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12월의 아침 햇살이 초췌해진 숲에 맑은 생기를 불어넣는 아침입니다.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연말은 이래저래 분주할 테고 곧 우리의 나이는 한 살 더 늘어날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가늠해 보던 그 많은 나이를 먹은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 두려워집니다. 올 한 해도 정신없이 일하며 지나갔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 나이가 들었고, 흰 머리가 하나 둘 늘어났으며, 다리와 근육의 힘은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은데, 배가 나오는 게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운동을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지만 꾸준히 할 수 없어 속이 상합니다.

김기택 시인은 직장인으로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스님들의 고행에 빗대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서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
그는 하루종일 損益管理臺帳經과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 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
---김기택 「사무원」중에서

김기택 시인의 말대로 우리가 한평생을 바쳐 일하는 직장생활이 불가의 용맹정진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매일 대하는 책이 불경에 버금가는 지도 모르고, 우리가 굽실거리며 허리를 굽히는 일이 백팔 배와 다름없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것은 시적 비유이며 풍자입니다. 다만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며 사는 것이 고행의 길이라는 건 많은 이들이 수긍할 것 같습니다. 고행의 길이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고행 속에서 깨달음도 얻고 삶의 깊고 오묘한 의미도 거기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도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이 일의 업보에서 벗어나 자유자재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아직 그럴 수 없다면 일 속에서도 인간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몸이 탄력을 잃어가는 걸 느끼면서도 마음은 깊어지고, 우리가 하는 일 속에서 사람 사는 모습의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09.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