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침묵




윤순례




1

누군가 숨넘어가게 현관문을 두드려대서 나갔더니, 옆집 여자가 인형이든 비닐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이것 봐. 많지? 오늘 안으로 다 해주면 만원 줄게.”
옆집 여자는 내 눈앞에 비닐봉투를 들어보였다.
“이거 다 해도 육천 원이 될까말까하는 개수야.”
눈짐작으로만 봐도 만원은 과한 액수다.
“어젯밤에 내가 맡긴 것도 다 안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어젯밤 8시에 찾아와서는 “이거 삼천 원 어치인데, 할래?” 했었다. 한눈에도 가격에 비해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지금 들고 서 있는 건 만 원이 눈먼돈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적다. 분명 둘 중 하나다. 여자가 어젯밤에 사기를 쳤거나, 지금 지나치게 호의를 베풀고 있거나.
“어젯밤에 맡긴 것까지 내일 오전중으로 넘겨야 돼. 그래서 내가 돈을 더 얹어서 주는 거야.”
“해볼게요.”
어젯밤에 받은 양이 만만치 않아 걱정스러웠지만,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평소에도 “공장에 납품하는 거라고 너무 우습게 여기면 안되지. 이것도 다 내가 신용이 있어서 6년 넘게 거래를 해오는 중이라구”를 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여자였다.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여자가 갈 생각을 않고 어정쩡히 서 있었던 이유가 있었던가?
“돈 있으면 한 오만 원만 꿔줘. 은행갈 시간도 없이 어디 급히 가야 되겠기에 그래. 내가 내일 꼭 갚을게.”
나는 여자를 세워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생활비 넣어두는 서랍을 열었더니 6만원이 있었다. 하루 사이에 5만원이 없어 큰일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더구나 오늘은 재혼상담소 <나래>의 주선으로 남자를 보러 나가는 날이다. 남자 쪽에서 약속 파기를 해오지 않는다면 3만원의 돈이 생길 것이다.
“아이가 없는 집이라 다르네. 애새끼가 둘이니 집에 돈 찾아다 두기 바쁘게 없어진다니까.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옛말 하나도 그르지 않아.”
돈을 받아든 여자가 말했다. 나는 습관처럼 ‘무자식이 상팔자’를 뱉어내는 여자가 거슬렸다.
“내가 시간이 없어 다른 때보다 돈을 많이 쳐주는 건 알아야 돼. 다음엔 오늘 받은 돈 말하면 안 된다구. 알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돈을 놓고 여자에게 꼬투리를 잡은 적은 없었다. 여자가 인형을 받아온다는 공장이 모래내 근처에 있다는 것만 알았지,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여자가 공장 위치를 설명할 때 잘 알아듣지 못하게 뱅뱅 돌려서 말한다는 것도 오래 전에 간파했다.
어젯밤에 맡긴 것과 오늘 것을 가져가면 여자는 틀림없이 2만원 정도를 받을 것이다. 언제나 일감이 많다는 이유로 내게 넘기면서 중간에서 내 품삯을 갈라먹고 있다는 걸 모르지도 않았다. 굳이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관심이 없기는 개구리처럼 배가 불룩하고 다리가 짧은 노란 왕눈이 인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비자에게는 얼마에 팔려나가고 있는지, 먼지가 수북이 올라오는 시장바닥 돗자리 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지, 고급스럽게 만든 바구니 속에 담겨 백화점 진열대 위에 오르는지……
그건 손바닥만한 방들을 열두 번씩 훔쳐내고도 시간이 남는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와 마주앉은 시간에 자연스럽게 침묵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이유로 선택한 일이었다. 내게는 딱딱한 플라스틱의 검은 눈동자에 아교를 묻혀 떨어지지 않게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주는 동안에 쉼 없이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만이 미더웠다.
남편의 귀가시간이 점점 늦어지다가 외박이 늘어났을 때, 왕눈이 인형의 눈을 붙이는 작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 눈이라도 파서 벽에 붙였을지 모른다. 모래시계 속의 모래알보다 미세한 시간들이 자꾸만 빠져나갔다. 바닷속 깊이 가라앉은 맷돌이 지금도 갈아내고 있다는 소금처럼 무미하고 건조한 시간들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그러다 급기야는 다리를 타고 허리를 타고 가슴을 타고 거대한 중량으로 목을 짓눌렀다. 나는 무로 화해버리는 시간들을 몇 푼의 짤랑이는 돈으로 바꿔 예금통장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럴 때도 분노는 목울대를 넘어 얼굴 근육을 마비시킬 듯 강도를 더해왔다.
“이것, 오늘 안으로 다 해줘야 된다?”
옆집여자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게 다짐을 받아내려고 들었다. 나는 누가 봐도 자신없어 보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래>의 비밀 아르바이트를 내 맘대로 빠질 수는 없다.
오늘 만나는 남자는 이혼을 두 번이나 하고, 다섯 살짜리와 세 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했다. 박 실장은 손찌검하는 버릇이 있거나, 의처증이 심한 남자인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청계천에서 부속품 가게를 하고 있으니 수입은 짭짤할 것이라는 게, 그녀가 그런 결론을 낸 근거였다.
몇 달 전, 나는 신문에서 ‘영원한 반려자를 찾아드립니다’의 문구로 시작되는 광고를 보면서 까닭없이 가슴이 두근댔었다. 직업란에 집안에서 착실하게 신부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썼고, 취미는 등산과 독서라고 썼다. 성격을 기입하는 난에 ‘밝고 진취적임’이라고 쓰다가 잠시 손을 놓고 이건 정말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재혼할 사람이라도 만나겠다는 흑심을 품었던 건 아니었다. 잠시 숨통을 틔우고 싶었을 뿐이다. 기혼자로 되어 있는 등본 때문에 그 모든 게 소용없다는 것도 몰랐으니까. 열 번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록비가 50만원이라는 것도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그날, 회원 자격은 안 되는데 아르바이트를 해볼 의향은 없냐고 은밀히 제의를 해온 건 박 실장이었다.


