는 맹수에게 쫓겨 생명을 포기한 사냥감처럼 입술엔 거스러미가 일고 눈가엔 버성긴 진물이 묻어있는 것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뜰에는 벌써 봄날의 정열을 보여주려는 듯 영산홍의 붉은 꽃이 요기스럽게 피어있었다. 나는 이제야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땅에 젖어 이맛전이 따가움을 느끼고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봄날 오후, 하늘엔 햇솜 같은 구름이 떠있었다.
봄볕이 제법 따가워 눈부셨지만 할머니를 귀찮아하고 싫어했던 마음의 얼룩을 하나 둘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오랫동안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마치 어렸을 적 만지면서 잠들었던 할머니의 젖무덤 같기도 했고, 갓 구운 몰캉몰캉한 식빵과도 같았다.


<산문부 차상>
대전 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7반 정현지
제목 : 눈물로 얼룩진 쪽지

“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해봤지? 항상 엄마만 온갖 슬픔, 괴로움 다 떠안았다고 생각하잖아!”
엄마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림을 느꼈다. 난 그 흔들림을 모질게 외면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계속 소리쳐댔다.
“이제 그만 좀 해. 나도 이렇게 사는 거 싫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방으로 갔다. 방문을 있는 힘껏 쾅 소리를 내며 닫았다. 분명 놀라셨으리라. 십구 년 동안 말대답 한번 안 한, 당신의 자랑스러운 보석이었으니까.
사실 아침까지만 해도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하루였다. 2003년도 문화적 감성 부문 청소년으로 선정되어서 문화관광부에서 직접 장관님께 표창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십 대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기념촬영을 마치고 대전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루 종일 교과서와 문제집만 바라보는 고3에게 차창 밖의 풍경은 설렐 정도로 예뻤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는데 문득 아까 시상식장에서 받은 노란 서류봉투가 생각났다.
‘뭐지?’
시상내용에 대한 팸플릿이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첫 장을 열었다. 낯익은 사진.
‘문화적 감성 부문 모범 청소년. 위 학생은 결손가정 속에서도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결손가정? 이게 뭐야?”
갑자기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엄마가 추천서를 써서 낼 때 계속 마음에 걸리던 구절이었다. 이제 모두들 알게 될 거라는 사실에 머리가 아찔했다. 십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조심하며 숨겨왔던 비밀.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나의 아홉 번째 생일날. 새벽부터 하얀 눈이 내려 온 세상이 온통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내가 태어나던 그 날에도 하늘의 축복인양 하얀 눈이 펑펑 쏟아졌다. 기대에 들떠서 어린 나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밖은 시끄러웠다. 또 아빠가 술에
취해 아침에야 귀가하신 듯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평소와는 다른 긴장된 공기.
“다른 여자가 있어. 넌 나를 철저하게 믿은 게 잘못이야.”
악몽 같은 전쟁의 최후의 통첩.
그날 이후로 아빤 더 이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고사리 손으로 끓여낸 흰죽도,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던 백원짜리 야쿠르트도 모두 토해냈다. 물 한 모금도 삼키지 못했다. 흡사 승냥이떼에게 물린 한 마리 사슴처럼 엄마는 하루 종일을 침대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나마 엄마가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술과 수면제,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 남매였다.
우린 엄마를 잡고 울었다. 절규였다.
“엄마, 죽지 마. 죽지 마.”
결국 엄마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수면제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래, 그래. 우리 보란 듯이 잘 살자.”
마침내 두 분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오빠와 나는 모두 엄마와 살기를 원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세 명이 되었다. 엄마는 아빠가 되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세살 위인 오빠는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았으니까. 매일 같이 계속되는 싸움질과 술, 담배. 친구의 아빠 차를 몰래 끌고 나가서 무면허 뺑소니 사고를 쳐서 기소유예 처분도 받았다. 폭력 죄로 고소되어서 새벽에 경찰서로부터 폭탄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오빠는 저렇게 삐딱하게 나가도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남겨진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아비 없는 자식이 그렇지 뭐.”
이런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성공해야 했다. 나는 독해졌다. 급성 A형 간염으로 모든 것을 토해내고,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기말고사를 치르다가시험 도중 의식을 잃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세상이 어린 내게 준 상처를 잊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모든 걸 부인하고 항상 자기 최면으로 나를 성장시켜 갔다. 그런데 아까 그 팸플릿의 ‘결손가정’이라는 단어가 최면에 빠져 있던 나에게 현실을 자각시켜 준 것이었다. 그 분노로 난생 처음으로 엄마에게 대들었고……. 지금껏 나만 바라본 엄마에게……. 매일 새벽 네 시면 일어나 밥을 하시고 내가 학교 버스를 놓칠까봐 항상 미리 엘리베이터를 눌러 놓으시는 엄마. 새벽 한 시에 집에 들어가면 고3 수험생이라는 감투를 쓴 나의 짜증을 다 받아주시고 간식을 챙겨주시는 엄마. 아빠의 빈자리까지 넉넉히 채워주시는 엄마. 엄마, 엄마……. 희뿌연 액체가 눈앞을 가렸다.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책상유리에는 아직도 아까의 서럽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갑자기 하얀 쪽지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이게 뭐지? 눈물로 얼룩진 엄마의 쪽지였다.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는 네가 이런 환경 속에서도 밝게 자라주어서 자랑스러웠어. 그래서 그런 표현을 썼던 거란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네가 그렇게 상처받을 줄은 몰랐구나. 이거 하나만 알아두렴. 너는 언제나 엄마의 가장 큰 자랑이고 보물이야. 알지? 사랑한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뭉클했다. 눈물로 얼룩진 엄마의 쪽지 위로 내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서러움과 미안함의 눈물.
그래. 이 눈물로 얼룩진 쪽지처럼 지난 세월은 우리 가족에게 눈물로 얼룩진 슬픈 추억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런 슬픈 유년시절이 있기에 더 성숙한 지금의 내가 있고, 그런 슬픈 경험이 있기에 더 서로를 아끼는 우리 가족이 있음을. 그리고 과거를 얼룩지게 한 눈물이 마를 밝은 내일이 있을 것임을.


