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하종오 시인, 불교문예작품상 수상

수상작 「헌옷 도둑」으로 가난한 일상의 우울과 연민 그려

시인 하종오(52) 씨가 현대불교문인협회(회장 박수완)와 계간 《불교문예》가 한국문학의 발전과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드높이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한 제1회 불교문예작품상에 선정되었다.

하씨의 수상작은 시 「헌옷 도둑」이다. 수상자를 선정한 《불교문예》측은 “하씨의 작품이 헌옷 수거함과 화자의 남루한 일상, 외국인 노동자들을 시의 제재로 끌어와 비극적 자본주의 일상의 가난을 우울과 연민으로 원만하게 형상화했다.”고 평가하였다.

하씨는 1954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1975년 《현대문학》에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사월에서 오월로』『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 하고』『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쥐똥나무 울타리』『사물의 운명』『무언가 찾아올 적에』『반대쪽 천국』『굿시집 넋이야 넋이로다』 님 연작시집 『님 시편』『님』『님 시집』을 내고, 최근에 『지옥처럼 낯선』을 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23일 토요일 오후 5시 종로 인사동 사거리 하나로회관에서 문인들을 초청한 현대불교문인협회 송년회와 함께 가질 예정이다.

* 작품에 대한 도움말
- 이은봉 019-660-2331
- 공광규 011-357-3423

[수상작품]

헌옷 도둑

하종오

골목 모퉁이에 놓여 있는 헌옷 수거함은
뚜껑 잠긴 채 투입구만 뚫려 있었다
겨우내 헌옷만 입고 다니는 나는
이따금 갇힐까 싶어 종종걸음쳤다

평일 밤에는 슬그머니 긴 집게를 넣어
투입구로 몇 벌씩 빼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층 어패럴 공장에서 일하는 파키스탄 남자들은
긴 바지와 셔츠만 골라서 가져가고
지하 어패럴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자들은
예쁜 속옷만 골라서 가져갔다
빈국으로 수출한다는 수거업자는
주말 낮에만 와서 자물쇠를 풀어 뚜껑 열고
그들이 남긴 옷가지만 트럭에 실으면서
나에게 오며가며 잘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단 한 벌도 쑤셔 넣어본 적 없는 내가
헌옷 수거함에 갇히고 싶도록 남루하던 날
얼른 투입구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내가 입은 옷보다 새것 한 벌이 잡혀 나왔고
그 하루가 싱긋 웃으면서 지나갔다
―《불교문예》 2006년 봄호

[심사평]

가난한 것에 대한 우울한 연민 혹은 자본의 강을 건너는 법
―하종오, 「헌옷 도둑」에 대하여

하종오가 최근의 시를 통해 보여주는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로 힘들어 보인다. 인간 본연의 순수와 무구를 잃지 않는 삶을 만들기 위해 그는 아직도 계속해서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과 사회에 낮고, 작고, 조그만 칼을 들이밀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는 그의 시가 지난 1980년대 민족ㆍ민중시의 연장선상에 서 있기는 하지만 결코 목청 높은 이데올로기만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하여 기억해야 할 것은 낮고, 작고, 조그만 목소리로 드러내고 있는 오늘의 삶과, 삶에 대한 그의 심미적 탐구가 매우 개성 있는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점은 〈불교문예 작품상〉수상시 「헌옷 도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이번 수상시 「헌옷 도둑」은 자본주의 세속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세한 일상을 진실하고 차분하게 추적하면서도 독자들이 일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매우 섬세하고 세심하게 시어를 운용하고 있다. 이 시의 표면에는 세 부류의 인간군이 등장한다. 하나는 화자인 시인 자신이고, 둘은 “어패럴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고, 셋은 헌옷을 “빈국으로 수출한다는 수거업자”이다. (시의 표면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헌옷을 버린 사람들까지 한 부류의 인간군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이들 세 부류의 인간군에서 시인이 정작 관심을 갖는 것은 옷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남녀들이다. 자신들이 만드는 옷은 입을 생각조차 못 하고 버려진 헌옷이나 훔쳐 입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에 담겨 있는 정서는 매우 복합적이다.
여기서 복합적이라는 말은 시인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단순히 연민의 정서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헌옷 수거함에 “단 한 벌도 쑤셔 넣어본 적 없는” 것이 시인이기도 하지만 “헌옷 수거함에 갇히고 싶도록 남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시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헌옷과 동일시되는 동시에 외국인 노동자들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 시인이거니와, 이는 “얼른 투입구에 손을 넣었다가 뺐”는 데도 “내가 입은 옷보다 새것 한 벌이 잡혀 나왔”다는 구절이 잘 말해준다. 예의 구절에는 무엇보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지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시인의 넓고 깊은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이런 마음을 지니고 있는 시인에게 “주말 낮에만 와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남긴 옷가지만 트럭에 실”어가는 헌옷 수거업자가 “오며가며 잘 지켜봐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은 단순한 해학을 넘어 오늘의 삶 전반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종오의 이번 수상시 「헌옷 도둑」에는 이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현실과, 그에 따른 시인 자신의 복잡하고 미묘한 정서가 담겨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헌옷 수거업자, 그리고 헌옷을 버린 사람들에 대한 복잡하고 미묘한 시인의 마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착잡하고 침통한 마음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일련의 온기를 불러일으키는 이 시는 시인의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 나아가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6년 〈불교문예 작품상〉수상시 「헌옷 도둑」이 좀더 널리 읽혀 조금이라도 이 세상을 순수하고 무구하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심사위원: 박수완(현대불교문인협회회장), 이은봉(불교문예주간), 공광규(불교문예부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