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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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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5년도 고교백일장 산문부문 수상작
이름 사무처 이메일



                                        -산문-

<장원> 안양 예술고등학교 2학년 5반 국종애

비늘



 여진아, 너 우니? 눈 밑이 반짝거려. 그러자 그애는 오른손으로 눈가를 더듬었다. 방바닥으로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졌다.
 이건 생선 비늘이야.
 그애는 황급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시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교실 가장 앞자리에 앉아도 눈을 가늘게 뜨고 칠판을 봐야 했다. 가끔 옆 친구에게 필기를 보여달라고 해서 간신히 수업을 따라갔지만, 요즘은 나도 다 못적었어 라며 공책을 소리나게 덮곤 했기 때문에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수능을 두달 앞둔 아이들의 눈에선 불꽃이 튀었다. 새벽 일곱시에 교문을 들어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열시까지, 우리들은 의자에 앉아 죽도록 공부만 했다. 나는 언제나 불안하고 갑갑했다. 아이들은 책상모서리에 지망대학을 크게 적어 놓았지만 내 책상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에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교과서와 문제집이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골목길을 걸었다. 어깨가 뻐근했지만 대학이 주는 압박보다는 가벼웠다. 오래된 가로등 불빛은 희미했다. 나는 손을 뻗어 더듬으며 길을 걸었다. 낮에는 희미하게나마 구별되던 것들이, 어두워지자 전부 뿌연 덩어리로 보였다. 간신히 골목길을 벗어나자 우리 가게가 나왔다. 가게 앞에는 퇴근한 직장인들이 술잔을 끼고 앉아 회를 먹고 있었다. 나는 간판 불빛에 의지해 가게 안으로 달음질 쳐 들어왔다. 술취한 사람들이 가끔 말을 걸기 때문이었다. 벌개진 얼굴로 가게 안에 들어와 인사를 하자 어머니는 받는둥 마는둥 하며 나를 이층으로 떠밀었다. 빨리 올라가서 한 자라도 더 공부해. 나는 안경이 필요하다고 말할 틈을 놓치고 이층 계단을 올랐다. 슬쩍 가게를 내려다 보다가 손님에게 술을 따라주던 그애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동갑인데도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나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그애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우리집에 왔다. 처음에 아버지는 죽은 친구의 딸을 맡게 된 것이 씁쓸한 듯 보였지만, 그애가 자랄수록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성격이 된 데다가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가게일을 돕자 매우 기뻐했다.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그 애를 부러워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애는 가끔 나에게 교과서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전부 학교에 두고 다닌다는 뻔한 거짓말을 했다. 수능을 앞둔 고3이 교과서를 전부 두고올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애는 항상 웃으며, 커피라도 타올게 하며 자리를 피했다.
 낮은 책상에 앉아 수학책을 펴고 있는데, 그애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신경쓰지 않는 척 교과서만 내려다보았다. 힘들지. 그애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재미있어. 그러자 그애는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오른팔을 책상위에 올렸다. 생선 비린내가 났다. 슬쩍 흘겨본 그애의 가는 팔에 무언가 반짝이는게 보였다. 비늘이었다. 내가 비늘을 떼어주며 물었다. 또 비늘이 붙었네. 그애는 주방에서 붙었나봐, 하고 말했다. 하지만 넌 주방에 들어가지 않잖아. 생선 다듬는게 무섭다고. 그러자 그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문득 며칠 전 일을 떠올렸다. 좁은 방을 둘로 나눈 칸막이 사이로 나와 여진이의 책장이 있었다. 내 책장은 문제집과 교과서로 꽉 채워져 있었지만 그애의 책장에 물고기에 관한 책 한권만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책을 보고 그애에게 물고기를 좋아하냐고 물었었다. 그애는 기쁜 듯이 말했다.
 난 물고기가 좋아. 그거 아니? 물고기 중엔 회귀 본능이 있는 것들이 있어. 아무리 먼 바다에 있어도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 간대. 그곳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거야.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펜을 내려 놓았다. 이 작은 비늘은 전어 비늘이지? 얘도 고향으로 돌아갈줄 아니? 내가 그애 손가락에 있는 작은 비늘을 보고 물었다. 그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자기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를거야. 나는 다시 펜을 집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긴, 그러니까 횟집에 와서 죽겠지. 그애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곁눈질로 그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눈밑이 반짝였다. 눈 밑에 또 비늘이 붙었어. 내가 떼어주려고 손을 갖다대자 그애는 내 손을 살며시 밀어내곤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진짜 눈물이었다.

 수능을 한 달 앞두고 내가 콘텍트렌즈를 사 집에 돌아오던날 그애는 집을 나갔다. 그애가 가져갈 것은 없기에 남기고 간것도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곧 돌아오겠지 라며 관심없이 말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그애의 이불을 개었다. 이불을 드는데, 무언가 바닥에 떨어졌다. 비늘이었다. 나는 그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물고기 중엔 회귀본능이 있는 것들이 있어…….
 나는 비늘을 주머니에 넣고 책상 앞으로 가 교과서를 펼쳤다. 그러나 이내 덮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 책상 앞 벽을 보았다. 어머니가 가까이 두면 공부가 잘 될거라고 준 부적이 보였다. 나는 부적을 찢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밖으로 나와 골목길 가로등 아래에 기대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비늘을 꺼냈다. 그애가 유일하게 남기고 간 것이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도 비늘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생선을 만질 일이 없었다. 그애를 위해 눈물을 흘려줘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자 손등에 무언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가로등 불빛에 비춰 보았다.
 콘텍트렌즈가 손등에서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차하> 광주서진여자고등학교 3학년 1반 서민홍

비늘



 은빛 살점 하나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핏물이 스며든 살점은 부연 백열등 아래에서 천천히 시들어 간다. 엄마는 뭉툭한 손으로 이미 죽어버린 생선의 머리를 잘라내고 있는 중이다. 어둠보다도 더 못한 백열등 아래에서 엄마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머리를 떼어낸 다음에는 몸통에 붙어있는 비늘을 슥슥 긁어낸다. 엄마의 손이 생선의 몸통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검은 시멘트 바닥 위로 은빛 물결이 찰랑거린다.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서기가 무섭게 시장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는 엄마의 생선 가게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시장에서 제일 돈 잘 벌기로 소문난 가게가 한 순간에 애물단지가 되어 버리자, 엄마는 충격이 큰 듯, 한 동안 자리에 누워 꼼짝도 하지 못 할 만큼 오래 앓았다. 태어나서 부터, 자라 난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의 아픈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갑작스런 엄마의 자리보전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이제껏 단 한번도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간호해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하루 종일 자리에 누워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의 누렇게 부어오른 얼굴을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엄마가 끈질긴 병과의 기나 긴 사투 끝에 몸이 회복된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이 지난 3일 전이었다.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되자, 좀 더 싼 값에 명절 음식 준비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침체기에 빠져 있던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생선들을 꺼낸 엄마의 얼굴에는 아팠던 기색마저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엄마는 마치 갓난 아기를 다루 듯이 생선을 다루었다. 예전 같았으면 1분도 안 된 시간에 생선 다섯 마리쯤은 거뜬히 손질해냈을 엄마였지만, 새로 가게 문을 연 이후부터는 작은 비늘 한 점도 조심스럽게 손질하고 있었다.
 우두커니 바닥에 쭈그려 앉아 물끄러미 엄마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끈적하고 비릿한 무언가가 얼굴에 달라붙는 듯한 느낌에 다급히 손가락을 들어 얼굴을 문질러 댔다. 그러나 그 느낌은 얼굴을 몇 번이나 문질렀는 데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한 점씩 떼어져 나간 비늘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발이며, 다리이며 비늘이 묻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손바닥에도 물기를 잃은 비늘들이 마치 내게서 떨어져 나간 살점처럼 떠 다니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엄마가 아직 썩지 않은 생선의 시체를 보기 좋게 손질할 때마다 비늘은 한 여름에 쏟아지는 폭우처럼 내게로 떨어져 내렸다. 내 몸은 비늘들에게 둘러싸인 지 오래였다. 발목에까지 차 오른 비늘은 마치 죽은 생선들의 공동 묘지처럼 보였다. 푸른 바다를 헤엄쳐 나가다가 촘촘히 엮은 그물에 걸려 파닥거리다 결국 마지막 순간을 빛으로 태우다 죽어버린 생선들의 시커멓게 탈색된 눈동자가 무심하게 떠올랐다. 생선들의 마지막 생명의 빛은 비늘에서 시작되어 비늘에서 소멸 되었다. 나는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비늘 비 사이로 엄마를 훔쳐보았다. 잠시 동안의 희열이 엷게 스민 듯한 엄마의 얼굴엔 표정이 서려있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밤 중의 교통사고로 가족을 남겨두고 지상을 떠나버린 이후로 엄마는 생선을 손질하고 팔면서 삶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한 살씩 나이를 먹을때 마다 엄마의 살점은 한 겹씩 떨어져 나갔다. 어쩌면 엄마는 지금 마지막 빛을 불태우며 죽어가고 있는 중일지도 몰랐다.
 “엄마.”
 “…응?”
 “아니, 그냥.”
 엄마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생선 손질에 여념이 없다. 나는 회색빛으로 천천히 말라가는 비늘들을 들여다보았다. 물기 잃은 비늘은 만지면 금방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어느새 손톱에 엉겨붙은 비늘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금방 생선에서 떨어져 나온 것인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살점이 다시 살아 움직일 것 같이 반짝거렸다.




