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국민 없는 정부’ 원하나  
[프롤로그] 이명원(문학평론가, 지행네트워크 연구위원)

2008년 05월 18일 (일) 12:29:46 이명원 문학평론가  webmaster@ytongsin.com  

  
▲ 이명원(문학평론가, 지행네트워크 연구위원) / 여의도통신 PhotoDB  
2001년 이른바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 당시 소설가 이문열은 <조선일보>에 ｢‘신문 없는’ 정부 원하나｣라는 칼럼을 통해 김대중 정부의 언론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칼럼에서 “국세청이 언론기업의 탈세혐의를 검찰에 고발하는 걸 3개뿐인 방송사가 모두 생중계하고 종일 그 뉴스로 화면을 뒤덮는 걸 보면 유태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나치의 대 국민 선전 선동을 연상시킨다”는 발언을 통해 김대중 정부를 과격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의 와중에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왜냐하면 정권은 한 시대의 정치제도가 빚어낸 제도이지만 언론은 제도 그 자체로서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없고 정부만 있는 사회보다는 정부가 없고 언론만 있는 사회를 선택하겠다는 말은 바로 이 뜻이 아니었던가.”

‘언론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기 위해 그가 인용하고 있는 이 말의 최초 발설자는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다. 여기서 환기되어야 할 사항은 이 발언을 할 당시의 제퍼슨은 대통령이 아닌 한미한 ‘야인’의 처지에 있었다는 것이다. 기막힌 것은 막상 제퍼슨이 대통령직에 오르자 과거에 그가 했던 발언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행태를 가장 고약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를 쓴 언론사를 법적 수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괴롭혔으며,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언론을 노골적으로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언론의 자유’ 편에서 보면, 오히려 제퍼슨은 이문열이 가장 혐오해야 마땅할 인물이었으나, 알쏭달쏭하게도 그는 이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사실보도’라도 제대로 해줬으면…

당시와는 전혀 맥락이 다르지만, 나는 오늘의 정치상황을 생각하면서 이문열의 그 칼럼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연상의 결과가 이문열처럼 당파적인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면, 오늘의 언론 상황은 당파적으로 과잉된 비만한 보수 언론의 카르텔이 오히려 커다란 사회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미친 소’ 정국에서 한국의 거대보수 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과잉된 정부추종의 자세나, 국민들의 ‘건강생존권’과 국가의 ‘검역주권’에 눈을 감는 태도, 자발적인 촛불시위를 숨어 있는 좌파 배후세력에 의한 반정부 시위로 왜곡하는 현실을 보면, 오히려 이들 언론을 향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언론의 기본윤리로서의 ‘사실보도’라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 나타나고 있는 정치적 무능력을 지켜보다 보면 이 정부에게 ‘국민 없는 정부 원하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을 때가 자주 있다. 청와대 대변인을 포함하여, 이 정부의 인사들은 위법과 탈법에 의한 재산증식을 밥 먹듯이 보여준 사람들이 많은데, 대통령은 이들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며, 당사자들은 일단 소나기나 피하자는 심정으로 자리에 끈질기게 연연하고 있다. 이전 정부의 인사에 대해서는 ‘알 박기’라고 비난을 퍼부어대던 인사들이, 법적 근거 없는 기관장의 사임을 노골적으로 강요하고, 그 자리에 ‘코드인사’를 넘어선 ‘메가 코드인사’를 낯 뜨겁게 감행한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법질서를 강화하고, 불법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겠으며,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국민의 ‘언로’를 봉쇄시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민건강권의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PD수첩’을 고발하지 않나, 인터넷 카페에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조사하지 않나, 시위에 참여한 중고등학생을 사찰하지 않나, 교수들을 사찰하지 않나, 그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지지율이 20퍼센트대로 떨어졌다면, 대통령으로서 또 행정부로서, 또 여당으로서 민심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며, 자신들이 진심으로 무엇을 교정해야 하는가를 심사숙고해야 할 텐데, 이 와중에도 청와대와 여당은 ‘친박세력 복당’ 운운하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소모적 갈등만 남발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이 정부와 여당에 대해 ‘이게 나라냐’ ‘이게 정치냐’ 하며 치를 떠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네티즌들이 “노 대통령은 조중동과 싸웠는데, 이 대통령은 초중고딩들과 싸운다”는 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왜 이명박 정부는 대다수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국민을 모욕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가.

‘미친 소’ 사태에 있어서 정부가 보여주는 태도는 도대체 이 정부가 신뢰할 만한 정부인지, 과연 국정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는 정부인지, 국민 대다수의 현실감각을 이해할 수 있는 정부인지 회의적이라는 사실이다. 국가 간 조약의 기본이 되는 조약문조차 제대로 검토하거나 분석할 능력이 없는 정부가, 국민건강권을 치명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사항조차도 막무가내 논스톱으로 밀어붙이는 정부가, 촛불시위에 참여한 국민들을 ‘재미’ 삼아 나온 집단으로 간주하는 현실인식 없는 오만한 정부가, 어떻게 성숙한 국민의 뜻을 살피고, 민의를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런 실망스런 정부이기에, 중고생들조차도 ‘교과서’에서 배운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안 된 정부라고 비판하고 ‘촛불’을 들고 있는 것 아닌가.

돌아선 민심 영영 안 돌아올 수도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오만, 무능, 아마추어 정부가 출현하게 된 데는 현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집권기를 일컬어 이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그 기간 동안 한나라당이 한 일이라곤 사사건건 정부에 ‘반기’를 든 것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대의 10년’이라는 자못 장구한 세월을 거치다 보니, 책임 있는 정책의제를 체계화하는 일이나, 성숙한 국정운영 능력을 훈련할 시간도 없었고, 이명박 1인 독주체제라는 무늬만 CEO인 ‘보스정치’를 제어할 만한 리더십 역량도 고갈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정부와 야당은 총체적인 국정파행의 책임을 엉뚱하게도 노무현 정부에게 돌리고 있다. 이런 방식의 ‘남 탓하기’와 ‘책임회피’가 계속된다면, 이미 등 돌린 민심은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문열의 표현을 패러디하면, 정권은 한 시대의 정치제도가 빚어낸 제도이지만, 국민은 그 자체로 영원하다.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현재와 같은 ‘국민 없는 정부’보다는, 차라리 ‘정부 없는 국민’이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심각한 경고를 이명박 정부에게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