<산문부 차상>
복자여자고등학교 2학년 1반 조수진
제목 : 얼룩

우리 엄마의 손은 참 예쁘다.
다른 사람들보다 길고 가는 손가락, 한없이 가냘픈 희고 아름다운 손. 난 늘 그런 엄마의 손을 부러워했다. 엄마의 손에 비하면 내 손은 참 못난 손이었다. 짧고 뚱뚱한 손가락 마디 마디, 크고 넓적한데다가 가무잡잡하기까지 한 정말 못생긴 손이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때면 난 늘 엄마 손 한 짝, 내 손 한 짝을 붙잡아 놓고, “와, 엄마 손 진짜 예쁘다. 부러워. 나도 엄마처럼 손이 예쁘면 좋을 텐데……. 난 아빠 손을 닮았나봐.”라며 감탄사를 연발하곤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나는 점점 바빠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만 갔고 시간은 늘 부족해 내가 마치 어딘가에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스트레스는 점점 더 쌓여만 가고 그 스트레스와 함께 엄마에 대한 짜증도 늘어갔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엄마와 아빠 두 분께서는 집에서 버스로 사십분 거리에 있는 어느 대학 안에 조그마한 식당을 하나 맡으셨다. 부모님께서는 하나라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종업원을 쓰지 않으셨다. 엄마는 주방 일을 혼자 도맡아하셨고 아빠는 서빙을 하셨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때때로 가게로 가 주방 일을 도왔다. 주방에는 늘 싱크대에 설거지 할 그릇이 산더미 같이 쌓였다. 엄마 혼자서 음식 하랴, 설거지 하랴, 전부 다 하기엔 너무나 벅찼다. 장사가 모두 끝나면 시계는 어느덧 새벽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두 시. 하루를 훌쩍 넘겨버린 후에야 다른 이들의 새로운 하루가 다가와서야, 그제야 우리 부모님은 하루를 마감하곤 했다. 손님들이 다 빠져나간 그 시간이면 엄마의 다리는 마치 각기병에 걸린 사람처럼 부었다. 양말을 벗으면 양말 자국이 남은 자리를 기준으로 엄마의 다리는 마치 갓 태어난 포동포동한 아기처럼 부어있었다. 엄마의 다리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부은 살은 그대로 들어가 한참만에야 다시 나오곤 했다. 나는 가게 한 쪽 구석에 책을 펴놓고 공부를 했다. 그러다 설거지거리가 들어오면 엄마랑 같이 설거지를 하고 다시 책을 보고……. 내 책은 늘 물에 젖은 자국으로 구겨지고 얼룩져있었다. 나는 가게가 싫었다.
‘다른 아이들은 지금쯤 신나게 놀고 있을 텐데…….’
친구들과 영화를 본다거나 놀러가는 일은 나에겐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사 놀러간다 해도 난 늘 혼자만 놀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학교에서는 어느덧 매일 ‘수업시간마다 엎어져 자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다른 애들은 애들끼리 모여서 놀러 다니고 집에서 편히 쉬고 공부하는데 난 이게 뭐냐며 혼자 툴툴대곤 했다. 시험기간마다 부족한 시간 때문에 난 늘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울고불고 했지만 엄마는 그런 에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안쓰러운 눈길로 날 쳐다보실 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론 난 거의 가게에 가지 않게 되었다. 나의 바쁘다는 핑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엄마도 가능한 내 시간에 맞춰주시려 했다. 엄마는 혼자서 식당일을 다 하셨고 나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집에서 빈둥대고 있었다. 밥 늦게 내가 잠이 든 후에야 부모님께서는 스러질 듯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신다는 걸 난 잊고 있었다.
그러던 고1 때의 어느 날, 중간고사도 끝나고 날아갈 듯한 해방감에 들떠 나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가 아주 오랜만에 가게에 들렀다. 점심시간이 지난지라 가게 안은 한가했다. 엄마와 둘이서 카운터에 앉아 모처럼만에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한참 수다를 떨던 중 손을 내 손바닥 위에 울려놓았다. 내가 아주 부러워했던 그 손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손은 하얗고 보드라운 손이 아니었다. 손가락 마디마디는 굵어지고 손은 거칠었으며 곳곳에는 흉터로 얼룩져 있었다. 칼에 베인 상처, 찔리고 긁힌 상처……. 엄마의 손은 상처들로, 고된 식당일로 울긋불긋 곳곳마다 예전의 그 엄마 손이 아니었다. 엄마의 손 위에 내 손을 가만히 올려놓았다. 상처로 얼룩져 울긋불긋해진 엄마의 손위로 하얗고 뽀얀 내 손이 놓여졌다.
“엄마, 엄마 손은 역시 예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어 말했다. 엄마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예쁘긴. 뭐가 예쁘니? 네 손이 더 예쁘지. 아이구, 이 손 토실토실한 것 좀 봐. 참, 나도 이렇게 보드라울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아줌마 손이 다 됐지 뭐야. 후후.” 하셨다.
“엄마…….”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괜시리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나오려 했다. 아,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 친구들이랑 눌러가는 게 뭐 대수라고, 집에서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그래서 성적이 얼마나 더 오른다고. 나는 엄마 아빠의 고생을 까맣게 잊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 엄마 손이 훨씬 더 예뻐요. 여전히. 정말로 못난 건 하얗고 보드라운 내 손인걸요.’
나는 한참동안을 그렇게 엄마의 손을 들여다보며 엄마 손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엄마 몸의 얼룩진 상처들이 보였다. 오븐에 덴 자국. 눈 밑에 검게 생긴 기미, 검버섯……. 벌써 마흔이란 나이의 엄마 인생의 얼룩들까지도.
엄마에게 있어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엄마 손의 얼룩. 몸의 얼룩만이 아니었다. 숨 한번 돌릴 틈 없이 마흔이라는 인생의 길을 바삐 달려온 엄마, 지워지지 않는 건 엄마의 그 마흔 살짜리 인생의 얼룩이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었을 법한 행복한 가정생활. 남편을 위해 요리하고 커튼을 바꾸어 달고 집안에 액자 하나를 걸으면서 느끼는 여자라는 행복감. 쇼핑을 나가면 예쁜 옷들이 기다리고 있고 동창회에 참석해 친구들과 때때로 수다도 떨고 밤이면 커피 한 잔에 시를 짓는 즐거움. 하루하루 안간힘을 쓰며, 버둥거리며 살아오느라 이런 것들을 죄다 잊으려, 애써 잊어버리려하며 살아온 엄마의 마흔. 그 속에 생긴 당신 인생의 얼룩을 열여덟 짜리 인생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해하려 해보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듯 딸이기에 더 애착이 간다는 나는, 딸로서 엄마에게 못되게만 굴어왔던가. 시려온다. 점심시간. 한창 분주한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은 집에 갈 때 핸드크림 하나를 사들고 가야겠다. 엄마의 ‘여전히 예쁜’ 그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줘야지. 엄마 손의 얼룩들이 지워지길 바라면서. 엄마 인생의 얼룩들이 좀더 옅어지길 바라면서…….


<산문부 차하>
휘경여자고등학교 3학년 11반 박은경
제목 : 얼룩진 하루

“어디로 모실까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들려왔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중년을 훨씬 넘긴 듯한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 아……. 저기, 청량리로 가주세요.”
나는 서둘러 목적지를 말했다. 그러나 내가 왜 청량리로 가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순간적으로 떠오른 단어가 청량리였을 뿐이었다.
“이렇게 궂은 날 우산도 없이 어딜 그렇게 다녀요?”
택시기사가 앞을 향한 채 물었다. 쉴 새 없이 와이퍼가 움직이고 있었고, 백미러에는 택시기사의 두 눈만이 비춰지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해하며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렸다. 왠지 기분이 상해왔다. 낯선 사람에게 내 행동을 들켜버린 느낌 때문일까.
빗물이 방울져 몸속으로 흘러내렸다. 문득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손수건은 물론, 휴지조차 내 손에는 쥐어져 있지 않았다. 입은 옷 그대로 무작정 뛰쳐나왔고, 아무 생각 없이 택시를 탔다.
“학생인가? 뒤에 화장지가 있으니까 닦아요.”
신호를 기다리느라 교차로에서 잠시 멈추어 섰을 때 택시기사가 다시 나를 백미러로 쳐다보았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나에게 신경 쓰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어 택시기사의 사소한 행동들마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눈을 감았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차가운 시선은 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아니 택시 안까지 파고들어 왔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죄어오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나의 어떠한 말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나를 다그치려고만 했다.
“됐어요. 됐어. 그만해요.”
나는 그나마 남아있는 힘을 다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무작정 뛰어나왔다.
“고등학생인가? 몇 학년이지?”
또다시 택시기사가 물어왔다.
“고3이요.”
나는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 밖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래? 그런 거 같았어. 사실 우리 딸도 고등학교 3학년이거든. 그럼 우리 딸 친구가 되는 건가? 하하.”
택시기사는 무엇이 유쾌한지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택시를 탈 때 내 또래 여자 아이의 사진을 본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내게 관심을 보인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운전석 옆으로 조심스레 시선을 돌렸다. 택시기사의 딸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그놈의 대학이 뭔지. 자식 하나 대학 보내려다 부모 먼저 쓰러지겠어. 하하.”
사실 나도 할 만큼 했다. 다른 아이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노력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해도 안 되는 게 있었다. 아무리 파고들어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는 답답해했다. 오늘도 그랬다. 도대체 왜 못하는 거냐고. 부족한 게 뭐냐고 아버지는 물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나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었느냐고.
다른 아이들처럼 과외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학원 한번 변변히 다녀보지 못했다. 독서실 비용이 부담되어 학교에서 늦게까지 남아 공부해야 했다. 참고서 값이 아까워 매번 아이들 책을 복사하는……. 그런 나의 심정을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나도 이 다리만 아니었어도……. 우리 딸 과외도 시키고, 학원도 보내고 그럴 텐데. 몹쓸 놈의 인생…….”
택시기사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오른쪽 다리가 없었다. 보조기구를 달고 있었다. 택시 역시 한쪽 다리가 없는 그를 위해 특별히 개조된 차 같았다.
“왜, 놀랐지? 처음에 다리 이렇게 되고 나서 죽고 싶었지. 그런데 우리 딸 생각하니까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고. 나 없으면 누가 키우나? 하하…….”
택시기사는 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미소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늘은 날씨가 참 궂은 날이야. 하지만 이렇게 날씨가 궂어도 세상은 또 그런대로 좋은 것이지.”
택시가 신호대기에 멈춰 섰다.
“항상 날씨가 맑으면 소중한 줄을 모르지. 그런데 며칠동안 장마였다가 해가 뜨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몸이 성할 때는 몰랐는데 한참 방황하다 택시 시작하고부터는 작은 거 하나 하나도 행복하더라고.”
갑자기 택시기사의 목소리가 메어 왔다. 빗물이라도 스며든 것일까. 운전대를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는 눈가를 훔쳤다. 나는 운전석 뒤에 뉘어져 있는 목발을 보며 그의 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만이 가질 수 있는 향기, 나는 택시기사에게서 그 향기를 맡았다. 택시기사는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는 옷에 예기치 않은 얼룩이 묻었을 때 화를 내지만, 그 속에도 의미가 묻어 있는 법이지. 내 얼룩진 인생도 의미가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얼룩진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얼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부모들은 다 똑같은 마음일거야. 학생도 오늘 집에 가서 아버지 어깨 좀 주물러주고 그래. 아이고……. 우리 딸이 사대문 안에 있는 학교는 가겠다고 그러던데. 그럴 수 있을는지. 하하.…….”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 역시 바보처럼 눈물 흘리는 모습을 택시기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느냐고 소리 질렀을 때 아버지의 표정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등을 돌렸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울고 있었음을.
 “아저씨 되돌아서 가주실 수 있어요? 아버지한테 못한 말이 있어서요.”
미움과 깨달음으로 얼룩진 하루였다.