2


시어머니의 콧물은 쥐구멍 속을 들락거리는 쥐새끼처럼 콧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이젠 콧물 하나 간수를 못하네……’ 나는 통쾌함인지 걱정스러움인지 모를 눈빛으로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바깥양반, 요즘은 바쁜지 통 안 보이더만……언제쯤 집에 오는데요?”
통장은 아파트를 지으면 생기는 이득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묻는다. 그런 일은 아무래도 남자랑 상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곧 온다고 말한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겨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들어올까 말까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 동안 옆집여자의 입을 타고 흐를 만큼은 흘렀을 테니까.
시어머니는 이 동네 집들 대부분이 도장을 찍었다고 말하는 통장의 얼굴 앞으로 바싹 다가가 앉는다. 뭔가 말이라도 붙여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나는 통장이 시어머니의 싯누런 콧물을 보게 될까봐 속이 불편하다. 사체 유기라도 하다 들킨 사악한 며느리가 된 듯하다.
감기가 든 것일까? 콧물은 싯누렇다 못해 피라도 한 방울 섞여나올 듯싶게 벌겋다. 내가 민망해하는 사이, 콧속으로 콧물 빨려들어가는 소리가 훅 들려왔다. 통장도 새앙쥐 한 마리가 두리번대다 위험을 감지하고 후다닥 몸을 감춘 것보다 빠르게 구멍 속으로 빨려간 콧물을 본 듯했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콧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장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남편이 오면 도장을 받아둘게요.”
나는 대충 말해 통장을 돌려보내고 싶다. 남편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다.
“이 연립도 공사구역에 들어간 건 정말 운이 좋은 거요. 시행사 쪽에서야 어떻게든 합의를 하려고 하겠지. 이 쪽이 모두 길로 만들어진다니까.”
그렇다면 도장을 받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 아쉬운 것 아닌가.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든 집값을 올리려면 시간을 끌어야 한다. 나는 시어머니가 죽으면 이 집을 내 앞으로 돌려주겠다는, 남편의 친필 서류를 지니고 있다.
“돈 생기는 일이니, 서두르세요.”
통장이 돈 생기는 일이라고 강조할 때 시어머니의 눈동자가 커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제 당신 아들은 오지 않아. 난 당신이 죽고 나면 이 집을 위자료로 얻는 셈이야.’ 나는 검버섯마저 바래버린 시어머니의 얼굴을 힐끗 바라본다.
“이년들아, 내 아들 뺏어다가 이만큼 호강하면 됐지 뭐가 부족하냐?” 집안 식구들이 다 모인 제사상 앞에서도 며느리를 잡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는 여자. 두 손위동서들은 시어머니라면 눈도 곱게 뜨지 않았다. “자네가 이해하게. 호랑이띠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에게 곱살맞지 않다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족속들이야.” 시어머니의 윗동서가 달래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그것은 집안 행사 때마다 또 하나의 행사가 되어 있었다.
딸이 셋이나 있는 유부남을 가로채 아들을 셋이나 낳고 살다가 조강지처마저 쫒아낸 시어머니의 득세는 그녀가 중풍으로 쓰러지던 해에 막을 내려야 했다. 큰며느리는 시어머니 병수발을 드느니 이혼을 하겠다고 했고, 둘째며느리는 자식들의 교육을 핑계로 캐나다로 떠났다. 나는 남편을 설득할 능력도, 이혼할 능력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편은? 남편은 결손 가정에서는 키울 수 없다고 버틸 자식도, 미래를 위해 먼 나라로 떠나야 할 자식도 없었을 뿐일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힘없는 아내가 있었겠지…….
“나 물 한잔 다오.”
시어머니가 안방에서 작은 소리로 명령했다. 근래들어 시어머니에게서 명령투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나는 배불뚝이 인형에 눈을 붙이고 있다가 물 한 잔을 떠다 내민다. 시어머니가 물잔을 받아 입으로 가져가기까지의 과정을 다 지켜보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내가 조금만 거들면 금방 끝날 일이긴 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나는 물잔을 가져갈 때보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와 앉는다. 시어머니가 있는 안방까지의 거리가 멀지도 않고, 물 한 잔 떠다 주는 게 힘들 것도 없는데, 어느새 내 입은 궁시렁거릴 준비가 되어 있다. ‘돈 버는 일이라니까 떼돈이 생기는 줄 아는 모양이지? 그래도 아직 귀는 쓸 만한 게지.’
나는 안방에 앉아 있는 시어머니를 흘깃 노려본다. 안방이라봤자 내가 쓰고 있는 방보다 두어 평 넓은 것이지만, 남편과 나를 작은방으로 밀어내고 그 방을 차지하던 날의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3년 전, 두 아들에게 박대를 받고 우리 집으로 들어온 시어머니는 일부러인지 좀처럼 상황파악을 하려고 들지 않았다.
나는 점심으로 팥죽을 쑤어 먹으려고 찬장에서 팥을 꺼내다가 도로 집어넣어버렸다. 날 풀리면서 시어머니의 입맛이 부쩍 떨어진 듯해 생각했던 것인데, 갑자기 귀찮고 부질없게 느껴졌다.
3월의 날씨는 연일 쌀쌀하다. 나는 작은방 창으로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3

