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 제1회

사라진 마녀

권 지 예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라쁠륨"에 "두 개의 꼭두각시 인형"과 "상자 속의 푸른 칼"을 발표하며 등단. 현재 파리 7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나는 지금 대서양에 떠 있어. 두 시간째야. 프랑스의 르아브르 항구에서 아일랜드로 가는 페리를 탔다. 바다는 광활하구나. 바야흐로 하오의 농염한 햇빛을 받아 잔잔하게 넘실대는 파도가 꼭 거대한 물고기의 비늘처럼 현란하다. 수평선 너머로 펼쳐진 하늘의 뭉게구름 모양조차도 무슨 웅장한 상형 문자처럼 상징적이다. 네가 그랬지. 우린 생을 미립자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그럼 사는 게 아주 가벼워진다고. 네가 사는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에 있는 묘지에서 그랬지.1년여만의 해후였지만, 세월이 네게만 급류처럼 흘러 버린 듯했다. 너는 어찌 보면 살만큼 산 노파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무거운 것이냐. 늘 가슴속에 무거운 추를 달고 사는 거 같아. 네 말대로 난 뭔가에 단단히 주눅든 놈인가 보다. 내가 생각해도 그래. 널 찾았던 걸 후회했다. 너는 내게 무거운 추 하나를 더 얹어 줄뿐이었어. 그 짧은 해후는 생각보다 나빴다. 이게 이제 내게 배당된, 견뎌 내야 할 청춘의 무게인지.......

왜 아일랜드냐구? 나도 모르겠다. 묘지에서 너와 헤어져 내가 생각한 건 표류였다. 일엽편주에 몸만 싣고 파도 위에 나를 방기하고픈 심정이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바다만 바라보다가 잘 말린 명태처럼 가벼워져 돌아가고 싶다. 네게도 말했지만 난 이 여름이 끝나면 입영을 하게 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분명 사고 치고 말 것 같아.

내 마음의 묵은 먼지나마 털어 내지 않으면 도저히 숨조차 쉴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야.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그러므로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해.

"아빠! 이 아저씨 한국 사람인가 봐."

소리가 난 쪽은 뒤통수 바로 근처다.

이국의 여객선에서 듣는 호기심이 배어 난 어린 계집아이의 새된 모국어.

나는 무릎에 올려놓았던 노트에서 손을 떼고 쪼르르, 내 앞에 선 계집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이는 아마 여덟 살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헤에, 무방비한 웃음을 웃는다. 곧 한 사내가 엉거주춤 유모차를 끌며 내 앞에 선다. 유모차 안엔 돌 무렵의 아기가 공갈 젖꼭지를 맹렬하게 빨고 있다. 사내는 뭔가 마뜩찮은 표정이다.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사내는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지금 몇 시나 됐죠?"

"아, 네시 오십 분인데요."

나는 시계를 보이며 공손하게 말했다. 사내의 얼굴이 일순 환해진다.

"아! 그거......."

"네? 뭐가요?"

"그 시계 말이오. 그거 한국에도 팔던가? 나는 예전에 그거와 똑같은 걸 파리의 벼룩시장, 좌판에서 샀었는데......"

"아, 이거요.? 오래 전에....... 선물 받았어요. 차던 건 여행 오기 전 술 먹고 잽혔거든요."

나는 조금 얼굴을 붉혔다. 떠나기 전, 약을 새로 갈아넣고 차고 온 시계는 남녀 공용의 패션 시계였다. 둥근 판에 시침은 늙은 마녀, 분침은 길다란 빗자루 모양인, 디자인이 아주 특이한 시계다. 마녀는 지금 빗자루를 타고 하강하고 있다. 누구나 그 시계를 보면 한 번쯤 빙그레 웃는다.

"그거 아직 대륙 시간이죠? 그나저나 아직 스무 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저렇게 난리니.......슈퍼에도 없고....... 면세점에도 없고. 참, 약방문을 언제 연다고 방송이 나왔습디까?"

"아뇨, 못 들었는데요."

"거 참,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렇죠?"

뭐가 그렇다는 건지?

"네?"

왜 이럴까? 한국을 떠난 지 한 달도 넘어서 일까? 아니면 이 남자의 생략이 심한 화법 탓일까? 난 계속 어눌한 반문만 하게 되니 말이다.

사내는 남방 셔츠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내게도 권한다.

잠시 사라졌던 계집아이가 급하게 뛰어오며 외친다.

"아빠, 빨리! 엄마가 죽을 거 같애!"

"넨장! 알았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사내를 보았다.