<차하> 경기 서해고등학교 2학년 6반 유은지

비늘



 수면 위에 먹음직스러운 빵부스러기가 떨어진다. 나는 수심 깊숙한 곳에서 수면 위를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마치 하늘처럼 보였다. 친구들이 빵부스러기를 먹기위해 위로 헤엄쳐나가는 동안 나는 아가미만 뻐끔거리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 그들은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다. 아가미가 한번 입을 열때마다 나오는 투명한 공기방울이 위로 서서히 올라간다. 수면엔 동그랗게 물결이 일었다.
 “너는 왜 안올라가지?”
 나는 멍했던 초점을 바로잡고는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 녀석은 애꾸눈이다. 오른쪽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어둡고 깊은 수심 밑으로 떨어질 것처럼 아슬하게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애꾸눈이라 불린다. 나는 이 녀석이 껄끄럽다. 애꾸눈이 이봐- 하며 날 계속 부르지만 난 얼굴을 돌려버렸다. 애꾸눈은 매우 포동포동했다. 인간들이 던져주는 빵부스러기를 가장 많이 받아먹는 녀석이었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가만히 올려다보고만 있다. 애꾸눈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어서인지 자꾸만 입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무관심한 내 행동에 기운이 빠진 듯, 돌아서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녀석들은 어리석은 거야. 인간이 던져주는 빵부스러기엔 그들의 손때가 잔뜩 묻어있어 날봐. 내 눈을. 빵부스러기는 아니었지만 난 그들이 던져주는 걸 몰래 혼자먹다 이렇게 된거야.”
 그리곤 애꾸눈은 나지막하게 멍청한 녀석들이라며 비웃음 소리를 흘리며 내 곁에서 멀어져갔다.
 호수에 있는 녀석들은 모두 비정상이었다. 완전한 모습을 한 것은 이 호수에 흘러들어온지 얼마안된 녀석들뿐이었지만 이들도 머지않아서는 다른 녀석들과 다를바없이 더럽고 추해졌다. 나는 얼마전부터 비늘이 조금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결국은 나도 이 호숫가의 일원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빵부스러기를 받아먹는 일이 두려워졌다.
 나에겐 꿈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그 곳은 호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넓고 아름답다고 한다. 인간들이 던져주는 빵부스러기 따위도 없다. 애꾸눈도 없다. 바다는 내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 없다.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친구들은 수면에서 수심으로 내려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들과 함께 헤엄쳤다. 지느러미를 살짝 움직이자 오른쪽 아가미 곁에 붙어있던 비늘이 또 하나 떨어져나갔다.
 시간은 흘렀다. 호수 수면에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는 날이 갈 수록 많아졌다. 수면 위에서 빵부스러기를 받아먹는 우리의 배는 날이 가면 갈 수록 더욱 빵빵해졌다. 그들은 몸집도 매우 커졌다. 하지만 나는 결코 올라가지 않았다. 어두운 수심에 틀혀박혀 혼자서만 유유히 물 속을 떠다녔다. 물을 잔뜩 먹은 빵부스러기가 내 쪽으로 가라앉으면 난 그것을 먹었다. 친구들처럼 덩치가 커다래질 만큼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별탈이 없다. 그리고 호수엔 인간들이 던져주는 빵부스러기가 아니어도 먹을 것은 있다. 난 결코 수면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출렁.
 앞에서 이상한 물결이 일었다. 난 그쪽으로 헤엄쳤다. 애꾸눈이 매우 거칠게 헤엄치고 있었다. 애꾸의 오른쪽은 저번에 봤을때보다 더욱 튀어나와있었다. 애꾸의 몸부림은 그가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애꾸는 돌덩이에 몸을 쳐박았다. 그리곤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갔다. 튀어나와 있던 눈은 돌에 부닥치면서 일그러져 있었다. 수면 위에서 애꾸는 배를 하늘을 향해 드러내고 가만히 누워있다.
 애꾸가 호숫가에서 사라져도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빵가루는 떨어졌고 내 비늘도 계속해서 떨어져나갔다. 나는 점점 수심에서 헤엄치는 것이 버거워 수면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아주 조금씩 수면으로 다가갈수록 난 이 곳이 바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수심에서 바라보던 것과는 달리 구름은 하얗고 선명했다. 어두워보이기만 하던 하늘도 하늘색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넓고 깨끗했다. 애꾸는 없었다. 빵부스러기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간 수면은 수심보다 더욱 깊게 느껴졌다. 나는 헤엄을 치려 지느러미를 움직여보았지만 뜻대로 되지않았다. 이때 비늘이 또 떨어져나갔다. 나는 떨어지는 비늘을 따라 가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느러미는 물살에 흔들리기만 할 뿐 내 의자와는 거리가 먼 움직임이었다. 난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이 던져주는 빵부스러기가 배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내 배는 저번의 애꾸와 같이 하늘을 바라고보 있었다. 이곳은 바다가 아니다. 비늘은 호수 깊숙한 곳으로 자꾸만 떨어졌다.




<차하> 충남 천안복자여자고등학교 1학년 5반 이화정

아버지의 비늘



 5년 전,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우리가족은 정들었던 부천을 떠나 천안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이삿짐을 꾸리며 짐을 정리하는데 케케묵은 먼지와 오랜 세월을 보낸듯한 큰 상자가 눈에 띄었다. 테이프로 꽁꽁 봉여진 상자의 입을 열고 손을 집어넣으니 무언가 묵직한 것이 손에 잡혔다. 꺼내어보니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사진첩이었다. 한번도 나에게 보여주신 적이 없기에 호기심 반 섭섭함 반으로 사진첩을 들추었다. 아버지의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사진이 영상 자서전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코흘리개 사진에 정신없이 웃고 있는데 미처 끼어지지 못한 사진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워서 들여다보니, 웬 내 팔뚝만한 크기의 물고기와 그 물고기를 손에 들고 입이 귀에까지 걸린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낚시 동호회에서 여행갔을 때 찍었던 사진 같았다. 햇빛의 일광욕에 번들거리며 오색찬란한 빛을 자랑하는 물고기의 비늘이 사진 속 아버지의 웃는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의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쳐다 본 때가 언제였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뭐하냐?”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였다. 순간, 목구멍이 콱 조여오며 저 밑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다. 마음속에서도 내 눈 속에서도……. 입을 틀어막은 두 손도 나의 새어나오는 신음소리를 막아주지는 못했다. 그 순간, 그냥 아무 이유없이 아무 생각없이 서럽고 서글펐던 것 같다. ‘아버지’라는 세 글자만으로 또 다시 목이 콱 메여오는 17살 지금의 내가 생각해보면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족은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았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았고 둘러앉아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IMF라는 경제 위기가 휘몰아쳤을 때도 우리가족은 꿋꿋이 이겨냈다. 각종 매스컴에서 들려오는 늘어나는 실업자들의 이야기는 나와는 전혀 동떨어진 삶이라고 생각했고 얼마전까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몇 달 전, 밀어낼 힘도 거부할 힘도 없었던 우리가족은 거센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갑작스런 파도에 물을 먹은 나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 탓 인것만 같았다.
 “왜, 하필, 많은 사람들중에, 기어코, 내가 이 힘든 일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느낌표 달린 해결책 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버지가 말을 걸어도 형식적인 대답으로 급히 말을 끊었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저 먼치에서 누군가가 내 곁으로 걸어오는게 보였다. 시멘트 비슷한 것이 잔뜩 묻어있는 바지에 땀에 흠뻑 젖은 윗옷, 그리고 시커먼 얼굴. 그 누군가는 다름아닌 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눈을 마주친 때가 오래되어서일까? 난, 아버지의 얼굴이 그렇게 까맣셨는지, 이마의 주름살이 그렇게 깊고 진했었는지 체격이 그렇게 외소했는지, 예전에는 삐죽삐죽 보이던 흰머리가 지금은 검은 머리보다 많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 아버지는 고목나무처럼 그렇게 말라있었다. 난 아버지를 아주 오랜만에 힘껏 안아드렸다. 그 동안 내 무뚝뚝함에도, 짜증 가득한 얼굴을 보고서도 미안하다는 말만 하셨던 아버지셨다.
 “아버지, 죄송해요.” 울음섞인 내 말에 아버지는 날 더 따뜻하게 감싸주셨다. 그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는지 아버지의 갈비뼈가 안으면 안을수록 아버지의 삶의 무게를 가늠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 날 저녁, 우리는 통닭 한 마리를 먹으며 행복한 얘기꽃을 피웠다.
 나는 가끔 내 팔뚝만한 물고기가 아버지의 가장 행복한 웃음이 담긴 사진을 꺼내어보곤 한다. 예전, 아버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던 오색찬란한 그 물고기의 비늘은, 지금은 빛도 바랬고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난 지금의 아버지 모습에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나의 오색찬란한 비늘을 아버지의 떨어져나간 비늘 자리 곳곳에 끼워 맞추고 있음에 행복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우리 아버지의 비늘을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차상> 서울 오금고등학교 3학년 11반 김한나