남자는 아이스크림에 꽂힌 미니 우산을 뽑아 빙글빙글 돌린다. 벌써 8시 30분이 넘었는데 저녁 먹자는 말도 않고 있다. 집을 나오면서 우유 한 잔을 마신 게 다였다.
“결혼에 왜 실패하셨습니까?”
남자는 미니우산을 만지작거려 공처럼 둥그렇게 만들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남자에게는 사람을 바로 보지 않고 눈을 치떠서 쳐다보는 습관이 있는 듯하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저를 심하게 구타했어요. 혁대로도 때리고, 물건도 던졌지요. 심하게 욕도 하고……”
나는 가능하면 몸서리가 쳐진다는 몸짓을 연출하고 싶지만, 그 정도 감정까지는 잡히지 않는다.
내 대답에 남자는 시큰둥히, 성의없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만다. 이런 식의 만남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겠다고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건 두세 번의 만남을 거친 후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남자는 여전히 손장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잘게 접힌 초록과 빨강의 습자지……그것은 이쑤시개에 꽂혀 우산이 되었다가 뒤집으면 공 모양이 되었다.
“나는 신부감 고르는 기준에 변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나이는 나보다 네 살은 어려야 되구요. 밖에 나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어울린다는 인상은 풍겨야 되죠.”
남자는 자신감 있게 또박또박 얘기하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얘기를 들어준다.
“그럼 이혼한 부인과도 네 살 차이였나요?”
“그럼요.”
남자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박 실장에게 남자가 이혼한 지 4년이 지났고, 3살짜리 딸이 있다고 듣고 나왔다. 무엇 때문에 네 살의 나이 차이를 고집하는지는 몰라도,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줄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훨씬 지당한 일이지 싶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 나와 내 감정대로 처신하거나 입을 열면 곤란하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하건 조용히 들어주고, 적당히 응수해 주라는 게 박 실장의 권고였다.
“저는 네 살보다는 열 살쯤은 많은 남자가 좋아요. 전남편은 동갑이어서인지 마누라 귀여워할 줄을 모르더라구요.”
나는 남자가 줄기차게 매달리고 있는 나이에 낚시를 걸어보기로 한다.
박 실장은 나중에 발을 뺄 것을 의식해 적당히 거리를 두라는 말을 재차 강조했었다. 남자가 나를 거부한다면 박 실장은 내 쪽에서 에프터를 거절하는 전화를 해왔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너무 많은 관심을 보이거나, 남자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말들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번에는 남자의 키가 160도 안 된다는 걸 모르고, 키가 화제로 떠올랐을 때 실수를 했었다.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안 것도, 박 실장의 전화를 통해서였다.
“서른 살이 확실합니까?”
남자가 이번엔 이쑤시개로 만든 우산대를 툭 분지르며 묻는다. 네 살이 어린 게 확실한 지를 확인해보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맞아요. 이혼한 지 3년 되었구요. 딸아이가 3살이에요.”
나는 말해놓고 나서 순간 머리가 쭈뼛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딸아이 나이가 두 살이라고 했던가?
“두 살이 아니구요? 두 살이라고 듣고 나왔는데요?”
남자의 미간이 좁혀지면서 이마에 주름이 가득 잡힌다.
“맞아요. 개월 수로 따지면 두 살이지요. 12월생이라 한 달 차이로 왔다갔다 하거든요.”
나는 흔쾌히 수정한다.
남자는 또 한번 우산대를 뚝 분지른다. 그러고는 세 토막이 된 이쑤시개를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일없이 비비적거린다.
“난 벌써 열 번째요.”