<산문부 차하>
서울 진명여자고등학교 2학년 6반 김하늬
제목 : 얼룩

그의 이름은 삼봉이다. 아니 나는 그렇게 부른다.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그는 까무잡잡한 피부와 대조되는 하얀 이빨을 가지고 있다. 그가 씩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하얀 이는 세상에서 제일 하얗게 보였다. 왠지 그 모습이 모자라 보여 나는 삼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오우, 하리. 안녕.”
나의 이쁜 이름 김하늬를 그는 하리라고 부른다. 옆집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하리가 도대체 뭐람?
“오우 삼봉. 안녕 못하리.”
나는 그가 내민 까만 손을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혀를 쏘옥 내밀었다.
“하늬야, 아저씨께 그게 무슨 행동이야!”
아빠는 입을 앙다물고 웃으며 나의 팔을 꼬집었다. 삼봉은 내민 손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씩 웃었다. 나는 그냥 등을 돌리고 집 쪽으로 내달렸다.
삼봉은 우리 아빠가 운영하는 작은 공장에서 일한다. 동네 사람들이랑 마주칠 때마다 이를 드러내놓고 웃는 그를 어느 샌가 모두 삼봉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쉬는 날 없이 늘 청소하고 일하는 삼봉이는 동네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그가 짠돌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짠돌이인지 방글라데시에서 입고 온 파란 상의와 검은 바지는 그의 유니폼이었다. 닳고 닳아 구멍이 난 바지를 기워서 입는 것도 가관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파란 상의가 눈에 띄었다. 배 쪽에 크고 하얗게 얼룩이 진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 지도를 보는 듯했다. 불룩 튀어나온 배를 감싸고 있는 하얀 얼룩은 입체감까지 지니고 있었다. 동네 꼬마들은 삼봉이의 그 얼룩을 쿡쿡 찌르며 놀려댔다. 하지만 삼봉이는 예의 그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그런 삼봉이를 칭찬하고 또 칭찬했다. 문제는 그 칭찬의 꼬리엔 항상 내가 걸린다는 것이다.
“하늬야, 삼봉 아저씨의 반만 닮아봐라. 그럼 소원이 없겠다.”
“당신도 참. 그랬으면 하늬 벌써 시집보냈게요?”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쿵쾅거리며 방문을 닫는 순간까지도 귓가에 들려오는 칭찬소리였다. 나는 아빠와 엄마가 삼봉이를 칭찬할수록 삼봉이가 미워져만 갔다. 동네 어귀에서 나를 발견한 삼봉이가 하리하고 부르며 반갑게 인사해도 고개를 팩 돌리고 지나가버렸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삼봉이는 늘 웃고 있었다.
하루는 아빠가 나와 삼봉이를 불렀다. “이보게, 자네. 서울에 온 지 넉 달이 다되어가는데 아직도 서울 구경 못해봤지? 하늬가 가이드 잘 해줄 테니까 따라다니며 잘 구경하고 오라고. 자네가 서울 와서 구경 한 번 안했다고 하면 동네 사람들이 나를 욕할 걸세. 공장 일은 걱정 말고 좀 놀다가 오게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말이냐며 따졌지만 아빠의 완고한 표정은 짙어져만 갔다. 삼봉은 어린 애 마냥 들뜬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힘껏 흘겨보았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나는 일부러 멀리 떨어져서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 한 번씩은 삼봉이를 쳐다보았다. 삼봉이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멀리 떨어져서 걷지만 사람들이 나와 삼봉이를 연관지어보는 듯했다. 그날따라 유독 눈에 띄는 하얀 얼룩의 파란 옷이 너무 보기 싫었다.
‘그 옷이라도 좀 갈아입지. 돈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옷도 안 사고 다 어디에 쓰는 거야.’
나는 귀밑까지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이고 전동차에 올랐다. 전동차에는 딱 자리 두개가 남아있었다. 삼봉이와 같이 앉기는 싫었지만 시내까지 나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만 했다. 결국 삼봉이와 같이 앉았지만 나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늘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으며 밖에 높은 건물이 보일 때마다 원더풀을 연발하는 삼봉이의 모습이 그렇게 촌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친구들과 문자 메시지를 그와는 상관없는 사람인양 굴었다.
갑자기 애절한 음악이 허공을 채웠다. 몸이 불편해보이는 아줌마가 아기를 업고 음악을 등지고 걸어왔다. 어눌한 말투로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을 한 뒤 조그마한 쪽지를 돌렸다. 나는 또야, 이런 심정으로 심드렁히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옆에서 계속 꼼지락대는 삼봉이가 계속 신경 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줌마가 손을 내밀 때마다 눈을 감아버리거나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저 눈을 감고 아줌마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순간 사람들의 짧은 탄성이 들렸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삼봉이가 꼬깃꼬깃하고 닳아빠진 만 원짜리 지폐를 아줌마의 손에 쥐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놀란 눈으로 삼봉이를 바라보았다. 아줌마는 몇 번이고 고맙다며 인사를 하더니 삼봉이의 옷만큼 닳고 구겨진 돈을 가지고 가버렸다.
나는 옷도 한 벌 제대로 안 사 입는 양반이 웬일일까 궁금했다. 내가 삼봉이를 미워했다는 것도 잊고 삼봉이에게 물었다.
“아니 삼봉아. 그 돈 있으면 차라리 옷을 사 입지, 왜 그랬어?”
삼봉이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나 방글라데시에서 왔어요. 돈 벌러 왔어요. 내가 살던 곳 가족 기다려요. 동생 학비도 줘야 돼요. 돈 벌게 해주는 한국 고마워요. 하지만 돈 쉽게 안 모여요. 그래서 아껴요. 옷 안 사고 모아요. 그래도 나 더 이상 한국 손님 아니에요. 나 한국 사람이에요. 그래서 돕고 싶었어요. 도와서 기분 좋아요.”
사람들은 그런 삼봉이의 말에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아무 말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삼봉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파란색 옷에 새겨져 있는 하얀 얼룩이 내 눈에 시리도록 박혔다. 삼봉이는 부끄러운 듯 머리만 긁적였다.
“삼봉 아저씨, 방글라데시 이름이 뭐예요?”
갑작스런 질문에 삼봉은 놀란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마이 네임 이즈 삼봉. 코리안 네임 이즈 삼봉.”
그리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배를 출렁이며 웃었다. 그러자 하얀 얼룩이 같이 씰룩대며 움직였다.
내 눈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의 얼룩이었다.


<산문부 차하>
원광고등학교 3학년 10반 최상화
제목 : 갯벌보다 뻘밭이 좋아요.