비늘이 없다



 “자, 다들 준비됐지? 수조 속에 2마리의 붕어가 들어있다. 이걸 해부해서 각 부분이 정확하게 보이게 해 놔라. 지난번에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시간은 20분 준다, 자 시작해.”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재빨리 수조 속에 손을 집어넣고 붕어를 낚아챈다. 미끌거리는 붕어를 손에 꽉 움켜잡고 알콜솜으로 마취시켜 핀으로 고정하면 해부 준비는 끝. 이제 아이들은 저마다 실험용 가위를 들고 붕어의 살점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반대로 자르면 살이 질겨서 안 되요.’란 선생님의 말씀을 모두 머리에 깊숙이 새긴 채로. 여기저기서 붕어살점을 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도대체 이런 실험은 왜 해야되는지- 붕어의 속을 살펴본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의문을 느끼며, 멍하니 내 앞에 놓인 붕어만 쳐다보았다. 입을 버끔거리는 모습이 왠지 숨을 못쉬어 헐떡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붕어가 불쌍해서 핀으로 고정시키지 않았다. 붕어의 비늘이 형광등 불빛에 비쳐 반짝거린다. 나는 살며시 비늘을 만져보았다. 까끌까끌하면서도 결을 따라 만지면 매끄럽다. 물고기의 비늘은 아마 물살을 가르기에 적합한 상태로 피부가 진화한 것일 거다. 선인장이 사막에서 수분의 증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시로 된 잎을 가졌듯이, 인간이 감정의 낭비를 피하기 위해 남에게 상처주는 차가운 심장을 가진 것처럼.
 얼마 전에 내 모습도 이 헐떡이는 붕어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고 3생활과 함께 시작된 숨막히는 대학입시와 수시지원, 그리고 어렵게 통과한 서류전형과 마지막 관문인 구술면접. 나는 어둑어둑한 복도에서 수험표를 잘근잘근 씹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들어간 강의실엔 두 명의 교수가 나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그들 옆으로 투명하고 작은 유리어항이 놓여져 있었던 게 아직도 기억 난다. 그 안엔 주황색 금붕어가 하늘하늘한 꼬리를 흐느적거리며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교수들은 내 수험번호를 확인한 뒤, 질문은 시작했다.
 “그린벨트 해지가 부동산 시장에 주는 영향이 무엇인가요?”
 “북핵관련하여 우리나라가 6자회담에서 취해야 될 바람직한 자세는?”
 “로또가 사회에 주는 좋은 점을 말해보게”
 수많은 시사, 정치, 사회문제가 홍수처럼 내게 쏟아졌다. 하지만 내겐 이 험한 물결을 헤엄쳐 나갈 비늘이 없었다. 그저 떨리는 고개를 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해진 답을 말할 뿐이었다. 저 두 교수가 원하는 건 ‘내가 아닌 정확한 답일 테니. 이 공간 안에 나는 없었다. 어항 속 금붕어만 자유로운 뿐이었다.
 20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옆의 아이들의 붕어는 뱃속을 다 드러내놓고 있었다. 핏빛심장과 누런 내장이 보였다. 나는 이상하게 이 붕어들이 부러워졌다. 내겐 나의 심장을 꺼내어 속까지 들여다 봐줄 사람이 없었다. 나도 내 심장을 들어내고 싶었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여기 있다고, 그린벨트 따위가 아니라 내 심장은 뛰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는 거친 물살을 헤칠 비늘도 없고 자유롭게 바다에서 헤엄쳐 본 적도 없었다. 나는 이 세상의 바다를 살며 어떤 피부를 가졌던 것일까? 손으로 팔을 만져보니 맨들맨들한 살결이 느껴졌다. 잠시 뒤 선생님이 마무리된 사람은 붕어를 가져오라 소리쳤지만 내 붕어는 건져놓은 상태 그대로다. 아무것도 제대로 된 게 없는 이 헐떡이는 붕어가 부러운 내가 어떻게 이 살점을 도려낼 수 있을까? 나는 붕어의 뛰고 있는 심장을 볼 권리가 없었다. 말없이 그저 천장만 쳐다 볼 뿐이다. 이 실험실 안엔 비늘없는 물고기가 숨을 헐떡이며 입을 버끔 거리고 있었다.




<차상> 서울 혜성여자고등학교 2학년 9반 이지윤

동생(비늘)




 난 동생의 우는 모습이 싫었다. 동생이 느끼는 슬픔의 감정이 아닌 내 눈에 보이는 동생의 눈물이 싫었다. 동생이 울때면 왼쪽 뺨에 있는 커다란 화상자국이 더 커보인다. 솜털 하나 없이, 밀랍을 칠해놓은 것처럼 반질반질한 그 상처가 쭈글쭈글 주름이 진다. 숨구멍이 모두 막혀버린, 죽은 생선의 비늘같은 그것은 동생의 눈에서 흘려보낸 슬픔을 단 한 방울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르륵 흘려보낸다. 슬픔의 짠 기운에 부어오르기라도 하면 화상자국은 언니인 나 조차도 눈물을 닦아줄수 없을 만큼 징그럽게 변해버린다. 가끔은 섬뜩 할 정도로 무섭게 보이기도 한다.
 동생의 상처는 8살 때 생겼다. 내가 선물받은 노란 병아리 인형이 부러웠던 동생은 항상 그 인형을 만져보고 싶어했다. 보송보송 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폭신한 것을 좋아하는 동생에게 그 병아리 인형은 큰 소망의 물건이었다. 계속 인형을 달라고 졸라대는 동생을 약올리는데에 신이난 나는 그것을 이리저리 던지며 장난을 쳤다. 더 약올려주고 싶은 마음에 힘껏 던져진 인형은 난로 위에 있던 주전자를 넘어뜨렸고 주전자에 담겨있었던 끓는 물은 순식간에 내 동생을 덮쳤다. 몸을 어떻게든 움츠렸어야 했는데도 바보같이 인형을 받으려는 생각에 동생은 내가 던진 인형만 보고 있었다. 동생의 비명소리에 겁을 먹고 커튼 뒤로 숨어버린 난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끝없이 소리쳤지만 놀란 어머니의 품에 안겨 병원으로 가는 동생의 손에 꼭 쥐어진 병아리 인형이 계속 내 눈에 박혔다. 병아리 인형의 큰 플라스틱 눈이 울먹거렸다.
 퇴원한 동생의 얼굴을 보자마자 난 소리를 질렀다. 부드럽고 뽀얗던 동생의 왼쪽 뺨 한가운데 쭈글쭈글 벌겋게 자리잡고 있는 덩어리가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위에 바른 연고 때문에 번질번질 해진 자리는 그 상처를 더욱 벌겋고 징그럽게만 만드는 것 같았다. 영원히 낫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땐 우습게도 미안한 감정보다는 그렇게 살아야 할 동생이 불쌍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뜨거운 주전자를 놓은 어머니도 잘못이고 바보같이 뜨거운 물을 피하지 못한 동생도 잘못이었다. 이렇게 계속된 나 자신에 대한 위로와 합리화는 동생의 상처를 봐도 징그럽다는 생각뿐 더 이상의 미안한 감정도 생기지 않도록 만들어주었다. 동생에게는 위로의 말 대신 동생의 왼편에 대한 거부감을 나도 모르게 조금씩 드러냈다.
 그 뒤로 언제부터 였을까, 동생의 자리는 항상 내 왼편 이었다. 밥을 먹을 때에 식탁에서도,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볼때에도 항상 내 왼쪽에만 앉았다. 절대 오른쪽에 앉는 일은 없었다. 나를 위한 배려였는지는 몰라도 나도 굳이 그런 동생을 내 오른편에 두고 싶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고맙기까지 했다.
 그런 동생의 배려가 통하지 않을 때가 동생이 눈물을 흘릴 때였다. 아무리 내 왼편에 앉아서 자신의 왼쪽뺨의 상처를 가린다고 해도 동생의 눈물이 오른쪽 뺨에서 번지는 것을 보면 보이지 않는 오른쪽 너머의 왼편 눈물까지도 머릿속에 보였다. 살가죽의 냄새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그 곳을 흘러가고 있을 눈물이 그대로 내 마음속에 박혀버렸다. 눈물이 가진 짜고 뜨거운 느낌까지 그대로 그럴때면 조용히 울고있는 동생에게 미칠만큼의 화가 치밀어 올라 방으로 들어가 버리라고 소리쳤다. 미안한 마음에서가 아니였다. 동생의 우는 모습을 볼때면 어김없이 스며들어와 내 기분을 망쳐놓는 그 기운이 미워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동생은 내 오른편에 앉았다. 1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무척 놀랐지만 내 왼쪽에만 앉으라고 말한적도 없었고 또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한 적도 없는 동생이였기에 우리 둘은 어색한 침묵속에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내 눈앞에는 동생 뺨에 난 커다란 화상자국이 있었다. 그것은 여전히 예쁘지 않았다. 아니, 여전히 징그러웠다. 하지만 더 이상 죽은 생선비늘같이 날 기분나쁘게 하지 않았다. 생기라는 것이 이곳 저곳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힘차게 강과 바다를 헤엄치는 연어의 은빛 몸처럼 아름다웠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인어공주의 꼬리처럼 아름다웠다. 나를 위해 항상 내 왼편에만 앉았던 동생이 이젠 진정 나를 위하여 내 오른편에 앉아준 것은 아름다움, 예쁘지 않은 아름다움, 그것이었다.
 나는 내 동생의 왼편에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 동생이 먼저 그 왼편을 나에게 내밀었다. 비록 동생이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노란 병아리 인형의 부드러운 느낌을 얼굴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한 걸음 옆으로 더 가까이 다가와준 동생은 살아 역동하는 물고기의 힘을 이미 가지게 되었다.