남자는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쉰다. 목소리엔 약간의 조롱기도 섞여 있다.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일까? 나는 갑자기 긴장되어 숨을 훅 들이쉰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남자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이번에도 틀렸다는 생각에선지 표정은 착찹한 기색이 여실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자의 마지막 기회가 날아간 셈인가? 약속장소에 나오기 전 박 실장이 내게 귀띔했었다. “우리 경험으로 보면 열 번째에 성사될 확률이 높아요. 웬 줄 알아요? 나머지 한번의 기회밖에 없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마음을 굳히지요. 여기 등록한 남자들 대부분이 여자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남자들은 열 번째 파트너와 연결이 안 되면 또 한번의 등록을 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2년제 대학을 나와 9년간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미스가 되었다가, 결혼 5년 만에 이혼한 여자가 되었다가,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혼기를 놓쳐버린 노처녀도 되었다. 엇비슷하게 짝을 맞춰 내보내는 자리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들어오는 일이었다. 주로 열 번째 파트너로 나갔고, 상대를 거절하는 일은 박 실장이 맡아주었다. “에프터를 신청받으면 일단 예스로 답하고 나오면 돼요. 나머지는 다 우리가 알아서 해요. 무슨 말인지 알죠?” 박 실장은 은밀하게 말했지만, 그것이 열악하게나마 수익을 내며 결혼상담소를 유지해나가는 방법이라는 말까지는 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쯤에서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남자 역시 내가 핑계를 대고 빠져나오려는 것에 별 불만이 없는 듯하다. 아니, 남자 쪽에서 먼저 그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 남자는 내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아주 잠시였지만, 나는 그게 몹시 궁금했다.
커피숍 계단은 현기증이 일어날 만큼 가파랐다. 7시에 늦지 않으려고 허둥지둥 올라올 때는 몰랐었다. 그렇게 길었었던가? 몸을 옆으로 돌려 벽에 손을 짚으며 내려왔다. 오를 때와는 달리, 한 달 사이에 3킬로그램이 쪄버린 몸을 감당하기에 하이힐은 역부족이었다. 벌어진 어깨와 뱃살로 통통해진 허리, 거기에 억지로 껴입은 투피스가 불편하고 어색했다.
남자와는 계단을 다 내려와서 헤어졌다. 50미터 근방에 종로 3가 전철역이 있었다. 나는 종로 2가 쪽으로 걸음을 떼어놓았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도 남자와 반대쪽으로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종로는 벌건 대낮처럼 밝았다. 나는 적당히 허름해서 혼자 들어가도 부담없는 분식집에 들어가 우동을 시켰다.
젖가락에 잡힌 우동 한 가닥이 미끄러져 그릇 속으로 쭈르르 빨려들어갔다. 나는 젓가락을 모아쥐고 악착스럽게 건져낸 우동발을 입에 넣고 오래오래 씹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우동 그릇을 비웠다.
분식집을 나왔을 때, 거리의 시티비전은 10시를 넘고 있었다. 나는 대로변을 하릴없이 걷다가 포장마차들이 즐비해 있는 뒷골목으로 들어섰다.젊은 남자 둘이 장사를 하는 포장마차 안에 들어가 앉자마자 김이 올라오는 오뎅국물이 나왔다. 나는 소주 한 병과 해물전을 시켰다.
우동 한 그릇을 다 비워서인지 술발은 좀체 오르지 않았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저를 심하게 구타했어요. 혁대로도 때리고, 물건도 던졌지요. 심하게 욕도 하고……’ 나는 감정까지 넣어 오늘의 내 역할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내게 욕을 하지도 않았고, 떠나는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았다. 나는 마흔도 안 된 나이에 자궁을 드러낸 아내가 부담스러웠던 게 이유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남편이 좌절을 맛보게 한 죄를 물어 내게 흠뻑 매질이라도 했더라면, 나는 훌훌 털고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결코 18평짜리 낡은 연립주택 한 채에 미련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옆집남자를 본 건 무작정 들이킨 소주로 목이 얼얼하게 타올라 오뎅국물을 더 청할 때였다.
옆집남자는 맞은편의 포장마차에서 아코디언을 불고 있었다. 목에 걸고 양손으로 주름 상자를 늘였다줄였다하며 소리를 내는 아코디언은 꼭 장난감 악기 같았다.
“에잇 아저씨, 너무 못 분다. 그렇게 불러서 어떻게 떠나간 여자가 돌아와. 완전히 <갈대의 순정> 풍이구만. 돈은 못 주겠어. 잘 했어야 주지. 아저씨, 대신 이 소주나 한 잔 받아. 술이니까 술술 넘기고.”
서른이 조금 넘었을까 싶은 사내는 술에 혀가 꼬인 목소리로 옆집남자에게 반말을 일삼았다. 옆집남자는 돈을 못 받아 서운함이 물씬 느껴지는 표정으로 사내가 내미는 소주를 받아 마시고, 기본으로 나오는 오이를 안주로 집어먹었다.
옆집남자가 술이 올라 벌개진 얼굴로 또다시 테이블들을 돌았지만 연주를 신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옆집남자는 부담없이 들으라고, 돈은 연주가 끝나고 기분이 좋으면 천 원만 주어도 좋다고 사정을 하듯 말했다. 그러나 애써 허락을 받아 <목포는 항구다>를 연주한 후에도, 돌아온 건 소주 한 잔이었다.


