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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붙이가 턱없이 소슬한 집안에서 자란 탓이었는지 나는 유독 피붙이라는 낱말이 주는 살가움에 목말라했다. 형, 누나, 아우, 이런 낱말은 아예 나와는 무관했다. 그래서였는지 어린 시절 나는 고종사촌을 친형제나 다름없이 여기며 살았다. 고모부는 과묵한 분인지라 좀 무서웠지만 고모는 이모나 어머니처럼 가까웠다. 생전의 고모를 무척 따르긴 했지만 나는 매번 당신을 찾아갈 때마다 곤혹스러웠다. 지금의 공깃밥 서너 배는 거뜬히 되는 고봉밥을 내놓고 어서 먹으라고 채근하기 일쑤였는데 무쇠라도 씹어 먹을 나이였다지만 그처럼 많은 밥을 먹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간신히 고봉밥을 비우면 냉큼 한 공기 더 내놓는데 못 먹겠다고 손사래라도 치면 대번에 ‘어디서 뭘 처먹고 온 거냐?’는 지청구를 먹게 마련이었다. 밥도 먹고 욕도 먹고 배가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절에는 밥 잘 먹는 게 복이었다. 멀지도 않은 윗마을에서 어린 조카가 찾아왔다고 고봉밥을 내놓는 걸 최대의 예의라 생각했던 당신이다. 밥 먹는 걸 흐뭇한 얼굴로 내내 지켜보며 당신은 ‘싸목싸목’ 먹으라는 말을 추임새처럼 넣어주곤 했다. 싸목싸목. 지금은 이 낱말을 ‘천천히’라는 뜻으로 풀어 새기지만, 이런 뜻풀이로는 다 채울 수 없는 정서적인 무언가가 여전히 남는다. 밥 한 끼 베푸는 게 무슨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 대접할 게 없던 그 시절에는 밥상 한번 차려주는 것보다 더한 인정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싸목싸목이라는 말을 들으면 미리 배가 불렀다. 바쁜 일 없으면 싸목싸목 오시게나, 라고 해도 배가 불렀고 체할라 싸목싸목 먹으렴, 이라 해도 배가 불렀다. 한 생을 두고 우리가 자신의 길을 싸목싸목 가듯이 밥 한 공기 싸목싸목 뜨고 사람 사이도 그처럼 싸목싸목 두터워지는 거라는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2010. 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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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