<입선> 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5반 김기혜

비늘




 아내는 예쁜 여자는 아니었다. 키는 컸고 비썩 말랐으며, 갸름하고 치켜올라간 눈은 매서운 인상을 주었다. 얌전한 성격이지만 화가 나면 기괴할 정도로 독기를 내뿜는 여자. 그러나 나는 이제까지 아내를 싫어하는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매력적이라는 것이 이상한 건 아니지만, 아내는 의심스러울만큼 당연하게 사랑을 받았다.
 나 역시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했다. 아내는 끝까지 혼전순결을 지켰다. 가슴을 애무하면 반응했지만 손이 허벅지 쪽으로 내려가는 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좋았다. 남자를 잡아먹게 생긴 눈을 하고서, 내가 첫 남자라는 것. 신혼여행지는 발리였지만, 아내는 발을 물에 담그는 것 이상은 하지 않았다. 물이 무서워요. 가늘게 떨리는 그 목소리까지 사랑했다, 분명히. 그러나 첫날밤 나는 알아버린 것이다. 아내의 허벅지에 돋은 비늘을. 아내의 이상한 행동들이 납득이 갔다. 아내는 어둠을 틈타 살이 튼 거라고 주장했지만, 그건 분명 비늘이었다. 뱀처럼 오글오글 돋은 살색 비늘.
 나는 야근을 하는 날이 잦아졌다. 신혼이라고 놀리던 친구들도 점점 시들해지더니, 나중에는 내게 아내가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나도 아내가 있다는 걸 잊었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면 우렁각시가 왔다간 것처럼 저녁이 차려져있었고, 침실을 열면 자고있는 아내가 보였다. 아내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있었다. 나는 아내의 곁에 누워 부드럽게 키스했다. 아내는 자고있지 않았다. 내 손은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아내의 허벅지를 더듬는 순간, 성욕은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예요. 아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파충류를 싫어할까요? 아내가 물었다. 징그러우니까. 내 대답에 아내는 웃었다. 누가 파충류가 징그럽다고 가르쳐주었나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건 말이죠. 본능이예요. 파충류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 나는 돌아누워 잠을 청했다. 잠결에 아내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던 것도 같다.
 그 후 내게는 애인이 생겼다. 같은 회사의 여직원이었다. 아내를 동정했지만 죄책감은 생기지 않았다.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해도 웃으면서 ‘그래’라고 말할 것 같았다. 아내는 유부녀였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시간조차 아내를 피해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아내는 결혼 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순결했고, 얌전했고, 내게 거짓말을 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변한 것은 나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무척이나 싫었고, 차라리 밖으로 나돌아다니길 바랐다.
 그러나 아내는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내가 언제 어느 시간에 집에 돌아가도 아내는 집에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아내를 위해 애완동물을 몇 번 사갔지만 대부분 도망쳐버렸다. 아내의 말처럼 그들도 본능적으로 아내를 피했던 것일까? 결국 나는 이구아나를 선물했다. 그때 아내는 처음으로 화를 냈다. 내가 이구아니와 대화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난 평범한 여자예요. 파충류라면 소름이 돋는다구요! 아내는 이구아나를 집어던지고 침실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지만 나는 거실 쇼파에서 잠을 잤다. 그 뒤로 나는 아내에게 아무 것도 선물하지 않았다. 여직원에게는 강아지를 한 마리 사주었는데, 강아지가 자신을 아주 잘 따른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강아지는 나를 잘 따르지 않았다. 자주 보는 사이였는데도 낯을 익히긴 커녕 짖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여직원과의 애무 중 시끄럽게 짖어대는 강아지의 목을 졸라버렸고, 여직원은 내 뺨을 때렸다. 나는 여직원의 오피스텔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을 열자 요리중인 아내가 보였다. 앞치마를 입고 나를 돌아보는 아내는 무척 사랑스러웠다. 이상적인 아내, 나는 아내를 끌어안았다. 아내는 아무런 저항 없이 내게 안겼다. 여직원의 향수냄새가 남아있었을 텐데도. 그러나 나는 아내와 잘 수 없었다. 애무를 마쳤을 때 아내는 울었다. 나는 모른척 돌아누운 채 금세 잠들었다.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눈을 떴다 욕실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안쪽에서 아내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잠겨있을 줄 알았던 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아내의 허벅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상하게 나는 걱정이나 안쓰러움 등의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놀랐을 뿐. 아내는 울고 있었다.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보지 말아요. 신음 섞인 목소리로 아내가 말했다. 비늘만 없으면, 이것만 없으면 당신은 날 사랑해 줄 거잖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않은 채 아내를 안아들었다. 욕실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아내의 허벅지에 붕대를 감아주려 했으나, 아내는 내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 붕대를 감았다. 매우 능숙해 보였다.
 다음날 나는 여직원에게 사과했고, 새 강아지도 함께 선물했다. 그러나 여직원은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고 강아지도 되돌려 보냈다. 나는 여직원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었다. 여직원을 여러번 추궁했으나 침묵으로 일관할 뿐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했다. 끝내 내가 화를 냈을 때, 여직원은 울면서 대답했다. 당신이 무서워요. 메리의 목을 조를 때 당신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지요. 그 때 당신의 눈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세요? 마치 뱀처럼 보였다구요!
 나는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갔다. 허벅지는 어떻게 됐어?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많이 나았어요. 별 게 아니라는 듯 아내는 계속 야채를 손질했다. 나는 거칠게 아내의 치마를 벗겼다. 허벅지는 매끈했다. 여전히 비늘이 돋은 채로. 당신 때문이야! 나는 소리쳤다. 아내는 놀란 표정이었다. 허벅지, 어떻게 된거야. 아내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멀쩡해요. 아무리 뜯어내도 며칠 지나면 다시 돋더라구요. 뜯겨나간 비늘만 허물처럼 바싹 말라버릴 뿐. 나는 화를 냈다. 당신 때문에 난 오늘 난생 처음 뱀같다는 소리를 들었어!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그 여자 때문이군요. 나는 씩씩거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내는 야채를 손질하던 칼을 집어들었다. 채썰어놓은 당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이 비늘이 없으면, 당신은 날 사랑해 줄건가요.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내는 허벅지에 칼을 내리꽂았다. 반쯤 잘린 다리에서 피가 솟았다. 난 파충류라면 질색이야. 나는 전화기를 들어 숫자를 눌렀다. 아내가 미친 것 같습니다. 출혈이 크니 구급차도 함께 보내주십시오. 나는 119가 아닌 112를 눌렀다. 아내의 호흡은 가빠져 있었고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 때문이 아니예요.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뱀같은 남자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구급차가 올 것이다, 경찰차와 함께. 나는 단 한순간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그게 내 잘못이겠죠. 당신을 사랑한 것. 당신은 거짓말쟁이예요. 나는 당신에게 거짓말하지 않았는데 더러운 남자. 난 비늘을 몸 바깥에 달고 태어났지만, 당신은 안에 감추고 있을 뿐이에요. 내겐 하느님이 주신 원죄 뿐이지만, 당신의 내면은 온통 비늘투성이일걸요.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에요.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요. 난……
 그녀는 혼절했다. 다행이었다. 그녀가 좀 더 지껄였다면 나는 그녀를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 곧 경찰차가 도착했다. 구급차는 혼절한 아내를 싣고 병원으로 향했고, 경찰은 내게 동행을 요구했다. 나는 모든 상황을 사실 그대로 얘기했다. 아내의 말을 제외하고 아내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제일 처음 썰다 만 당근 토막을 집어먹었다. 그리고 청소대행업체에 전화해서 집을 말끔히 치웠다. 벽지까지 새로 바르자 새 집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아내에게는 비늘이 있고, 내겐 없는 것이다.
 아내를 동정했지만 죄책감은 생기지 않았다.




<입선> 춘천유봉여자고등하교 1학년 1반 한민경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함




 보았다. 나는 보았다. 그들의 눈물과 슬픔과 회한을 나는 보았다. 고향 잃은 실향민들의 말 없는 오열과 이분법적인 제도권 세력아래 희생된 비전향 장기수들의 멍한 그리움, 그 모두를 나는 임진강 물결 밑에서 볼 수 있었다.
 고즈넉하게 흘러가는 슬픈 임진강 물을 바라보며 나는 상념에 잠겨야만 했다. 어째서 이들은 이곳에서 아픈 눈물을 흩뿌려야만 하는지,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마음 저려 하는지를…….
 나는 그냥 아플 뿐이었다. 제도권의 부조리한 모순도, 그 어떠한 것들도 생각지 않고 나는 단순히 그들의 슬픔을 보며 저릿하는 가슴을 느낄 뿐이었다.
 그 감정에서 벗어나고, 그리고 또 조금은 철도 들었을 어느 날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감정에서 벗어나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계기가 생겼다. 그 계기는 바로 얼마 전 한국전쟁은 북한의 통일전쟁이다 라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지금은 국가보안법 위법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한 교수로 인해 비롯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뉴스에서 접하고 나서 바로 아빠와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지금껏 스스로를 개방적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이 뉴스를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우습게도 뭐야, 저 할아버지 혹시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아니야?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스스로도 상당히 의아하게 느껴지는 생각이다.
 어쨌든 내가 그 생각을 아빠에게 말하니 아빠가 아주 진지한 모습으로 내게 그 이유를 물어오셨다. 나는 그저 즉흥적으로 생각한 것을 말했을 뿐인데 아빠가 너무 진지하게 나오셔서 조금 놀랐지만 나도 곧 이유를 말씀드릴 수 있었다. 나는 정상적이라면 한국전쟁이 악의 축인 사회주의 정권으로 통일국가를 이루려는 전쟁이었다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액면 그대로를 바라보면 그 교수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결코 그 의도를 화합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의도는 통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불신과 분쟁을 낳았으니까. 내가 이 말을 하자 아빠는 내게 너도 틀에 박힌 학교교육과 제도권에 꽉 막혀있구나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당황했고 조금은 화도 났다. 나는 아빠에게 어째서 그렇게 말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한번 잘 생각해 봐 하시고는 자리를 떠나셨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는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남한의 이념으로 사상을 전향하지 않는다고 무자비하게 가두어 버린 그들을……. 그 순간 나는 이거다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아빠의 말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무조건적이고 이분법적으로 이거 아니면 저거다 라고 생각과 사상을 나누어 버리는 정권 아래 개방적이라 생각한 내 머리도 고루한 구식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라는 이름 하에 존립하는 이 나라는 사실은 편협된 사고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과 사상을 단순히 민주주의, 공산주의로 나누는 모습은 신억압이 아닐까.
 서로의 자율성을 존중하자 사상이야 어떻든, 그 사상으로 인해 결과가 어찌됐든 처음의 의도는 평화가 아니냐.
 평화와 통일이라는 주제로 나아가다보면 사상이란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주의란 상당히 비합리적인 사상임이 분명하지만 결코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장점을 잘 찾아내어 그 합의점과 중간점에 도달하여 평화를 이룩하는게 최선의 방법이며 결단코 비전향 장기수 같은 것들은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마치 성경에서 장님된 이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것처럼 내 몸을 마치 갑옷처럼 감싸고 있던 비늘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곤충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나를 감쌌던 모순과 고루함과 정형화 된 사고라는 비늘이 떨어진다. 새 시대에 맞는 새 사고로 나는 새로 태어나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생각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입선> 경기 백신고등학교 3학년 4반 이분홍