4


“할머니, 운동하러 가세요?”
현관문 밖에서 들려오는 건 옆집여자 목소리다. 그녀는 시어머니와 마주칠 때마다 매번 수선스럽게 인사를 한다.
놀이터에 가는 길이라고, 시어머니는 우물우물 대답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힘겹게 입을 벌려 말을 내놓는 것보다 더 안쓰러운 건 허리가 완전히 꺾여 기역자인 몸뚱아리다.
서둘러 계단을 총총총 내려가는 옆집여자의 발소리가 들린다. 시어머니는 아마도 “열심히 운동을 해서 기력을 회복시켜 놓아야 우리 아들이 와서 보고 좋아하지”라거나 “귀찮아서 안 하면 살이 찌잖아. 늙은이가 너무 살쪄도 흉물스러워” 따위의 말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을 다 듣고 있을 만큼 옆집여자가 시어머니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운동이라니……. 시어머니가 아래까지 다 내려가려면 30분의 시간이 걸린다.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갈 때마다 난간을 잡고 간신히 한 발을 떼고 숨 한 번 들이쉬고, 계단참에서는 한참을 서서 숨을 내쉰다. 지팡이를 잡을 힘마저 없어져서 시어머니는 어느 날 홀몸이 되었다.
작은방 창으로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 시어머니가 내려다보인다. 시어머니는동네 여자들이 놀이터에 모여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을 시력이 약해진 눈 속에 담고 있을 것이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기 지치면 두 손과 두 발에 기합을 넣듯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킬 것이다. 기합을 넣을 때 힘이 나오는 대신 뼈가 다칠 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작년 이맘 때 옥상에서 내려오다가 넘어져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졌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오싹하다. 그때만 해도 남편이 드러내놓고 여자 집으로 퇴근하지는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어머니 덕분에 남편의 얼굴을 자주 본 날들이었다. 물론 다리도 주물러주고 어깨도 주물러주던 효자 노릇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때만 해도 시어머니는 한여름의 쓰르라미처럼 기세가 좋았다. ‘이것 봐라. 네 년이 아무리 그래도 내 뱃속에서 나온 놈이다.’ 나를 향해 과시하고 싶어하는 게 눈빛 가득 넘쳐났었다. 그러나 그건 시어머니가 흐려진 눈으로 잘못 판단한 일이었다. 그때 남편은 시어머니가 아니라 내게 미안해서 그렇게라도 집에 온 것이었다.
‘당신도 눈치는 챘을 거야. 내가 남편 앞에서 당신의 부러진 엉덩이 살을 지나치게 염려하고 있는 척했다는 걸. 그래서 내게 호랑이보다 더 사나운 눈길을 주었던 거잖아. 그 순간 당신도 내게 연민이라는 게 일었는지는 알 수 없지. 떠나가려는 남편을 잡기 위해 비굴한 웃음을 피우던 힘없는 며느리에게……. 이제 당신이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건, 하루에 한 번 놀이터를 다녀오는 일 뿐이잖아. 그래, 인생을 그런 것에 의지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은 당신도 몰랐겠지.’
남은 인형의 눈을 다 붙이고 났을 때까지도 시어머니는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좀 이르게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쳤다.
시어머니는 그네 옆 벤치에 졸 듯이 앉아 있다. 철봉에 매달리거나 놀이기구를 타던 아이들이 거의 다 들어가 저물녘의 놀이터는 쓸쓸하다.
‘그래 그대로 앉아서 서리를 맞건 이슬을 맞건 내가 알 바 아니지. 당신 말대로 내가 당신 집안 핏줄을 낳은 것도 아니고.’ 내 얼굴은 점점점 심기가 사나워지고 있다.
“매일 뭐하면서 사느라고 며칠 코빼기도 안 비쳐?”
“매일 부부 싸움 하면서 살았지 뭐.”
“뭣땜에 싸워?”
“싸울 게 없으면 왜 싸울 게 없냐면서 싸우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던 세 명의 여자들은 뒤늦게 등장한 여자를 둘러싸고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음을 쏟아낸다.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놀이터 가득 퍼져 나간다. 나는 여자들 곁을 조금은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지나, 벤치 한쪽에 힘없이 앉아 있는 시어머니 쪽으로 다가간다. 그 순간 내 얼굴에 여자들을 향한 질투심이 스쳤는지는 모를 일이다.
“물 좀 다오.”
시어머니는 내게 부축을 받는 내내 불편했던 심기를 담아 짧게 말한다. 그러나 누가 들어도 그 목소리엔 원망도, 힘도 없다. 시어머니는 이제 너덜너덜해진 종이 호랑이다.
“어머니가 좋아서 이렇게 챙기는 거 아니에요. 나도 떳떳하게 이 집을 받으려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할 도리를 해야지요.”나는 내게 매달려 겨우 따라오고 있는 시어머니를 향해 차갑게 내뱉었다. 일부러 과장한 차가움이었다. 시어머니가 벤치에서 일어설 힘이 없어 그때까지 집에 못 오고 있었다는 걸 안 순간, 죄책감과 함께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한꺼번에 가슴을 박차고 일어났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준다. 유리컵 대신 플라스틱 대접이다. 시어머니가 실수로 놓친 유리컵이 마루바닥에서 박살나면서야 준비한 것이다. 물을다 마시는 시간은 십 분 가량이다. 그것이면 시어머니와의 저녁 시간은 끝이다. 시어머니는 곧 죽은 듯 잠을 잘 것이다. 중간에 한 번 일어나 죽 한 그릇을 비우던 습관이 없어진 건 일주일쯤 되었다. 사람이 세 끼 식사를 마다하면 저세상 갈 일만 남은 게 아닐까.
나는 시어머니의 입가로 흘러내린 침을 닦아준다. 누에고치처럼 바싹 몸을 구부리고 잠을 자는 시어머니의 입에서는 자주 침이 새어나와 베개를 적시고, 방바닥을 적셨다.
“네 년이 우리 집안 새끼 하나만 낳았어도 내게 이러지는 않는다. 내 아들 오면 네가 나 괄시한다고 혼내주라고 할 테다” 시어머니는 대 이을 자식이 없어 기가 죽는 건 순전히 남자들이라고, 밖으로 돌며 할 짓은 다 하는 아들을 측은하게 여겼다.
나는, 처자 있는 남자를 뺏어 아들 셋 낳아 기른 게 인생 최대의 경력인 시어머니의 얼굴을 처연히 바라본다. ‘그 아들들이 다 당신을 거부했다고…….’
지난달 생활비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여자가 직접 들고 왔었다. 서른다섯의 노처녀인 그녀는, 자신을 향해 웃어보이는 시어머니를 향해 차가운 표정을 날렸다. 아들을 유혹해 집을 나오게 하고, 온몸에 저승꽃이 핀 노모를 버리게 만든 그녀에게 비굴한 웃음을 보이는 시어머니에게 나는 진심으로 연민을 느꼈다. 같잖은 연립 한 채를 넘기는 조건으로 어머니까지 짐짝처럼 내던지게 한 장본인이라는 걸 모른단 말인가?
시어머니는 아직도 남편의 냉담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남편이 간혹 해오던 전화에서도 시어머니의 안부를 묻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세금 문제 때문에 마지막으로 전화를 해왔던 날도, 내가 먼저 시어머니에 대해 말했었다. 남편은 예상대로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팔십이 넘은 노인네를 수술대에 앉히라니요? 남편은 의사 앞에서도 떳떳할 것이며, 짐작대로 시어머니가 병원에 실려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 역시 시어머니의 병원비를 걱정해본 적은 없었다.
어제도 시어머니의 발목이 탱탱 부어올랐는데 하룻밤 지나고 나자 깨끗이 가라앉았다. 시어머니 역시 아픔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시어머니의 발이 부어 있는 것을 안 것도, 부기가 가라앉은 것을 본 것도 우연이었다.
만약 남편이 시어머니가 걱정되어 전화라도 걸어오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시어머니에게 향하는 미운 마음을 애써 거두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모른다. 남편이 혹 개과천선해 어느 날 시어머니를 찾는 전화를 해올지…….
속옷까지 챙겨 집을 나가던 날, 남편은 내게 그랬다. “회사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야. 내가 아예 집 나가서 그 여자랑 뛰어다니지 않으면 당신도 어머니도 길바닥에 나앉아야 돼.”
그게 진실이었을까? 나는 남편이 여자의 집으로 옮겨가야 사업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믿기도, 말기도 어려웠지만 남편의 뒷모습만은 오래 바라봤었다. 남편이 시어머니의 생각처럼 자식 하나 만들 수 없는 생의 좌절을 떨치려고 분연히 다른 곳으로 발을 내딛은 것이라면 한 점의 에누리도 없이 용인해줄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이별은 십 년 넘게 살을 맞대고 산 아내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5