저는 갯벌이라는 말보다는 뻘밭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합니다. 지금 같은 주제로 글을 쓰는 다른 이들의 갯벌이라는 곳에서 가졌던 특별한 추억이나 소중히 간직해야할, 혹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없지만 뻘밭이라는 곳에서 느끼고 기억하는 것에 대해서는 몇 자 적을 수 있겠네요. 혹 뻘밭이라는 표현이 거북스러우시다면 갯벌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외할머니께서는 전라남도 고흥에 있는 거금도라는 섬에 계십니다. 요즘 들어서는 집안의 대소사에 밀려 섬에 계시기보다는 어머니가 계시는 서울을 오가시는 시간이 많은데 그 때마다 가져오시는 상자에는 미역과 김은 물론 이름모를 생선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유난히 향수가 짙으신 어머니는 그 상자에서 풍겨져 나오는 바다의 짠내음과 생선들의 비린내를 맡으시면 이내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마치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좋아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음식에 대한 판단을 냄새로 하는 경향이 있어서 유독 생선의 비린내를 싫어하십니다. 하지만 상자에서 나는 그 알 수 없는 짠내음은 시원한 청량음료마냥 답답한 가슴을 씻어주는 이유는 왜일까요.
저는 지금 익산이라는 곳에 살고 있지만 어렸을 적에는 외할머니 댁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벼루처럼 검은 기와 대신 파란 슬레이트 지붕에, 아름이 넘었던 대들보 대신 단단한 시멘트벽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큰 돌을 딛고 올라서야 밑을 볼 수 있었던 까마득한 우물과, 유물처럼 되어버린 양수기 대신 은빛의 수도꼭지가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귀뚜라미를 유난히 무서워했다던 어머니의 말씀과 언제나 푸짐했던 밥상 위의 이름조차 생소한 생선들의 요리만이 변하지 않은 듯하네요. 또 유난히 생선을 싫어해 그 많은 생선들을 두고 간장에 밥을 먹었던 기억도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식구들보다 더 일찍 식사를 마친 저는 제 몸통보다 큰 낚시 가방을 낑낑대며 들쳐 메고 아버지를 졸랐습니다. 귀찮다던 식구들을 반강제로 붙들고 나가면 이상하게도 제가 졸라서 나간 시간은 썰물 때를 맞추어 나가게 돼서 제 몸보다 몇 배는 긴 낚시대를 아버지처럼 멋들어지게 드리운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신나게 도착한 바다에는 가득한 바닷물이 모두 밀려나가고 더운 날씨에 녹은 초콜릿 같은 뻘이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뾰로통하게 돼서 괜스레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모르는 형들이 줬던 대나무로 된 낚시대를 가지고 놀다 손톱사이를 낚시 바늘에 찔려 그날 이후로는 낚시를 하자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는 낚시를 못하게 될 때에는 뻘밭에서 놀았습니다. 처음에는 지네처럼 생긴 벌레에 기겁을 하고 도망 다녔지만 후에는 그것도 잊은 채 어머니의 괭이를 뺏어 게를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동글동글한, 흡사 장난감총의 총알 같은 게집 주변의 모래가 신기했고 땀을 뻘뻘 흘리며 괭이질을 해서 잡은 게를 콜라병에 담는 재미, 제가 아무리 헤집어도 나오지 않는 조개들을 단 몇 번의 괭이질만에 찾아내는 신기에 가까운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솜씨에 감탄을 했었던 저는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이따금씩 보여주는 정다운 프로그램을 접할 때마다 그 추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때는 왜 게들을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잡은 게는 돌아올 때 풀어줬는데 아마 가장 잘 먹는 얼큰한 꽃게탕을 기대하고 풀어 주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온몸이 뻘로 범벅이 돼서 돌아오면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바구니에는 한가득 조개가 있었고 그 조개로 끓인 시원한 찌개와 짭짜름한 조개찜의 기억은 가끔 그 뻘밭을 생각할 때마다 입맛을 다시게 합니다.
제 기억으로 외할머니께서는 연세가 적지 않으신데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하시며 성격도 화통하셨지만 큰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많이 약해지시고 힘들어하십니다. 김을 만드는 일을 하시는 외할머니께서는 김줄을 손보시러 모터보트를 타고 일하시다 오른손 손가락을 다치셔서 많은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과 조금도 달라짐 없이 건강하시고 활달하신 모습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상당히 어려워했던 외할머니였지만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저에게 더 잘해주시려 하시는 모습에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지금 보도에서 항상 이슈가 되는 서해안 간척사업을 많은 이들이 경제적 가치나 환경보호라는 명목으로 대립하고 있지만 다분히 그 갯벌을 단순한 경제적 가치나 환경보호의 목적에 맞출 것이 아니라 뻘밭이라는 곳이 가지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었던 기억들은 다른 우리 후대의 사람들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와 환경보다 더 중요합니다.
다른 이들처럼 딱히 보여주고 싶은 멋진 추억은 아니더라도 제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일부만이라도 다른 이들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번에 내려가서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아본 적은 없지만 기회가 돼서 다시 외할머니를 뵐 수 있다면 평생 바다 내음 속에서 사신 할머니의 손을 한번만은 꼭 잡아드려야겠습니다. 비록 생선은 잘 먹지 못하고 비린내도 싫어하는 저이지만 제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주신 것에 대해 큰 감사를 하면서 말입니다.


<산문부 입선>
안양예술고등학교 1학년 5반 임지현
제목 : 얼룩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족발 가게를 하셨습니다. 처음엔 방 한 칸 없이 새벽에 장사가 끝나면 의자를 끌어다 그 위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잤대요. 그렇게 일 년, 이 년이 지나고 교회 옆 반지하방부터 지금 살고 있는 사층 건물까지 오게 된 거래요. 아직까지도 설이나 추석이 되어도 가게를 닫는 일이 없어요. 엄마는 서러운 게 많아서 돈을 악착 같이 모은대요. 장마면 항상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던 반지하방에서 살고 있을 때였대요. 그때 작은아빠는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마늘을 파는 도매상이었어요. 오빠랑 나는 각각 초등학교 일학년, 여섯 살이었는데 할머니는 오빠랑 나랑은 다 컸다고 내팽개치고 작은집 동생들을 돌봐주러 가셨대요. 가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자고 있는 오빠랑 나를 보면 엄마는 그게 그렇게 서러웠대요. 작은집이 돈을 쏠쏠하게 잘 벌고 있던 때라 할머니가 가신 거라고, 언젠가 후회할 거라고 엄마는 그랬어요. 그리고 그 동생들이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입학할 즈음, 할머니는 다시 우리집으로 왔어요. 작은집에서 이제 애들도 크고, 할머니랑 같이 살기 싫다고 가라고 했대요. 할머니는 그렇게 다시 우리집에 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엄마는 할머니에게 예전처럼 싹싹하게 굴지 않았죠. 할머니도 오빠랑 내 눈치를 보시는 것 같아요. 할머니는 벌써 칠순이 넘으셨고 나도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나는 엄마도 좋고 할머니도 좋아서 누구 편을 들 수가 없어요. 간혹 엄마랑 아빠랑 싸움이 날 때면 할머니는 엄마를 탓해요. 엄만 그때마다 팔은 안으로 굽는 거라고 하면서 화를 내구요, 그다음 불똥은 저에게 튀어요. TV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철이 든 딸이 자기 엄마를 구박하는 할머니에게 우리엄마, 괴롭히지 말라던데 너는 할머니가 날 아무리 괴롭혀도 불난 집 구경하듯 가만히 지켜본다고 말이에요. 그럴 때마다 저는 난감해집니다. 저도 가끔 할머니가 미울 때도 있는데, 생선을 구워서 살 부위는 오빠만 준다던지 그런 사소한 일이죠. 할머니가 오빠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예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비 오는 날, 옥상에서 부추를 베어다가 지글지글 부침개를 부쳐주셨어요. 나는 딱 한 장만 주고 나머지는 소쿠리에 담아서 휴지를 살짝 덮어 밥통에 넣어두셨어요. 할머니, 이거 먹으면 안 되냐고 했더니 네 오빠 줄 거라고, 먹지 말라는 거예요. 저는 뾰로통해져서 방에 처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있었죠. 부릉, 소리가 났어요. 요란한 오토바이소리가, 오빠가 온 걸 알려줬죠. 초인종 소리가 나고 얼마 지나 바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오빠가 방에 들어왔어요. 제가 알은 체도 안 하자 수건으로 대충 닦고는 계속 왜 그러냐고 묻기에 다 얘기해버렸죠. 마지막에 오빠는 할머니가 예뻐해 줘서 참 좋겠다, 이런 비아냥거리는 말도 빼먹지 않았어요. 내가 계속 삐져있자 오빠는 밥통에서 부침개를 꺼내다 제게 내미는 거예요. 니가 먹고 내가 먹은 것처럼 하겠다고. 할머니가 얄밉기도 하고, 부침개가 너무 맛있어서 냉큼 집어다 먹었어요. 할머니가 얄밉기도 하고, 부침개가 너무 맛있어서 냉큼 집어다 먹었어요. 뜨거운 것도 모르고 먹는데 덜컹 문이 열리면서 물을 떠갖고 들어오는 할머니랑 눈이 마주쳤어요. 나는 캑캑거리고 오빠는 당황해서 계속 웃더라구요.
“너, 먹이려고 남겨놓은 걸 동생주면 어떡하냐.”
“전 이런 거 잘 안 먹잖아요.”
할머니는 입만 웃고는 나가셨어요. 오빠는 괜찮다고 계속 먹으라고 손짓을 했죠. 저는 그렇게 할머니가 잊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새로 사귄 고등학교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놀러오는 길에 할머니를 만났어요.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유모차에 박스를 쌓고 계셨어요. 땀은 온 얼굴 가득하고 땀 때문에 미끄러진 안경만 코에 걸쳐져있었어요. 남의 집 앞에서 상자를 줍는 할머니를 보고 저도 몰래 친구들을 끌고 집에 들어와 버렸어요. 일요일에는 교회를 다녀와서 날이 선선해질 때, 할머니는 또 말없이 나갔어요. 보나마나 어디 골목길에서 박스나 줍겠지 했어요. 막 화가 났어요. 자식들 멀쩡하고 가난한 것도 아닌데 왜 길에서 박스나 주울까. 다음날 나는 엄마에게 할머니 용돈 좀 주라고 그랬어요. 엄마는 내가 줘도 고집만 센 할망구가 안 받는다고 했죠. 엄마는 빳빳한 수표 한 장을 봉투에 넣어 할머니 성경 책 위에 올려놨지만 저녁에 그 봉투는 다시 엄마 화장대로 돌아가 있었어요. 얼마 지나서 나는 할머니가 왜 박스를 줍는지 알게 됐어요.
“늬 오빠 핸드폰인지, 거기다가 전화해서 오늘 일찍 들어오라고 그래라.”
오빠는 와서 왜 불렀냐며 물어봤지만 나 역시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할머니는 방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면서 찢어지고 너덜거리는 만 원짜리 한 장, 오천 원 한 장, 백 원짜리를 식탁 위에 쏟아내며 말씀하셨어요.
“피자 시켜라. 늬 피자는 좋아하지?”
오빠가 부침개를 안 먹는다고 했을 때부터 계속 박스를 주우셨던 모양이에요. 모은 박스를 고물상에 팔아서 받은 천 원, 이천 원을 모으신 거겠죠. 할머니 나름대로는 오빠가 어렸을 땐, 부침개도 잘 먹 했는데 당신이 없는 동안 식성이 바뀌었고, 또 그걸 몰랐던 게 미안했나 봐요.
제가 아끼던 가방을 학교에 메고 갔는데 먹물을 흘려서 못 쓰게 된 적이 있었어요. 너무 좋아하던 가방이지만 빨아도 지워지지가 않아서 그냥 버리려고 내놓았어요. 그런데 학교에 다녀와 보니 할머니가 그걸 다시 주워놓은 거예요. 이게 왜 여기 있냐고 물어보니까 당신이 다시 빨아보겠대요. 궁상떠는 것 같아서 그냥 신경질을 내고 잊고 있었는데, 하루는 온종일 그 가방만 빨고 있는 거예요. 저러다 말겠지 하고 전 엄마랑 가방을 사러갔어요. 백화점에서 가방도 보고 옷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집에 왔어요. 내가 산 가방을 보고 낭비네 어쩌네 하면서 잔소리를 하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버럭 소리쳤죠. 할머니는 작은집에서 사시지 왜 오셨냐구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미쳤었죠. 할머니는 아무 말도 없으셨어요. 그리고 또 잊어갔죠.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려고 집을 막 나왔을 때였어요. 바로 몇 발자국 앞에 흰머리에 등이 휜 우리 할머니가 계셨어요. 구부정하게 꺾인 허리에 내가 버린 가방이 메어져 있었죠.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 위에 분홍 천을 덧대어 꿰메놓으셨더라구요. 뒤에서 할머니를 부르고 뛰어가서 팔짱을 꼈습니다. 전 그날 노래방 대신 할머니 손을 잡고 수요예배를 갔어요.