갈치와 오빠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쏘다녀.”
 생선 주위를 날아다니는 파리를 쫓으며 엄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파리를 노려보는 엄마의 눈이 붉다. 카랑카랑하면서도 푹 잠긴 목소리로 보아, 엄마는 내가 바다로 간 뒤부터 두 눈이 쓰라릴 때까지 펑펑 운 것이 틀림없다.
 “울었어?”
 내 말에 엄마는 더욱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놈이 뭐가 불쌍하다고 울어? 뼈빠지게 학비 대줬더니 지 멋대로 학교때려치고 가수 한다고 집나간 그 놈이 뭐가 불쌍해서?”
 난 엄마를 지나쳐 탁자 위에 있는 열쇠를 집어들었다. 열쇠에서는 생선비린내와 쇠냄새가 풍겼다.
 “집에 들어가서 쓸데없이 청승떨지 말고 공부해. 그 놈은 왜 니 시험날 뒤져서 끝까지 내 속을 썩인다냐.”
 계속해서 넋두리를 늘어놓는 엄마를 뒤로하고 난 시장을 빠져나갔다.
 오빠가 죽은지 일년전. 그 날은 내 수능날이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오빠가 늦은밤 술에 취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고. 오디션에 붙었다는 전화를 듣고 기분좋게 술을 마신 탓이었다.
 반짝이는 무대의상을 입고 도로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잔뜩 눈물이 고인 눈으로 날 쏘아보며 시험장으로 날 떠밀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난 지문 한 줄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오빠가 치였다는 집앞 도로에 섰다. 따가운 햇살에 비친 도로는 핏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도로에는 사람이 죽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깨끗한 죽음이었다.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바다를 떠도는 것처럼 오빠는 죽음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바다에 뿌려졌다.
 “아아 오빠는 이 도로를 건너 집으로 가서 오디션 합격소식을 전하려고 했겠지.”
 난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며 집으로 걸어갔다. 집앞에는 스산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흔들거리는 꽃이 보였다. 바닥에 쭈그려 꽃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나는 충동적으로 꽃대를 꺾었다. 꽃이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꽃이 고개를 숙여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같았다. 난 고개를 숙이는 꽃을 집어던지고는 벌떡 일어섰다. 신경질적으로 열쇠를 꽂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따가운 햇살이 비치는 마루에 벌러덩 누웠다.
 오빠는 화려한 나이트 조명아래 반짝이는 은빛 옷을 입고 트로트를 부르고 있었다. 반짝이옷을 가게에 막 들어온 반짝이는 은색의 갈치비늘과 닮아 있었다. 노래를 부르던 오빠는 갑자기 쓰러졌다. 사람들이 오빠 주위로 몰려왔다. 사람들은 쓰러진 오빠에게서 반짝이옷을 벗겼다. 생계를 위해 입을 수밖에 없던 옷이었다. 쓰러진 오빠를 보며 울던 엄마는 반짝이옷을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반짝이옷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일어나.”
 귓가에 엄마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어둑어둑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점심도 안 챙겨먹었지?”
 엄마가 내 앞으로 밥상을 밀었다. 밥상 한 가운데에는 비늘을 벗기고 양념이 발라진 갈치조림이 놓여있었다.
 ‘넌 이제 자유다. 거친 물살도 상어도 사람들의 그물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숨이 끊어지고 비늘이 벗겨지는 순간부터 넌 자유야.’
 물끄러미 갈치조림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옆에 있던 엄마가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다.




<입선> 인천 신송고등학교 1학년 12반 류수정

은빛 비늘에 담긴 진리




 “저 누나 눈이 볼록 튀어나왔어.”
 한 꼬마의 우렁찬 외침에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기분 좋게 나선 외출이었건만 마음을 무겁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애써 밝은 척 살며시 웃어보이고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꼬마에게 지는 건 싫으니까…….
 하지만 정말 이상하다.
 늘상 반복되는 이 상황이 익숙한데, 이젠 덤덤하게 받아들일만큼 조금식 성숙해지고 있다고 느꼈는데 매일 조금씩 소심해지고 있는지 좀체 어른인 척을 할 수가 없다.
 나의 겉모습은 누구의 눈을 통하든 ‘정상과 좀 다르다.’ 라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 얼굴 기형으로 불리는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얼굴 윗부분의 뼈가 잘 자라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눈이 튀어나와 보이는 병이다.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각양각색이듯 나도 ‘눈이 큰 사람’이라는 특이한 외모의 소유자로 보아 준다면 좋으련만 난 늘 주목의 대상이 되어 버리곤 한다.
 심지어 지하철 안에서 한 정신지체장애자에게 놀림을 받거나,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같이 다니기 창피하다는 이유로 싸운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맙지 못한 시선과 관심으로 위장된 동정심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닫힌 사람으로, 작은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작은 일에도 ‘나는 빠질께.’ ‘난 이런 건 원래 잘 못해.’라는 변명을 앞세워 나를 감추려고 하고 남 앞에 서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남들과 겉모습이 다르다는 사실보다는 내가 어른이 되어 학창시절을 되돌아 볼 때 나의 과거가 빈 공백으로 자리잡을 것만 같아서 더욱 속상했다. 추억을 회상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고교시절을 떠올리는데 내 기억속엔 가슴아픈 기억만 남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고, 너무 속상해서 때로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내게 무한한 도전 의지와 참된 인생을 알게 해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은빛 연어의 비늘이다. 내가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께서 안도현님의 ‘연어’라는 책을 읽는 것을 숙제로 내 주셨는데, 그 책에는 비늘의 색이 눈에 잘 띄어 적들에게 잡아 먹히기 쉽다는 이유로 외톨이가 되는 은빛연어가 등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은빛연어와 내가 닮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이 은빛연어를 보고 가장 절실히 느낀 것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은빛연어는 비록 외톨이가 되었지만 수많은 연어들을 이끌고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데 성공한다.
 순간, 나는 꿈이 생겼다.
 나도 은빛연어가 되어야겠다는 꿈.
 지금 내 몸엔 은빛 비늘이 있다.
 이 비늘이 어떤 고통을 가져다 줄지는 모르겠다.
 지금처럼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주목할 수도 있고, 수많은 놀림이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포부, 꿈, 희망, 열의를 모두 가슴에 안고 포기하지 않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도전한다면 곧 폭포를 넘어 무한한 세계에 도달한 은빛연어처럼 내 꿈도 역시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간절히 믿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 삶을 돌아보면 불행하다고 말할 수 없다.
 특이한 비늘을 가졌으니, 나쁜 짓을 해도 좋은 일을 해도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으니 좋은 일만 하게 되고 비늘에 감추어진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태풍이 불어도 햇빛을 소망하는 새가 있듯이 완전한 끝일 것 같은 그 속에서도 내일을 창조해 나가는 내가 되고 싶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하늘이 고통을 주는 것은 슬퍼하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라고 주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은빛연어를 본받아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는, 그리고 꼭 노력하여 성공하는 모습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다.
 또한 내 몸이 비록 은빛 비늘로 둘러싸여 외톨이가 되고 사람들에게 소외당한다 할지라도 기죽지 않고 맞서 싸울 용기와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아스팔트 사이에서도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의 불굴의 의지로 인내하고 노력하여 아름다운 꽃이 되고 싶다.
 꽃은 비록 새싹으로 나와 열매를 맺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결국 아름다운 꽃이 되고 튼실한 열매가 된다.
 은빛 비늘을 가진 나로써 은빛연어처럼 고난과 고통이 있겠지만 폭포를 넘어서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한 은빛연어처럼 나 역시 꽃이 되어 결심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질 것을 믿는다.
 은빛 비늘로 몸을 감싸고 폭포를 향해 헤엄치는 나는 은빛연어이다.




