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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마음이 들떴다. 내 어린 시절 최고의 선물은 종합선물세트였다. 제조사에 따라 구성품목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호기심 불러일으키는 데는 그만한 게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 달력만한 크기의 그 상자에는 우주가 담긴 것과 다름없었다.
상자 뚜껑을 열었을 때 한눈에 들어오는 그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과자들. 그건 허블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를 본다 해도 느끼기 힘든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누군가 설빔을 차려입고 손에 그와 같은 선물 꾸러미를 든 채 동네 들머리에 들어서면 그 선물이 꼭 내것이 아니라 해도 가슴 속이 환해졌다. 누군가는 저 선물을 받고 기뻐하겠지. 적어도 사철 옥수수나 구운 콩을 유일한 주전부리로 알고 지내온 나 같은 녀석들에겐 말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이라 해서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그이가 얼마나 노심초사했을지를. 다른 선물을 고르려다 망설이기를 몇 번 주저하는 마음을 다독이며 얼마나 힘들게 고르고 값을 치렀을지를. 그래서 선물상자가 조금씩 비워지면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다.
대신 나는 그 빈자리에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쟁였다. 끝내 상자가 텅 비면 그 상자를 쉬 버리지 못해 다른 잡동사니를 담아두는 데 썼다. 그렇게 두고두고 선물을 준 이의 마음을 헤아렸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모를까. 세뱃돈으로 준 빳빳한 지폐 몇 장보다 공부 잘 하라는 상투적인 덕담 몇 마디보다 소중한 게 있다는 걸. 아직 가난을 경멸할 줄 모르는 아이들일수록 선물을 주는 이의 마음이 채워져야 비로소 완전한 종합선물세트가 된다는 걸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낀다. 밤새 선물상자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아이들이 사실은 선물을 준 이의 가슴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는 걸 어른들만 모르는 게 아닐지.
<2010.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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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