놀이터에 내린 어둠이 짙어갈수록 근처 아파트에서 뱉어내는 불빛은 강렬해졌다. 벌써 두 번이나 벤치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봤지만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여덟 시였다.
우정약국, 수민 수학교실, 약속 기원, 스포츠 맛사지, 선일 교회, 벽지 장판 총판, 비즈니스 노래주점, 옥 사우나…… 아파트 단지 주위에 퍼져 있는 간판들을 일일이 훑어보고, 그네에서 벤치로 옮겨앉았다. 일곱 시가 넘어서 저녁을 먹었지만 속은 헛헛했다.
남자가 나타난 건 9시가 넘어서였다.
“씨팔년! 너 잘 걸렸어. 긴 말 필요없어. 내가 나래인지 날라리인지에 낸 오십만원을 니가 물어내든지, 그 돈만큼 밤마다 씹을 대주든지 해. 안 그러면 너도 죽고 나도 죽어. 뭐 딸이 하나 딸린 청상과부라구? 내가 너랑 그 실장이란 년이랑 짜고 고스톱 친 거 다 아니까, 발뺌하려고 하지마. 그 실장이란 년은 오늘 사무실에 가서 작살을 내버리고 왔어. 니년은 그래도 착하게 생겼길래 이 정도에서 봐주는 거야.”
나는 저녁에 먹은 오뎅국이 올라올 것처럼 속이 미식거렸다.
“어떻게 할 거야, 이 씨발년아?”
눈을 꾹 감고 진정을 시켰는데도 속이 울렁거렸다.
남자는 보름 전쯤에 만난 사람이었다. 어린 아들과 딸을 두고 마누라가 도망을 갔다고 했다. 나는 그의 열 번째 파트너였다. 박 실장은 남자에 대한 사전 정보를 주면서부터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었다. “꼴에 자존심은 쎄고, 아주 힘든 인간이야. 돈도 좋지만 정말 그런 회원은 안 받는 게 나아. 꼴에 눈은 좀 높아. 키 160센티가 넘지 않으면 안 만나겠데요. 애가 하나 정도 딸려 있어도 감수를 하겠다나. 그 정도면 감지덕지지 무슨 감수야?” 박 실장은 내 키가 160이 넘으니 아주 적격이라고 말하면서도, 남자의 인격이 형편없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어떻게 할 건지 빨리 말해 이년아!”
남자는 처음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그쳤다. 눈을 멀뚱히 뜨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남자가 나를 착하게 봤다는 건, 내가 낸 음식값 때문이었을 것이다.
약속 장소로 잡은 경양식 집에서 스테이크를 시켜 먹었었다. 자꾸만 간절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눈길을 뿌리칠 수 없어 나는 다음날 또 보자는 남자의 제의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거절을 해보다가 안 되면 일단은 자신을 믿고 응하라는 박 실장의 말이 떠올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카운터 앞에서 양복 호주머니 속을 부리나케 뒤지는 남자의 손을 본 것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였다. 그날 수고비로 받을 3만원이 깡그리 날아가는 것이었지만, 나는 기꺼이 식사값을 계산했다.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서른아홉이라는 남자의 목에, 손에, 이마에 여실히 드러나 보이던 주름살 때문이었다. 남자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날아든 새 만큼이나 축축이 젖어 있었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그에게 연민을 느꼈던 건, 그 순간 사람은 다 끼리끼리 만나게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나는 남자에게서 내 추레함을 본 듯했다.
“좀 진정을 해봐요. 난 아직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건지 감이 안 와요.”
나는 최대한 머리를 짜서 남자를 진정시켰다. 남자의 불량기는 약한 자 특유의 겁에서 나오고 있음을 간파한 후의 자신감이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나도 댁이 화를 내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딸아이가 갑자기 큰 병으로 입원을 하는 바람에 재혼이고 뭐고 정신이 없어진 거예요. 몸도 성치 않은 딸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재혼을 하겠어요?”
다 박 실장이 짜낸 대사였지만,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애처롭다.
남자가 차츰 머쓱해하는 듯 보였다. 울먹일 듯한 내 목소리가 거짓말인 줄은 빤히 알지만 곱게 속아주겠다는 표정으로도 보였다.
박 실장의 말이 맞았다. 박 실장은 일단은 내가 직접 남자를 만나서 달래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사정사정 해왔다.
아파트 단지의 불빛 때문에 남자의 얼굴은 더욱 초췌해 보인다. 분노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유별나게 큰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져내릴 것만 같다. 나는 남자를 외면하고 싶다. 깃털이 같은 새는 함께 앉기를 거부한다고 했던가.
“너 그날 밥 안 샀으면, 오늘 내 손에 죽었어.”
남자가 내 앞으로 한 발 바싹 다가선 순간, 남자의 몸에서 넘실대던 술 냄새가 내게로 확 옮겨붙었다. 남자의 얼굴도 밤바람으로 긴장되어 퍼렇다. 내가 침착하게 말을 뱉어내는 것과는 달리 다리를 달달달 떨고 있다는 걸 남자가 알아챈 것일까? 나는 더 이상의 대꾸도 없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그의 눈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엿먹어라. 지미 씹이다.”
남자는 호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넣은 채 침을 찍 뱉고는 뒷걸음질로 놀이터를 떠났다.
나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놀이터 벤치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한참을 그대로 앉아 울렁거림을 다스렸다. 대각선 방향으로 남자와 내가스테이크를 먹었던 경양식 집이 보였다. 그곳은 주위의 화려한 불빛에 밀린 듯 희미하게 간판을 드러내고 있었다.
왕눈이 인형을 생각해내기까지 나는 막상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아 휘황히 밝은 불빛들 속에 막막히 앉아 있었다.