<산문부 입선>
논산 용남고등학교 3학년 7반 정여진
제목 : 얼룩

십여 년쯤 전,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유행처럼 번졌던 신기한 물건이 있다. 그것은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지울 수 있는 유용한 책받침이기도 했고 일종의 상업적 광고물이기도 했다. 이 얇고 평범해 보이는 물건의 한 면에는 언제나 알 수 없는 숫자들과 과장된 느낌표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면, 거기에는 신기한 세계를 보여주는 무수한 점들이 찍혀있었고, 한 가지 색을 띤 그 점들은 제각기 다른 크기의 얼룩으로 빼곡히 들어서있었다.
학교 교문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어귀에는, 넓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아주머니 두어 분이 이 책받침을 나누어주시곤 했다. 우리는 등교 때마다 서너 장씩 받아가곤 했는데 ‘매직 아이’라 불리는 흥미로운 놀이가 당시의 아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종목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었다.
‘매직 아이’는 우스운 사파리 눈으로 책받침 뒷면의 불규칙한 얼룩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놀이였는데, 신기하게도 몇 초 후 조그마한 얼룩들의 잔재가 환영처럼 재배열되어 호기심 어린 우리들의 눈에 오묘한 형상으로 비춰지는 것이었다. 인체의 불완전함이 빚어낸 착시였을까. 아니면 오류의 예술적인 가능성이었을까.
천사와 강아지, 꽃과 자전거를 볼 수 있었던 ‘매직 아이’를 즐기던 시절을 지나 조금은 더 성숙해진 때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갖가지 종류의 점, 주술 따위가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부러뜨린 나무젓가락의 모양을 보고 그 날 하루의 운세를 점쳐 본다든지, 묶고 남은 신발끈 네 가닥으로 행운을 부른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는데,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커피 얼룩 점’이었다.
점을 치는 방법은, 다 마시고 난 커피 잔 속에 얼룩진 커피 무늬를 보고 일정한 몇몇 기준에 의해 가까운 미래에 대한 운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나비 모양과 가깝다면 고백을 받게 되고, 초승달 모양에 가깝다면 신변에 위험이 생길 징조라는 것 등등……. 사실, 근거조차 없는 운수 장난이었지만, 결과에 따라 희비가 좌우되었던 기억이 많다.
모양 속에서, 더군다나 의미를 잃은 듯한 얼룩으로부터, 나는 무수한 영상을 만나고 나를 규정지으며 내 세계의 이면을 포착하려고 해왔다. 단지 오련한 무늬임에도 불구하고 그 희미함 속에서 우주적 원리인 만다라의 가능성을 짐작하려는 듯이 말이다.
사람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는 ‘로르샤하 테스트’가 있다. 심리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과학적으로 구성된 여러 종류의 잉크 얼룩을 어떤 모양으로 해석하는지에 따라, 피험자 혹은 성격 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성격이 규정되는 일종의 정신 진단이다.
이 과학적이라는 진단은 과연 사람들의 성격을 묘파할 수 있을까? 상상력이나 예술적 감수성, 또는 예측불허의 정신의 굴곡을 배제하고, 아니면 그러한 미묘함까지도 본능적인 성격 반사라는 어떠어떠한 이론으로 충분히 여과시키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채 마르지 않은 수채화 위에 물 한 방울이 떨어져서 무너져 버리게 된 풍경처럼, 현상으로 가득한 세상 위에 실체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얼룩을 가해 허상을 무너뜨리고 나면 얼룩을 가한 나 정여진의 자아를, 그 실체의 질감을 가늠 아닌 완전한 합치로 찾아낼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갱년기를 맞게 되어 고혈압으로 고생하시는 마흔 여섯의 어머니, 정신만이 오롯한 실체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영혼을 대하고 그 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기회가 얼룩의 주선으로 이루어질는지도 모른다.
내 두 눈은 어릴 적 어느 놀이의 명칭처럼 ‘마술의 눈’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제시하는 세상 자체가 마술일 것이다. 하지만 불완전한 환상 속에서 아무런 표시도 없이 기쁨을 얻기란 쉽지 않다.
나는 얼룩을 응시한다. 그 어떤 지표의 확언도 듣지 않은 채 우주 안 수많은 얼룩의 하나로서.


