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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어강비｜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아파트 큰 길 건너 빌라에는
찌그렁 할머니가 산다
매일 아침 빈 수레로
아파트 고물을 담아낸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을 수 없는 큰 수레,
그리고 찌그렁 고물할머니.
고물수레를 끌고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가
나는 자꾸 고물처럼 보인다
할머니가 수레를 미는 건지
수레가 할머니를 끄는 건지 모르게
한 층 한 층 계단을 오른다
달그락 소리는 바빠지고
비어있던 수레는 가득 차서 내려온다
가득 찬 것을 보면 배가 부르다
배부른 수레에 담긴 고물과 희망
매일 아침 비워진 채,
계단을 오르는 빈 수레는
가벼워서 배가 부르고
내려오는 수레는 무거워서 배부르고
비온 뒤, 짙은 하늘가에 걸린
일곱 빛깔 무지개 아래
더듬이를 길게 뻗은 달팽이가
점액질을 분비하면서
계단 같은 긴 풀잎에 오르고
할머니는 계단을 오른다
무거운 눈을 끔벅이며
오늘도 여전히 계단은 높다
계단
류세현｜구미여자고등학교 2학년
아버지의 바지는 늘 수선집에서 그 인생을 시작한다
그들의 인생은 시작부터 어긋나는 것이다
오른쪽 바지 끝이 엄지손톱만치 올라간 그의 바지
그의 인생이 늘 그런 모양이 아니었던가 한다
삶의 무게가 무거운 날 , 담걸린 엄마의 허리와
애타는 원망이나 발치에 내뒹구는 새파란 한숨도
쌓일 곳 없이 떠돌던 자식의 반감까지도
아버지의 계단 앞에서는 그저 바스러졌던 것이다
힘든 세상, 쓴 소주 한 잔 털어 넣는
당신의 인생에는
자식에게만은 보일 수 없던 한 가지
항상 당당하고 싶던 초라한 당신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일이 없다
겨우 엄지손톱만큼 짧던 바지가
계단을 오르는 당신의 온몸을 흔들었고,
처음 본 그 모습에 딱딱해진 나의
가슴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
탁 타닥 탁 타닥 엇박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던 날이 있었다
가로등
정현우｜평택고등학교 3학년
1
가로등 안으로
달려드는 안개들 , 찢겨진 거미줄에 흩날립니다
집 질 자리 고르던 거미 한 마리
찢긴 거미줄을 이어 집을 짓습니다
엉덩이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하나씩 하나씩 뽑아냅니다
한 가닥마다 엉겨 붙는 샛바람을 게고
가로등 빛에 천천히 말립니다
탱탱해진 기억들 사이로 앉아있던 거미
가로등 머리맡까지 집을 짓습니다
2
겨울 볕에 제 몸 얼어붙은 지도 모른 채라
따스하기만 한 새로운 집에서
지그시 안개들을 기다립니다
밤이면 쉴 새 없이 거미줄을 비추던 가로등
거미에게 젓을 물리고 있던 중
실타래 뒹굴며 놀고 있던 나
반지 고리처럼 나 앉아 환하게 비춰지는
어머니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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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