6


“내 돈 내고 먹은 것도 아니고, 얻어먹었어. 공짜 술 얻어먹은 것도 죄야? 아니지. 공짜 술도 아니지. 내가 아코디언 불어주고 얻어먹은 술이야. 나쁜놈들. 술 인심은 넘치고 넘친다니까. 만원은 감지덕지고, 천원짜리라도 한 장 던져달라고 부른 내 연주를 형편없다고 깔아뭉개고. 돈 많아서 펑펑 술 사마시는 지들이 뭘 알어? 내가 두 아들놈들 때문에 자존심도 없이 길거리에 나선 마음을 알어? 왕년에는 나도 밴드 그룹 출신이었다구. 시내 유명한 나이트클럽에서 서로 나 데려가려고 했었어. 알기나 해?”
계단을 울리며 올라오는 폼이 옆집 남자였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열두 시가 넘어 있었다. 그제서야 허리와 어깨가 쑤셔왔다.
옆집 남자가 두드리고 있는 건 우리집 현관문이었다. 퉁퉁퉁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나는 묵묵히 앉아 인형의 눈을 붙였다. 인형들 속에 푹 빠져 있는 다리도 일으켜 근육을 풀었다. 발이 저려 콧잔등에 침을 찍어발랐다.
“문 열어. 내 돈 내고 먹은 것도 아니고 얻어먹었다고. 그것도 죄야? 내가 내 피 같은 아들놈들을 걸고 맹세한다. 진짜로 공짜술 얻어먹었다니까.”
옆집 남자는 현관문에 딱 붙어서서 숫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왜 안 믿는 거야? 내 말 좀 믿어 달라니까.”
옆집 여자가 나오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주정이었다. 나는 제 돈 내고 술 마신 남편이 미워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는 악독한 여편네가 된 기분으로 왕방울만한 인형의 눈을 하나하나 붙여나갔다. 옆집여자는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속썩는 것만 빼면 원도 한도 없다고 했었다.
“웬수. 웬수. 나가 뒈져. 말 못 알아듣는 인간은 똥통에 밀어넣고 삼박사일 가둬놔야 돼”
옆집여자의 악다구니였다. 뒤이어 아이들 둘이 밖으로 우당탕탕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에게서 옮겨 튈 흙탕물을 피해 도망나오는 중이었다.
“염병허네. 아휴 내 염장 지를려고 태어난 인간아……”
나는 귀를 막듯 눈을 꼬옥 감았다.
“아줌마, 문 좀 열어주세요.”
나는 못 들은 척했다. 마루 불을 끄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었다. 아이들은 문을 쾅쾅쾅 두드려대었다. 제 엄마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면 밤새도록 두드려댈 기세였다.
옆집여자와 내가 동시에 문을 열어 아이들은 제 엄마의 손에 잡혔다. 원망하는 눈빛을 제 엄마에게가 아니라 내게 보내는 아이들을 나는 뜨악하게 바라보았다.
“이리 와 이놈들아. 니들 아버지가 어떤 인간인지 오늘 똑똑히 좀 봐봐.”
한 손으로는 큰아이 뒷덜미를, 다른 손으로는 작은아이 손목을 끌고가는 옆집여자는 막 전의가 불타오른 전사 같았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아이들 대신 자신에게 벌을 가하라고 남편이 손이 발이 되게 빌어대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한바탕의 전투가 예상되었다.
“그만해. 제발 그만해라. 내가 한 번만 더 술을 마시면 진짜 저놈들 뱃속에서 나왔다. 엉? 인자 됐지? 엉?”
드디어 자식놈들 뱃속에서 나온 사람이 되겠다고, 옆집 남자는 또 한 번의 맹세를 하고야 말았다.
누구나 위기의 순간에 펼쳐드는 주문 한 가지씩은 지니고 있게 마련인가? 옆집남자가 독 오른 마누라의 서슬을 피할 때 쓰는 요술방망이는 언제나 ‘피 같은 내 아들놈’이었다. 덕분에 옆집의 두 아이들은 툭하면 도마에 올랐다. 피 같은 아들놈을 걸고 맹세를 해대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빠, 앞으로는 우리를 봐서라도 정말 술 안 먹고 열심히 연주해서 돈도 많이 벌어오는 거다. 정말이다? 정말 우리 손가락 걸고 약속한 거다?”
옆집의 작은아이가 제 어머니에게 종아리를 맞으며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어머니는 개그맨들이 나와 배꼽을 잡으며 웃고 떠들어대는 텔레비전 속에서 얼굴을 돌려 옆집의 소란 속으로 귀를 기울인다. 시어머니의 얼굴에 살풋 웃음기가 감돈다. 이제 그것은 한여름 땡볕에 말라가는 풀포기처럼 시들해지는 시어머니의 귓창을 뚫어주는, 살아있는 소리일까?
나도 오늘은 솜으로 귀를 틀어막지 않는다. 옆집 아이들에게 숙명처럼 할당된 매질은 행복한 생활을 위한 한편의 짧은 쇼 같았다. 요란을 떨어대는 것에 비해 전투는 언제나 길지 않았다.


