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지금 소설 속의 인물은 타인은 물론이고 세계 전체에 대한 '감정이입'을 분명하게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 발표되고 있는 한국 소설을 읽다 보면 유독 빈번하게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다. 일본에서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가 그것이다. 이 유형의 인물은 세상과 소통이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런 인물이 거주하고 있는 고시원, 반지하, 옥탑방, 원룸 등과 같은 공간은 흡사 감옥과 유사한 어두운 느낌으로 묘사된다.
소설 속의 이 인물은 주변 사람과 소통이 완벽히 단절되어 있다. 그 대신 그들이 소통을 시도하는 대상은 개, 고양이, 토끼, 이구아나 같은 즐비한 목록으로 세칭 ‘반려동물’이다. 그런가 하면 성애용 인형과 같은 독특한 사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인물은 사람과 소통은 폐쇄되어 있으면서도 반려동물이나 성애인형과 같은 대상에게는 한없이 중얼거리며 ‘감정이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과의 소통은 극도로 단절되어 있으면서도 반려동물이나 인형에 집착하는 이러한 인물들을 우리는 단순히 ‘기묘한 존재’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우리는 최근 소설 속에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인물-캐릭터들의 생활방식이 오늘의 현실에 대한 작가들의 ‘징후적 비판’에 해당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은둔형 외톨이’들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한국에도 증가 추세다. 이런 인물들은 실제의 사람과 세상에 대한 ‘감정이입’ 능력은 상실한 대신 반려동물과 인형에게는 자못 수다스럽게 혼잣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당연히 동물이나 인형은 그런 ‘사람’에게 응답할 수 없다. ‘인간의 언어’가 그들에게는 부재하기 때문인데, 거꾸로 바로 이 점이 ‘은둔형 외톨이’들이 수다스러울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들이 물어야 할 질문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이렇게 ‘기묘한 신인류’가 출현했는가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나는 ‘감정이입’을 통해서만 가능한 사람들 간의 ‘소통’의 체념현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감정이입’이란 타인의 내면에 기꺼이 자신을 개방하는 ‘공감’의 원천임을 알 수 있다.

추론한다면, 지금 소설 속의 인물은 타인은 물론이고 세계 전체에 대한 ‘감정이입’을 분명하게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내 판단에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주범은 ‘사람의 존엄’을 노골적으로 능멸하고, 인간관계를 오로지 돈을 둘러싼 ‘이해관계’로 고착시킨 후 살인적인 ‘무한경쟁’을 예찬하기 급급했던 오늘의 ‘비정한 체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비정한 체제의 관성으로부터 우리들은 신속한 방향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체제가 부추기는 물질주의적 전언 대신 진정으로 사람답게 또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커다란 기쁨의 원천인지 인내를 갖고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비정한 체제가 사탕발림으로 부추기는 경제주의의 뒤편에서 벌어지는 인간 멸시의 현실에 사람답게 저항해야 한다. 오늘의 상황이 이런 ‘감정이입의 위기’라는 점을 최근의 한국 소설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08.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