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론가의 슬프고도 참담한 변호사 전업
- 윤지관의 신경숙 변론에 대해
아, 슬프고도 참담한 심정이다. 이 시대의 지성이어야 할 영문학 교수이자 평론가인 윤지관 씨가 신경숙의 표절을 뭉그적거리며 妖說의 문법으로 변호하다니…. 며칠 전, 우연히 나는 이곳에서 윤 씨의 글을 대하고 내 눈을 의심하며 경악했다. 나 또한 시를 짓는 어쭙잖은 문인이다. 물론 문단 말석에조차 이름을 얹지 못하는 우매하고 졸렬한 문인이지만, 누구의 좋은 작품을 훔칠 정도의 배짱도 없는 소심한 문인이지만, 시 한 편 지어놓고 혹여 내 작품이 누구의 작품과 유사하지는 않을까, 혹여 ‘모티브’가 어느 작가와 닮지는 않았을까, 세밀히 점검한다. 그것은 시를 창작하는 시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며, 내 작품이 내 손을 떠났을 때 작품을 감상할 독자에 대한 예의이다.
내가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하는 Y라는 이가 있다. 나는 시를 발표할 때면 그에게 자주 조언을 구하곤 한다. 그의 안목은 시를 웬만큼 쓴다는 기성 시인보다 나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도 문청시절이 있었다. 고교 시절, 문예부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 때 그는 꽤 규모 있는 백일장에서 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 후 자신의 작품을 들여다보니 어느 시인의 시, 몇 행과 똑같더라는 것이었다. 문청시절, 누구나가 수십 편의 시를 외우곤 하는 게 다반사인데, 외운 시의 구절이 은연중 자신의 수상작에 흘러들었던 것이었다. 그 일을 겪고부터 그는 “나 같은 사람은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여기고 문학을 깨끗하게 접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어떤 환경에서건 항상 정직하고 올곧게 자신의 생을 엮어가고 있다.
단언컨대 문학을 하는 사람은 고결한 창조자여야 한다. 나에게는 문학을 공부하며 작가를 꿈꾸는 딸이 있다. 나는 내 딸에게 작가는 고통스런 ‘창조자’여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종종 해주곤 한다. 윤 씨의 글을 대하고는 정말이지 내 어린 딸이 문학을 접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윤 씨의 이 난감한 글을 내 딸이 보게 된다면, 그리고 여러 질문을 해온다면, 나는 진정 황망하고 부끄러울 터이다. 나는 오랜 시간 製造工場에서 근무하며 어렵게 등단했다. ‘공장’의 工員도 他社(人)의 製品이 아무리 성능이 좋고 그럴듯하게 보이더라도 무단으로 베끼지는 않는다. 베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고 범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부품 몇 개를 그대로 도용하여 제조하더라도 (윤 씨의 표현대로 극히 일부를 베끼더라도) 당장 특허에 문제가 된다. 즉 ‘특허법’에 저촉된다는 의미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개가 몇 년 근무하지 않아도 다 인지하는 사실이다.
과거 b라는 회사에서 유압 시스템의 샤프트 부품 한 개를 a회사 것을 베껴 製造(生産)한 적이 있다. 이 일로 동종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수백 개의 부품 중 극히 일부인 단 한 개의 부품만을 베껴 製造(生産)한 것인데도 특허에 저촉되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b사는 엄청난 배상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 폐업 위기까지 가기도 했다. 공장도 이럴진대 하물며 ‘창작’을 하는 작가가 타인의 작품을, 그것도 삼척동자가 봐도 대놓고 베꼈다는 걸 인지할 수 있음에도 그게 훔친 게 아니면 도체 무엇이 도둑질이란 말인가. 윤 씨가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볼 때, 과연 그가 ‘패러디’와 ‘오마주’와 ‘표절’의 경계를 구분 지을 수 있는 평론가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다지 배운 것 없는 공장의 내 동료들에게 그 문제의 어설프게 베껴 덧칠한 ‘전설’ 문장과 ‘우국’의 문장을 비교하며 표절 여부를 물으니, 모두 예외 없이 필사한 듯 똑같은 문장이다, 는 답변이 돌아왔다. 他社의 부품 단 한 개를 가져와 自社의 제품처럼 만들었어도 그것은 自社의 제품이 아닌 盜作이며, 특허법 위반이다. 내가 몸담은 공장의 工員들에겐 그것이 엄청난 이론도 지대한 학설도 아닌 그저 상식일 따름이다. 工員에게도 이 정도의 윤리는 있는 것이다.
신경숙 표절사건이 ‘문학의 법정’에서 다뤄져야 하는데 ‘현실의 법정’에서 다루어진 거에 윤 씨는 무척 비분강개하는 것 같은데,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윤 씨가 틀려도 너무 틀렸다. ‘법(법정)’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것도 ‘문학의 법정’에서? 사실 법(법정)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상식’에서 다루어지고 논의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아마 윤 씨도 직간접으로 경험했으리라고 본다. (보편적인 사람은 법보다 윤리와 상식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가령 진실λ와 거짓 σ가 있다고 가정하자. 상식적인 잣대로 다루어졌을 때 진실λ가 승리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법(법정)’에만 가면 뒤집혀 거짓 σ가 승리하는 경우가 이 세계에선 비일비재하다. 돈과 권위와 인맥과 힘 있는 변호인과 비겁한 검사와 공정하지 못한 판사와 이러저러한 이해관계 때문이리라. 그리고 윤 씨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윤 씨가 말한 ‘현실의 법정’에서 다루어진 신 씨의 표절 건은 기실 ‘법정’이 아닌 지극히 ‘상식의 장’이라고 나는 알려주고 싶다.
세상에 없는 언어와 문장을 치열하게 창조해야 할 숙명을 지닌 이가 작가라고 나는 학습했고 그 학습을 여전히 신뢰한다. ‘세상에 없는 언어와 문장의 창조’ 이것이 작가 정신이 아니면 무엇이 작가 정신이란 말인가. 똑같이 베낀 신 씨의 작품이 표절이 아니면 이 세상에 도체 무엇이 표절이란 말인가. 이것을 가지고 법(법정), 그것도 신뢰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를 ‘문학의 법정’으로 가자고? 나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좀 안된 일이지만 공장의 상식적인 공돌이 思考보다 대학교수이자 평론가인 윤 씨 思考의 수준이 한참이나 아래인 것 같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끝으로 자꾸만 스멀스멀 피어나는 강력한 의심 하나, 이미 우상? 이 되어버린 신경숙 씨가 아닌, 문단의 어느 무명 신인이 신 씨와 같은 경우에 처했더라도 윤 씨는 과연 이렇게 열렬하게 온몸으로 변호하였을까?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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