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빛 속에 작은 여인


정다울｜대진여자고등학교 2학년




어둠 아래 내리쬐는
빛 속에서

고개 숙여
발끝만 보는

작은 모습의
엄마를
먼 곳에서부터
바라보며

나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발을 끌며
다가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빛을 다 맞으며

자기보다 큰 그림자와 함께
나를 기다리는

그 작은 여인에게
조금씩 발을 떼며
다가간다

어둠 밑에
빛 아래서

그림자와 함께
외로움을 지고

세월과 시간을
양 손에 들고
기다리는 엄마 모습에
이제 나는 그 곁으로
뛰어간다

뛰어
뛰어서

내가 엄마 곁에
다가가면

어둠 아래 빛 속에서
내리는 빛을 이제
같이 맞고

빛 아래
그림자도 같이 누워있고

혼자였던 빛 아래서
둘이 되고 우리가 된다

빛 속에 엄마 혼자
들고 있던

세월과 시간을
나눠들고

혼자 지고 있던
외로움,
엄마 혼자 지기엔
너무 많았던
내가 작게 만든
엄마

내가 혼자 두게 한 엄마

내가 슬프게 한 엄마

이젠 빛 속에서 함께
그림자가 사라지는
어둠을 지나 행복으로 들어간다





가로등


황주현｜횡성여자고등학교 1학년




나는 한적한 시골 가로등이다
나는 역사 깊은 분교 옆 가로등 이다

태초가 여기만 할까 ?
아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곳보다 고요하고
평화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낯선 사람냄새가 난다
눈을 지그시 감고 짧은 여행을 떠난다
언젠가 분교에서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를 흘려가며
축구를 하던 것이 떠올랐다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좋았다

공사장 인부들의 잡담 소리에 눈이 떠졌다
내 주위에는 온통 새까맣게 타 죽은
날 파리 시체가 즐비하다

다시 떠나려 하지만 날이 밝아온다

나는 B개발지역 가로등이다
나는 신축아파트 앞 가로등이다





아빠의 빨간모자


박미진｜이천양정여자고등학교 2학년




농사꾼인 우리아빠와
몇 천일을 함께해온
빨간모자는
할머니가 장날에 사 오신
빨간모자는
우리 사남매보다도
우리아빠를 더 사랑합니다

더운 여름에도
쌀쌀한 가을에도
추운 겨울에도
따스한 봄에도
비 오는 날에도
비가 안 오는 날에도
빨간모자는 늘 아빠와 함께 합니다

뜨거운 햇살도 같이하고
땀도 닦아주며
아빠를 위해 그늘도
만들어 줍니다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맞으며 함께 합니다
빨간모자는
할머니가 장에서 아빠를 위해
사 오신 빨간모자는
점점색이 바래갑니다

할머니 사랑도 조금씩
바래갑니다
모자가 조금씩 바래가듯
할머니도 조금씩 바래갑니다

빨간모자는
우리 사남매보다
아빠를 더 사랑합니다





녹슨 달


공혜정｜서울상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자주 거닐던 그 공원엔
해가지면 나타나는 달이 있다
기다란 철 기둥 위해
대롱대롱 매달린 녹슨 달이다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달도 아니면서
달보다 먼저 나타나고
달보다 늦게 사라진다
깜깜한 밤을 비추는 게
한 곳만 비추더니
청춘남녀사랑에 부끄러움 주며
이제는 심술도 부린다
그래도
우는 이 눈물 닦아주고
쓰라린 가슴 쓸어주고
취객의 힘찬 발길질도 참고
강아지 지린 오줌도 참는
마음씨 좋은 달이다

지금도
자주 거닐던 그 공원엔
해가 지면 나타나는 녹슨 달이 있다





가로등


이수호｜잠실고등학교 1학년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길
뒤를 돌아보면 내 그림자 여러 개가
나를 따라오고 있다

내 그림자 여러 개가
서로 겹쳐져 나를 따라오고 있다

나는 문득 나를 돌아보고 있다

오늘 하루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따로따로 돌아다닌
여러 개의 그림자를 데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로등 노란 테두리 안에
타원형 그리며 날고 있는
나방들을 보고 있다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계속해서 타원형을 그리고 있는
나방들을 보고 있다





그의 모자


강민경｜대진여자고등학교 1학년




하늘을 등에 업고 날아가는 새의
날개가 조금 다쳤다 하더라도 새는
어느 다리 아래를 맴돌기보단
여전히 하늘을 업고 날았다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던 그는
그의 머리 위에 하늘대신 모자를 얹었다

깊게 눌러 쓴 짙은 색의 모자 속에는
언제나 고요하게 슬픈 그의 표정과
울긋불긋한 피부가 있었다

그의 모자 속은 늘 어두웠다
태양이 뽑아낸 한 줄기 햇살이
모자위에 잠시 머무를 때에도
모자 속엔 검은 빛만 흘렀다

그는 모자를 벗고 밖에 나갈 수 없다했고
푸름에 푸름을 더한 가을하늘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 ...