<입선> 경기 인창고등학교 2학년 6반 임은정

바다의 꿈



어린 시절의 꿈은 인어공주였다. 꼭 어릴적 접했던 동화책의 영향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그마한 고사리 손으로 인어공주 동화책을 꼭 끌어안고 앞마당으로 나가면, 눈앞에 펼쳐진 짙은 하늘빛의 바다가 내 꿈을 더욱 부추겼다. 아버지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노련한 어부셨다. 배를 타고 다니시느라 한 달에 두어번 얼굴을 보는 것이 다였지만, 바닷바람에 거칠어진 얼굴에서 묻어나는 투박함과는 달리 꽤나 자상하고 섬세하신 분이었다. 뱃일이 끝나고 돌아오시면 당신이 어릴적에 꼭 한번 본 인어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는데, 그 말이 그저 어렸던 나의 심심함을 달래주기 위해 지어낸 허구였을지라도, 날 그 이야기 안에 푹 빠지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면서 그 날 즈음 돌아온다던 아버지를 기다리던 날, 집 앞에 놓여있던 건 새하얀 천으로 덮여있는 관 하나였다. 언젠간 자신이 보았던 인어를, 그 태양빛을 받아 오색으로 반짝이는 비늘을 나에게도 보여주리라 약속했던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있지 않았다. 뱃일을 나가는 어부들을 수호해 준다던 인어의 이야기와 그네들의 아름다운 비늘이 파도 소리를 내며 헤엄쳐가던 나의 꿈은 아버지의 부고와 함께 산산조각났다.
 시간이 흘러 나는 점점 자라갔다. 죽은 아버지의 시간이 멈추고, 언젠가 인어를 꼭 보여주겠다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뇌리에서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인어가 될 수 없다면 그 아름답다던 비늘이라도 한 번 만져보겠다던 어린 소망이 기억의 무덤에 묻혀버릴 때 즈음, 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자랄수록 그저 아이였을 적의 허무맹랑한 소원으로 취급될 뿐이었던 인어의 이야기는 그렇게 다시 살아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같은 존재로 인식되었다.
 어른이 되어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 주던 나의 고향, 작은 어촌을 떠나 서울로 와서 자리를 잡고 새로운 인연을 맺자, 어릴적 꿈을 다시 떠올릴 만큼의 여유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바쁜 사람들 틈 속에 허우적거리는 나를 느끼며 고작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몸에서 떨어져나와,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표류하는 인어 비늘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 또한 스스로의 나약함을 나타낼 뿐이라며 스스로를 비웃어 버리고는 곧 발놀림을 더욱 빨리 하는 것에 주력했다.
 죽은 아버지의 멈춰진 시간이 호수 였다면, 살아있는 나의 시간은 급류를 타고 빠르게 소용돌이치다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폭포수였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일에 매달리며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내 나이는 어느새 모두가 중년이라 부르는 때에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여유가 생기려나 하고 생각할 때 즈음,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아버지의 목소리.
 ‘인어는 말이다. 그 오색찬란한 비늘에서부터 나오는 신기한 능력으로 뱃길을 떠난 사람들을 보호해주지. 이 아빠는 어릴적에 꼭 한 번 인어를 본 일이 있어. 하늘하고 바다가 닿아있는 저 곳 보이니? 저기서 분명 태양빛을 받아서 눈이 멀 정도로 밝게 반짝이는 인어의 비늘이 감싸고 있는 인어 꼬리가 하얗게 잔물결을 남기고 사라지는 걸 보았단다. 절대 잊지 못할거야. 언젠가는 꼭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구나.’
 어느정도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홀린 듯 주섬주섬 짐을 쌓기 시작했다. 굳게 잠긴 줄로만 알았던 기억의 상자가 낡은 소음을 내며 열렸고, 그와 함께 빛바랜 옛 기억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하나 둘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내에겐 며칠간 고향에 다녀오겠다는 짧은 기별을 한 후 나는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열려진 차창 밖에서 낯익은 짠 내음이 스며들어 왔다. 한창 햇볕에 생선을 말리는 듯한 비릿함과 바다 특유의 짠 냄새가 섞여 아릿하게 코를 자극시켰다. 그것은 고향의 냄새, 인어의 냄새, 인어비늘의 냄새, 아버지의 냄새였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그대로 날아가기라고 할 듯 몸이 가벼웠다. 지금이라도 당장 잊혀진 기억들을 헤집고 다시 인어의 꿈을 깨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쯤 달리자 바다의 모습이 눈동자 가득 메우고도 넘쳐 흐를 정도로 펼쳐졌다. 푸른 사파이어와도 같은, 아니 그것보다 더 짙은 푸른빛이 깊게 깔려있었다. 차에서 내려 아직 채 일을 마치지 못한 한 어부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아빠!”
 멀리서 그의 딸아이처럼 보이는 어린아이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띠며 뛰어왔다.
 “인어 얘기 해 줘요.!”
 아이의 말에 아버지인 듯한 어부 역시 미소를 띠며 그러마하고 대답했다. 아이를 무등 태운 채 어부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아버지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같았다. 어부를 지켜주는 인어와 그들의 비늘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능력들. 즐거운 듯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부녀를 보던 나는 조용히 작은 선착장으로 몸을 들려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느새 도착한 그 곳. 바다와, 아버지와, 인어가 있는 곳.
 그 바다를 한참이나 멍하게 쳐다보던 나는 천천히, 마치 밀물과도 같이 밀려드는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 나갔다. 아버지의 인어 또한 아버지의 마음 속에 존재 했었음을, 인어의 비늘에서 나온다는 신비한 힘, 날 지키는 힘은 당신에게서 나오고 있었음을 추측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어와 그 아름다운 보석과도 같이 빛나는 비늘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말이, 나의 어린 시절의 꿈을 지켜주고 싶다는 말과도 같았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편안한 느낌이었다. 무언가 꽉 막혀있던 것이 시원스레 뚫린 느낌이랄까. 바다가 반짝이는 이유가, 꼭 인어가 실수로 떨어뜨린 비늘들이 파도와 바람에 부서져 모래처럼 바다 위에 흩뿌려졌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나를 깨워준 아버지에게 감사했다. 차를 몰고 돌아오면서 나는 내 아이에게, 지난 날의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 내 꿈을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게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입선> 경기 안양예술고등학교 1학년 5반 강미소

할머니의 팔



 드디어 할머니께서 퇴원하셨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이른 퇴원이었다.
 무릎수술은 수술 후에 무릎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무릎을 완전히 굽혔다 폈다 할 정도가 되면 퇴원을 하는데 수술 후에는 무릎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엄청나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매일 쉬지 않고 무릎을 움직이셨다.. 물론 우리가 올 즈음에는 조금 쉬셨었다. 어찌나 열심히 운동하셨었는지 할머니의 별명은 ‘마늘 할머니’에서 ‘의지 좋은 마늘 할머니’로 바뀌었다.
 무릎수술 후 할머니가 조금 달라보였다. 걸으시는 모습은 예전보다 편안해 보였지만 왜소한 느낌을 주었다. 웃으실 때 보니 얼굴에 주름도 많이 느신 것 같았다. 안마를 할 때 만져지는 피부는 참 거칠었다. 손으로 쓸어보니, 부황을 오래 뜨고 난 피부 같았다. 빛이 닿은 팔은 꼭 물고기 비늘처럼 번들거렸다.
 처음에는 할머니께서 병원에 계실 때 많이 힘드셔서 피부가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두달이 지나도 할머니의 피부는 물고기 같았다. 온 몸에 부황을 오래 뜬 것도 아닐텐데 할머니의 피부는 늘 거끌거끌 했다. 예전에도 거끌거렸었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는 비늘같은 느낌이 적었었다.
 한참동안 할머니의 팔을 만지작거리자 할머니께서 뭐 하고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할머니 팔, 때 안 밀어서 거끌거리는 거에요?”
 할머니께서 웃으시며 말하셨다.
 “쭈그렁탱이가 돼서 거끌거리는 거야.”
라고.
 얼마 후 할머니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데 할머니의 친구분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인사를 했고, 할머니와 할머니의 친구분은 대화를 하셨다.
 할머니의 친구분은 할머니와는 달리 피부가 하얬다. 옷차림도, 몸빼바지와 헐렁한 셔츠 하나만 걸친, 할머니아 천지차이였다. 그냥 척 보기에도 ‘부잣집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께서 친구분과 이야기를 끝내셨다. 인사를 하고, 걸어가시는 ‘부잣집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부잣집 할머니’의 팔은 할머니보다 매끄러워 보였다. 우리 할머니만 늙은 할머니만 늙은 할머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없이 삼형제 키우면서, 농사에, 마늘장사에, 황소처럼 일만 해온 우리 엄마.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빠가 흐느끼며 하는 말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할머니의 피부가 왜 그렇게 거끌거리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도 ‘부잣집 할머니’처럼 편하게 사셨더라면 팔이 매끄러웠을까.
 나는 까무잡잡하고 점도 많은, ‘의지 좋은 마늘 할머니’의 비늘 같은 팔에 말없이 볼을
부볐다.