<산문부 입선>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5반 김하나
제목 : 얼룩은 지워졌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춘기. 청소년이면 누구나 다 한번쯤은 홍역처럼 앓는다는 사춘기가 어느 날 나에게도 찾아왔다.
중학교 삼학년 여름, 우리집은 가게 개업일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었다. 전에 하던 부동산 사업이 좌절된 이후, 아빠가 처음으로 하는 가게라서 우리 가족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사업이 망했을 때, 우리는 이층집 주택에서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늘 압류딱지를 달고 살았고 검은 양복을 입은 장정들이 집에 쳐들어오는 일이 태반이었다. 부모님은 이를 악물고 밤낮으로 일을 했다. 아빠는 횟집을 하는 삼촌의 소개로 수산시장에서 일을 했고 엄마는 낮에는 파출부, 밤에는 부업으로 지압기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딛고 시작하는 가게는 우리에게 곧 희망이었다. 특히 아버지가 가게에 거는 기대는 더 컸다. 사업이 망했을 때,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빠에게는 가게가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새로 개업하는 가게는 볶음밥이나 덮밥종류를 파는,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음식점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그릇을 보러 다녔고 나와 오빠는 가게 안을 청소하고 꾸몄다.
드디어 개업일. 가게 앞에는 아빠가 아는 사람들이 보낸 화초들이 길게 늘어섰고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빠는 연신 웃으면서 인사를 하기 바빴고 나와 엄마는 접시에 떡과 고기를 담아 나르기에 바빴다. 우리 가족 모두, 앉을 새 없이 일을 해서 몸은 고됐지만 마음만은 정말 뿌듯했다. 밤늦게,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온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이층집에서 살 수 있다는 기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 날 밤은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날, 가게는 어제보다 손님이 적었지만 활기를 띠었다. 여름방학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는 나와 오빠는 하루 종일 가게에 나와 일을 도왔다. 몸은 고됐지만 땀을 흘리면서 밝게 웃으며 일을 하는 아빠를 보면 몸이 고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와 오빠는 더 이상 가게 일을 도울 수 없게 되었다. 주말에 도우려고 해도 일주일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주말은 늦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렇게 점차 가게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아빠가 술을 먹고 오는 날이 잦아졌다는 걸 알았다. 가게가 개업했을 땐 기분이 좋아 약주 몇 잔하는 일은 아니었다. 아빠는 휘청거리며 들어와 쓰러지다시피 해서 잠을 잤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나는 우연히 아빠와 엄마가 안방에서 하는 말을 듣게 됐다. 하루에 손님이 열명이 안 될 때도 있고 벌써 적자가 삼백만원이나 났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순간 주저앉을 뻔했다. 다시 예전의 악몽이 되살아날 것만 같았다. 압류딱지, 검은 양복의 장정들…….
나는 그 날 이후, 아침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척하고 한강으로 등교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강가에 앉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봤다. 안개가 끼어 강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껴 보이지 않는 강 너머가 꼭 우리집의 앞날 같았다.
나는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 그날도 아빠는 술을 먹고 들어와 있었다. 아빠는 안방으로 나를 불렀다. 아마 학교에서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너 오늘 왜 학교 안 갔어?”
“…….”
아빠는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 종아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입술을 꽉 깨물어 참았다.
“너 말 안 할 거야? 아빠 이렇게 실망시킬래?”
“아빤, 술이나 먹고 그러니까 가게가 안 되는 거야!”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나는 안방을 뛰쳐나와 현관문을 나섰다. 뒤따라온 아빠가 현관문에 있던 화분을 내게 던졌다. 화분의 파편이 튀겨 내 다리와 팔에 박혔다. 하얀색 교복상의와 초록색 치마가 피로 얼룩졌다. 눈물 때문에 아빠의 모습이 얼룩져 보였다. 발바닥이 따끔따끔했다. 난 그제야 내가 신발을 안 신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맨발로 집 밖 골목길에 서서 안방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불이 꺼진 걸 확인하고 들어갔을 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상처가 난 부분에 약을 발라주었다.
“엄마…. 나도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어. 아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봐…….”
엄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엄마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했지만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오전 열두시가 훌쩍 넘는 시간이었다. 내 머리맡에는 쇼핑백과 봉투가 놓여져 있었다. 봉투 안에는 편지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내 딸 하나야. 어제는 많이 아팠지? 미안하구나. 아빠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정말 미안해. 아빠가 지금까지 아빠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고생만 시켰지? 이제부터 아빠노릇 잘 할게. 우리 딸, 사랑한다.”
쇼핑백 안에는 새 교복이 들어있었다. 나는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 때문에 눈물이 나왔다. 그 눈물은 교복에 생긴 얼룩도, 내 마음의 얼룩도 말끔히 지워주었다.
중학교 삼학년 여름, 홍역처럼 찾아온 사춘기는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산문부 입선>
한영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8반 이상아
제목 : 운수 좋은 날

약간 헐거운 운동화 틈새로 굴러들어온 작은 돌멩이 하나가 물집이 생기려하는 발바닥에 꼭 박혔다. 아얏!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애써 참은 채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아직도 높게만 쌓여 있는 계단 모양의 바위들은 뿌연 시야 가운데서도 우뚝 서서, 킬킬거리며 내 모습을 비웃고 있었다. 아니, 전혀 힘들지 않아!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가라앉히려 애쓰며 나는 거듭 되뇌었다. 반년 전의 그때처럼.
외고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시험을 불과 석 달 앞둔 어느 여름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들어가게 될 학원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선 내 손을 한번 꼭 잡아준 엄마는 이내 부르릉 소리와 함께 떠나버렸다. 집에서 강남의 학원까지는 차로도 한 시간 남짓 휑한 지하철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그보다 더 길고 고달팠다. 그 느낌은 어쩌면 새벽 한 시에 돌아가는 곳이 따뜻한 집이 아닌, 좁은 독서실의 정적이라는 것에서 기인하는지도 몰랐다.
툭. 발길에 채인 돌멩이의 의외로 가벼운 울림에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가파른 고갯길은 평지로 변해 있었다. 목표인 해발 천칠백 미터까지는 백 미터도 채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의 정겨운 푸른빛에, 이제껏 그렇게 서둘러 올라온 이유를 망각한 다리는 한껏 느긋하게 움직였다.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룬 뒤의 달콤한 휴식. 오랜만의 일이었다.
졸업식 때까지의 몇 주간, 그 휴식이 시작된 날인 합격 발표일은 내게 있어 최고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일기장에는 환희의 표시들이 물결쳤고, 친구들은 성격이 좋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세상을 온통 발아래 둔 듯한 사춘기의 치기어린 오만이, 그토록 여실히 드러났음을 상기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장학생 선발고사에서도 예상외의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나는 중학교 때의 여유를 완벽히 되찾은 듯했다. 그러나…….
“상아야!”
등 뒤로 울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순간, 저절로 일그러지는 얼굴 표정을 수습하느라 안간힘을 써야했다. 땀에 젖은 얼굴로 해실해실 웃는 그 애는, 불과 이 주 전 나와 크게 싸운 일은 완전히 잊은 것처럼 그저 명랑했다. 사실 임박한 시험을 핑계로 그 애와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었다. 뒤이은 수학여행에서도 그런 식으로 슬쩍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겨우 여행 이틀째에 이렇게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것은 예상외의 급전개였다. 싸움 당시 내가 그 애에게 퍼부었던 말들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하나같이 똑같아 피도 눈물도 없는 공부벌레들 같으니 어릴 때부터 이 학원 저 학원 전전하며 살아왔겠지? 애초에 이 학교에 들어오고 너희들을 만난 게 후회스러워!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폭언을 들으면서도 아이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랬다. 내가 싫어하게 된 것은 그 무표정들이었다. 몰입의 진지함. 자습 시간에 문득 주위를 둘러보며 절감하게 되는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때맞춰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성적이었을 게다. 중학교 친구들과의 연락도 수월치 않았다. 수업 시간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 대체 저 선생님이 내 이름을 기억이나 할까 하는 의문과 두려움은 나를 생각보다 더 나쁜 아이로 만들었다. 나가 버려! 난 집에 갈 거야. 묵묵히 서있던 그 애는 짧게 말했다.
“마음대로 해. 그런데 너야말로 인생의 목표가 있긴 한 거야?”
그 날 저녁, 나는 뒷꼭지의 지우개가 떨어져나간 샤프로 몇 달 전 일기에 쓴 구절 ‘오늘은 최고로 운수 좋은 날’을 박박 줄을 그어 가려버렸다.
지금도 그 일기장은 산 아래 두고 온 가방 안에 고이 모셔져 있기에, 절로 마음이 급해졌다. 고지의 경관을 살펴볼 여유도 없이, 내려갈 채비를 한 것은 조금 무심한 일이었다. 정상까지 함께 했던 그 아이의 외침을 무시한 채, 나는 빗물로 축축한 산비탈을 날듯이 뛰어 내려갔다. 앞서 가던 이들을 제치고 달려가자니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며 상쾌해졌다. 비록 공부가 아닌 산타기라 할지라도 멀리서 울상을 지으며 쫓아오는 그 아이를 이겨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콧노래가 나왔다. 하지만 가볍게 디딘 발이 젖은 바위 위에서 찌익, 미끄러졌을 때, 노랫소리는 비명으로 바뀌었다. 으아악!
“…자, 업혀.”
한참 지나서야 내려온 그 애가 내미는 등을 바라보며, 나는 나름대로 생뚱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글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그런 표정을 짓는 게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무게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은 터라, 우리의, 아니 그 애의 발걸음은 꽤나 느려졌다. 물기어린 산 속은 고요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피어올랐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와 잎새 사이로 물방울이 듣는 소리, 젖은 운동화가 철벅거리는 소리를 한참 듣가가 나는 입을 열었다.
“넌 꿈이 뭐니?”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애는 아마도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국선변호사. 힘들겠지만, 일하는 만큼 보람도 있을 거야. 덕분에 내신 점수 잘 받으려고 이 고생이지만.”
잠깐의 침묵 끝에 내가 그 애에게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사실 엉뚱하게만 들렸으리라.
“저어, 지우개 하나… 갖고 있어?”
“이따 숙소에서 빌려줄게. 근데…….”
“아아, 오래된 일기에, 고칠 게 생각나서 말이야.”
그 날 처음으로, 나는 친구를 향해 웃어보였다. 말끔히 갠 하늘 아래서. 좋은 날이었다.