모자를 벗을 수 없다던 그
그도 날개 다친 새의 날개 짓을 보았을까
모자를 벗고 올려다 본 하늘 위로
새가 푸르름을 가르며 날아간다





계단


한강은｜가정고등학교 1학년




늘 같은 자리에
여러 명의 친구와
함께 있으면서도
항상 외로워하는 것.

매일 같이
누군가가 찾아와
인사를 나누지만
그래도 외로워하는 것

가끔은 열쇠 없는 내가
가만히 쉬기라도 하면
그제 서야 기뻐하는 것

가끔은 자장면 그릇을
내놓기도 하면
편안하게 미소 짓는 것.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것보다
그 누군가가
자신에게 기대어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계단은 행복하다
자신에게 기대어 줄
그 누군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계단


손정인｜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시멘트 화장 굳지 못해 새조차 내려앉지 않을 때
무참히 짓밟고 간 발자국들은
살이 오르지 않는 상처처럼 움푹 파여 있다

떠돌이 개들의 영역싸움 전쟁터가 되어
역한 지린내는 이미 뼈 속까지 파고들었고
술주정뱅이가 토해 낸 이야기처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슬픔을 침묵으로 내뱉어낸다
혹 누군가 자신처럼 상처를 입을까
제 몸을 갉아 내가며 끝을 무디게 한 계단
검은 하늘이 불어넣은 입김으로
빵빵해진 달그림자가
계단 한 가운데 구멍 난 가슴처럼 내리박히고
양옆에 서있는 벽들은 별 하나 없는
밤하늘처럼
갑갑하도록 계단을 조여 온다

갈라진 계단 사이 피어난 잡초 속에서는
짝짓기 하는 벌레 한 쌍이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고
짓밟히는 것이 삶인 계단
바닥을 움켜 쥔 몸을 꿈쩍 않고
제한된 하늘 속에 흐르는 구름을 본다





가로등 말을 뿌리다


김나래｜대전 호수돈여자고등학교 3학년




삼일 내내 이어진 장마에
퉁퉁 부어오른 골목
촉촉이 젖은 길 위로
가로등이 긴 말을 적고 있다

찰박찰박 바짓단을 적시며 걸음을 붙드는
거리의 울음소리 가슴으로 받으며
사발 한 가득 온기 담았을 빈 그릇
굶주린 쟁반을 머리에 이고
비탈진 골목을 오르시는 어머니

걸어온 자리를 좆아
머리 위로
가로등이 주홍빛 말을 뿌린다

실밥처럼 엉킨 땀 배인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올리듯
고단한 어깨를 주무르듯
따뜻한 위로의 말 살포시 내려앉는다

갈라진 곳마다 물웅덩이 꽃이 핀 골목길
상냥한 말의 선들이 물감처럼 번지고
집이 집을 품듯이
겹쳐 있던 빌라 한 채가
열린 창문을 쫑긋거리며
긴 긴 가로등 불빛을 엿듣는 사이

차가운 침묵을 불리던 밤
쫒기 듯 달아나고
가로등이 빛나는 거리가
훈훈한 말의 온기로 덥혀지고 있다





가로등


유명진｜산본고등학교 2학년




비가 덩어리 채 무너진다 절대로 위로 오르지 않는다

모든 기억은 드러난다 소멸의 저녁이 오면 깊은 음각의 골목은 죽은 기억들로 가득하다
듬성듬성 가로등은 어둠을 찢어내고 빛은 길의 뿌리까지 하얗게 씻어낸다

상처는 가려지지 않는다 빛을 만나면 기억은 날개를 달고 펼쳐진다 가로등 밑에 쓰레기,
가로등 밑에 개똥, 가로등 밑에 굳은 껌, 전단지, 낙엽들 온통 흉물스럽게 젖어있다
죽은 줄 알았던 기억들 사이로 나도 흉뮬스럽게 젖어있다
가로등 빛 아래 모든 상처가 풀어진 채 나는 짐승처럼 울고 있다 하얗게 빛나는 뿌리를 주어 듣고

골목은 사이좋게 섞여있다 상처도 어둠도 빛에 숭고하게 젖어있다 온 몸에 꽃가루처럼 하얀 빛을 부슬부슬 붙이고 극한을 달리는 기억을 주워들고 상처마다 지릿한 움을 틔우며

빛은 덩어리 째 떨어진다 절대로 위로 오르지 않는다 결국 진실은 밑에 있다 빛이 밝히는 그 무엇도 밑에 있다 신발 끈 밑에, 온통 축축이 젖은 그대로 하얗게 빛을 뿜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