"마누라쟁이가 배멀미로 시달리고 있어요. 너무 민감한 거지. 발 밑의 파도를 너무 의식하니까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거요. 자 봐요. 이 배는 우리가 사는 도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잖아요. 사실 그렇죠. 밑에는 호텔처럼 캐빈(객실)들이 있고 카페에 레스토랑, 극장, 카지노, 오락장, 디스코 텍까지 갖춰진 유흥 도시로 생각하면 끄떡없잖아요? 배가 가는 것 같지도 않게 가는데. 배를 탄게 아니라 바닷가의 거대한 쇼핑몰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가끔 균형을 잡기 위해선 속임수도 필요한 거라구.우라지게도 꼭 맥힌 예펜네! 그나저나 어쩐다?"

그때 아기가 아앙,하고 공갈 젖꼭지를 퉁겨 내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계집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주워 티셔츠 앞섶에 한 번 쓰윽 닦아 아기의 입에 쑥 물린다. 아기는 도로 뱉어 내며 분홍 입속을 드러내며 운다. 여섯 개의 여린 젖니가 떨리고 있다.

"아빠, 준이 배고픈가 봐!"

그러자 사내는 아이의 유모차를 신경질적으로 흔들어 주다 결심한 듯 몸을 돌린다. 그때 갑자기 생각이 나서 나는 급히 말한다.

"저어....... 비행기 멀미약도 됩니까?"

어머니는 처음 타는 비행기의 멀미를 걱정했다. 공항의 약국에서 급히 지어 오신 약을, 그대로 배낭의 어딘가에 처박아 놓은 게 그제야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 멀미약은 하필 배낭의 맨 아래쪽에 있는지 내 남루한 행장이 하나씩 다 드러난다. 약봉지는 나달 나달 구겨진 채 나왔다. 속엣 것을 다 토해 낸 배낭이 축 늘어진다. 계집아이가 옆 좌석에 마구 쏟아 놓은 냄새나는 허접물건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다가와 바라본다.

"한번에 두 알씩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번."

나는 처방을 읽어 주며 사내에게 약봉지를 건넨다. 사내의 얼굴이 감격스러워진다.

"어이구, 고마워요. 이따 봅시다. 내 맥주 한잔 살게요."

사내는 처음으로 활짝 웃는다. 눈가에 많은 주름이 진다. 그러나 웃는 얼굴이 예상외로 호감이 가는 얼굴이다. 사내는 유모차를 끌고서 급히 뒤돌아 간다. 아래층 객실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갑자기 생각난 듯 뒤돌아 소리친다.

"심심하거들랑 내려와요.C복도 303호루."

잠시 잠에 떨어졌었나 봐. 선선한 한기에 눈을 뜨고 보니 마주친 하늘은 온통 복숭아빛 노을이야. 바다는 그새 은빛으로 변했구나. 내가 지나온 곳의 물빛들을 떠올려 본다. 베네치아와, 지중해와, 스위스의 호수와, 내륙의 강들과....... 여긴 배의 꼭대기층 갑판 위야. 그새 썬탠을 하던 사람들도 내려가고 야외용 테이블과 흰 의자들마저도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다.

잠들기전 편지를 쓰던 노트는 바닥에 곤두 박혀 흰 낱장이 퍼덕거리고 있구나. 마치 날개 다친 바닷새처럼....... 가만히 집어들다 거기 삐죽 나온 분홍색 메모지를 들여다본다. 너의 주소. 이 편지를 봉인하고 우표를 부치고 네게로 향한 나의 마음이 날아가야 할 운명의 기호들.......

넌 내가 거기까지 올 줄은 몰랐겠지? 사실 이렇게 배낭을 달랑 메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유럽까지 온 건 오로지 너 때문만은 아니었어. 좀 더 솔직해지라구? 그래........ 내가 어떻게 꼭꼭 숨은, 너라는 술래를 찾아내게 되었는지 말해 줄게.

네가 네 삶의 마디를 도마뱀처럼 끊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자, 소문은 한동안 맥주 거품처럼 차 올랐다 꺼졌다. 이경철 선배의 얼빠진 표정하며....... 동아리들의 혓바닥 위에서 너는 여러 번 더 짓이겨졌었지. 하지만 나, 난 네가 사라질 줄 알았던 사람처럼 담담했어.

너와의 사랑....... 그것도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마치 한 순간의 신기루 같았지. 신기루는 그냥 환영일 뿐이잖아. 하지만 신기루는 사람의 마음이 몹시 간절할 때만이 나타나거든. 성냥팔이 소녀의 신기루처럼 말이야. 내 삶은 늘 그랬어. 늘 원하면 사라지게 장치가 돼 있었지. 그래서 나는 늘 덤덤한 척 하는지 몰라. 삶이란 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지. 그건 늘 주체가 되지 못하는 방관자적인 내 기질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 쓰라려 하지 않았다. 외려 학교 수업도 한번도 빼먹지 않았고,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은 늘 도서관에 처박혀 있었지. 물론 우리들의 동아리, "시인과 촌장"에도 발길은 끊지 않았지. 그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온통 애쓰며 살았지.책 속에 묻혀 그 동안 갈급한 지식욕을 해갈하느라 밤을 밝힌 적도 많았다. 그리고 믿었다. 한 욕망은 언제든 다른 욕망으로대체되는 것이라고. 너에 관한 것이라면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영원히 삭제시킬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처구니없이 언제부턴가 맥이 빠져 버렸다.