<입선> 서울 신목고등학교 2학년 5반 박소영

진정한 아름다움의 날



 제가 태어난 곳은 제주도입니다.
 3살 때 진해로 이사를 갔고 7살 때부터 유년 시절을 포항에서 보냈습니다. 그야말로 바다 소녀였던 셈이죠. 고 2가 된 지금, 서울 친구들이 무슨 맛으로 먹냐는 생선회를 제일 좋아하는 저를 보더라도 바다는 저의 죽마고우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거 같습니다. 유달리 동갑내기 아이들보다 말과 글을 늦게 깨우친 저를 부모님을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제가 학급 반장이 되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 때 처음 저희 가족은 가장 맛있고 비싸기로 소문난 ‘구룡포 횟집’에서 외식이란 걸 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오독오독 씹히는 소라와 전복, 미끈거리면서 젓가락 사이를 금새 빠져 나오는 오징어회, 초장에 들뿍 담가 한 입 가득 넣으면 사르르 녹는 생선회들은 그야말로 알싸한 맛이 제격입니다. 그 날의 맛을 잊지 못해, 이후로 저희 가족행사는 횟집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횟집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아무리 자그마한 동네 횟집이라도 물고기들의 숙소, 어항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 며칠 전 학교를 가는 길에 제 인생 최대의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새가 방앗간 옆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말이 딱 맞을 것입니다.
 ‘회 뷔페’란 간판에 지하주차장까지 겸비한 4층짜리 대형 회 전문점을 제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죠. 제 눈은 금새 광학 현미경이 되어 횟집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투명 유리로 된 가게 1층은 가히 수족관을 방불케 했습니다. 바다 소녀가 본 어항 속 물고기는 색색깔의 화려한 비늘을 갖고 우아하게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햇살에 비쳐 무지개빛을 띠는 비늘을 가진 물고기도 있고 게 중에는 은은한 은결 비닐을 가진 것도 있었습니다.
 ‘심장이 마구 뛰고 설레임이 북받쳐 오른 이 기분은 뭐지......?’
 간신히 마음을 추슬러 집으로 가면서도 제 머리 속은 각양각색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먹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을 텐데, 이제 철이 들었는지 사람과 결부시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과 어항 속의 물고기는 많이 닮았습니다. 요즘 시대에 개성은 나와 담을 구별짓는 것 이상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물고기가 다 저마다의 비늘을 가지듯이 사람도 자신만의 비늘을 몸에 지니고 살아갑니다.
 어제 뉴스에 세계 미스 유니버스티 대회가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계 미인들을 보니 같은 여성으로써 제가 왜 이렇게 못생겨보이던지 모릅니다. ‘대학만 가봐라. 나도 아침엔 요가, 점심엔 경락마사지, 저녁엔 녹차 다이어트로 진정한 美가 뭔지 보여주고 말거야’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전 외모에 콤플렉스가 많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세상사람들이 미워집니다. 외적 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무시하는 그들의 눈이 밉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저는 서울로 전학을 왔습니다. 14살에 처음 와 본 서울은 듣던대로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찬 선물상자였습니다. 배우고 싶은 날이 가장 기다려졌습니다. 하지만 전 서울로 전학온 후 몇 개월동안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도시락도 혼자 먹고 하교도 혼자 했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서울 처음 와봤다는 말에 ‘촌뜨기’로 낙인시켜버렸습니다. 제가 빨간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감고 분홍색 체육복을 입자, 얼굴도 시커만 게 촌뜨기 티 다 낸다고 비웃었습니다. 사투리 해보라며 남자 아이들은 짓궂은 장난까지 쳤습니다. 제가 비록 시골아이처럼 생겼다고 해도 그 때 받았던 설움은 외모콤플렉스로 이어져 왔습니다. 특히 세상사람들은 여자는 외모다는 식으로 외모지상주의를 당연시합니다.
 하지만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물고기의 비늘은 화려한 무지갯빛부터 제 몸까지 훤히 비치는 투명한 빛까지 다양합니다. 그러나 매혹적인 색감 이면에 생명을 위협하는 독을 가진 물고기도 있고 반대로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은빛에도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어 주는 물고기도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의 비늘은 모든 이들이 부러워할만큼 예쁠수도 있고 쳐다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늘은 한 꺼풀에 불과합니다. 비늘의 색감적 특성이 결코 그 한 사람을 대변해 주진 않습니다. 요즈음과 같이 실속보다 외면을 먼저 보고 중시하는 시대는 썩은 음식을 예쁘게 포장한 것이 마음에 든다며 너도나도 사가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비늘은 비늘일 뿐이고 사람은 그 사람의 내면적 아름다움이 결정합니다. 따라서 그 자체로써 세상은 평가해야합니다.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을 말입니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더 이상 사람들은 겉만 치장하지 않고 마음부터 실속있게 채워나갈 것입니다. 세상의 시각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당당한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운 가치를 볼 수있다는 세상이 얼른 제 상처도 말끔히 닦아 주길 바랍니다.




<입선> 경남 간디고등학교 2학년 2반 정예은

그 심벌즈 주자의 비늘




 그는 손에 땀이 쥐이는 것을 느꼈다. 이미 수년이 지났음에도 충분히 담금질되지 못한 심장의 고동이다.
 새끼발가락 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나선형 계단을 타고 쿵쿵쿵쿵, 종종걸음을 한 전율이 또아리를 틀며 올라온다. 그것이 목줄기에까지 다다를 때면 그는 으레 숨을 삼키곤 했다. 오선 위에 놓인 수많은 온쉼표들을 견뎌 내고 까마득히 잠겨 있던 그의 악보가 수면 위로 묵묵히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그는 육중한 쇳조각 두 개를 세 번 연이어 맞부딪혔다. 금속 짓이기는 소리가 박수 소리와 함께 몸을 섞는다.
 긴 침묵 동안 돋아난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웃자라 뒤엉켰다.
 그는 별안간 현기증을 느꼈다.
 그는 선인장 애호가였다.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사 모은 선인장들이었다. 가시는 그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파리의 촉수, 혹은 연인의 머리카락과 다를 것이 없었다. 어린왕자의 장미꽃 대목을 읽고 그는 선인장은 장미꽃보다 조금 더 변덕스러운 생물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단순히 그것뿐이었다. 혼자 사는 그의 집을 가끔씩 방문하는 누이에게 그는 이따금씩 중얼거리는 것이다. 너무 일러도 너무 늦어도 똑같이 용서받지 못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런 거야. 선인장 죽은 걸 본 적있니? 그 아담하던 몸이 안에서부터 헐어서 손가락으로 꺾어도 배추 밑동 도려지듯 꺾여져 가시엔 힘이 하나도 없다. 가만히 그 자리를 쓸어 보면 갈대 흔들리는 것처럼 우수수 쓸리는 거야. 선인장은 알지. 자기가 속에서 곪아 간다는 걸 아는 거야. 그래서 그렇게 빳빳이 힘을 주던 가시를 제 혼자서 숙이는 거야. 목을 매는 인간이 밧줄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 같이 말이야.
 그럼 누이는 아무 말 없이 무언가에 잠긴 눈으로 더없이 당당한 가시가 박힌 그의 선인장들을 하나하나 훑어내는 것이다. 물뿌리개를 들었다 말고. 저녁 지을 쌀을 안치다 말고. 뿌리가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화분들 안에 담긴 그 동그란 몸통들을.
 그날은 단장으로부터 그가 이번 공연에서 제외되었다는 말을 또 들은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최대한 가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담담함들을, 혹은 담담함처럼 보일 수 있을 것들을 끌어모은 목소리가 되려 노력하며 그는 전화를 끊었다. 악단에서의 심벌즈 주자란 간이 칸막이 화장실 같은 거야. 그가 잔뜩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식탁 위 냄비받침에 대구탕 끓인 냄비를 올려놓던 그의 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말을 이었다. 샵도 플랫도 심지어는 제자리표 하나 없는 악보를 상상해봐. 출아법이라도 하는지 온쉼표들이 그득한 그런 악보. 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그의 누이는 말없이 김이 서려 오르는 밥솥에서 밥을 꾹꾹 눌러 담았다.
 대학 시절에, 음악사 공부할 때 담당교수가 만약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악보가 불태워져도 바흐의 악보 하나만 있으면 음악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 숟가락으로 대구탕 국물을 뜨는 그의 눈은 별안간 피곤해 보였다. 있지, 제일 처음 산 선인장에서 꽃이 피던 때였어. 그 소릴 들으니까 내 선인장녀석 허리께에 돋은 그 앙증맞은 꽃이 순간 바흐의 음표로 보이는 거야.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가 별안간 말을 멈췄다. 우울의 비늘로 덮인 겉옷이 그의 살갗 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올라앉았다. 누이는 자꾸만 발갛게 물이 들려 하는 눈시울을 흔들었다. 밥 한 술을 온쉼표 일곱 개와 함께 넘기고 나서, 그가 말했다.
 만약 내가 바흐라면 말야.
 안개주의보라도 내린 듯한 텁텁한 울림에 누이는 숨을 죽였다. 그가 하염없이 응시하던 온쉼표의 행렬이 탁 가두어진 그녀의 숨 안에서 맴을 돌았다. 누이는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샵도 있고, 플랫도 있고, 제자리표도 있는 심벌즈 악보를 만들고 싶어.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마악 파업선언을 끝낸 숨소리들이 사분음표 팔분음표 십육분음표로 절단되어서 와락 그의 가슴에 안겼다. 재쟁, 숟가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번이라도 눈을 깜박이게 된다면 금방이라도 낯선 물기가 배어나올 것 같은 그 느낌에 그는 맹렬한 두려움의 둥우리 속으로 잠겨갔다. 아직 채 식지 않은 대구탕의 내음이 풍겨왔다. 바다를 삶아낸 것들에게선 바다 냄새가 나지, 그래. 그는 문득 수중생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피아노를 배우던 어린 날에는 도에서 도까지 닿기도 힘들었던 그의 손가락 마디 사이 슬며시 물갈퀴들이 도드라졌다. 거추장스러운 귓바퀴 대신 아가미가 여물고, 우산살같은 뼈대들이 참빗처럼 촘촘히 엮여진 채로, 수면 아래에서도 꾸준하고 성실한 고동이 일었으면 좋겠다고.
 누이의 흐느낌은 좀처럼 멈출 것 같지가 않다. 그는 문득 봉숭아물을 들인 누이의 손톱이 선인장 꽃처럼 보이었다. 그는 누이를 힘을 주어 껴안았다. 고동치는 물살 아래 은빛으로 반짝이는, 매끈한 비늘이 누이를 껴안고 후두둑 후두둑 그렇게 떨어져내렸다.




