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사회과학을 천대한 대중이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집착하게 되면서, ‘정의’는 헌신짝처럼 버려졌으며 ‘자유’는 된서리를 맞았다.

한때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이른바 ‘사회과학의 시대’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대중적인 관심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과거 민주화의 시기 동안 한국의 사회과학은 대중에게 뜨거운 독서와 토론의 단서를 제공했다. 학교와 공장에서, 그리고 주점과 카페에서 대중은 한국 사회의 성격에 대해서 논의하거나 한국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미래에 대해 고뇌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른바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료되었다고 주장하는 시기를 지나면서, 사회과학에 대한 대중의 열기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대학문화의 유력한 상징이던 사회과학 서점을 유지하는 일도 대학생들의 무관심 탓에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사회과학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한 것은 한국적 스노비즘이었다. 구제금융기를 거치면서, 겁먹은 대중은 서둘러 재테크와 처세술로 관심을 돌렸다. 공적인 관심 대신, 일단 나부터 살고보자는 정보화 시대의 더 과격해진 피난민 의식이 집단적으로 분출된 것이다.

사회과학을 헌신짝처럼 취급한 오늘의 한국 대중은 그래서 삶이 좀 더 행복해진 것일까. 사정은 정반대인데, 사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한국 사회의 성격과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같은 공적인 동시에 거시적인 고민이 소멸하자, 체제는 제멋대로 대중을 선동하고, 때로는 모욕하면서 궁지로 내몰아가기 시작했다.

사회과학을 천대한 대중이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집착하게 되면서 ‘정의’는 헌신짝처럼 버려졌으며 ‘자유’는 된서리를 맞았다. ‘민주주의’는 제멋대로 헌법도 바꿀 수 있는 ‘정치계급’에 의해 난파 직전에 있으며, 경국제세(經國濟世)의 끈 뜻을 품어야 할 경제는 카지노 자본주의와 기득 이권층의 손아귀에서 요동쳤다.

대중의 욕망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욕망과 함께 나란히 중요한 가치로 보존되었어야 할 시민적 책임과 사회윤리가 ‘굿바이 사회과학’ 풍조와 함께 소실되었다는 점에 있다. 위기는 체제로부터 오지만, 그런 체제에 대한 지성적 통제를 가능케 할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을 방기해버린 대중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거의 한계 상황이라고 해도 좋을 오늘과 같은 총체적 전망 폐쇄의 현실 상황은 버림받은 사회과학이 이 시대의 대중에게 던지는 복수는 아닐까.

물론 비판은 사회과학의 주체에도 가해야 한다. 일단 사회과학자 자신이 대중에게 매혹적인 ‘문제 설정’을 제공해주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동시에 주류 사회과학의 파상적인 세력에 맞서, 소수일망정 대중과 밀착하여 ‘거리의 사회과학’을 탐구하고, 즉각적인 이론의 실현 가능성과는 별도로, 미래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촉진하는 담론을 생산하는 데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도 의문이다. 사회과학은 그 자체가 위기의 산물이다. 18세기를 경과하면서 방외인이나 체제에서 이격된 불우인들이 창안한 조선의 혁신적 사회과학, 즉 실사구시의 지적 전통은 오늘과 같이 위기에 빠진 한국 사회에서도 다시금 사회과학의 시대가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사회과학자들은 당연히 분발해야겠지만, 대중 역시 거품경제의 혼미한 시간대에 결별했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와 재회할 때가 온 듯하다.
힘내라! 사회과학.

<2008. 10. 2 문학평론가·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