7


서두르는 날은 꼭 일이 꼬인다. 종로까지 한 번이면 가는 버스를 두 대나 어이없이 놓쳤다. 앞차는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뒤에서 섰다가 쏜살같이 달려갔고, 뒷차는 내릴 사람이 없었는지 아예 정차도 안했다.
오늘 만나는 남자는 까다롭고 잘난척하기 좋아하니 책잡힐 일은 아예 하지 말라고 박 실장은 단단히 주의를 주었었다.
몸에서 식은땀이 쫙 흐른다. 결혼할 수 없는 조건들만 줄줄이 갖춘 사람들을 상대할 때가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나는 긴장 속에서도 오늘의 내 역할은 결혼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서른셋의 여자라는 걸 기억해 내었다. 그것말고도 박 실장이 특별히 당부한 말이 또 있는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일단은 들어가서 남자의 얼굴을 보자고 생각한다. 이미 사진으로 한 번 본 남자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박 실장의 주의사항쯤이야 금방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박실장이 말한 커피숍은 반대편 길에 있었다. 대각선으로 보이는 그곳에 가려면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불이 바뀌기 전에 뛰려고 가방을 추스리다가 나는 땅에 발이 묶인 듯 멈춰선다.
바로 몇 걸음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건 분명 남편이었다. 나는 눈을 똥그랗게 떴다. 지난번에 생활비를 건네주고 갔던 여자가 남편의 팔에 찰싹 달라붙어 가고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남편을 부를 뻔했다. 지난번에 여자는 분명히, 남편은 일본으로 도망가 있는 중이라고 했었다. 때문에 그것이 마지막 생활비가 될 것이라고.
나는 여자의 손을 잡고 퇴근 인파 속으로 사라져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침대를 수입해 팔았던 공장이 불경기의 여파로 문을 닫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집을 줄이고, 적금 통장을 깨고, 결혼예물까지 팔아가며 함께 살길을 찾았던 그 남편이 정녕 맞단 말인가?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보다도 깊은 절망감이 걸을 힘마저 앗아갔다. 두 눈이 흐릿해지면서 새어나오는 게 눈물은 아니라고, 나는 종로 한복판에 서서 오래오래 눈을 깜박거렸다.

옆집남자가 취한 몸을 이끌고 저벅저벅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 소리가 질질 끌리는 걸 보면, 오늘도 그의 사랑노래는 1000원 대신 소주 한 잔에 팔린 듯했다.
방안은 인형들로 꽉 차 있었다. 아직 눈이 붙지 않은 인형, 본드가 접착력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인형, 왕방울 눈이 다 붙여져 나를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인형……
시계가 새벽 두 시를 알려왔을 때, 나는 장식대 서랍 속에서 주민등록등본을 꺼내보았다. 남편과 내가 부부로 올라 있는 문서였다.
어떤 악사가 천금을 받기로 약속하고 왕 앞에 나아가 정성을 다하여 음악을 연주했다. 연주가 끝난 후 악사는 연주료를 요구했다. 그러자 왕은 약속한 돈을 주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너의 연주는 훌륭했다. 그렇지만 한낱 나의 귀를 즐겁게 하였을 뿐이다. 내가 네게 천금을 주겠다고 한 것도 다만 네 귀를 즐겁게 한 것뿐이다."
내가 남편과 누렸던 사랑도 알고 보면 그토록 공허하고 무심한 게 아니었을까? 마치 악사의 음악과 왕의 약속처럼…….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밤에 일을 마치고 나오다가, 불빛이 휘황한 24시 편의점 앞에서박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닥을 보일 때까지 꾸역꾸역 마신 소주가 불러다준 용기였다. “제게도 근사한 사람 한명 소개시켜 주세요. 헛된 약속 따위는 않는 멋진 남자로요.”
몇 달 사이에 만난 여러 명의남자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결혼한 여자의 본분은 집에서 앞치마 두르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맛갈나게 하는 것이라던 남자, 식사 때 상대방을 보지도 않고 걸신들린 듯 식사를 끝내버리는 예의없음과 대화중에 상대의 말을 싹둑싹둑 잘라버리는 무례함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흠은 적녹생맹인 것 한 가지라고 의심없이 말하던 남자, 결혼하면 아이를 다섯 명은 낳아서 기르고 싶다던 마흔 살의 남자, 얼굴 대면한 지 몇 분도 안되어 화려한 결혼생활의 청사진을 펼쳐보이던 남자…… 그들 대부분은 영원한 반려자를 찾겠다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술기운을 빌미로 말했던 대로 내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과감히 잊고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 도둑맞은 세월에 대해, 도깨비놀음처럼 허황된 사랑의 언약에 대해…….
자려고 침대로 올라가다가 나는 장식장 밑에 처박혀 있는 인형을 보았다. 다시 내려와 꺼내보니, 오른쪽 눈동자가 달아나 있었다.
나는 본드를 흠뻑 짜서 인형의 왼쪽 눈동자도 다시 붙였다. 시장 구석에서든, 고급 상점의 쇼윈도우 속에서든 또록또록 세상을 보게 하고 싶었다. 내가 배불뚝이 인형을 처음 보았을 때,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건 바로 그 왕눈이었다.
나는 빈속으로 잠들어 있을 시어머니의 팔에 두 눈을 딱 붙인 왕눈이 인형을 가만히 눕혀놓았다. 시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침으로 흰 베개가 누렇게 얼룩져 있다.







윤순례1967년 전북 부안 출생. 1991년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6년 제 18회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여덟색깔 무지개> 가 당선되며 등단. 200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소설 부문 신진예술가상 수상. 2005년 제 29회'오늘의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