<입선> 서울 청담고등학교 2학년 8반 홍미숙

임진각



 광복 60년이 지난 오늘날, 그 날의 이야기를 조금씩 말하려 한다.
 우리는 1945년이라는 해를 잊을 수 없다. 바로 간절히 원하던 광복이 잇는 역사적인 年이기 때문이다.
 광복이라는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우리는 또다시 서로에게 등을 돌려야만 했다.
 이 작은 반도에서 한민족의 싸움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고, 점점 더 커져서 강대국들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그 싸움은 우리에게 앞으로의 불행을 말해주었다. 산에는 경계선을 가리키는 철조망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때까지 알지 못하였다.
 서로가 몰래 넘어다니며, 천진난만하게 놀던 아들, 가족의 안부를 묻던 아이들 그것이 아이들의 마지막 뒷모습 이였다.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어머니는 애가 탄다. 이것이 바로 재앙의 시작이다.
 북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
 그들이 알았을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아이들이 내려올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예전의 그 집을 그대로 지키시는 어머니. 행여나 오지 않을까, 구석구석 청소를 하신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남한은 민주주의라는 정권이 수립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남과 북의 분단 현실을 깨우치기 시작하였다.
 정부 수립과 동시에 북에서 전기를 끊어버린다. 남한은 순간 암흑의 어둠으로 휩싸이게 되었다.
 우리를 어둠속으로 몰아넣은 북한의 침략은 계속된다.
 휴전선 주위의 사람들을 이동시키고, 남한의 군대가 주둔하면서 북한도 주둔한다. 한민족의 사랑이 아닌, 총과 칼로 무장된 그들을 보면서 우린 서로의 사랑을 잊기 시작한다.
 한민족의 피가 끓던 우리나라 한반도 안에서 남과 북의 대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철조망 하나로 냉전체제를 지켜야 하는 우리는 언제 넘어올지 모르는 적이 되었고, 서로를 비난과 모함으로 미워하기 시작한다.
 남한에서는 이승복 어린이의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떠들면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무서운 정부의 주입 이후, 큰 사건이 벌어진다. 박대통령 정권 때, 북한에서 남한으로 시내까지 들어와 총격전을 벌인다. 이것이 이승복 사건 이후에 남한의 반감이 고조되는 시기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후,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의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그때의 심정을 하나씩 터놓았다. 반감이 아닌 동무로써 그들을 찾기 시작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서 남과 북의 공동선언등 우리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온 것이다.
 남북의 첫상봉은 우리의 장벽을 무너뜨린 계기이다. 50年 전에 헤어진 그들을 보면서 내 가족을 얼싸안는다. 갑작스러운 전쟁에 마지막 말한마디조차 제대로 나눌 수 없었고,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그때의 한스러운 세월을 눈물로 표현한다. 최근 금강산 여행을 통하여 우리는 북한의 땅을 밟아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50年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한번도 북한을 갈수가 없었다. 임진강 중턱도 안 보이는 그 끝에 우리의 휴전선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각 두나라의 외교와 금강산 여행은 기적이다.
 많이 변한 남한 위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북한을 바라보며 옛날의 좋은 추억과 아픈 과거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앙을 남기 인간의 역사.
 그 재앙은 우리에게 남과 북이라는 단어를 알게 해주고, 분단이라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공산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주었다. 공산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소중하다는 단어를 바로 보여주었다.
 임진강을 우리는 어렸을 때 보았는가! 끝까지 안 보이는 강을 보며 어린시절 나는 임진강의 끝을 그려보기로 하였다.
 상상의 강이라고 불릴만한 강, 임진강은 더 이상 우리에겐 추억 속의 강이 아니다. 임진강 중턱에 위치한 임진각. 임진각은 우리의 분단을 나타내는 아픈 과거 속의 매개체이다.
 통일이란 바램을 심어준 임진각을 분단 이후 실향민들은 고향의 향수를 달래는 소중한 장소이다. 북한을 향한 제사를 지내는 임진각. 우리의 바램을 모아두는 곳. 이곳에서도 조차 임진강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임진각에서 한발자국도 더 못가는 현실이 임진각에 모든 것을 걸게 한다. 임진강이 상상속의 강이라면 임진각은 상상속의 나라를 보여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내려다 본 북한은 남한과는 거리가 멀다. 빨간 산과, 조그마한 작은 집들이 몇 채 있는 곳 우리가 TV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간이다.
 그런 곳들을 보고 우리는 더 이상의 분단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통곡을 하며 돌아오는 그들 앞에 휴전선이라는 것은 참으로 냉혹하다.
서로를 잊지 못한지 어느덧 60年이라는 세월에 아직도 우리는 그곳에서 통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 가족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이 순간에 가족들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 단 한번도 등을 붙여본 적이 없는 어머니.
 신의 장난일까? 누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우리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광복 이후 하나가 된 그날을...또한 잊지 못한다. 우리를 갈라놓은 매정한 전쟁들을...
 통일의 염원을 담은 그곳에서 오늘도 우리는 바란다. 통일의 바램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기를...




<입선> 대구 달성고등학교 2학년 6반 김재현

비늘



 화살을 깎던 할아버지의 손을 투박했다. 낫 하나를 들고 나무의 뭉툭하고 굵은 몸뚱이를 벼릴 때, 할아버지의 손은 나무와 그대로 합쳐진 듯 싶었다. 그러나 나무의 결을 밀어내고 낫의 날을 다시 당겨오는 일이란 결코 방심할 수없는 일이어서, 할아버지의 손속만큼은 가차없고 단호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곁에 앉아 화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곤 했다. 그러다가 화살이 완성되면, 장난감 활에 그 화살을 꽂고 신원의 산골 곳곳을 사냥꾼처럼 누볐다. 그러나 뭉툭한데다 무거운 화살은 멀리 날아갈 수도, 나무에 그 단단한 몸통을 박을 수도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촉을 날카롭게 다듬어 주길 바랐으나, 촉 이야기를 할 때마다 무섭게 굳어지는 할아버지의 얼굴 때문에 차마 그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촉을 날카롭게 다듬어 주신 것은, 내가 더 이상 활놀이를 하지 않을 때가 되어서였다. 중학생이 되어 나는 활놀이보단 할아버지와 함께 목욕하기를 좋아했는데, 알몸이 된 할아버지의 몸을 만질 때, 나는 그 질긴 살의 감촉에 놀랐다. 할아버지의 험했던 젊은 시절이 이제 각질로 돋아 할아버지의 몸을 뒤덮고 있는 듯 싶었다. 6․25와 거창양민학살사건을 거쳐오며 견디어 온 수많은 혼란들을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등을 밀며 할아버지의 각질까지 벗겨지기를 바랐으나, 밀어도 밀어도 단단한 살들은 벗겨지지 않았다.
 지리산에 숨어든 공산당을 색출하기 위해 국군이 할아버지의 마을로 쳐들어왔을 때, 할아버지는 마을의 이장이었다. 국군들은 마을사람들을 신원국민학교에 가두어 놓고, 굶기고 치고 밟고 협박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발로 채이고 밟히고 그리고 몸에 총알이 박히면서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6․25때도 그러했을 것이고, 독재로 세상이 어두웠을 때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질겨진 살이었다. 내가 그 살들을 벗겨낼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이었을지 몰랐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거창을 떠나 대구로 이사했다. 거창과 신원은 가까웠으나, 대구와 신원은 멀었다. 이사하던 날, 나는 할아버지의 등을 밀었고 할아버지는 나의 등을 밀었다. 내 등을 미는 할아버지의 손은 유난히 억셌다. 아름답고, 목욕탕이 떠나가라 소리쳐도 할아버지의 때수건은 약해지지 않았다. 그게 내가 느낀 할아버지의 마지막 손길이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신원으로 달려갔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죽어서, 할아버지가 아닌 것만이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죽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 보았다. 할아버지의 손아귀를 단단하게 채우고 있던 살들이 거기 그대로 있었다. 목욕탕에서 내가 밀던 등에도, 가슴에도 발바닥에도 살은 여전히 박혀 있었다. 나는 안도했다. 할아버지의 영혼에는 그 단단한 살들이 박히지 않기를 바랐다.
 할아버지가 땅속에 묻히던 날, 나는 할아버지의 유품을 사이에서 작은 화살 하나를 발견했다. 화살은 가볍고 날카로웠다. 촉에는 쇠를 벼리어 만든 작은 비늘 하나가 달려 있었다. 날리면, 빠르고 강하게 날아가 무엇이라도 꿰뚫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본 할머니가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대학가면 준다고 만들어 둔 건데……. 인자 활놀이 같은 것은 안한다 캐도. 그 양반이 참……. 버릴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딱딱한 쇠비늘의 감촉이 할아버지의 단단한 살같았다. 그래, 할아버지의 단단한 살은 살이 아니라 비늘이었음에 틀림없다. 세상의 수많은 공격들은 견디기 위하여 만들어진 갑옷이 틀림없다…….
 나는 화살을 품에 안았다. 세상을 견디면서, 세상과 싸우면서 쌓아온 할아버지의 전언이 화살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할아버지처럼, 내 몸을 뒤덮을 비늘이 살 아래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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