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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작가대회 평화소시집
- 반년간지 <시경> 특집
백두고원에 다녀와서
곽효환
1.
그 여름의 절정이었다
백두고원, 거기서 끝이었어도 좋았다
칠흑의 새벽을 가르는 칼날바람을 타고
천지는 신비를 벗고 검푸른 남색 얼굴을 드러내고
무두봉 너머 펼쳐진 장엄한 운해를 뚫고 오르는 해
보름을 막 지난 새벽달은 수줍어
그를 맞는 게 더없이 수줍어 마주 서서 얼굴을 흐리고
멀리 소백산 포태산으로 가없이 펼쳐진 백두고원에서
침엽수림의 진한 초록의 푸르름을 숨쉬는
통일을 염원하는 아니 통일을 여는 그 새벽
우린 사슴이 되고 곰이 되고 산양이 되고 살쾡이가 되고
또 호랑이가 되어 달렸다
베개봉을 뛰어넘어 삼지연에서 맑은 물을 마시고
거침없이 백두폭포를 거슬러 올라
이깔나무 가문비나무 분비나무 가득한 밀영계곡을
달리고 또 뛰어 올랐다
장군봉과 향도봉이 하늘을 떠받친 개활지에서
통일되어 다시 이곳에서 만나자던
그 새벽의 의연한 아름다움
그 새벽의 장엄한 서사
그 새벽에 펼쳐진 빛의 협연
거기서 끝이어도 좋았다
백두대간의 시원
산맥이 시작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가르고
광활한 북방대륙을 꿈꾸는
그곳에서 통일을 보았다
분단과 시간의 벽을 넘어선
새로운 시작의 서곡을 목 놓아 불렀다
다시 시작이었다
본래 하나였듯이 다시 하나였고 하나가 되었다
분명 하나였고 시작이었고 통일이었다
2.
이제 다시 남쪽 서울의 변두리에 돌아온
감동은 아득하다
기억마저도 이렇게 쉽게 희미해져 간다
퍼렇게 시퍼렇게 두 눈을 가슴을 온몸을 물들인
그 여름 백두고원의 함성
길을 따라 나란히 난 고원의 협궤철로
빽빽이 들어선 삼송나무*가 이룬 신성한 숲의 바다
한 여름에도 얼음장 같이 흐르는 소백수 개울
혹한을 뚫고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는 만병초
자작나무를 닮은 하얀 얼굴의 봇나무
키 작은 들쭉나무들
잘 가시라 다시 만나자던 제복의 여인들
삼지연공항 마당에 그림을 펼쳐놓고 서성이던 사내들
차창 밖의 아이들 그 가는 손들
그리고 가슴에 담아온 풍경들
하여 나는 다시 노래해야한다
사랑을 기억을 희망을 그리고 절망을 딛는
감정과 감정이
신념과 신념이
언어와 언어가 부딪치고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그 아픔을 딛고 부르는 지워지지 않는 노래를
하여 천둥처럼 엉엉 울면서도 일어서 다시 가야한다
이것이 나의 애린이다
*백두고원에 서식하는 이깔나무, 가문비나무, 분비나무를 통칭해서 삼송나무라고 부른다.
곽효환 1967년 서울 출생. 1996년 세계일보, 2002년 <시평>을 통해 등단. 현재,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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