<산문부 입선>
안법고등학교 3학년 3반 유승혜
제목 : 얼룩

할아버지는 꼽추였다. 동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낙타 할아버지라고 부르곤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시곤 했는데 어린 마음에도 등이 굽은 할아버지랑 눈 마주치는 게 싫어 되도록이면 할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는 먼 곳까지 놀러 나가곤 했다. 아마도 ‘낙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친구들의 놀림이 더 싫어서였겠지…….
나는 작은 농촌마을에서 원 없이 뛰어놀았다. 산과 들, 그리고 시냇가……. 지금도 살고 있는 이 마을은 그야말로,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등장하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다. 암튼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가 다 질 때까지 놀고는 느지막이 집에 들어가곤 했다. 언젠가는 정신없이 잡기놀이를 하고 있던 나를 할아버지가 데리러 오신 적이 있었다. 해가 다 저물었음에도 집에 들어오질 않으니 많이 걱정 되셨나보다. 할아버지는 조그만 내 손을 잡고 집으로 이끌었다.
“할아버지, 나 쫌만 더 놀고 싶어.”
“에구… 우리 강아지 밥 묵어야지. 그리 뛰놀고 배고프지도 않나?”
집으로 가는 길에는 꽤 넓은 복숭아 과수원이 있다. 한여름이면 복숭아 익는 달콤한 향기가 온 마을에 퍼지곤 한다. 그 해 여름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곱 살배기의 어린 나는, 달콤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한 복숭아 향기에 취해버리고 말았다. 어린 손녀가 복숭아 과수원에 눈을 떼지 못하고 걸어가니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할아비가 저 복숭아 따줄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할아버지는 복숭아 두 알을 금방 따오셨다. 곱사등이 할아버지는 나와 거의 키 차이가 없었음에도 손수 복숭아를 따서 손녀의 손에 쥐어주셨다. 작은 두 손에 가득 담기는 어여쁜 복숭아 두 알.
“니 먹고 영순 아비한테 이르면 안 된다! 에구… 참, 이게 얼마 만에 해보는 서리인고.”
“할아버지도 이거…….”
“할아비는 됐다! 우리 강아지 많이 묵어라.”
정말 맛있었다. 어찌나 꿀맛이던지 나는 집에도 가기 전에 두 알을 다 먹어버렸다. 아주 오래된 일임에도 그 때를 기억하는 것은 복숭아의 그 진했던 향기와 하얀 옷에 남긴 복숭아 얼룩 때문이리라. 나는 그 날 엄마한테 따가운 몇 마디를 들어야만 했다.
“엄마가 사준 새 옷을 고새 망쳐놓고 왔구나. 복숭아 얼룩은 지워지지도 않는데…….”
“에미야, 고마해라. 옷 좀 더러워지면 어떠냐.”
할아버지는 날 보며 씽긋 웃으셨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가 안겼고 할아버지는 내 작은 주머니에 사탕 몇 개를 쏙 집어넣어주셨다. 꼽추 할아버지가 창피하여 눈도 마주치지 않던 내가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이…….
할아버지는 내가 열한 살 되던 무렵, 복숭아 열매가 탐스럽게 열리던 뜨거웠던 여름에 돌아가셨다. 그 후로는 부모님께 꾸중을 들을 때, 항상 내편이 돼주시던 할아버지가 종종 그리워지곤 했다.
어느 날, 한참 장롱정리를 하던 엄마는 나를 불러 해묵은 터 한 장을 꺼내 보이셨다. 조그맣고 낡은 하얀 티.
“내가 니 일곱 살 때,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사준 옷이다. 여기 얼룩 보이니?”
거무스름한 얼룩이 군데군데 번져있었다. 나는 얼룩이 생긴 부분을 가만히 코에 대보았다. 아직도 복숭아 향이 전해질 것만 느낌.
“이게 복숭아 얼룩이다. 니 할아버지도 참 극성이시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손녀딸 맛난 것 좀 먹여보겠다고……. 나는 니 새 옷 버려서 속상, 아버님 알레르기 도져도 속상…….”
나는 그제야 알았다. 할아버지에게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음을. 아, 그래서였구나. 할아버지가 복숭아를 드시지 않았음은, 복숭아 과수원 길을 걸으실 때면 항상 밭쪽으로 걸으셨음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직접 복숭아 과수원에 들어가 맨손으로 복숭아를 따주셨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깊었던 손녀사랑이 가슴속 깊이 배어나왔다.
할아버지가 내 두 손 가득 복숭아를 쥐어주던 날 입고 있던 그 옷.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그 얼룩진 옷. 이젠 내 동생까지 입어 참 많이 낡고 헤졌지만 나는 그 옷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그 옷을 조용히 꺼내본다.
지워지지 않는 복숭아 얼룩.
잊혀지지 않는 할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추억이다.


