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작품 전체 시 소설 아동문학 에세이 북한문학 은수저 조회 2545 제목 [은수저] 이진희 / 소풍가는 토끼와 어린이 외 1편 이름 사무처 소풍가는 토끼와 어린이 이진희 소풍을 가보기도 전에 소풍이라는 낱말을 배웠습니다 기다란 귀, 짤막한 꼬리를 쓰다듬은 적도 이상야릇한 털 냄새를 맡은 적도 없이 토끼들이 즐겁게 소풍을 갑니다, 라는 문장을 외워야 했습니다 아무 맛도 냄새도 없는 문장을 곱씹으며 토끼들의 점심 비스킷 맛을 상상했습니다만 우웩, 종이나 흑연의 맛 문장은 좀처럼 외워지지 않았고 제때 소풍을 가지 못했습니다 비스킷은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죄다 부서지고 해가 꼴딱 지도록 아무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프랑켄슈타인 이진희 오, 메리 셸리* 배꼽 없는 내가 빨아보고 싶은 엄마의 젖무덤 엄마이면서 아빠인 닥터 프랑켄슈타인의 엄마 메리 셸리 엄마가 나의 이름을 짓지 않아서 아빠는 나를 어떤 이름으로도 부르지 못했다 엄마가 무언지 몰라서 나는 아빠를 죽였다 내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나였다 추워, 엄마를 엄마라고 불러본 적 없어서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기 오싹해서 추운데도 나는 북극으로 가 쇄빙선처럼 무자비하게 얼음을 깨며 북극으로 가 북극으로 더 북극으로 가서 북극곰처럼 예민하게 외로워진다 산 것의 냄새를 맡은 지 오랜 북극곰처럼 난폭해진다 난폭하게 굴다 덜컥 죽어버린다 북극처럼 외로운 존재들로 나를 완성한 아빠 그런 아빠를 죽이고도 이름을 얻지 못한 배꼽과 천국이 없는 나 한 페이지도 읽으려고 애쓴 적 없으면서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 우리는 무엇일까 서로의 미래를 아름답게 기록하기 위해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야 할까 *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약력: 2006년 계간 『문학수첩』으로 등단 로그인 하신 후에 의견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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