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내가 다른 사람마저 고독하게 만들만큼 고독하지는 말기로 한다.
나를 믿기로 한다. 나의 징후가 세계의 징후라고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 감각, 작가로서의 내 감각은 빛나지 않을 것이다.”
- ‘작가의 말’에서

<책 소개>

2008년 12월 첫 소설집 <먼 곳, 아득이>를 펴낸 작가 윤이주가 그로부터 정확히 2년 뒤인 2010년 12월, 두 번째 소설집 <정오의 산책>(도서출판 무늬)을 펴냈다. 첫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이경재는 작가 윤이주를 이렇게 평가한다. “윤이주는 예민한 작가정신으로 주제적으로나 기법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의식 넘치는 작가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윤이주의 소설은 여전히 ‘새로움’을 지향한다. 이번에 수록된 15편의 소설 가운데는 2~3쪽에 불과한 손바닥 소설, 이른바 장편(掌篇) 소설이 여섯 편 실려 있다.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타 뮐러의 단편집 <저지대>, 그리고 최근 출간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손바닥 소설>이 연상되는 윤이주의 이번 소설집은 서사성에 관한 새로운 질문을 독자들에게 안길 것으로 보인다.
표제작 ｢정오의 산책｣에서 작가는 “리얼(real)과 환(幻)은 늘 교섭”하는 순간을 맛볼 때, 독자성과 고유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피력한다. ‘새로움’에 관한 작가 윤이주의 독특한 해석과 함께 작가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를 한껏 펼쳐 보인다. ‘새로움’이란 결국 동중정(動中靜) 또는 정중동(靜中動)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는 듯이 작가 윤이주의 문체는 속도에 매우 자유롭다. 더디면서도 빠르고, 빠르면서도 더딘 그의 문장에 독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사뭇 기대된다.
첫 소설집처럼 이번 소설집에서도 작가 윤이주는 다채로운 이야기 공간을 선보인다. 기존 텍스트와의 혼종적 교섭, 일용 노동시장을 무대로 한 사물과 인간의 소통, 장례식장에서 지구인의 삶과 죽음을 관찰하는 외계인, 대도시 산동네를 무대로 한 인간 욕망의 비루함, 산사를 배경으로 한 인연의 얽힘, 낙향한 무명 개그맨 부부의 귀농일지, 오지노선 버스 안을 무대로 한 미학적 순간의 현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 공간이 이번 소설집에는 표현되고 있다.
소수문학예술을 표방하는 신생 출판사 <도서출판 무늬>는 작가 윤이주의 소설을 첫 책으로 출간하며, 앞으로 많은 문학예술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차례>

정오의 산책 | 철홍교통 오지노선 | 복희 이모 | 나비와 엉겅퀴 | 구두 | 그림자 |
건(巾) | 개그맨 정호씨 | 새벽 종소리 | 세탁부 | 봄빛 한 점 | 그대와 난곡에 |
숲속의 발코니 | 일몰 | 엄마야 누나야 (15편 수록)

<추천의 글>

윤 순 례 |
“어느 날 문득 생이 덧없고 하찮게 느껴진다면 지체 없이 윤이주의 󰡔정오의 산책󰡕을 열어볼 일이다. 그 속에서 굼뜨고 보잘것없는 애벌레들의 웅성거림, 허물을 벗고 언젠가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이들의 눈부신 날갯짓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혹 인생이 ‘꿈속의 꿈’임을 듣게 된다면 주저 없이, 그러나 나직하게 화답해 줄 일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채워가야 할 두툼한 은빛 노트가 있노라고…….”

안 덕 훈 |
“윤이주 작가에겐 애인이 많다. 그녀의 애인들은 행간에 꼭꼭 숨겨져 허툰 독자에겐 좀체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문장을 곱씹을수록 작품 도처에서 출몰하는 그녀의 애인들. 독자는 강렬한 질투에 중독되고 만다.”

홍 명 진 |
“윤이주의 소설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그의 몽환적 언어 속엔 맹수의 날카로움과 치명적인 한 방울의 독이 숨어 있었다. 나의 우매한 세계를 꿰뚫어버린 ‘아프락사스’의 화살! 조금은 슬픈 듯하면서도 아름다운 인간들의 이야기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대지와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는 광활한 창공을 가로지른다. 작품 작품마다 농익은 수밀도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처럼 한 줌의 침이 입 안 가득 고여 들며, 은근히 발화한 전율 같은 행복이 나를 감쌌다.”

<작가 소개>

윤 이 주 (소설가)

1967년 충북 보은 세중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이사, 결혼 직전까지 줄곧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향수병에 걸려 무단가출, 고향 보은을 찾아가다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식구들에게 잡혀 다시 귀경하다. 대학졸업 후 광고회사, 기간제 교사, 학원강사 등 취업 전선을 전전하다 마침내 문예아카데미 시창작교실 수강등록을 하면서 문학의 길에 입도하다. 오랫동안 내재해 있던 고향의 풍경과 고향 사람들의 마음과 입말 등을 시로 형상화하여, 당시 시창작교실 담임이셨던 신경림ㆍ정희성 시인에게 칭찬을 받고 시인의 길을 꿈꾸었으나, 연애 및 결혼이라는 통과의례를 겪느라 잠시 시심을 잃다. 결혼 후 고향 근처인 충북 청주로 이사하여 우연한 기회에 ‘소설 창작 모임’에 참여하면서 2001년 생애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걸 써 보다. 뒤늦게 ‘소설열(小說熱)’이라는 중병에 걸려 향후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편, 많으면 두 편 가까이 원고지 100장에 가까운 유사-소설작품을 쏟아내다. 정교한 소설창작 기술의 습득을 위하여 디지털문예아카데미 소설창작반에 등록, 스승 소설가 이남희ㆍ김남일 선생을 만나다. 문우들과 1년여 동안 치열히 창작수련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2003년 <내일을여는작가> 겨울호에 단편소설 ｢양파와 달팽이｣가 추천되어 소설창작자로서의 이름을 얻다. 꾸준한 창작 활동으로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지원기금을 수혜하였고, 그해에 첫 번째 소설집 <먼 곳, 아득이>를 충북 지역의 유력 문학출판사 도서출판 고두미(대표 유정환 시인)에서 펴내다. 현재 산천 수려하고 경개 시원한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 거주하면서 글쓰고 놀기에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