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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을 지나다
이은유
지평선이 가까워졌다
창내 입구
창내리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구부러진 길을 맞닥뜨려야 한다
비탈진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휘청거리게 되는 곳
창내리는 별이 많이 뜨기도 하지만
지평선과 가까운 곳이다
지평선이 가까워질 무렵
몸이 기우뚱 출렁대기 시작한다
지평선을 지나지 않았더라면
내 흔들림을 알아채지 못한 채
출렁거리는 시간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지평선이 아니었다면
출렁거리는 몸의 떨림을 감지하지 못했을 터
보고 싶을 때도 달려가지 못했으니
떠나보낸 사람이 많은 것이다
저 기울어진 길을 지나지 않았더라면
내 몸의 기울기조차 까마득히 몰랐을 것이다
단지 부딪히고 찍히고 긁힌 상처 부위를 보면서
모서리 탓만을 했을 것이다
흔들림을 받아주는 곳
흔들림이 없었다면
지평선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지평선을 마주하고서야
내 몸이 둥글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지평선을 멀리서 감지하고부터는
몸이 뜨거워지고
굽이치듯 떨리고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땅이 일직선으로 만난다는 그 지점에서
나는 물처럼 출렁거린다
땅과 하늘이 합일되는 그 순간에
굽히고 숙이고 기울어지면서
나는 둥글어지는 것이다
낯선 풍경
이은유
꽃잎이 떨어졌다는 걸 바람이 알려주고 갑니다
후회는 이별보다 늦게 오는 법
이별은 바람보다 더 빨리 찾아옵니다
내가 구름이 되었다가 꽃이 되었다가 새가 되는 어느 상승의 날에
바람 부는 밤 말이 많아진 당신보다 내가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더 이상 그대는 익숙한 풍경이 아닙니다
당신의 눈빛은 흔들리듯 떨리고 있겠지만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연초록의 잎사귀이거나 진분홍빛 꽃잎이었던 것처럼 늘 어긋나 있습니다
잎이 시들고 꽃이 진 후의 이별은 바람보다 더 빠릅니다
당신은 하늘을 올려다보겠지만 나는 꽃잎이 별이 되겠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당신은 빗소리를 들으며 저녁을 생각하겠지만
나는 햇빛에 부서지는 오후의 강물을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멀리 바다에 가 있겠지만
처음부터 약속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미래는 물안개에 덮여 있습니다
한때 나도 낙엽이나 꽃잎 같은 걸 모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구름을 피웠다가 꽃을 피우다가 하겠지만
이미 늦은 저녁이 와서 새들이 상처를 물고 가고
어스름은 꽃물처럼 번져 나에게만 물들 뿐
나는 그대에게 가지 못합니다
구름에 바람을 불어넣는 나보다 당신은 더 여리기 때문입니다
옹골차게 뭉쳐진 나도 진흙이 되지는 못합니다
서툰 것은 당신만이 아니었습니다
□ 약력: 199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이른 아침 사과는 발작을 일으킨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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