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신경숙(52·여)씨가 자신의 작품에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신씨가 23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과했지만 법적 문제는 남아 있다. 소설가 이응준(45)씨는 지난 16일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신씨의 작품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가 쓰고 시인 김후란(81·여)씨가 번역한 소설 '우국'의 내용 일부를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19일엔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낸 현택수(57)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신씨를 사기와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표절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씨는 '수사가 아닌 문단 내부의 자정을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현 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표절 의혹 작품이 포함된 소설집을 출간한 출판사 측이 진정한 사과를 하고 책을 수거한다면 고발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법률신문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표절 논란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과 법률가들의 실무적인 판단 기준을 점검해 봤다.

◇"형사처벌 가능성 낮다"= 서울중앙지검은 신씨 사건을 지식재산권 전담부서인 형사6부(부장검사 정승면)에 배당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이 접수된 후 면밀히 검토 중이며, 통상의 사건과 다름없이 처리할 것"이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형사처벌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지식재산권 전문가인 조용식(55·사법연수원 15기) 법무법인 다래 대표변호사는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안이긴 하지만 피해자가 직접 피해 사실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제3자가 형법상 사기와 업무방해 등을 제기한 사안이라 검찰은 본격 수사 여부도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검찰이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로 한다면 작품의 표절 여부를 검토하겠지만, 형사처벌까진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수사가 본격 진행된다면 고발 혐의의 전제가 되는 작품의 표절 여부를 다툴 수밖에 없을 텐데 이 경우 저작권위원회를 비롯한 전문기관에 감정(鑑定)을 맡길 가능성이 높고, 결론이 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인 박영관(63·13기)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검찰이 신씨를 기소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재권 전문 변호사는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수사의 영역에서 만큼은 벗어날 수 있도록 논란의 당사자들이 우선적인 협의를 벌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표절, 저작권 침해 여부로 판단"= 표절 논란에 형사책임을 지우는 경우는 드물지만 민사적으로 다뤄지는 경우는 종종 있다. 지식재산권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의 한 판사는 "표절은 도덕·윤리적 책임에 대한 다툼인데 법적인 분쟁이 되면 민사적으로 저작권 침해 여부를 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작권 침해 여부를 따질 땐 몇 단어, 몇 문장의 유사성만을 놓고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비교 대상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검토하게 된다"고 밝혔다.

직접피해자 아닌 제 3자가 사기·업무방해 혐의로 고발
표절 논란 대부분 民事로 다뤄 … 형사처벌 가능성은 낮아
"법률적 판단 아닌 문단 지혜모아 스스로 해결 바람직"

표절에 따른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실제로 '실질적 유사성'이 판단 기준이 됐다. 지난 2010년 뮤지컬 제작사 대표 김모씨가 문화방송 등을 상대로 "드라마 '선덕여왕'이 뮤지컬을 표절해 저작권이 침해됐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대표적이다.

1심과 2심은 "뮤지컬과 드라마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 여부를 판단하면서 '어문(語文)저작물'에서는 부분적·문언적 유사성과 포괄적·비문언적 유사성이 문제된다"고 설명했다. 1심인 서울남부지법은 "부분적·문언적 유사성은 저작물 속의 특정한 행이나 구절 또는 기타 세부적인 부분이 그대로 복제돼 양 저작물 사이에 문장 대 문장으로 대칭되는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괄적·비문언적 유사성은 저작물 속의 근본 체계나 구조를 복제함으로써 두 저작물 사이에 문장끼리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유사성은 없더라도 전체적으로 포괄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다"고 밝혔다(2010가합1884).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어문저작물 중 소설, 극본 등과 같은 극적 저작물은 등장인물과 작품의 전개과정의 결합에 이뤄지는 것이고 작품의 전개 과정은 아이디어, 주제, 구성, 사건, 대화와 어투 등으로 이뤄지는데 각 구성요소 중 저작물에 특이한 사건이나 대화 또는 어투는 그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밝혔다(2012나17150).

이 사건은 1심에서 원고가 패소한 후 2심에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받아 일부승소했으나 2014년 7월 상고심에서 파기환송됐다. 이후 다시 서울고법을 거쳐 지난달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하면서 "저작권 침해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최종 판단이 내려졌다(2015다8933). 표절이 아닌 것으로 결론났다.

◇법조인들 "수사만큼은 경계해야"= 이처럼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려서 표절 논란을 마무리한 사례는 있지만 법률가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문단의 대체적인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씨에 대한 형사고발에 대해 "표절 논란은 법률 판단에 앞서 문단이 지혜를 통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며 법률적 접근을 우려하는 쪽이다. 한 중견 법관은 "문단에서 더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었을텐데 고발이 이뤄져 형사책임 여부를 다투게 된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선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태도는 문학 미술 음악 등 창의성을 근본으로 삼는 문화·예술 분야 저작물에 대한 법률 판단은 최소한에서 그쳐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 때문이다. 법원장 출신 지재권 전문 변호사는 "법률 판단은 형사건 민사적 '책임'을 묻는 최종 판단이기 때문에 창작의 영역에 대한 개입은 최대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법률가들 대부분의 태도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