네가 딱 한 번 내게 엽서를 보낸 적이 있었지. 꽃샘바람이 매섭던 올해 초봄에. 앞면엔 겨울의 세느강변이 우울하게 편집되어 있던 그 엽서. 이름도 생경한 시인의 난삽한 불어 시를 원어로 휘갈겨 쓴 그 엽서를, 난 불한사전을 뒤적거리다 팽개쳐 버렸지.

그때부터였나....... 자주 네 얼굴이 떠오르고, 나는 머리를 흔들며 너를 지우려 끙끙대곤 했다. 아아, 용케 견딘 그 가을과 겨울은 한낱 잠복기였단 말인가. 햇빛이 따뜻해지고 나뭇잎들의 색이 하루가 다르게 짙푸르러질 때쯤엔, 나는 온몸과 마음의 맥을 놓을 만큼 나른해져 버렸다.

그 동안 나는 얼마나 올바른 인생 행로를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확신시키려고 애쓰며 살아 왔던가. 일회성인 생에서, 한치의 시행착오도, 낭비도 아까웠었다. 젊음의 열정과 방황? 그건 내가 원한 모범 답안이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비겁했다는 걸 인정한다.

나 이제, 왜 사는지....... 한때는 나를 삶의 마지막 희망으로 삼은 한 늙은 여인의 소망을 위해 살고도 싶었다. 그래서 법대를 지망했고. 그 여인은 일찍 남편을 잃고 힘겹게 두 아들을 키웠지. 시국을 잘못 만나 큰 녀석은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지금도 가끔 용인의 병원 신세를 진다. 여인은, 작은 녀석은 큰 녀석과 달리 소심하고 겁이 많아 믿을 만 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그 작은아들은, 노모에게 저 웬수 소리를 들으면서도,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흔들리지 흔들리잖게......."를 가끔 불러제끼는 그의 형을 바라보며 늘 흔들리고 있었지. 어딘가에 들리지 못하고, 배회하는 정신의 황량함에 오래 속으로 부끄러워하며. 그저 숲 속 큰 나무 그늘의 응달진 곳에서 고개나 꼬고 음습한 권태로 크는 고사리 같은 양치 식물의 삶. 그런 습습한 삶에 지겨워하지.

그럴 때 똑 끊고 떠난 너의 꼬리를 보고 싶었다. 과연 새살이 돋았는지....... 그보다 너는 왜 떠났는지....... 떠남도 삶에 대한 일종의 용기며 애정인지를 묻고 싶었다.

그 때 누군가 나를 부추겼다. 바깥바람을 좀 쐬어 보고 입대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다행히 내겐 두 건의 아르바이트로 돈이 좀 모여 있었고, 지친 청춘에겐 군복무라는 인생의 유예기간이 있다는 깨달음은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막상 첫기착지로 파리에 왔을 땐, 네 주소가 있던 파리 북쪽만 남겨 두고 관광을 했다. 다시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왠지 무엇 때문인지 만나선 안될 것 같았다. 산다는 건 무언가를 조금씩 잊는다는 것 아닐까? 어제의 사랑은, 오늘은 시효가 지난 승차권처럼 쓰레기통에 던져져야 하는 건 아닌가. 엽서를 쓰레기통에 구겨 넣어 버렸다. 그러나 이미 여러 번 보아 내 머리 속에 각인된 네 주소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찾아갔지. 그러나 머뭇거리며 닷새를 보내다 찾아간 네 주소에 너는 살고 있지 않았다. 웬 낯선 노파로부터 분홍색 메모지를 건네 받았을 뿐이지. 넌 육 개월 전에 이사를 했다고. 아마 그 엽서는 네가 거길 떠나면서 부쳤던 거겠지. 어딘가의 너로부터 느껴지는, 날 밀어내는 자력(磁力).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길로 미련 없이 암스텔담행 기차를 집어탔다. 안개비가 오는 한밤중에 내려 역 근처에 부랑아 합숙소 같은 델 들어가 마약을 하는 그들 틈에 섞여 한쪽에서 싸구려 보드카 한 병을 거덜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내가 평생 너를 찾게 되면 네 속에서 나온 자식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스스로의 자력 때문에라도, 한 달을, 그래 거의 한 달을, 그렇게 떠돌며 지냈구나. 세상 풍광이 처음의 감동과 달리 차츰 덤덤하게 느껴질 무렵에 한 여자를 만났다. 널 다시 찾은 건 그 여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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