<산문부 입선>
상명사대부속여자고등학교 3학년 4반 이애리
제목 : 얼룩

졸린 눈을 비비고 집을 나서면, 세상은 언제나 뿌옇게만 보였다. 제각기 빛깔을 뽐내고 있을 색색의 꽃과 나무는 물론이고, 인위적인 색을 덧칠해놓은 버스, 건물, 사람들의 옷 색깔도 내게는 그저 하얀 바탕 위에 얼룩덜룩한 무늬처럼만 보였다. 이렇게 아침마다 난 항상 멍했다. 잠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는 느낌에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간다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나 괴로운 것이었다. 고3이라는 굴레 속에 하루의 생활은 그저 목적달성을 위한 기계적 일상의 연속일 뿐이었다. 오직 대학이라는 목표 속에서 시인의 시, 역사 속의 사건들은 요점정리, 중심정리란 이름 아래 두세 줄로 짧게 문제지 귀퉁이 어딘가에 적혀질 뿐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대학에 가서 문학의 세계에도 빠져보고, 역사 속에도 빠져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고등학교라는 굴레를 벗어나 대학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면 또 다시 남들보다 멋지게, 부유하게 살기 위해서 취업이라는 목표 아래 기계적인 일상이 반복될 게 뻔했으니까.
고3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수학, 영어 문제와 씨름을 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책을 꺼냈다. 책상 가운데에 책을 펼쳐두고 조용히 책장을 넘겼다. 앞에 앉아 계신 선생님의 따가운 눈총, 아이들의 어이없다는 눈빛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글자 하나하나를 따라 내려가며 책을 읽었다. 고3 교실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남들의 따가운 시선과 낙오자라고 낙인찍은 사람들의 비아냥거림 속에서 책장을 묵묵히 넘기는 것.
책 속에는 많은 사람의 고통이 담겨있었다. 그것이 한 사람만의 고통이든 여러 사람의 고통이든 간에 사람들의 아픔은 그 자체로 내 마음을 울리는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역사 속의 비극에 의해 고통 받고, 사라져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 자신을 땅 속 깊은 곳으로 푹 꺼져 들어가게 만들었다. 개발독재시절 하루 열다섯 시간이 넘는 노동력 착취와 지독한 가난 속에서 쓰러져갔던 사람들, 1980년, 원인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총알 앞에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품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광주 시민들, 1987년 전경들의 최루탄, 곤봉, 발길질 앞에서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놓지 않았던 사람들……. 고3이란 현실 속에서도 이러한 많은 사람의 아픔은 쉽게 내 가슴 속에서 사그라지지 않았다. 현실의 노예가 되어 모든 것이 수단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가슴 속이 슬픔으로 젖어드는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하루 종일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고, 가슴 속이 콱 막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이 많았다. 항상 가슴이 답답했고 그럴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함으로 가득 찼던 가슴 속에 서서히 허탈감이 찾아들고 있었다.
‘현실이란 게 이렇구나, 아무리 내 자신이 어찌해 보려고 해도, 보잘것없는 존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구나.’
마음속에 가득 찬 답답함과 아픔들은 허탈감이라는 얼룩 속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내 마음이 허탈감의 얼룩 속에 젖어가고 있다면, 세상은 망각의 얼룩 속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만들어준 역사를 잊고 있고, 역사 속의 아픔과 그 속에서 희생되었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상, 그것 자체가 얼룩이었다.
국어시간이었다. 김수영 시인의 시를 배우고 있던 도중 선생님께서 6월 항쟁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때 참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지. 연세대에서 이한열이라는 학생이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서 죽어가는 사진을 봤는데……. 그 사진을 보면서 그냥 그 자리에 앉아만 있을 수 없었어. 그래서 밖으로 나갔지.”
그때 아이들은 모두 약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하고 상관도 없을 텐데 꼭 데모하러 나가야 했어요?”
선생님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마 그 기분을 모를 거야. 잘 알려고 하지도 않을 테고. 하지만 독재정권 속에서 많은 사람이 억압과 탄압 속에서 희생당하던 때였어.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순응하며 살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가만히 있다가는 왠지 내 자신이 역사 앞에서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 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너희는 이해하지 못 할 테지만. 힘든 생활 속에 무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잊지는 말았으면 해. 매일 매일 기억하고 있으란 게 아니라 적어도 잊지는 말아 달라는 거지. 너희가 지난날의 역사 속의 비극과 희생을 모르고 잊고 있다면 그게 나중에 우리의 미래에 얼룩이 될까 두렵거든. 그럼 오늘은 이만하자.”


<산문부 입선>
안양예술고등학교 1학년 5반 허재은
제목 : 운수 좋은 날

아침부터 어두컴컴한 바람에 늦게 눈을 뜬 날이었다. 엄마는 내가 늦게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어제, 엊그제 심지어 일주일 전 집에 늦게 들어온 것까지 들먹이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의 얼굴이란 정말 살기가 도는 것 같았다. 엄마의 말이 나를 자꾸만 찝찝하게 했다.
“이노무 가시나 오늘도 학교 땡땡이치고 놀러 가지만 해봐!”
어떻게 알았을까. 오늘도 어딘가로 놀러 갈 것이란 걸.
3교시가 끝나자 아이들이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매일 생각 없이 싸돌아다니지 않는 딸이 되기 위해 점심시간에 혼자 급식을 먹었다.
5교시가 지나자 슬슬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내 주제에 괜히 수업 들을 거라고 우긴 것 같았다. 계속 친구들을 보내고 혼자 있는 내가 초라했다. 담임선생님도 이상한 눈길로 나를 보았다. ‘저건 왜 오늘 안 나가나.’하는 표정이었다. 아침에 지각해서 맞은 곳에 멍이 들어있었다.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되는 일이 없었다. 겨우 버티고 있다가 집에 가려고 나서는데 비가 뚝뚝 떨어졌다. 우산도 없는데 비가 왔다. 다른 아이들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한 우산으로 집으로 가고 했지만, 내게는 매일 같이 학교 땡땡이치고 노는 그런 친구들밖에 없었다. 그냥 비를 맞으면서 걸었다. 날이 안 좋아서 그런지 친구 잘못 사귀었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이대로 계속 산다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꺄악!”
친구를 잘못 사귄 것이 아니라 운이 안 따르는 날이었다. 조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 날이긴 했지만 지나가던 차까지 흙탕물을 튀기고 그냥 갔다. 3교시에 애들이랑 같이 나가지 않은 것이 또 후회가 되었다. 지금쯤 뭔가를 실컷 먹고 노래방 가서 좀 놀다가 백화점으로 가서 쇼핑을 하겠지. 아니면 백화점부터 들러서 아영이 핸드백을 먼저 샀거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보았다.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영이에게도 전화해보고 민지에게도 전화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희영이는 원래 휴대폰이 없고. 일부러 나를 피한다는 소외감이 들었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치고 집에 다다랐다. 타이트한 교복이 비에 젖어 속옷이 비쳤다. 집에 들어가면 엄마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해달라고 해야겠다. 엄마도 오랜만에 일찍 들어가는 딸을 좋아해주실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난 후 처음으로 따뜻한 밥을 떠올리며 웃었지만, 벨을 눌러도 집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엄마는 꼭 내가 일찍 오면 집에 없었다. 비상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엄마를 기다렸다. 얼마 전 PC방에서 집 열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서럽다는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와 눈물이 나려했다.
늦게 일어나 엄마 잔소리 듣고, 지각해서 교문에서 허벅지 두 대를 맞고, 애들이 놀러가자고 할 때 혼자 튕겼다가 지겨운 수업 다 듣고, 담임 이상한 눈빛이나 보고 아, 오는 길에 비까지 맞았다. 기껏 집에 일찍 오니 엄마도 없고, 아까 차가 튀긴 흙탕물 때문에 교복도 엉망이고. 살면서 엄마 속 조금 썩인 죄밖에 없는데 오늘 하루가 왜 이리 꼬이는지 모르겠다.
“어머, 소영아. 왜 여기 이러고 있어? 우리집 벨 누르지 그랬어.”
홀딱 젖은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옆집 아주머니께서 열쇠를 주셨다. 엄마가 어디 좀 간다고 맡겨놓으셨단다. 대체 어딜 갔기에.
그래도 기쁜 마음에 씻고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에서는 속보만 나오고 있었고, 드라마나 오락프로는 전혀 하지 않았다. 자막으로 많이 듣던 곳이 나왔다.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삼풍백화점이면 아영이, 민지, 희영이와 함께 엄청 자주 가던 백화점이었다. 운이 따르지 않는 날인지 백화점까지 무너졌다. 이런 일이 흔하지 않은 것은 알지만, 대수롭지 않게 들렸다. 오늘은 운이 없는 날이었으니까.
“후.”
절로 한숨이 나왔다. 비가 또 계속 오자 전기까지 끊겨버려 텔레비전도 꺼지고 집에 켜놨던 불들도 다 꺼져버렸다.
애들이 조금 걱정됐다. 엄마도……. 모두 그 백화점에 가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더 눈을 뜨고 있었다가는 또 다른 재수 없는 일이 펼쳐질 것 같았다.
“누구세요?”
잠이 막 들려던 순간 벨소리가 울렸다. 옷을 질질 끌고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에 있는 센서등이 켜지는 걸 보고 다시 전기가 들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고, 소영아.”
엄마가 들어 오시자마자 나를 끌어안으시며 주저앉으셨다. 멀뚱멀뚱 엄마를 바라보았다.
“내 딸, 내 딸이 있어서 다행이다.”
엄마가 알 수 없는 말만 늘어 놓으셨다.
“저쪽에 백화점이 무너졌다 아이가. 아영이 엄마가 낮에 전화를 해서 너거 아들이 그 백화점 간 것 같다고 빨리 가보자 하더라.”
엄마는 부엌에서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시고 말을 이으셨다.
“희영이는, 희영이는 그냥 서서 그 밑에서 아영이랑 미란이 기다리다가 시체도 못 찾았다.”
나만 사고를 피한 것이었다. 희영이, 아영이, 미란이가 백화점에 갔었던 것이다.
“아영이랑 미란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물었다. 운이 없으려니까. 오늘 운이 안 좋더라니까.
“아영이랑 미란이는 찾긴 했는데, 아이구 마, 못 보겠더라.”
지금 눈물도 안 흘리고 있는 엄마지만 그곳에서 날 얼마나 찾았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오늘은 친구까지 잃었다. 운이 없으려니까. 오늘은 운이 안 좋은 날이니까.
다시 텔레비전을 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니는 얼마나 다행이고. 오늘 운 진짜 좋은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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