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권의 청소년과 어른을 위한 장편소설 [애벌레를 위하여]
(창작과비평사, 2005년 10월 31일)

나방이 되기까지 오직 한 나무에서, 허물을 벗고 변태하기만을 느리게 반복하는 애벌레. 열세 마리의 애벌레들이 성충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조용하기만 할 것 같은 숲의 풍경은 녹록하지 않다. 애벌레들은 삶의 매 순간을 생존을 위한 사투로 살아간다. 저자의 꼼꼼하고 끈질긴 관찰과 기록으로 녹여낸 생명의 이야기.

일반적 아동청소년문학의 미학적 자질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책이다. 고치를 만들고 태어나는 과정을 성장통에 비교하는 기계적 대비가 아니라 삶과 죽음, 생명의 위대함에 대한 원형적 질문을 던진다.

이상권 1964년 전남 함평 출생. <창작과비평>에 소설로 데뷔 후 소설을 쓰다가 어린이를 위한 생태동화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풀꽃과 친구가 되었어요], [아파트 꽃밭], [황금박쥐 형제의 모험], [보리밭은 재미있다] 등이 있으며,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로 제24회 한국어린이도서상 수상.

::책 속에서

오전 아홉 시쯤부터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주 가느다란 비였다. 여덟 번째 애벌레의 고치는 거의 완성이 되어 갔다.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고치 속에서 일을 하는 애벌레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입에서 뽑아 내는 실은 탄력이 없었고, 고치 안으로 비가 새어 들고 있었다. 이 정도 비는 거뜬히 이겨 내야만 한다. 만약 제대로 된 실이라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애벌레는 새어 드는 곳을 막아 보려고 했지만 점점 힘이 떨어지고 있었다.

- 본문 207, 208쪽에서

암컷 나방은 앞발로 빗살 모양의 더듬이를 빗질했다. 이제 알 낳을 곳을 찾아서 떠나야 한다. 날개를 몇 번 팔랑거리며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했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몸속에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열흘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영양분이 추운하게 저장되어 있었다.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정신을 평화롭게 하는지 암컷 나방은 새삼 깨달았다. 편안하고 여유가 있었다. 이 숲속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 절대적인 조건으로 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권이었다.

- 본문 51쪽에서


::작가의 말

이 글은 애벌레들의 삶을 관찰하고 공부한 객관적인 사실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은 씨앗에 불과합니다. 씨앗이 움터서 수많은 문장이 되는 과정은 모두 다 제 상상력에 의해서 채워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사람들의 이러저러한 삶이 펼쳐진 소설을 보듯이 편안하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 이상권


::추천글

이 이야기는 열세 마리 가중나무고치나방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생을 마칠 때까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숲속에서 겪어야 했던 갖가지 흥미진진한 체험을 꼼꼼하게 기록한 성실한 이야기입니다. 숲속 생명체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이 책은 마치 동물들의 숲속 생활을 담은 작은 백과사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가중나무고치나방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지은이가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이상권 선생님은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쓸 만한 자격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최성각 (소설가.환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